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87화 (187/239)

< 168화 CF촬영(2) >

연기라고 해봐야 나와 미나가 하는 것은 별 거 없었다.

우선 개들을 쓰다듬어 주고, 뛰어노는 장면을 촬영했다.

목축으로 키우는 동물은 아니지만 불돌이가 실버와 골드하고 어울려 함께 찍혔다.

그런 다음엔 웬일인지 애교를 부리는 물방울의 배를 간질여 주기도 하고, 태산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다음엔 호크와 바람이가 나란히 서있는 장면을 나와 미나가 나란히 보고 있는 걸 촬영했다.

“좋습니다, 처음치곤 연기를 아주 잘하시네요, 공진씨.”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아름다운 전원 농장에 살고 있는 연인 컨셉이거든요. 두 분 캐미도 잘 맞고, 어울려서 그림이 잘 나오고 있어요.”

“어머머, 그래요? 호호, 잘 됐네요.”

“······.”

감독의 말에 나는 낯부끄러워서 할 말을 잃었지만, 미나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뭐, 미나가 기분 좋으면 된 거지.

“흠, 하지만 좀 더 인상 깊은 장면을 찍고 싶은데······.”

“저기 그러면 소를 타는 건 어때요?”

“소요? 탈 수 있나요?”

미나의 제안에 감독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나는 미나의 말을 거들 듯 그에게 말했다.

“네, 탈 수 있습니다.”

“위험하거나 하진 않습니까?”

“전혀요. 누가 타도 안전합니다.”

“그럼 미나씨가 타고, 공진씨가 옆에서 손을 잡는 걸로 하죠.”

“네······ 그런데 꼭 손을 잡아야 하나요?”

“에이, 연인 컨셉인데 당연하죠.”

“······.”

미나와 연인이라니, 내게 너무 과분한 컨셉 같지만 일단 감독이 그렇다면 그래야겠지.

곧 미나가 옥스의 등에 탔다.

옥스는 음머어어어 하고 울었지만 얌전히 있었다.

그리곤 미나의 오른손을 잡고 에스코트하듯 농장 주변을 걸었다.

미나는 환하게 웃었고, 나는 이 분위기가 어색하긴 했지만, 그녀의 미소를 보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컷! 아주 좋습니다. 하하!”

감독이 호탕하게 웃으며 컷을 외쳤다.

그러자마자 나나 미나는 너나 할 것 없이 약간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바로 손을 놓았다.

어쩐지 미나의 눈을 바라보기가 힘들다.

가슴도 뛰고 말이다.

어쨌든 촬영은 계속되었고, 감독의 다음 요구가 이어졌다.

“이번엔 농사짓는 걸 해볼 수 있을까요?”

“네,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어제 로그아웃하러 농장으로 돌아오기 전에 식료품점에서 오늘 심을 작물씨앗을 사뒀었다.

그래서 지금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그렇게 답했다.

“그럼 자연스럽게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편집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이번에도 미나도 같이 하는 모습을 보여야하나요?”

“요점을 잘 짚으시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저도 괭이로 밭을 갈거나 할게요.”

“아니, 괭이질은 내가 할 테니까, 미나는 편하게 옥스를 써.”

나는 역할 분담을 미나에게 편하도록 하곤, 옥스에게 쟁기를 씌우고 밭으로 향했다.

내가 괭이를 들고, 그녀가 옥스를 이용해 밭을 갈기 시작하면 촬영팀은 그 장면을 찍느라 열중하고 있었다.

거기까진 감독은 만족스러웠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농사를 짓기 위해서 거름을 뿌리고 씨앗을 뿌리려던 때였다.

“어? 저렇게 정령술로 간편하게 뿌려버리는 겁니까?”

“네, 그런데요.”

“흠······ 이건 이거대로 임팩트가 있긴 한데······ 훈훈한 분위기가 덜 연출되는 것 같네요. 그러지 말고 두 분이 직접 씨앗을 손으로 뿌리는 걸 연출할 순 없을까요?”

“필요하다면 해야죠.”

“그럼 부탁드립니다.”

나와 미나는 감독의 요구대로 바람이에만 의존하지 않고, 우리들이 직접 씨를 뿌려 파종하는 연출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연출일 뿐이었다.

바람이를 이용하지 않고 제대로 씨를 심으려면 뿌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삽이나 호미 따위로 땅을 파고 거기에 심어야 하니 말이다.

아마 감독은 전원생활을 만끽하는 연인이 사이좋게 씨앗을 뿌리는 장면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

흠, 그런 생각을 하니 또 얼굴이 화끈해지는구만.

여하튼 감독의 그런 개입은 물을 뿌릴 때도 있었다.

“스프링클러 같은 걸로 물을 주는군요.”

“네, 분수기라고 정령술도구입니다. 마법으로 구현된 스프링클러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름 멋지긴 한데요, 이것도 사람이 직접하지 않으니 뭔가 기계적입니다. 그······ 물뿌리개 같은 건 없나요?”

“있습니다. 이제 잘 쓰지 않긴 하지만 원래는 물뿌리개로 물을 줘야했거든요.”

“잘됐네요. 이번에도 비슷한 연출을 부탁드립니다.”

여하튼 이번에도 미나와 함께 ‘연출’을 하게 되었다.

물뿌리개는 하나 뿐이었지만, 미나 것을 위해 나무 물뿌리개를 급조해서 만들었다.

촬영팀이 나무 물뿌리개를 만드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어쨌든 나와 미나는 이번에도 연인처럼 나란히 서서 밭에 물을 뿌리는 연출을 했다.

이미 분수기가 있어서 그런 행동은 의미 없는 것인지라, 물방울이 어쩐지 한심한 눈초리로 나나 미나를 보는 듯했지만 말이다.

그 다음으론 잡초들을 동물들이 먹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농사짓는 것을 촬영하는 건 마무리 되었다.

“자 다음은······ 어디보자······ 사이좋게 요리해서 먹기······ 좋아요, 요리에요. 요리하는 영상을 올리셨죠?”

“네, 조리 스킬을 이용한 거지만요.”

“그 장면을 한 번 촬영합시다. 다만 그 홍보 영상에선 스킬을 써도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거랑 어 요리 과정을 재현하는 게 있던데요.”

“네, 고급 요리는 간소화된 조리과정이 구현되어 있죠.”

“그럼 그걸 좀 했으면 하는데요. 미나씨와 서로 요리를 도와서 만드는 형태로요. 가능할까요?”

“네, 어렵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잠시 후 어떤 요리를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미나가 추천해주었다.

“케이크 어때요? 전에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 봤잖아요, 그냥 연출하는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 그걸로 하자.”

미나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케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다만 지난 번의 초콜릿 케이크를 만든 것과는 달리 이번엔 생크림 케이크로 결정했다.

곧 나와 미나는 반죽을 만들고, 섞고, 굽는 것을 서로 도와 만드는 모습을 찍었다.

연출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별로 연출이 아니라 정말로 케이크를 굽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잘 찍혔어요.”

“그럼 이제 뭐하죠?”

“먹는 장면을 찍어야죠.”

“그것도 둘이서 먹어야하나요?”

“당연하죠. 최대한 오순도순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

흠, 계속 부끄러운 연출이 계속 되는 것 같은데······ 컨셉이란 것이 이렇게 힘든 건줄 몰랐다.

여하튼 나는 평소의 테이블을 꺼내 세팅하곤 케이크를 놓고 먹으려고 했는데, 감독의 개입이 있었다.

“테이블이 너무 커요. 좀 더 작은 테이블은 없나요?”

“어······ 만들 순 있는데요. 얼마나 작은 테이블이어야 하죠?”

“서로 얼굴을 맞댔을 때 가까워질 수 있을 정도로요.”

“아, 그런 연출을 하려나 보군요.”

“네, 그러니까 자세히 말하자면······ 살짝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보이다가, 공진씨 코에 생크림이 묻고 미나씨가 그걸 닦아주고 웃는 연출을 하려고 해요.”

“······.”

감독의 요구가 점점 레벨이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CF 전문가는 그이니, 샐러리맨에 불과한 내가 어쩌라고 할 순 없었다.

뭐, 미나도 아무 말 없는 걸 보면 문제는 없겠지.

곧 나와 미나는 감독의 요구대로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그러한 연출을 했다.

미나가 내가 만들어준 목화 손수건으로 내 코에 일부러 묻힌 생크림을 닦아주었다.

사실 내 기분은 연인이라기 보단 간식 먹다가 어머니에게 얼굴을 닦이는 아이가 된 기분이지만, 미나는 환하게 웃어서 나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 씬도 문제없이 OK를 받아냈다.

“다음은 뭔가요?”

“각본에는 대장장이라고 적혀 있네요.”

“대장기술 말이군요.”

“네, 이번엔 공진씨의 야성적인 멋을 좀 내보려고 합니다.”

“저는 딱히 야성적이지 않은데요.”

“하하하, 연출입니다, 어디까지나.”

감독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것저것을 요구했다.

적당한 검을 만들기 위해 망치질 하는 모습을 찍으려고 하는데, 그냥 찍는 게 아니라 웃통을 벗으라고 했다.

땀을 흘리고 근육이 요동치는 모습을 담고 싶다나 뭐래나?

현실에서 그런 걸 하라면 좀 부끄럽겠지만, 나는 게임에선 몇 번이고 웃통이나 아니면 웃통과 하의를 벗고 수영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별로 부끄러워할 것 없이 대장간에서 망치질을 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다음 생활 스킬을 촬영하기 전에 자투리로 수영하는 영상을 찍읍시다. 호수가 아주 맑아서 그림이 잘 나올 것 같아요. 수영하실 줄 아시죠?”

“네, 좀 합니다.”

대장간 촬영을 마치자마자 그런 요구가 이어졌다.

땀도 흘렸으니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저기, 저도 수영복 있어요. 그리고 이것도요.”

“앗 비치발리볼이잖아요?”

“네, 이거 가지고 논적이 있었거든요.”

“그럼 미나씨도 같이 촬영해도 될까요? 공진씨는 수영하고, 미나씨는 물장구치면서 강아지들이랑 공놀이 하는 모습으로요.”

“그렇게 해요.”

거기에 미나가 끼어들어 조금의 애드립이 추가되었다.

미나는 비키니를 입고 감독의 요구대로 물장구를 치고 공을 던지며 놀았다.

실버와 골드, 불돌이가 공을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태산이, 호크, 물방울이 나와 수영하는 모습도 찍혔다.

그 다음은 낚시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감독은 나와 미나가 호숫가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어서 앉아 낚시를 하도록 했다.

그래야 애틋해 보인다나?

“이걸로 생활 스킬은 전부 촬영했어요.”

“그런 끝난 겁니까?”

“음, 그것이 하나 더 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저기 저 배, 써도 되는 겁니까?”

“네, 쓸 수 있는 겁니다.”

“그럼 공진씨랑 미나씨가 배를 타고 호수를 거니는 모습을 찍죠.”

“······거기엔 무슨 연출이 필요하죠?”

“그냥 공진씨가 배를 저어서 호수 가운데로 가, 대화를 나누는 걸로 하면 됩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면 되죠?”

“그건 아무거나 해주세요. 그냥 말하는 척만 해주셔도 좋습니다.”

아마 마지막 촬영이 되는 것 같았다.

나와 미나는 감독의 요구대로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로 향했다.

그리고 요구대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오늘 촬영 어땠어요?”

“그냥······ 조금 부끄럽네.”

“저도 좀 그랬어요. 하지만 재밌고 좋았어요.”

“나도. 재밌었어.”

“호호호, 저랑 같이해서 그런 건 아니겠죠?”

“미나랑 같이해서 그런 건데?”

“······.”

“······.”

나는 미나의 말에 솔직히 답했다.

그러고는 약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미나의 얼굴이 붉어지는 게, 명백히 부끄러워하는 눈치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가 되는건지 눈치채면서 얼굴이 좀 붉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미나랑 같이 노는 기분이라서······.”

“흐응······ 그래요? 연인······이 된 기분이라 그런 건 아니고요?”

“어, 어디까지나 연출이었잖아.”

“그럼 저만 연인 기분 낸 거네요. 하긴, 오빠랑 저는 연인인 건 아니죠.”

미나가 다소 실망한 모습이다.

어째 그런 모습이 왜인지는 몰라도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말해야만 했다.

“아냐.”

“네?”

“나, 나도 연인이 된 기분이었어.”

“······.”

“······.”

내 마지막 말에 나와 미나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멈출줄을 몰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녀와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이야 몇 번이고 잡았지만,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부드럽고, 온기가 느껴지며, 또한 찌릿한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촬영이 끝났다.

< 168화 CF촬영(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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