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72화 (172/239)

< 153화 또 다시 대면 >

“안녕하십니까, 모시겠습니다, 공진님.”

이제 오팀장의 얼굴도 익숙할 지경이었다.

오늘도 퇴근길에 로비에서 나를 픽업하러 온 것이다.

또 지혜에 대해서 회장님이 볼멘소리를 하시려는 걸까?

어쨌든 나는 순순히 오팀장을 따라가고 있었다.

“오해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오늘 회장님은 비즈니스적인 용무로 공진님을 부르신 겁니다.”

“비즈니스적인 일이요? 그런 일로 제가 회장님을 뵐 일이 없는데······.”

“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만, 오늘은 아가씨에 관해서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자, 일단 가셔서 회장님께 말씀을 들으시죠.”

“네.”

결국 알아보려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일개 사원인 내가 회장님을 세 번이나 독대하게 됐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여하튼 항상 갔던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올 때마다 생각하시는 거지만, 회장님은 날 만나러 여길 대절하시는 걸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긴 좀 어렵다.

아마도 여길 대절하셔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시거나 심신을 다스리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인테리어도 분위기 있고, 클래식 음악도 흐르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회장님 만큼이나 돈이 넘치는 재벌이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늘은 지난번과는 달리 식사 중이신 회장님이셨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자리에 한 사람 분의 스테이크가 더 있었다.

“앉지.”

내가 다가가자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식사가 놓인 자리 외에는 앉을 곳이 없었다.

“자네 식사일세. 내가 주문했어. 야근하느라 배고프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럼 앉게, 요기나 좀 하면서 이야기 하지.”

“예.”

나는 공손히 대답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날 위해 고급 요리를 준비하셨다니, 오히려 먹으면 소화가 안 될 것 같은 기분인데······.

하지만 나는 맛있는 것을 눈 앞에 두면 안 먹고는 못 배기는 남자다.

회장님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스테이크를 살짝 잘라 먹어보았다.

살살 녹는 것 같은 고기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가상현실에서 만들어 먹었던 것과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역시 가상현실 대단해.

그렇게 한 입 먹으니, 두 입 먹고, 연신 먹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회장님은 내가 먹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셨다.

여러모로 눈치가 보이는 가운데, 회장님이 입을 여셨다.

“배도 좀 채웠을 테니, 용무를 말하지. 단도직입적으로 자네 그······ 가상현실 게임에서 뭘하고 다니는 건가?”

“예? 그냥 게임을 하는 겁니다만······.”

“그냥 게임을 하는 친구가 회사에 주당 25억짜리 기획안이 올라오도록 하나?”

“······.”

회장님의 그 말씀을 들으니, 무슨 일인지 대충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농장 토지 분배건에 대해 회장님이 아신 모양이다.

시화의 스폰서가 우리 그룹이니, 그쪽의 누군가가 사업 기획을 결재로 올린 모양이고 말이다.

“결재용 서류에는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만 적혀 있어서 말이지. 자넬 부득이 불렀네. 양해 좀 해주게나.”

“아닙니다, 회장님. 당연히 와서 제가 말씀드려야죠.”

오늘의 회장님은 어쩐지 좀 유하시다.

따님에 관한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그럼 무슨 일인지 말 좀 해보게.”

“그게······ 어쩌다보니 게임에서 땅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땅 장사? 부동산 말인가?”

“예, 현실로 치면 농지 임대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10만 골드······ 그러니까 10만 원가량의 임대료로 100㎡ 정도의 땅을 빌려주는 것이죠.”

“아니 뭐 그렇게 싼 값에 준다는 말인가? 내가 농지 임대에 관해서 문외한이긴 하지만 터무니없이 싼 임대료란 건 알겠네.”

“그게······ 설명하자면 깁니다만. 우선 게임에는 농사 스킬이란 것이 있습니다. 부득이한 이유로 제가 사람들이 그 농사 스킬을 배우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사람들에게 개인 농장을 만들어주는 편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제 땅을 100㎡씩 임대해주게 된 것이죠.”

“자네 땅? 그 게임에서 자네 땅이 얼마인데?”

회장님의 반문에 나는 즉시 대답하진 않았다.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까? 하고 잠시 생각한 것이다.

뭐, 회장님은 사업을 하시는 분이니까, 역시 이실직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500만㎡입니다.”

“······.”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불신하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긴, 누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소리긴 하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게. 그 땅을 가지게 된 이유부터 말일세.”

“예, 그러니까 제가 우연찮은 계기로 그 게임의 영주가 되었고, 가변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만한 땅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중립 영지기 때문에 다른 영지에 또 다른 영주가 생긴다면 경쟁자가 생기긴 하겠지만, 가능성으로 볼 때 그건 힘들 듯 했다.

여하튼 내가 그렇게 말하자, 회장님은 또 놀라신 듯 했다.

“영주라니, 성주 같은 말인가?”

“아, 네. 그 옛날 게임의 성주 같은 겁니다. 다만 성만으로 한정한 게 아닙니다만······.”

“크흠, 대충 알겠네. 그러니까 영주가 되어서 500만㎡라는 어마어마한 땅의 주인이 되었다고?”

“예.”

“허허, 이것 참 기가막히는구만.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

회장님은 더욱 디테일을 요구하셨고,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500만㎡를 100㎡씩 나누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줄 경우, 최대 5만명의 사람들에게 농지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끼리 임대권을 거래하여 개개인이 더 큰 땅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임대료는 100㎡당 일주일에 10만원으로 책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5만 명의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경우, 일주일에 50억의 불로소득을 얻습니다. 그걸 제가 <군신>길드······ 그러니까 저희 그룹이 스폰하는 길드와 반으로 나누게 된 겁니다. 아마 기획안의 25억은 그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내 설명이 끝나자 회장님의 얼굴은 굉장히 진지하셨다.

화난 모습만 주로 기억에 남은 나로선 평소에는 이런 분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임대료를 좀 더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현실의 임대료를 기준으로 말일세.”

“그렇게 하면 사람들을 더 확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앞서 말씀 드린 듯이, 저는 사람들이 농사를 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현실의 국책 사업 같은 이유입니다. 똑같은 이유는 아니지만요.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뛰어들 수 있도록 유인해야했습니다.”

“그게 이유의 전부인가?”

“아닙니다, 사실 10만원정도에 빌려주는 것이 적당하다고 여긴 것도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나?”

“제가 게임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정도로 해줘야 보통 사람들이 적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윤이 남아야 사람들이 임대를 하여 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임대료는 게임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너무 비쌉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너무 비싸지만요. 여하튼 합리적이지 않은 임대료를 책정해봐야, 오히려 더 이윤이 남지 않을 겁니다.”

"흠······.“

내 말을 들으신 회장님은 진지한 모습으로 생각하셨다.

그리곤 또 다시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 게임에 대해서 문외한이니 자네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겠구만. 거짓말이나 과장을 보태거나 하진 않았겠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그러겠습니까? 혹시 못 미더우시면 회장님의 아버님께 여쭤보셔도 좋습니다.”

“내 아버지?”

“예, 어르신께서 제 일을 도와주셨습니다.”

“아, 그래. 아버지도 가상현실을 하신다고 들었지. 생각해보면 자네와 연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지혜에 관해서 내게 말했으니까. 자네 말은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군.”

“······.”

블루스 어르신이 개입하자, 나에 대해 신뢰하시는 모양이다.

“일주일에 25억이면 한 달에 100억, 1년에는 1,200억이군.”

“회장님, 초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계산하시는 것은 조금 곤란합니다.”

“어째선가?”

“어디까지나 일주일에 25억인 것은 500만㎡의 땅이 전부 임대됐을 때의 이야깁니다. 즉, 예를 들어 5만 명의 유저가 저와 임대 계약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럴 때 최대 이윤이 25억이란 의미지, 반드시 25억의 돈이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군,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게 핵심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만들어야지. 자네, 그렇게 하기 위해 뭔가 하긴 했겠지? 아니면 그냥 손 놓고 있나?”

“회장님이 아시는 것처럼 홍보용 영상을 만들고, 사람들이 생활 스킬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인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입니다.”

“아, 그 영상······ 나도 잘 보고 있네. 특히 낚시 영상은······ 크흠, 어쨌든 조횟수가 제법이더군. 하지만 그걸론 5만 명을 채우기엔 부족할 걸세.”

“그렇다해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자네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 그룹차원의 이윤이 걸린 일이니. 아무래도 투자를 해야겠군.”

“예?”

투자라는 말에 이번엔 내가 놀랐다.

“뭘 놀라고 그러나? 결재서류에 올라 온 사안을 말한 것뿐일세. 이터널에 주주회의를 열어서 영업 전략을 바꾸도록 하자는 제안이 있었네. 자네가 말한 그 생활 스킬인가 뭔가를 중심으로 광고를 하도록 말일세. 공식적으로 자네 땅을 임대한다는 이벤트 CF도 찍고 말이야. 개인 영상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노출시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 아닌가?”

“그, 그렇겠죠.”

그렇게 되면 땅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지금까지도 파격적인 조건이지만, 사람들이 땅을 임대하려 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홍보가 부족해서이니 말이다.

“절반인 250만㎡만 임대시켜도 13억 규모의 사업이야. 그룹 규모에서야 영세한 사업이지만, 이게 자네 개인에게서 나오는 사업이란 게 믿기지 않는군. 내가 특별히 알아야 할 다른 사안은 없나?”

“······있긴 합니다만.”

“그게 뭐지?”

“이 영지는 다른 영지와 소유를 두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지분 싸움인가?”

“아닙니다. 그것보단 전쟁 중이란 말이 더 옳습니다. 그건 제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룹이 스폰 중인 군신 길드의 사안입니다.”

“그럼 그들에게 더 지원해야겠군.”

“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일이 대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돈은 사업을 부르고 사업을 지키기 위해 국방력이 필요하면, 사업가는 군인을 지원하게 된다.

현실과 비슷하지 않은가?

“알겠네, 자네에게 들은 말을 토대로 일을 진행시키도록 하지. 오늘 이야기는 잘 나눴네, 그냥 가기도 뭣한데 식사나 마저 들지.”

“예, 회장님.”

“말이 나와서 말인데, 지혜랑은 어떻게 지내나?”

사적인 자리로 변하게 되자, 곧바로 딸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는 회장님이셨다.

나는 여전히 딸 바보이신 듯한 회장님에게 적당한 대답을 하면서 식사를 했다.

< 153화 또 다시 대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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