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노슬론 마을 >
떡볶이를 먹은 뒤론 가볍게 요구르트로 입가심을 했다.
딸기를 동동 띄운 생크림 요구르트가 입에 참 잘 맞았다.
미나나 지혜도 맛있게 먹었지만, 시화도 입에 잘 맞는 모양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배를 잔뜩 채운 다음, 우리들은 노슬론 마을에 가기로 했다.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응, 골렘아. 다녀올게.”
이번엔 골렘에게 로렌의 창을 주고 내가 마법공학 톱날검과 어윈의 방패를 챙겼다.
시화가 자신이 모두 지켜줄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만약의 경우에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탱커도 겸하기 때문에 절대 여러분이나 동물 친구들을 공격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나는 실버나 골드, 옥스와 호크의 안전이 걱정되어서 두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이 아이들에게도 바깥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
일전에 골렘이 아직 몸이 없었을 땐 실버는 정말 외롭게 농장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화가 안전을 장담해주어서 그를 믿기로 했다.
“노슬론 마을에 가면 우선 눈사람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레벨이 낮아서 설원지대까지 가본적이 없거든요. 지혜도 그렇지?”
“네, 언니.”
미나와 지혜는 그곳에 가서 눈사람부터 만들어볼 생각인 모양이다.
흠, 나도 뭔가 해보고 싶은데······ 아, 혹시?
“시화씨, 거기 호수도 있습니까?”
“네, 얼어붙은 호수지만요.”
“딱 좋군요! 얼음낚시라도 해봅시다.”
“······광산을 보러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천천히 해도 좋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뭐 좋습니다. 저도 개인시간이니까요.”
잡다한 수다를 떨면서 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잠깐 못 본 사이 마을의 모습이 조금 변했다.
아니, 조금 수준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택들이나 상점이 좀 바뀐 모습인데요? 원래 목조 건물 아니었어요?”
미나가 그 차이점을 지적했다.
분명히 대부분 목조로 이루어져 있던 건물들이 벽돌과 석재, 시멘트로 이루어진 건물로 바뀐 것이다.
정확히는 바뀌는 중인 것들도 있었다.
건설 인부로 보이는 이들이 열심히 망치질을 하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현실의 건축은 망치질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게임의 건축 스킬로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 건설 회사를 이용해서 집이나 상점들을 업그레이드하는 모양이군요.”
“아,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는데요.”
“건설회사를 지으면 좋은 점 중 하나죠. 직접 지을 때처럼 골드를 아낄 순 없지만, 대신 여러모로 대규모 공사나 집단건설을 할 때 유용합니다. 영지 건설에 필수적인 건물인 셈이죠.”
“앗, 저기 마법사 길드도······.”
자연스럽게 마법사 길드에도 시선이 갔다.
마법사 길드는 목조 건물을 통째로 커다란 석재를 이용해 둘러싸듯 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계속 석재를 쌓는 모양이다.
“공사중인 것 같은데요, 안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미나가 그런 걱정을 했지만, 몇몇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곤 우리는 마법사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또 오셨네요, 영주님, 그리고 영주님의 동료 분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항상 의욕 없던 마법사 아가씨가 싹싹하게 인사를 했다.
“바깥엔 한창 건설 중이던데, 이 건물은 괜찮나요?”
“네, 스킬로 건설하기 때문에 완성되면 자동으로 내부가 바뀌어요. 그 동안에도 업무는 지장이 없답니다.”
“그렇군요. 우선 텔레포트 서비스를 받고 싶어서 왔는데요.”
“어머 물론 해드려야죠. 특별히 무료로 해드릴게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1억이나 투자해주신 영주님에게 감히 어떻게 돈을 받겠어요? 당연히 공짜로 해드려야죠. 동료 분들도 모두요. 아, 제가 임의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길드마스터님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어요.”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뭔가 VIP대접을 받는 기분이라 썩 기분 나쁘진 않았다.
우리들은 곧 노슬론 마을로 향하는 텔레포트 서비스를 받았다.
텔레포트 지점은 노슬론 마을의 광장으로 지정했다.
빛무리가 우리들을 감쌌고, 곧 시야가 밝아지자······.
“으아아! 춥다!”
굉장한 추위가 몸을 덮쳤다.
주변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마을의 모습도 보였다.
“추, 추워요!”
“얼른 스웨터를 입자!”
지혜가 추위에 떨자, 나는 그렇게 말했다.
곧 나와 미나, 지혜가 스웨터를 입었다.
그러자 한결 추위가 나아지긴 했다.
여전히 조금 춥긴 했지만 말이다.
왈왈왈왈!
[불돌이가 모두에게 불길의 가호를 내렸습니다.]
[추위저항이 현저히 오릅니다.]
“앗, 이제 춥지 않아요.”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네요!”
“정령술이 추위저항을 올려주었군요.”
불돌이가 뭔가 활약을 해서 우리들의 추위를 해소해준 것 같았다.
실버와 골드, 옥스와 호크도 추위에 더 이상 덜덜 떨지 않고 눈밭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미나는 주변에 수북한 눈을 한 번 만지더니, 그걸 뭉쳐서 살짝 나에게 던졌다.
“호호호, 어때요 오빠!”
“던졌다 이거지? 딱 기다려.”
나도 얼른 눈을 뭉쳐서 반격했다.
그러자 지혜는 미나의 편인지 함께 눈을 뭉쳐서 내게 던졌다.
2:1이라니, 너무 하잖는가.
나는 시화를 보았지만, 시화는 어쩐지 무뚝뚝하게 주변을 감상할 따름이었다.
흠, 겨울의 왕자 같은 모습이군.
어쨌든 한동안 나는 2:1의 불리한 눈싸움을 즐겼다.
“꺄악, 차가워. 헤헤, 이제 눈사람 만들어요.”
눈싸움을 하다가 눈을 뒤집어 쓴 미나는 이제 눈사람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나는 동의하면서 내가 몸통 부분의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고, 미나와 지혜는 머리 부분을 만들기로 했다.
음머어어어
멍멍멍
월월월!
몸통 부분이 어느 정도 커져서 굴리기 힘들어졌을 때, 옥스와 실버, 골드가 미는 것을 도와줬다.
그러고보면 동물과 정령 친구들도 알아서 잘들 놀고 있었다.
불돌이는 눈을 먹어보려는 것처럼 마구 뛰어다녔고, 물방울은 추위를 좀 느끼는지 호크의 등 위에 꼬옥 안겨 있었다.
바람이는 옥스의 등위에 고고히 앉아 있었으며, 태산이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면서 ‘눈의 천사’를 만들고 있었다.
특히 태산이가 하는 것이 재밌어 보였다.
눈사람 만들고 나도 해야지.
“자, 그럼 머리 올릴게요.”
지혜와 미나가 굴려 만든 눈사람의 머리를 몸통에 얹었다.
나는 얼른 나무를 이용해 눈과 코, 입을 만들었다.
덩달아 손도 만들어 주니, 제법 괜찮은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아, 좀 피곤하니까 누워서 쉴래.”
“안 차가워요?”
“스웨터랑 불돌이 덕분에 별로 안 차가워.”
나는 눈밭에 벌러덩 누워선 태산이가 하는 것처럼 눈의 천사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 천사의 모양인 눈자국을 만들자, 그녀들도 빙그레 웃으면서 내 양옆에 누워 같은 것을 만들었다.
“하하하.”
“호호호.”
나와 지혜, 미나가 하하호호 웃었다.
동물과 정령 친구들도 각자 울음소리를 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은 그렇게 노는 와중에 시화는 계속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다.
“시화씨, 뭘 그렇게 생각해요?”
“이 풍경, 오랜만에 봐서요. 지금도 여전히 삭막하기 짝이 없군요.”
“삭막하다고요? 흠······ 하긴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네요. 이 추위에 보통은 다 집안에 들어가 있겠죠.”
“그런 것도 있지만, 마을 자체가 낙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메이거스의 정식 영지에 포함되지만, 척박한 변경 영지라서 수렵과 채집으로 겨우 연명하는 마을이죠. 초기의 하펜 마을보다도 규모가 작은 겁니다.”
“음,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네요.”
확실히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마을의 규모도 한없이 작았다.
하긴, 이렇게 눈이 내리는 설원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겨우 버티는 수준이겠지. 아니, 혹독한 기후에 비해 이 정도도 꽤 큰 편일지도 모른다.
시화는 좀 더 마을 지켜보다가 내게 말했다.
“공진씨. 새삼 공진씨가 하펜 마을을 다스리게 된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지만, 어쩌면 이 마을도 공진씨가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요?”
“네, 물론 이 마을은 영주가 있으니 기여도를 올린다고 영주가 될 순 없겠죠. 하지만 생활 스킬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곳을 살만한 곳으로 바꾼다면, 이곳의 사냥터 전체가 활성화될지도 모르죠.”
“그건 좋은 일 같군요.”
“더 길게 보면 좋은 사업이 될지도 모릅니다.”
시화는 그렇게 말하곤 어느 한쪽을 바라보았다.
“저곳이 영주의 집입니다. 낙후된 영지라 중립 영지처럼 성조차 없죠.”
“하하, 저도 영주인데 성 대신 농장을 가진 입장이라, 저는 흉보기가 그렇군요.”
나의 농담에 시화가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도 말을 이었다.
“충분히 놀았다면, 슬슬 영주를 만나러 가보지 않겠습니까?”
“그럴까요? 지혜와 미나한테 물어보죠.”
나는 동의하면서 곧바로 미나와 지혜에게 영주를 보러 갈지 물어보았다.
그녀들은 나중에 이글루도 만들어 보자고 하면서 동의했다.
이글루라, 그것도 재밌겠네.
여하튼 우리들은 눈길을 헤치며 영주의 집으로 향했다.
영주의 집에는 두 명의 바이킹 같은 차림새의 병사가 있었다.
털가죽 하이드아머에 라운드 쉴드, 도끼 그리고 우람한 체격, 영락없는 바이킹인 것이다.
“이방인들? 이방인들이오?”
“그렇습니다.”
“이방인들이 여긴 무슨 일이오? 혹시 길을 잃은 것이오?”
우리가 다가가자 병사 한 명이 물었다.
시화가 대표로 대답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영주님을 만나뵈러 왔습니다.”
“우릴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군. 우리 마을이 비록 작고 비루하나, 영주님은 함부로 만날 수 없는 존재요.”
“저는 군신 길드의 길드마스터 시화라고 합니다. 저의 이름을 정녕 들어본 적이 없으십니까?”
“시화라고? 혹시······ 흑태자 시화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 검은 갑옷······ 분명히 그의 인상착의와 비슷하군.”
바이킹 병사는 시화를 알아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게임에서 명성이 높으니 NPC들도 알아보는 모양이다.
“헌데 그런 분이 우리 마을의 영주님은 무슨 일로 찾아뵙는 거요?”
“영주님과 여러 가지를 상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마을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교류라고? 그대들이 영지를 가지고 있었소?”
“저희들만의 것이라고 하긴 어렵군요. 무엇보다 영주는 제가 아니라, 이분입니다.”
시화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살짝 가리켰다.
바이킹 병사는 나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평범한 농부 같은데······.”
“농부 맞습니다. 하지만 하펜 마을의 영주이기도 하죠. 남작이란 작위가 있긴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크흠, 실례했습니다, 남작 나리.”
바이킹 병사는 호탕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영주의 허락을 받아보기로 한다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얼마지 않아 그가 나와 들어가도 좋다는 말을 했다.
영주의 집안에 들어서자, 훈훈한 난로의 온기가 느껴졌다.
남의 집에 동물과 정령들이 잔뜩 들어오는 것은 실례가 아닌지 생각했지만, 게임이라선지 별로 신경쓰는 모양은 아니었다.
어쨌뜬 그곳에 눈처럼 하얀 색의 긴 생머리를 기른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노슬론 마을의 영주였다.
< 156화 노슬론 마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