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13일차 로그인 >
촬영이 끝난 뒤, 나와 미나, 그리고 CF스태프들은 게임에서 로그아웃했다.
그들은 대단히 만족한 모습이었고, 나와 미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나를 이곳에 데려왔던 전략실 사람이 찾아와, 이터널사와 사업 전략은 내가 CF를 촬영하는 동안 끝내놓았다고 했다.
나는 업무 복귀를 하려고 과장님에게 전화를 했는데, 오늘 내 일은 다른 사람이 맡게 되었으니 그냥 퇴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한 번 돌아가서 일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과장님은 어쩐지 한사코 그냥 퇴근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눈치를 보아하니, 나한테 전략실 쪽 사람이 온 것을 두고 묘한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마치 내가 그런 라인으로 빽이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런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괜히 전화로 더 말해봐야 긁어부스럼일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럼 저는 이만 보고서 작성을 위해 회사로 돌아가겠습니다. 혹시 귀가하시는데 픽업이 필요하십니까?”
“아뇨, 저 혼자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전략실 사람은 회사차를 몰고 가버렸다.
“둘만 남았네요.”
“그러네.”
그리고 나와 미나만 남게 되었다.
“퇴근하신 거죠?”
“응, 얼마만의 조기퇴근인지 모르겠어.”
“그럼 집에 갈 거예요?”
“그래야······겠지?”
나는 어쩐지 말끝 흐리면서 말했다.
인식하지 않은 사이, 어느새 미나의 맑은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 눈이 너무 예뻐서,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현실이지만.”
“안 될 것 없지.”
“그럼 오빠, 아주 오랜만에 얻은 자유시간에 여자와 단 둘이 남으면 뭘 해야 할까요?”
“그, 글쎄?”
“아이참, 정말로 제가 말하게 할 셈이에요? 데이트······하자고요.”
미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달아올랐다.
데이트라, 그런 것이 세상에 있었는지 조차 잊고 살았다.
“하지만 데이트는 사귀는 사람끼리만 하는 거지 않나?”
“언제적 사고방식이에요, 오빠? 그냥 여자사람친구나 남자사람친구끼리도 하거든요?”
“그래? 요즘 젊은 사람은 잘 모르겠어.”
“28살 밖에 안 됐으면서 무슨 말이에요? 누가 보면 서른은 넘은 줄 알겠네.”
미나의 핀잔에 나는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나는 화제를 바꿔볼까 하고 말했다.
“그럼 어디갈까.”
“놀이동산! 놀이동산 가요!”
“갑자기 놀이동산······ 난 양복차림인데.”
“양복이면 뭐 어때서요, 얼른 가요. 레츠 고!”
나는 미나에게 이끌려 택시를 타고 졸지에 놀이동산으로 데이트를 가게 되었다.
* * *
미나와 신나게 놀다보니 어느새 늦은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랜만에 이렇게 노는 것, 그것도 친구와 노는 것은 정말로 재밌었다.
미나나 나나 둘다 헤어지는 것은 아쉬웠지만,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가상현실 속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오빠.’
나는 집으로 들어오면서 미나와 헤어지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즐거웠다는 말에 나도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 헤어지려고 했는데, 미나가 말을 덧붙였다.
‘오늘 일······ 지혜에게는 비밀이에요.’
‘광고 찍은거 말이야?’
‘호호, 아니요. 데이트한 거요.’
‘왜?’
‘어쩐지 그 아이에게 상처 줄 것 같아서요.’
‘······.’
‘······잘 가요, 오빠.’
······나는 그 대화를 계속 곱씹어 생각했다.
지혜에게 상처를 줄 것 같다는 말을 왜 미나가 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했다.
나와 지혜는 정말로 친구일 뿐인 관계일까?
그런 질문을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할 것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10살이나 차이 나는 미성년자와 성인의 관계에 친구 이상의 무언가는 어울리지도 않고 허용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그런 질문을 지혜에게 한다면, 지혜도 같은 말을 할까?
그건······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아이는 어쩐지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 같았으니.
그게 단지 도움을 준 어른에 대한 호감의 표현일지.
아니면 그 호감과 호감 이상의 무언가를 구분하지 못한 감정의 표현일지는 지혜만이 알 것이다.
아니, 지혜또 잘 모를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이니 말이다.
하지만 미나는 지혜가 나를 친구 이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해져서 샤워를 했다.
머리를 적시니 한결 생각이 가벼워졌다.
샤워를 끝낸 뒤, 나는 맥주캔 하나를 따 마셔서 숨을 돌렸다.
피로를 노곤히 녹인 뒤, 오늘도 접속하기 위해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사용자 신원 ‘사공진’ 확인.
<마일스톤>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접속한다.”
게임으로 접속했고,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다.
농장의 풍경은 몇 시간 전, CF를 찍을 때와 똑같이 평화로웠다.
실버가 멍멍, 골드가 월월 짖으면서 내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얼굴을 들이대고, 호크와 옥스도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골렘도 내게 인사를 했고, 한편에는······.
“오셨어요, 오빠?”
······지혜와 미나가 있었다.
미나는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히 있었고, 오늘은 지혜까 내게 인사를 했다.
“응, 안녕. 지혜야. 오늘도 제과점하면서 재밌게 놀았니?”
“네, 오늘은 스콘을 만들어 봤는데 무척 반응이 좋았어요.”
화사하게 웃는 지혜였고, 나는 반사적으로 따라 웃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조심스런 기분이 들었다.
“잘 됐네.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그럼 만들어 먹어 볼까요?”
“그럴까?”
“네, 그런데 오빠. 오늘은 농사는 안 지어요?”
“아, 농사는 말이야······ 오늘 낮에 지었어.”
“낮에요? 낮엔 회사에 가시지 않았어요?”
“그게······.”
나는 오늘 낮에 미나와 함께 CF를 찍은 것을 지혜에게 말했다.
“그때 여러 생활 스킬을 홍보하듯 찍었는데, 농사도 그때 했어.”
“그랬군요. 밭이 비어 있어서 몰랐어요.”
“아마 골렘이 수확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니, 골렘이 곁에서 “그렇습니다, 주인님.”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정령들을 소환해볼까······ 아 맞아.”
“무슨 일이에요?”
“이제 정령들을 상급 정령으로 소환할 수 있어.”
“와, 어서 소환해봐요!”
지혜는 기대가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미나도 관심을 보이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두 사람이 바라보는 가운데 정령친구들을 상급 정령으로 소환했다.
화르르르르륵
우선 불돌이였다.
어쩐지 힘 찬 느낌의 화염이 솟구치면서, 더 이상 강아지가 아니라 늠름한 개의 모습인 불꽃진돗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왈 왈!
“어이쿠!”
덩치가 제법 커진 불돌이가 내게 앞발을 들어올려 안기니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는 불돌이를 마구 쓰다듬어주었고, 불돌이는 불타는 것 같은 혓바닥으로 내 얼굴을 핥았다.
우호적인 사람에게 불돌이의 불꽃은 하나도 뜨겁지 않은 것 같다.
“불돌이가 늠름해졌네요!”
“어머, 그래도 여전히 귀여워요.”
지혜와 미나도 불돌이를 쓰다듬었고, 불돌이는 더 귀여움 받고 싶은 모양인지 발라당 드러누워 배를 까보였다.
그녀들은 그런 불돌이의 배를 만져주고 간지럽혀 같이 놀아주었다.
“이번엔 물방울을 불러야지.”
나는 시스템창의 커맨드를 조작해 물방울을 상급 정령으로 소환했다.
슈파아아앗!
대기 중의 수분이 급속도로 모이는 것 같은 소리와 시각 이펙트가 일어나면서 물방울이 나타났다.
더 이상 아기 고양이가 아니라 신비로운 분위기의 러시안 블루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약간 귀여운 맛이 사라졌지만, 성숙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냐아아옹!
물방울은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면서 앞발을 들어보였다.
나에게 관심을 보여달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물방울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었다.
물방울이 기분 좋은 모양인지 머리를 손에 비볐다.
냐오옹!
“아이쿠!”
물방울도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갑자기 내 손을 타고 올라와 어깨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리곤 내 머리 위에 매달리는 물방울이었다.
“이 녀석아, 거기가 좋아?”
냐오오옹
좋다는 모양이다.
호크를 자주 타고 다녔는데, 이젠 호크를 타기엔 힘든 덩치가 되니, 나를 타고 다닐 생각인 모양이다.
내 밀짚모자 위에서 잘도 안 떨어지고 있었다.
“다음은 바람이.”
나는 바람이를 마찬가지로 상급 정령으로 불렀다.
슈우우우욱!
바람소리가 거칠게 불면서 녹색 기운의 기류가 뭉쳐졌다.
그리고 바람이의 형상이 되었는데, 매우 큰 독수리의 모습이 되었다.
거의 호크의 두 배 이상인 모습이었다.
삐이이이익!
“바람이, 더 늠름해졌구나.”
삐이이익!
내 팔뚝에 앉은 바람이는 바람이라서 그런지 크기는 커도 무겁지는 않았다.
아니면 나에게만 무겁지 않은 것이거나 말이다.
늠름해졌다는 말에 바람이는 역시나 군인처럼 오른쪽 날개로 경례를 하면서 답했다.
검지손가락으로 바람이의 머리도 살짝 긁듯이 쓰다듬어 주면 바람이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는 태산이다.”
태산이도 상급정령으로 소환했다.
별다른 소리는 없이 맨땅의 흙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육지거북의 모습이 되었다.
강아지처럼 작은 편이었던 태산이의 모습은 거의 3배가량 커져 있었다.
브어어어엉
울음소리는 여전히 귀엽지만 말이다.
쿠우우우울······.
하지만 졸음은 여전한 모양이다.
소환하자마자 내게 브어엉 거리곤 곧바로 잠드는 것이다.
나는 태산이의 등딱지를 만져주었다.
태산이는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걸로 다 소환했네.”
“전부다 멋있어졌어요.”
상급 정령이 되어 멋이 더 나게 된 그 아이들을 지혜가 특히 더 좋아했다.
그녀가 좋아해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오빠, 오늘 뭐할 계획이에요?”
“음, 일단 지혜랑 스콘을 만들어 먹어볼까.”
미나가 할 일을 물어보았고, 나는 우선 할 일로 간단한 요리를 해먹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 다음은요?”
“마을에 가봐야겠어. 마탑이 지금쯤 다 지어졌을지도 궁금하고, 상단사무소랑 마을회관도 방문해야지. 특히 마을회관에선 민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까, 내가 확인해야 할 거야. 그런 다음엔······.”
나는 계속해서 할 일을 생각해보았다.
“아, 그래. 수도로가서 예술가 길드라는 곳을 방문해야해. 보석세공도 활성화 시키려면 보석상을 지어야하니까.”
“꼭 보석세공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제 촌장에게 들어보니 노래나 음악, 춤이나 그 외에도 여러 생활 스킬들이 더 있나보던데요.”
“그런 모양인가 봐. 일단 수도에 가서 사정을 알아보고 우리 마을에도 영입할 수 있다면 한 번 해봐야지.”
미나는 수도에 가는 것이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들은 스콘을 만들어 먹어보기로 하고, 제과를 할 준비를 했다.
지혜는 조리 스킬의 도움 없이도 스콘을 만들 수 있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스킬을 이용해 만들 생각으로 조리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해보았다.
< 169화 13일차 로그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