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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180화 (180/239)

< 161화 10일차 선술집 >

온천욕을 마음껏 즐기고 동물과도 교감한 우리들은 개운한 기분으로 마을에 돌아왔다.

노슬론 마을은 한창 공사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사냥꾼 길드와 상단, 마법사 길드를 만들고, 아직 정령석은 보급받지 못 했겠지만 온실의 외형을 미리 지어놓는 모습도 보였다.

처음 보았을 때, 정적이고 삭막했던 설원 마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의 열기만큼이나 훈훈해진 모습이다.

“영주님께서 여러분께는 특별히 텔레포트를 무상으로 해드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하펜 마을로 돌아가려고 마법사의 집을 방문했는데, 의외의 친절을 받았다.

마법사도 길드가 생기기 때문인지 싱글벙글한 모습으로 텔레포트를 시켜주었다.

게임 속의 일이긴 하지만 좋은 일을 한 기분이라 좋았다.

여하튼 우리들은 곧 하펜 마을의 광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더 많아진 기분이네요.”

“유동인구가 확실히 늘어난 기분이에요.”

광장으로 텔레포트하자마자 미나와 지혜가 주변을 보고 말했다.

확실히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무기상점, 의류점, 공용조리소, 공용대장간, 제과점, 정령술사 길드까지 들락거리고 몰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것들의 수용능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될 수준인 것이다.

“공용대장간은 편리한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도 농장 하나 임대받아서 나만의 용광로를 만들어 볼까.”

“그러려면 정령술 도구도 필요하고 해서······ 무엇보다 귀찮아. 헤헤.”

귀한 정보나 다름없는 행인의 수다도 들렸다.

보아하니 공용대장간과 공용조리소는 이미 수용한계가 넘친 것 같다.

그렇다면 농장을 임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터인데, 역시나 ‘귀찮음.’이 생활 스킬의 가장 큰 적인 듯 했다.

아무리 편의를 봐주고 편리하게 해주어도, 근본적인 귀찮음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농장을 가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공용대장간이나 공용조리소를 더 지어주기에는 수요예측이 불완전해서 곤란했다.

농장을 임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 두 건물의 활용도는 점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제과점에도 사람들이 엄청 붐비는 모양이구나. 빵이 다 떨어지진 않았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저, 제과점에 가봐야겠네요. 저······ 오빠는 농장에 돌아가실 건가요?”

“어, 그래. 선술집을 열려고 하는데. 제과점일 보고 올래?”

“네, 일보고 곧바로 갈게요.”

지혜는 그렇게 말하곤 제과점으로 향했다.

흠, 이제는 미나와 지혜랑 꼭 붙어다니는 것이 당연시 되어버렸구나.

친구 사이란 것이 다 그런거지만 말이다.

28살 먹고 연하의 친구들을 사귀니 좀 어색하긴 하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여하튼 지혜는 잠시 일행에서 빠졌고, 남은 일행과 나는 농장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셨습니까, 주인님.”

“아, 골렘아. 잘 놀다왔어. 농장은 별 이상 없지?”

“없습니다. 또한 술도 채워놓았습니다.”

“고마워! 바로 선술집 열어도 되겠다.”

나는 골렘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곧바로 선술집을 열었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오늘도 술을 팔고 인생을 바꿔줄 시간인 것이다.

“크으, 여긴 정말 좋아! 싼 값에 좋은 술도 마시고 맛난 것도 먹고. 현실보다 최고다 최고.”

“내 말이 그렇다니까, 현실에서 뭐 좀 먹고 마시려면 얼마나 돈 깨지는데. 식도락은 가상현실에서 하는게 훨씬 더 싸게 먹혀.”

“그런데 메뉴가 더 늘었으면 좋겠어. 중식이나, 양식 쪽으로 더 늘릴 순 없을까?”

“한식이나 분식도 좋은데······ 최근엔 메뉴는 별로 안늘리더라고. 뭐, 지금도 메뉴는 많긴 하지.”

선술집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니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흠, 생각해보면 요즘은 신 메뉴 개발은 잘 하지 않았다.

그냥 지혜랑 미나하고 먹기만 했다.

슬슬 메뉴 추가를 해볼 때일까?

그런데 오늘 만든 거라고 해봐야, 떡볶이 정도인가?

한 번 떡볶이를 팔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려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떡볶이를 만들어보았다.

어묵에 쌀떡, 계란, 양배추를 넣은 표준적인 떡볶이를 만들고 요구르트를 정갈하게 담아 방금 그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손님, 떡볶이 나왔습니다.”

“어? 우리 이거 안시켰는데요. 그런데 떡볶이도 팔던가요?”

그들은 당연히 그런 반문을 했고, 나는 느긋이 웃으며 말했다.

“가게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서비스입니다. 물론 신메뉴 개발 명목이긴 하지만요.”

“우와······ 비주얼이 장난 아닌데요. 계란도 큼지막한 걸 막 넣어주시네.”

“요구르트도 서비슨가요?”

“예, 조금 매운데, 같이 드시면 덜 하실 겁니다.”

“크, 보기만 해도 군침이 다 돕니다. 정말 잘 먹을게요, 사장님!”

“예, 식사 맛있게 마십시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곤 미나와 시화가 앉아서 베이컨과 함께 위스키를 홀짝이는 스탠드바로 돌아왔다.

“호호, 오빠 접객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그런데 그렇게 막 넉넉하게 줘서 남는 게 있나요?”

“가상현실이라 밑지는 게 하나도 없는데 뭐.”

나는 미나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미나도 호호 웃을 따름이었는데, 시화가 위스키를 홀짝이곤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활 스킬을 배우고 스스로 요리도 만들 수 있게 되면 자연히 요리에 대한 가치도 낮아지고, 가격도 낮춰야하지 않을까요? 물론 공진씨의 음식은 다른 음식에 비해 버프 효과에서 차별화되긴 하지만······.”

“네, 맞아요. 공급이 늘어나니 평균적인 음식 가격은 더 낮아질 겁니다. 그리고 제 음식도 자연히 가격을 낮춰야겠죠. 그런데 별로 아쉽지 않아요. 이제 다른 걸로 돈을 많이 벌잖아요. 애초부터 돈을 염두에 두고 한 것도 아니고요.”

“그렇군요, 공진씨를 보면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돈 같은 것보다 게임 자체를 즐겼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언젠지도 잊어버린 지 오래였죠. 오늘은 간만에 그런 기분을 느꼈습니다.”

시화는 나를 보고 그런 기분을 느꼈다고 하지만, 나도 시화의 말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게임이 돈이 된다고 하여서 게임을 직업으로 삼아버린다면, 지금 같은 즐거움을 맛보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게임은 게임으로 남을 때 즐거움이 있는 것일까.

일이 되어버리면 그 즐거움은 지금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릴 것 같다.

그래, 비유를 들자면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과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글에 대해 취하는 태도와 기분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뭐, 시화씨는 이곳이 일터니까, 제가 뭐라 할 틈은 없지만요. 가끔은 오늘처럼 놉시다.”

“하하, 부디 오늘처럼 초대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나는 내 잔에도 위스키를 채우고, 미나와 시화의 잔에도 위스키를 더 채워준 뒤 우리들은 건배를 했다.

오늘따라 술맛이 유독 좋았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차오르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여, 모두들 있구먼.”

“오셨습니까, 어르신.”

그렇게 술잔을 나누고 있을 때, 블루스 어르신께서 오셨다.

나와 미나, 시화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니 뭐, 내가 중역도 아니고 다들 일어나서 뭐하는 건가. 어서 앉게. 허허.”

“예, 어르신.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아, 얘는 내 아······가 아니라 내가 버스 좀 태우고 있는 친구라네. 이름은······ 드래곤일세. 참 작명센스하곤······.”

마지막 말은 어쩐지 투덜거리듯이 작게 말씀하시는 블루스 노인이었다.

같이 동행한 사람은 헬름을 쓰고 있어서 입 부분을 제외하곤 얼굴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낯이 좀 익은데? 잘 모르겠다.

어디서 봤던가?

“반갑습니다.”

“크흠······.”

“······?”

나는 드래곤씨에게 악수를 건넸다.

하지만 드래곤씨는 어쩐지 기침만 하고 헬름으로 가려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그러자 블루스 노인이 그의 뒤통수를 탁 쳤다.

“허험, 이 친구가 좀 과묵해서 말이야. 좀 싸가지가 없더라도 양해해주게나. 허허허허. 자, 얼른 공진군과 악수하게. 응?”

“······.”

블루스 노인이 그런 말을 하자, 드래곤씨는 내게 악수를 건넸다.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악수를 나눴다.

흠, 그런데 낯익은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분명히 처음 소개 받는데도 말이다.

여하튼 블루스 노인과 드래곤씨도 스탠드바에 앉았다.

그 둘에게도 위스키를 건네주니, 곧 블루스 노인이 홀짝이면서 말했다.

“요 주변에 농가가 많이 들어섰더군. 본격적으로 농촌이 형성되는 기분이야. 얼마나 임대했나?”

“5,000명이 땅을 임대했습니다.”

“호오, 그럼 벌써 일주일에 5억이 들어오겠군.”

“예, 별로 믿기진 않지만요. 물론 제게 떨어지는 돈은 2.5억이겠지만, 그것도 저 같은 소시민에겐 대단한 돈입니다.”

“자네에게 2.5억이 들어간다는 말은 그 스폰서······ 그러니까 자네 회사에도 2.5억이 들어간다는 말이야. 내가 회장이면 자넬 즉시 승진시켰을 걸세.”

“하하하, 제겐 오히려 부담스런 일입니다. 사원인 제가 게임 좀 했다고 승진을 덜컥 해버리면 주변 시선이 장난이 아닐 겁니다. 연공서열도 무시한 절차고요.”

“자넨 젊은 사람인데 사고관은 다소 보수적이군.”

“회사원이 다 그렇죠 뭐.”

블루스 노인과 그런 수다를 떨면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드래곤씨가 주변을 마구 살피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이 말이다.

“누구 찾으십니까, 드래곤씨?”

“아, 아니 나는······헛!”

“······?”

그는 갑자기 말을 하다가도 말았다.

갑자기 왜 말을 멈추는지 의아했는데, 목소리도 어쩐지 낯이 익다.

흠, 대체 정체가 뭐지? 얼굴을 가리는 걸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다.

“허허허, 이 친구는 신경쓰지 말고······ 그나저나 우리 지혜가 보이지 않는군? 오늘은 일찍 로그아웃했나?”

“아니오, 그게 말이죠, 마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제과점이 걱정되었는지 살펴보러 간 모양입니다.”

“오호, 하긴 마을에 이제 사람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긴 하지. 그런데 지혜는 제과점을 잘 해내고 있나?”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짤막하게 대답했는데, 미나가 보충해주었다.

“그 애, 정말로 빵 만드는 거 좋아하고 있어요. 낮에는 저랑 어울리는데도 제과점을 운영하는데 엄청 열중했어요!”

“허허허, 그렇군. 지혜에게도 잘 된 일이지. 아비란 놈이 너무 꽉 막힌 녀석이라 굳이 경영인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현실에선 경영인을 하고 가상에선 빵을 구우면서 놀면 좋지 않겠나? 그렇지 공진군?”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후흐흐흐흐······.”

블루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쩐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드래곤씨를 바라보았다.

드래곤씨는 어쩐지 당황한 모습이다.

“그래, 오늘은 뭘하고 지냈나? 늙은이한테 수다나 좀 떨어보게.”

블루스 노인은 그런 말을 했고, 나는 기꺼이 오늘의 보람찼던 하루를 말하기 시작했다.

< 161화 10일차 선술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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