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81화 (181/239)

< 162화 10일차 선술집(2) >

“그러니까 노슬론 마을에 가서 다 같이 놀았다는거구먼.”

“네, 재밌었죠.”

나는 블루스 노인에게 노슬론 마을에 가서 한 일을 모두 말했다.

블루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을 마셨다.

“이야기만 들어도 재밌었겠구먼, 얼음낚시에 온천이라니. 허허, 그런 휴가를 가본 것이 언제인지 참······.”

“어르신도 함께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흠, 그런 마음은 굴뚝같지만 젊은이들 노는 자리에 내가 끼면 좀 그렇지. 그래도 자네 말대로 노슬론 마을도 활성화되면 한 번 가보겠네.”

블루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한편 드래곤씨는 어쩐지 나를 노려보는 눈치였다.

물론 헬름에 가려져 있어서 눈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분위기가 그런 것 같았다.

이상하다, 그런 기분을 느낄수록 어쩐지 드래곤씨를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하지만 뭔가 본능적으로 그에게 그것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물끄러미 드래곤씨를 보고 있으면 블루스 노인이 계속 말했다.

“자네 사업이 계속 궤도에 오르는 느낌이군. 노슬론 마을과 연계가 이루어지면 더더욱 탄력을 받겠지.”

“예, 부득이 사업이 되었고, 어쩌다보니 계속 확장이 되는군요. 전부 다 천운입니다.”

“운도 실력일세. 이거······ 그룹 내에 정식으로 가상현실 사업부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을 정도인데.”

“그러기엔 불확정 요소가 너무 많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블루스 노인의 물음에 나는 문득 오늘 회장님을 뵌 일을 떠올렸다.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었지, 하지만 블루스 노인은 게임을 직접하는 사람이니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우선 가장 주요한 점은 제 영지의 국방력입니다. 경제를 논하기 전에 이 영지를 다른 경쟁자로부터 유지할 수 있느냐가 문제죠. 이것은 군신 길드에 맡기고 있는 부분이라 제가 뭐라할 순 없지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시화를 바라보았고, 시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희들은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곤 풀타임으로 레이드를 뛰면서 스펙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진씨 덕분에 스폰서의 지원도 더 많아져서 아이템도 더 잘 맞추고 있죠. 그리고 꾸준히 메이거스의 국가 기여도도 올리고 있습니다. 만약 국가간 전쟁이 일어난다면 다수의 병력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다 해도 쉽지 않을 걸세. 라이벌 길드가 전부 밀레스로 가서 자네들을 벼르는 중이니까. 그들도 못지않게 노력하고 있겠지. 지난번 소규모 영지전과는 양상이 달라질 걸세.”

“맞습니다. 다만 저희는 경제력에 더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메이거스 자체가 밀레스보다 상업이 더 발달했으니까요. 국가간 전면전이 되면 병력상으 우위는 저희가 점할 겁니다.”

“그렇다 해도 밀레스의 기사와 중보병 전력을 어쩌지 못하면 소용없을 걸세.”

“그땐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메이거스의 특화인 마법사 전력을 이용해서······.”

어느덧 블루스 노인과 시화의 토론이 되어버렸다.

두 사람은 내가 잘 모르는, 아마도 베타 테스터들이 알 법한 정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둘의 대화를 따라잡기 힘든 것은 드래곤씨도 마찬가지인지 그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기병 전력에 대응하려면 결국 같은 기병으로 대응하거나 아니면 파이크 병을 양산해야할 텐데, 기병 전력은 쉽게 양산 되는 것도 아니고, 파이크 병이 늘어나면 중보병들이 날 뛸 테지.”

“최대한 밸런스 있는 보병 비율을 구상하는 수밖에요.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기병입니다. 포기하기엔 너무 전략적 필요성이 크고, 특화시키기엔 밀레스의 기사대를 따라잡기 힘들겠죠.”

“아직 메이거스의 사격기병 테크놀로지는 드라군을 뽑을 만큼 발달되진 않았지?”

“예, 아직 궁기병 수준입니다. 플린트락 머스킷 조차 개발되지 않은 상태죠.”

“베타 테스트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군. 밀레스 쪽도 황실기사단은 개발되지 않았겠지만, 초반 전력은 아무래도 밀레스가 좀 더 전쟁에 특화되어 있구먼.”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두 사람이었다.

흠, 대충 들어보니 우선 메이거스 쪽은 기병 전력이 약한 모양이다.

중세 전쟁의 핵심은 기병, 그것도 기사전력인데 밀레스는 기사의 나라라고 하니까 그 나라를 따라잡기 힘든 거겠지.

그러자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 시화씨. 도움이 되는 이야긴지는 모르겠는데요.”

“네, 뭐죠?”

“말 대신 소를 타 보는 것은 어떨까요? 골렘의 말에 따르면 말만큼이나 뛰어난 기승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나의 말에 블루스 노인과 시화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곧 블루스 노인이 말했다.

“그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 했네. 소를 탄다라, 확실히 베타 테스트 때에는 하지 않았던 시도야.”

“그야 소를 키우는 사람이 있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지 않나? 말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걸 소로 대체한다면 말보단 구하긴 쉬울 거야. 벌써부터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5,000명이 농지를 임대했다고 했지? 그럼 이미 5,000마리의 소가 있는 거나 다름없네.”

“이론적으로는 그렇긴 합니다만······.”

블루스 노인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듯했다.

시화도 뭔가를 떠올리는 모양인지 눈을 잠시 감았다가 말했다.

“본격적으로 훈련소를 짓고 우선 시범적으로 운영해본다면 불가능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소의 성능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긴 하지만요.”

“원하신다면 옥스를 한 번 타봐도 좋습니다, 시화씨.”

“그럼 잠시 후에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일단 영지 방어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귀결되는 듯했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오지. 그 밖에는 뭔가 문제일 것 같나?”

“가상현실 사업부를 만들기엔 이 게임의 인기에 의존하게 될 것 같습니다.”

“흠, 게임이 망하면 사업부의 존립 자체도 힘들어질 것이다?”

“예, 이렇게 큰 수익을 내는 것이 다른 게임에서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자네의 노하우를 다른 게임에도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저의 노하우라고 해봐야 그냥 게임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나는 그 점을 크게 생각한다네, 자네는 다른 유저들과는 뭔가 다른······ 본질적인 것이 있어. 단적인 예로 가상현실 게임에선 생활 스킬이 그다지 각광받지 않는데도, 자넨 거기서 재미를 찾아내는 거야. 그런 천부적인 열정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세. 자네는 이 게임에선 선각자나 다름없었어. 그리고 그건 다른 게임에서도 통할만한 거야.”

블루스 노인의 말에 나는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게임을 즐겼을 뿐이다.

현실에 지쳐서, 힐링이라는 뭔가 추상적인 것을 좇아 게임을 조금 색다르게 한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큰 가치와 능력을 지닌 것일까?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네. 그깟 게임을 즐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거겠지. 하지만 보게나, 시화군은 게임을 즐기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네. 세상 일이란 것은 모르는 거야. 전에도 말했지? 현실에선 이제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나는 프로게이머, 전문게이머가 가상현실의 현실화에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네. 예컨대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더 이상 현실의 것만으로는 부족해진다는 것이지.”

블루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곤 위스키로 목을 축이고 덧붙였다.

“우리 그룹은 언제나 다른 이들보다 한발 앞서서 이윤을 챙겼네. 나는 회장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그런 가상현실 사업에서 우리 그룹이 뒤처지지 않길 바라네.”

“지금도 그룹 차원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야 그건 기존의 기성 기업들이 꽉 잡고 있었으니까. 소위 말해 딴따라들이 자기네들 영역에 경영인들은 오지 말라, 이거였지. 물론 뭐, 그러면서도 경영에 대해선 전문경영인들은 고용하고 있지만, 하지만 말이야, 판이 바뀌면 그 판은 먼저 먹는 자가 임자란 거야. 꼭 가수, 배우하던 사람들이 그 판을 먹으라는 법이 있나? 돈 되면 우리가 먹음 그만이지. 그렇지 않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자네가 그 선두에 선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은 건가? 게임이 망할까봐 걱정되는 것보다 더 높은 직책에 올라갔을 때,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운 거지? 다 알고 있네. 자네쯤 되는 사원들은 그러기 마련이야.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기억해두게나.”

블루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곤 내 어깨를 툭툭 쳤다.

패기를 가지라는 말 같았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김칫국을 마시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런 사업부를 신설하려면 여러모로 그룹 내의 인사구조가 시끄러워질 테니까요. 회장님이 그런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추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내 아들이 그렇게 안목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안목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게임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식 차이죠. 저도 게임을 잘 안다고 말할 순 없지만, 회장님은 일단 유저가 아니니까요.”

“그런가? 그렇단 말이지? 흐흐흐······.”

“······?”

블루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왜인지는 몰라도 드래곤씨를 힐끗 보았다.

드래곤씨는 뭔가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위스키를 마셨다.

“앗! 지혜야, 이제 왔어?”

“예, 언니. 어? 할아버지도 계셨어요?”

“오냐, 지혜 왔냐. 제과점에 다녀왔다고? 빵은 많이 팔았어?”

“네, 사람들이 무척 많아져서 전보다 빵을 많이 만들어둬야 했어요.”

“힘들지는 않고?”

“재밌어요.”

지혜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고, 블루스 노인은 느긋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지혜는 드래곤씨에게 시선이 갔다.

“누구······?”

“······.”

드래곤씨는 지혜가 보자 어쩐지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였다.

지혜는 그의 반응을 보고 더욱 이상하게 바라보았는데, 블루스 노인이 말했다.

“흠, 지혜야. 오늘 재밌게 놀았다고 들었다. 언제 한 번 우리가족들도 실제로 어디 놀러 갈까? 하와이나 어디라도?”

“에이, 방학도 아닌데요. 아빠도 바쁘고요.”

“호오, 아범이 안바쁘면 갈 테냐?”

“그냥 게임하는 게 더 좋아요.”

“그래도 언제 한 번 가족여행을 가보자꾸나. 꼭 현실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현실이 아니어도요?”

“그래, 가상현실에서라도 좋은 바다가 있으면 가면 되잖니. 미나양이 만든 홍보 영상 보니까 좋은 바다가 있던데.”

“트로페 마을의 해변이에요.”

“그러냐? 언제 아범이랑도 같이 가자꾸나, 그건 좋으니?”

블루스 노인의 물음에 지혜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아빠는 안할 것 같은데······.”

“허허, 모르는 일이다, 그것도.”

블루스 노인이 그렇게 말하자,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아요.”

“아범이 들으면 좋아하겠구나.”

지혜가 그렇게 말하니, 블루스 노인도 웃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훈훈해서 그런지 드래곤씨도 웃는 것이 보였다.

< 162화 10일차 선술집(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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