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76화 (176/239)

< 157화 극지농사 >

“어서들 오게, 이방인들이여. 나는 노슬론 마을의 영주 실베스테르라네. 군신 길드의 길드마스터와 하펜의 영주가 왔다고?”

“예, 제가 군신 길드의 마스터 시화이며, 이분이 하펜 마을의 영주입니다.”

“하펜······ 최근 소식을 기억하고 있네. 메이거스에 합류한 중립 영지지. 그곳의 주민들에게 인정 받았다는 의미인데, 대단하군. 하펜의 영주여.”

“사공진이라고 합니다.”

노슬론의 영주 실베스테르의 말에 나는 내 이름을 대답했다.

실베스테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와서 앉지. 보다시피 우리 마을은 다소 추레해서 난로의 불볕 밖에 줄 수 있는 것이 없군.”

“아닙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나는 실베스테르의 말에 적당히 대답했다.

사실 조금은 진심이긴 했다.

척박하긴 해도, 조건만 조금 좋으면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며 놀 수 있는 좋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내 말이 썩 기분 나쁘진 않은지 그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괜한 말이라도 고맙군. 허나 내가 아무리 한가하다해도 영주나 되어서 금칠만 받고 있을 순 없네. 본론으로 들어가지. 듣자하니 우리 마을과 교류를 할 의향이 있다고?”

“네, 제 생각으로는 마을에 여러 가지가 필요할 듯한데······ 예를 들면 식량이나 양털 같은 거요.”

“두 말할 것도 없이 필요하지. 하지만 지금의 우리 노슬론 마을은 너무도 가난하여 그것들을 살 수 없네.”

“보석이 있는 광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을 개발하여 보석을 파시면 좋지 않습니까?”

나의 말에 실베스테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나? 광산을 정식으로 영지 차원에서 개발할 인력도, 돈도 없지만, 전사와 광부를 동원해 어렵게 보석을 캐도 가격이 그리 좋지 않다네.”

“보석세공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군요.”

“잘 알고 있군.”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어떻게 말이지?”

“흠······ 우선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제게 광산을 파실 생각은 없으시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같은 나라라고 하지만 엄연히 다른 영지. 그러니까 다른 이들의 영역이다.

그런 곳의 생계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천연자원을 ‘사버리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일제강점시 시대나 구한말에 그런 자원침탈을 당한 적이 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광산을 사서 영지를 가꿀 돈을 주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내 대답은 하나 뿐일세. 아무리 영지가 곤궁해도 우리 영지의 미래일 수 있는 천연자원을 팔수는 없네. 물론 이방인들이 그곳을 탐험하고 조금의 보석을 캐가는 것은 관여하지 않지만, 그 광산의 소유권을 팔 순 없어. 나와 우리 마을 사람들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이니 말일세.”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뭔가?”

“소유권은 파시지 말고, 그저 우선 제 투자를 받는 겁니다. 그건 빚을 지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저와 영주님, 그러니까 노슬론 마을이 우리 하펜 마을과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을 정도가 되도록 마을에 투자를 받는 겁니다.”

“투자라······ 솔깃한 소리지만, 그렇게 해서 자네가 얻는 것이 뭐지? 투자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어야 할 텐데.”

“경제적 이득입니다. 일종의 구제금융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저는 노슬론 마을을 정상화시킨 뒤, 이루어지는 거래를 이윤으로 생각할 겁니다.”

나는 내 의도를 분명히 말했다.

현실로 치면 IMF같은 일을 하는 거라고 할까?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다.

IMF라고 해서 반드시 순수한 의도의 구제금융은 아니니 말이다.

애초에 현실의 경제에 ‘순수한 의도’는 존재하기 힘들다.

게임이니 가능한 일일 따름이었다.

“그렇게까지 나를······ 우리를 돕겠다는 이유가 뭔가?”

“딱히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그저 저에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생활 스킬을 활성화하고자 하는데, 보석세공도 그 중 하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화씨의 소개로 이 마을을 통해 보석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의 사정이 나빠 그럴 수 없다면 그걸 고쳐야겠죠. 그리고 저에겐 공교롭게도 그럴만한 돈과 능력이 있습니다.”

“생활 스킬을 활성화 한다라? 그건 생소한 말인데.”

“저는 이미 여러 가지를 활성화 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하펜 마을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실베스테르에게 말했다.

실베스테르는 나의 말을 아주 귀담아 듣는 모양이었다.

“그런······ 침체되어 있던 생활 스킬을 자네 혼자서 활성화시켰단 말인가. 대단하군.”

“제가 아니었어도 누구나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다만 하지 않았을 뿐이죠.”

“기회를 잡는 것을 아무나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네. 여하튼 대단하군.”

“그렇다면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실베스테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자네가 투자해준다면야 좋긴 하지만······ 우선 문제가 있다네. 우리 마을은 정말로 척박한 상황이야.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우선 식량 사정이 나쁘지. 보다시피 아주 제안적인 식량을 제외하곤 제대로된 작물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라네. 고작해야 사냥하고, 낚시를 하여 끼니를 떼우거나 가죽이나 목재를 팔아 가까운 마을에서 식량을 사서 자급하지. 자네에게 투자를 받으면 광산을 개발하는 것보다 주민들을 배불리 먹이기 바쁠 거야. 그래서야 의미가 있는가?”

“음······ 확실히 문제군요. 그런데 어쩌면 제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정말인가?”

나의 대답에 실베스테르는 무척 놀란 모습이었다.

나는 그에게 계획을 말했다.

“저는 온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온실이라면 인공적으로 따뜻하게 만든 실내 밭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걸 만들 수 있다고?”

“예, 그런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는 제 농장에서 열대 작물을 만드는데 쓰지만, 여기선 보통의 작물을 키우는데 쓸수 있을 것 같군요.”

“대단하군, 생활스킬을 거기까지 해금했단 말인가?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을 터인데. 유리도 필요할 테고, 안정적으로 실내에 온기를 유지할 방법도 필요하니 말일세. 석탄과 목재가 있긴 하지만 온실에서 쓰기엔 연기 때문에 위험하지. 작물이 죽을 거야.”

“목재나 석탄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정령술 도구를 활용하면 되니까요.”

“정령술 도구! 설마 그것들도 해금시켰나?”

“예, 이미 저희 마을엔 정령술 길드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도구를 생산 중이죠.”

내가 그렇게 말하니, 실베스테르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그에게 드디어 희망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더 자세한 사업 구상을 말했다.

“당장은 돈 보단 유용한 도구를 공급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우선 마을에 온실 하나를 시범적으로 만들겠습니다. 그 후, 몇 개를 지원으로 더 만든 다음, 광산을 개발하고 수익을 내는 겁니다. 그 후에는 마을 간에 거래를 통해서 온실을 자급자족하도록 하는 거죠. 그렇다면 노슬론 마을도 안정적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맞아, 자네 말이 맞네! 아,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군. 정령술 도구는 정령석이 들지 않는가? 우리 마을에는 정령석이 나오는 광산이 없다네.”

“그건 문제 없습니다. 저희 하펜 마을에 있으니까요. 그것도 교역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자넨 정말 우리 마을의 구세주일세!”

나를 갑자기 구세주로 치켜세워 주는 그의 말에 나는 실소했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자넨 모를 거야. 우리들은 그만큼이나 절박했다네.”

“그렇다면 당장 온실을 만들어보도록 하죠. 대장간이 마을에 있겠지요?”

“물론이라네. 얼마든지 써도 좋네. 함께 가도록 하지.”

영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들과 실베스테르 영주는 그 집을 떠났다.

그리곤 마을의 공터로 향했다.

추위가 만연한 이 땅에는 밭이 없다.

오직 수렵과 채집에만 의존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터는 여기로 정하는 게 좋겠군요. 우선은 온실의 틀을 만들겠습니다.”

나는 건축 스킬로 온실을 파란 모형을 만들어 틀을 잡았다.

아직 유리가 없기 때문에 만들 순 없었다.

그런 다음엔 유리를 만들기 위해서 대장간으로 향했다.

일전에 하펜 광산에서 유리의 재료가 될만한 것을 많이 모아뒀기 때문에 재료는 넉넉했다.

문제는 유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라, 혼자서 유리봉을 훅훅 불어야만 했다.

“저 분이 우리 마을을 도와준데!”

“온실을 만들어 준댔어.”

“온실이라니, 그건 생활 스킬이 발달해야 가능한 거였지 않은가? 이방인들은 전투 밖에 모르는 것 아니었나?”

“모를 일이지. 어쨌든 저 분은 하펜 마을의 영주라는군.”

“그냥 농부처럼 보이는데.”

집안에 숨어 있던 주민들이 어느새 소문을 듣곤 모여서 대장간에서 유리를 열심히 불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슬쩍 슬쩍 보니 그들은 바이킹처럼 강건한 체구를 하고 있었으나, 차림새는 허름했다.

가난하다는 인상이 매우 강하게 느껴졌다.

이 마을을 돕는다면 저들의 생활 수준도 좀 나아질지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

여하튼 열심히 유리봉을 불어서 필요한 만큼의 유리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엔 터를 잡아 놓았던 곳으로 향했다.

“건축 스킬이라면 마을 주민들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다네. 자네를 돕게 해주게나.”

실베스테르 영주가 의욕적으로 나섰다.

덕분에 혼자서 망치질을 할 것 없이, 여러 명의 영지민들과 함께 망치질을 하여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보온용 유리를 설치하는 것도 모두와 힘을 합쳐 조심스럽게 장착시킬 수 있었다.

주민들도 자신들의 생계가 달린 일이라선지 매우 의욕적으로 노동을 했다.

“이제 온열기를 설치하면 됩니다. 지금 온열기가 있진 않지만, 재료가 있으니 제가 직접 만들죠.”

나는 그렇게 말하곤 목공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온열기를 찾았다.

목재와 정령석으로 가열기처럼 금방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금방 하나를 만들어서 온실에 놓곤 작동을 시켰다.

“따뜻해!”

“따, 땅이 녹는다!”

“밭을 갈 수 있게 되었어!”

“분명히 작물을 키울 수 있을 거야!”

온실에 들어온 주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다행히 온실은 제대로 작동하는 듯했다.

이거라면 이 동토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었다.

주민들이 기뻐하는 것을 뒤로하고, 온실을 나오니 감격한 모습인 실베스테르가 내 양손을 붙잡았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자넨 우리 마을의 은인일세.”

“별 거 아니었습니다, 영주님.”

나는 눈물을 흘리는 그를 격려하며 말했다.

그가 울음을 그치는 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 157화 극지농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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