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얼음낚시 >
“우선은 이 온실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양산할 필요가 있겠군요. 마을의 식량사정이 나아져야 그 다음으로 뭘 하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실베스테르가 울음을 그치고 진정하자, 그렇게 말했다.
그도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덧붙여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래도 우리 하펜 마을과 거래를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들의 광산에선 정령석이 많이 나오니 무리하지 않아도 싸게 매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곳의 특산품과 맞바꾸면 되겠죠.”
“우리 마을의 특산품이라면 설원동물과 몬스터들의 가죽, 그리고 아직 광부들이 있진 않지만 보석들도 있고, 일반 나무보다 튼튼한 경화목재와 고급목재들이 있소.”
“그거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정령석 뿐만 아니라 식량도 거래해도 충분하겠군요.”
“정말 좋은 소식이오. 당장 우리 상단을 그쪽 마을에 보내겠소.”
“상단이라······ 저희에겐 아직 상단이 없는데요.”
실베스테르의 말에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자 실베스테르는 의외라는 모습이 되었다.
“아직 상단을 조직하지 않았소? 혹시 방법을 모르는 것이라면 내 가르쳐주리다. 간단하오, 영지에 상단사무소를 건설하면 될 뿐이오.”
“그렇군요. 하펜 마을로 돌아가면 곧바로 만들도록 하죠.”
자연히 그에게 팁을 얻게 되었다.
상단을 만들면 노슬론 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과 거래하게 될 때도 여러모로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뭔가 더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나도 염치가 있는데, 어찌 더 도움을 요청하겠소······.”
도움 받을 건 있지만, 말하기가 껄끄럽다는 의미였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제 우린 협력관계입니다. 그리고 이미 투자해드리기로 했으니, 미안해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정녕 저에게 보답해 주시고 싶으시다면, 하루 바삐 서로 간에 좋은 비즈니스가 성립되도록 해주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이 맞소. 그럼 염치불구하고 필요한 것을 말하겠소. 우선 무엇보다도 광산 조합을 만들어야 하오. 당연히 돈이 드는 일이오.”
“그 외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뭐든 말씀하십시오.”
“그 밖에도 사냥꾼 조합을 업그레이드할 돈이 필요하오. 지금은 설원동물들만 사냥하는 상태인데, 업그레이드하면 설원 몬스터들도 사냥하여 더 좋은 소재를 얻을 수 있소.”
“그것으로 정수와 소재를 얻는 것을 저희 마을에 팔아 의류점에 공급할 수 있다면 좋은 시너가 날 것 같군요. 기꺼이 투자하겠습니다.”
“고맙소,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구려. 상단이 신속하게 움직이려면 마법사 길드가 필요하오. 우리 마을은······ 부끄럽게도 마법사들에게 길드를 만들어주지 못 했소. 개인적으로 집에 머무는 마법사들이 있을 뿐이오.”
마지막 말에는 어쩐지 정령술사 시스가 생각났다.
마법사는 인기 있는 직업이지만, 이 마을 자체가 낙후된 곳이라 그들에게 길드가 없는 모양이었다.
시스도 정령술사 길드를 만들어 주기 전에는 길드가 아닌 집에서 머물렀지.
“그것도 투자해드리겠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저희 하펜 마을도 비슷한 예가 있었으니까요.”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나는 그러면서 실베스테르에게 총 필요한 자금이 얼마인지 물었고, 그가 대답한 자금을 대주었다.
공명심이 있는 사람이라 삥땅을 칠 염려는 안해도 될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NPC가 사기를 칠 리도 없고 말이다.
“이렇게 도움을 많이 주는데······ 어찌 보답해야할지 모르겠소. 워낙 우리들이 가진 것이 없으니.”
“이렇게 멋진 마을과 설원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온 김에 관광이라도 하고 싶은데, 소개를 좀 받고 싶군요. 근처에 호수가 있습니까?”
“있소, 크리스탈 호수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지. 얼어붙었지만, 얼음낚시하기 아주 좋소.”
크리스탈 호수라니······ 무슨 공포영화에 나오는 호수 같은데.
뭐 그런 선입견이 아니라면 크리스탈처럼 아름다운 호수라는 의미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광산도 사실 안의 풍경이 멋지오. 춥긴 하지만 수정과 얼음이 어우러져 있어서 눈이 즐겁지. 그것 외에도 동쪽으로 좀 가면 온천이 있소이다. 우리 마을의 몇 없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소. 개발은 안 되어 있지만, 가서 목욕을 즐길 순 있소.”
“온천이라······ 한 번 가보고 싶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미나와 지혜, 시화를 바라보았다.
시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미나와 지혜도 이런 설원지역에 온천이 있단 말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럼 저흰 염치 불구하고 좀 놀러 다녀야겠군요.”
“그러시오. 비록 눈 밖에 없는 곳이지만, 재밌게 놀다 가길 바라겠소.”
실베스테르와는 그렇게 작별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바삐 마을에 새 건물을 짓거나 건물을 중축하느라 바쁠 것 같다.
그들에게서 좀 멀어진 후, 나는 시화에게 말했다.
“우선 호수부터 가볼까요? 시간이 괜찮겠습니까, 시화씨?”
“예, 물론입니다. 다음 레이드까진 시간 많습니다.”
우선 바쁠 것 같은 시화에게 동의를 구했다.
“어서 가요, 얼음낚시란 거 꼭 해보고 싶었어요!”
“얼음 낚시······.”
미나와 지혜는 벌써 얼음낚시를 하고 싶어 안달인 모양이었다.
나는 허허 웃으면서 촌장이 가르쳐 준 곳으로 가기 위해 마을을 벗어나려 했다.
이미 마을에 소문이 다 났는지, 마을의 목책을 지키던 바이킹 병사가 우리에게 군례를 취하기도 했다.
그들의 얼굴에도 기쁨이 만연해서 나도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뽀득 뽀득
왈왈왈!
바깥은 정말로 눈밭 그자체였다.
지혜든 미나든, 시화나 나나 다른 동물과 정령 친구들 모두 엄청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졌다.
오직 불돌이만 주변의 눈을 녹이면서 다닐 뿐이었다.
“꺄악, 발이 너무 빠져요.”
“이렇게 눈 쌓인 거, 별로 본적이 없어요.”
동물과 정령 친구들은 옥스의 등에 올라타거나, 날아다니거나, 불돌이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해결하고 있었지만, 지혜와 미나는 쌓인 눈에 발이 너무 빠져서 곤란한 듯 했다.
“잠깐만, 설피를 만들어줄게.”
나는 그녀들을 위해서 설피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즉시 조합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뒤져보았다.
[조합, 설피
눈신으로도 불리는 전통 눈신발. 밀짚 따위를 엮어 동그랗고 평평한 물체. 신발에 덧대어 눈 위에서도 발이 잘 빠지지 않게 만들어준다. 아이젠 같은 현대적인 눈신발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존 상황에도 적절하다.
필요한 재료 : 밀 3개 혹은 대체할 수 있는 짚단이 있는 작물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나는 즉시 설피를 두 쌍 만들었다.
그리곤 그녀들의 신발에 덧대어 주었다.
“자 이제 쉽게 걸을 수 있을 거야.”
“와, 정말이에요. 발이 훨씬 빠지지 않아요.”
설피를 신은 미나와 지혜는 신기하다는 듯이 눈 위를 계속 걸어다녔다.
그런 그녀들을 따라서 실버와 골드, 불돌이가 신이난 것처럼 주변을 뛰어 다녔다.
나는 설피를 신어도 넘어질 순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물론 뭐, 게임이니까 부상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걸어갔고, 곧 ‘크리스탈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불돌이가 얼음 위에 올라서도 녹지 않을 정도로 꽁꽁 언 호수였는데, 정말 그 얼어붙은 모습이 크리스탈 같아 보였다.
“그런데 얼음이 이렇게 단단해서야 어떻게 얼음낚시를 하죠?”
미나가 그렇게 물었다.
확실히 얼음이 꽤나 단단했다.
나는 혹시 시화에게 검으로 얼음을 벨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안될 것은 없습니다만······ 자칫하면 너무 크게 갈라버릴 것 같군요.”
“음, 그래선 좀 곤란하군요. 그렇게 자를 필요는 없는데. 톱이라도 있다면······ 아, 내 정신 좀 보게. 톱이 있는데.”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을 꺼냈다.
바로 마법공학 톱날칼이었다.
위이이잉
“위험하니까, 물러나 있어.”
나는 마법공학 톱날칼을 작동시키면서 지혜와 미나에게 물러서도록 했다.
그리곤 톱날칼로 열심히 얼음을 둥글게 잘랐다.
톱날칼은 성능이 꽤 좋아서 얼음을 잘 잘랐다.
다만 추위 때문에 금방 얼음이 붙어서 망치로 내리쳐야하는 점은 있었다.
“그 검······ 마법공학을 활용한 겁니까?”
“네, 저나 골렘의 개인무기로 사용 중이죠. 조금 잔인하게 적을 찢는다는 점을 빼면 꽤나 훌륭한 무기입니다.”
“그렇게 보이는군요. 마법공학이라······ 듣기로는 마법공학을 이용해 마법총을 만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총이요?”
“예, 물론 현대적인 총은 아니고······ 초기형 라이플 정도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시스템적으로 락이 걸려 있다더군요.”
“총이 있으면 게임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나요?”
나의 물음에 시화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현실이 아닙니다. 총이 있어도 방어력이나 HP에 따라 대미지를 입을 뿐이죠. 현실처럼 일격필도의 무기가 아닌 겁니다. 다만 조건만 좋다면 확실히 효과적인 무기긴 하죠.”
“시간 나면 한 번 알아봐야겠군요.”
시화와 그런 잡담을 하는 사이, 나는 얼음을 완전히 분리해 꺼낼 수 있었다.
거의 1미터 두께의 얼음을 깨는 일은 현실이었다면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맑은 얼음물이 조그맣게 보였다.
“자자, 낚시 해보자.”
곧 우리들은 모두 낚시를 시작했다.
물방울은 정령술을 이용해서 물고기를 유인해주었고, 다른 아이들은 빙판에서 미끄러지면서 실컷 놀고 있었다.
다만 옥스는 빙판길이 두려운 모양인지 주저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앗! 걸렸어요!”
“저도요!”
미나와 지혜의 낚싯대가 팽팽하게 움직였고, 그녀들은 얼른 감아올렸다.
정말로 재밌는지 화사하게 웃는 그녀들이 낚은 것은······.
“빙어잖아!”
“어머, 귀여워.”
빙어를 낚은 미나와 지혜는 꺅꺅 거렸다.
“맛있겠다. 그거 알아? 빙어는 초장에 찍어서 그냥 먹을 수도 있어.”
“아, TV에서 본 것 같아요. 생존 예능 프로였죠. 베어? 어쩌고 하는 영국인이었는데.”
“하하하, 그 사람처럼 막 먹을 필요는 없어. 빙어튀김, 구이, 무침······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도 많아.”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네요. 아, 지혜는 먹어 본 적 있어?”
이번엔 고개를 가로젓는 지혜였다.
아무래도 재벌집 아가씨는 빙어를 먹을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미슐랭 2성 이상의 초밥집을 가지, 빙어 같은 걸 먹진 않을 것이다.
“한 번 먹어보고 싶어요.”
“잔뜩 낚으면 만들어 줄게.”
지혜의 말에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들은 낚시를 계속했고, 빙어들을 잔뜩 낚았다.
시화나 나도 잔뜩 낚았는데, 시화도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매일 레이드만 하다가, 이렇게 노는 것도 재밌군요.”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이 사람은 꼭 프로게이머를 하지 않아도 모델이나 배우를 해도 될 정도로 잘 생겼다.
괜히 시샘이 나는군.
어쨌든 그렇게 낚시를 계속했다.
< 158화 얼음낚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