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92화 (192/239)

< 173화 클라드 마을 >

경비병에게 내 정체를 말했지만, 당연하게도 그는 내 말을 바로 믿진 않았다.

그는 곧 촌장에게 내 방문 사실을 알리러 갔고, 잠시 후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찾아왔다.

“몹시 결례를 범했습니다. 하펜 마을의 영주님.”

“아닙니다, 의심하는게 당연하죠. 그나저나 촌장님은 절 알아보시는군요?”

“영주님의 명성으로 알고 있는 용모가 일치하셔서 알 수 있었습니다.”

“흠, 명성이라······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말이죠. 어쨌든 오늘은 저희 마을 회관에 민원을 넣어주셔서 왔습니다만.”

“예, 저희 마을도 영주님의 통치하에 들어가 하펜 마을과 같은 번영을 누리고 싶습니다. 큰 욕심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요.”

“제 통치라고 할만큼 거창한 것은 한 적이 없는데요. 여하튼 마을을 좀 둘러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영주님.”

아직 수락한 것은 아니지만, 촌장의 말이 간곡하게 여겨져 우선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둘러보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상당히······ 소박한 마을 같네요.”

지혜가 그렇게 평했다.

하지만 소박하단 표현은 촌장이 기분 나쁘지 않게 애둘러 표현한 것 같았다.

소박하다기보단 ‘초라하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하펜 마을처럼 광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마을 규모도 작았다.

상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고, 작은 대장간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하펜 마을은 사실 인프라가 상당히 잘 되어 있던 곳인 셈이다.

내가 지은 건물들 외에도 식료품점이나, 푸줏간이나, 잡화점 같은 건물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이상하군요, 시화씨. 게임이라면 보통 마을마다 기본적인 인프라는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게임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결국 마을의 발전도에 영향을 받는 거죠. 중립 영지는 하펜 마을처럼 처음부터 기반시설이 좀 있는 초보자 마을이 아니면 이런 식입니다. 영주가 없기 때문이죠. 본래 중립 영지의 취지는 유저가 마을에 공헌해서 우호도를 쌓아 그곳에 영주가 되는 것인데······.”

“생활 스킬이 사장되다보니 그런 것은 뒷전이다······ 라는 거군요.”

“예, 그냥 모두들 국가 소속 영주로 점프를 뛰어서 사냥하기 바쁘죠.”

“알 것 같습니다. 노슬론 마을보다도 어떤 면에선 더 척박하군요.”

시화와 그런 대화를 주고 받으니, 듣고 있는 촌장의 얼굴이 별로 밝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보다 더 나빴다고 해도 제안은 감사히 받아들일 생각이었습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영주님.”

촌장은 허리와 고개를 연신 숙이며 인사를 했고, 나는 그런 그를 만류했다.

게임 속 NPC라고 하지만 블루스 노인 만큼이나 연로한 사람에게 이런 인사를 받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희 마을을 정식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클라드’ 마을의 통치권을 획득하였습니다.]

촌장의 그 말과 함께 영지를 획득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나는 이제 영지의 정보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영지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영지, 클라드 마을

대륙 중앙의 중립 영지들 중 하나. 본래는 촌장이 다스렸으나, 하펜 마을의 번영을 흠모하여 그곳의 영주 ‘사공진’에게 통치권을 이양했다. 메이거스에 소속되었으며, 아직은 매우 초라한 영지다.

거주 인구 : 110명

세금 수입 : 24시간마다 5,322골드

현재 자금 : 124,338골드

영지 발전도 : 1255/5000

주민 사기 : 저조함]

예상은 했지만 하펜 마을의 영지정보를 처음 봤을 때보다도 훨씬 나빴다.

마을 규몰르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인구부터 예전 하펜 마을의 1/4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뭐부터 해결해야 할지 모두와 토론해보았다.

“우선은 주변의 위협적인 몬스터로부터 마을의 자체적인 방위력을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농지를 보호하고 마을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시화의 의견이었다.

“보아하니 마법사 길드가 없는데요, 노슬론 마을처럼 마법사 길드를 지어주어서 상단이 오갈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요? 마을에 마법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미나의 의견이었다.

“제 생각엔 식료품점과 농장이 긴급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두 굶주린 것 같은 모습이에요.”

지혜의 의견이었다.

각자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하는 것을 골라야 했다.

“우선 시화씨의 의견대로 자체방어력부터 확보해야할 것 같습니다. 주변 농지가 안전하질 않으니 농사를 못 짓고 그래서 마을이 굶주리게 되는 거겠죠.”

모름지기 모든 산업의 기초는 1차 산업, 그러니까 농업이 기본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산업은 발달할 수가 없다.

고로 통치자라면 농업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를 제거하거나 제어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판타지 중세 배경인 이곳에선 몬스터로부터 농장을 방어할 병력인 것이다.

“하지만 시화씨의 말대로 마을의 방위력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자경단을 훈련시키거나, 용병을 고용하거나, 유저들의 유동인구를 늘려서 자율적인 토벌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등이 있죠.”

“우선 자경단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택해야겠군요.”

“그렇다면 훈련소를 짓는 것이 좋은데······ 흠,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것이죠?”

“공진씨가 허락해주신다면 이곳을 저희 군신 길드의 거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신 길드가요?”

“네, 저흰 아직 마땅한 거점 영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펜 마을이 있긴 하지만 그건 저희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공진씨의 영지니까요. 만약 이 영지에 훈련소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지어주신다면 저희 길드원들의 거점으로 삼아 주둔하면서 마을의 방위력을 끌어올리도록 군사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흠······ 좋은 의견 같군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나는 시화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다보니 최초의 영주는 내가 된 모양이지만, 베타테스터들은 시화를 비롯한 군신 길드원 사람들이다.

그들도 영지를 다스리는 노하우는 충만할 테니, 그들에게 맡겨도 좋을 것이었다.

“조언을 좀 더 하자면, 향후 다른 중립영지를 다스릴 때도 군사력은 중요합니다. 하펜 마을처럼 이렇다할 위협이 없는 곳이 아닌 이상, 몬스터나 적에게 유린당하지 않을 군사력이 필수니까요.”

“그렇군요. 그때도 시화님에게 여러모로 부탁을 드리고 싶군요. 내정 문제는 제가 담당할 수 있지만, 군사력은 군신 길드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맡겨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화가 진지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할 일을 말했다.

“그럼 우선 훈련소를 지어야겠군요?”

“예, 훈련소를 지어주시면 당장 자경단을 재훈련 시켜보도록 하죠. 군사훈련은 베타테스트때 여러번 해봤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그 외에 제가 할 일은 없을까요?”

“다른 건물을 지어주실 것들이 많긴 하지만, 자경단을 위해 좋은 갑옷과 무기를 만들어주시는 건 어떨 까요? 보아하니 다들 무장이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대장간이 있으니 그렇게 하죠.”

시화와 그런 논의를 하곤 훈련소를 지을 터를 골라보려 했다.

그때 촌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영주님, 제가 한 마디 거들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영주님이 건축 스킬로 훈련소를 만들어주시는 동안, 저희 마을 사람들도 다른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명령을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흠······ 그렇다면 미나야,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마법사 길드를 지어줄래?”

“그럴게요, 맡겨주세요.”

촌장의 말을 들은 나는 미나에게 분업을 시켰다.

미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을 맡아주었다.

“저는 할 일이 없을까요?”

지혜도 뭔가 일을 거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척봐도 굶주려 보이는 마을 사람들과 촌장의 행색을 보곤 지혜에게 말했다.

“지혜는 마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줄래? 재료는 내가 줄게. 다들 쉽게 먹을 수 있는 빵이면 좋을텐데.”

“그럼 파이로 할게요. 맛도 있고 배도 찰 테니까요.”

“부탁해, 지혜야.”

나는 지혜에게 애플파이 재료를 건네주었다.

110명의 마을 주민들을 먹일 만큼 만들어야하지만, 지혜는 어렵지 않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분업을 하게 된 후, 나는 시화와 함꼐 마을을 살짝 나왔다.

군사건물인 훈련소는 굳이 마을 안에 지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지 건설, 훈련소

영지에 군대를 양성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건물.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란 각오로 병사들을 훈련시킨다. 이곳에서 자경단, 병사, 용병 등을 훈련시킬 수 있다. 기사들처럼 콧대 높은 병종은 더 특별한 건물이 필요하니, 염두해두자.

필요 자금 : 10만 골드

필요 조건 : 1,000 이상의 번영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아주 기초적인 건물로 나올 것 같은 건물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미리보기를 확인하곤 마을 근처에 훈련소를 만들었다.

재료는 석재도 거의 안 드는, 목재 위주의 건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깥에 지으면 몬스터들이 공격하지 않을까요?”

“군사건물이 공격 받으면 알아서 방어를 해야죠. 그것도 못한다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그리고 저는 어떻게든 살아남게 훈련시킬 겁니다.”

음, 시화의 훈련은 어쩐지 빡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훈련 받을 것이 아니란 점이 참 다행이다.

여하튼 망치질을 시작해서 건물을 지었다.

허수아비들을 만들고, 궁수들을 위한 표적도 만들었다.

연병장도 울타리를 쳐서 확보하고, 휴식을 위한 그늘과 의자도 마련했다.

그렇게 훈련소가 만들어지자, 촌장이 자경단원들을 보내주었다.

“모두 4열 종대로 집합니다, 집합!”

시화는 곧바로 교관모드로 바뀌어선 자경단원 NPC들을 굴리기 시작했다.

음, 불쌍한 광경이었기에, 나는 그들을 위해서 무기와 갑옷을 만들어주러, 마을의 몇 없는 기반 시설인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들에게 무장을 주면 훈련은 더 힘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마을이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하는 것을.

“여, 영주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마을의 대장장이님이신가요?”

“아휴, 님이라니요. 그냥 천한 대장장입니다요.”

“하하, 그렇게 딱딱하게 구실 필요 없습니다. 이 마을을 위해서 노력해 봅시다.”

“예! 영주님!”

나는 마을의 대장장이를 만나 인사를 나누곤, 그와 사제의 연을 맺었다.

그는 스미스씨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대장기술이 좋아진 것을 보고 감탄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를 다독이곤 함께 자경단원들이 입을 체인메일과 아밍소드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클라드 마을의 개발이 계속 진행되었다.

< 173화 클라드 마을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