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아이템 경매 >
귓속말을 받은 시화는 곧 블루스 노인과 무기상점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내가 아이템을 만드는 그 사이에도 사냥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마법사 길드가 마탑회원이 되어서 고레벨 사냥터와 마을을 오가는 것이 손쉬워졌다고 한다.
전에도 그런 말을 시화가 했던 것 같다.
“허허, 오늘도 자네가 무슨 아이템을 만들었나 궁금하구먼. 좀 볼 수 있겠나?”
“예, 여기 있습니다, 어르신.”
블루스 노인이 궁금해하기에 나는 그에게 아이템을 선뜻 건넸다.
교환창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아이템을 잠시 건네준 것이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래도 상관이 없었다.
“호오, 오늘도 참 재밌는 아이템들을 만들었구먼! 그런데 이 갑옷은 좀 더 특별한 걸? 보석홈이란 것이 되어 있군.”
블루스 어르신이 오키쉬 아다만타이트 아머에 만든 보석홈을 보고 신기해 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시화가 뭔가 아는 듯이 말했다.
“보석세공을 배운 모양이군요, 공진씨.”
“아시고 계셨던 겁니까?”
나는 블루스 노인은 모르고 있는 것을 시화가 알고 있는 것이 의아했다.
나의 그런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시화가 보충 설명을 했다.
“베타테스트 때 다른 생활 스킬과 마찬가지로 잠깐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뭐······ 보시다시피 사장되었지요.”
“보석세공은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았는데, 어째서 사장되었을까요?”
“보석세공을 하려면 재봉이나 대장기술을 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그 둘 모두 활성화되기 어려워서 보석세공도 자연스럽게 사장된 겁니다. 다른 문제도 있었지만요.”
“아하, 다른 문제는 알 것 같군요. 보석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었겠군요?”
나는 시화가 말하는 다른 문제를 추측하면서 말해보았다.
그러자 시화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보석 자체는 쉽게 얻을 방법이 있습니다. 아니, 보석이 많은 곳은 있단 말이 더 정확하겠군요. 다만 거기서 보석을 마냥 캐고 있는 것이 힘듭니다.”
“네? 보석이 많다면······ 거기 가서 캐면 돈이 되는 거 아닙니까?”
나의 반문에 시화는 고개를 저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탐험하기 전엔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는 길가의 돌맹이와 다를 바 없는 가치였습니다. 지금 이 게임에서 보석의 가치는 사실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귀중한 줄 모르는 것에 가치를 부여할 사람은 없습니다.”
“트로페 마을의 보석상점에선 장신구를 꽤 비싸게 팔던데······.”
“일종의 쇼윈도우나 트로피 아이템 같은 거죠. 그런 아이템을 비싼 골드를 주고 살 사람도 없지만, 돈이 있는 사람도 레이드템을 대신 사버립니다.”
“흠, 그래도 돈 욕심이 있는 사람은 보석세공을 해서 그 상점에 팔면 돈이 모일텐데······.”
“앞서 말했듯이 보석이 많은 곳은 있는데, 그곳에서 보석을 캐는 것이 쉽지만은 않고, 고생에 비해 수익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대충 이해가 갔다.
한 마디로 보석의 채산성이 낮다는 이야기다.
“어디서 보석을 얻을 수 있기에 그런 거죠?”
“던전이나 레이드의 보스들을 잡으면 랜덤하게도 주지만, 채광으로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은 북부 설원지역입니다. 매우 추운 곳이죠. 그것만으로도 유저들이 기피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그곳의 광산은 150레벨을 좀 넘기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솔로플레이가 힘든 곳인데, 광산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사냥하기가 힘든 곳이죠. 저 같은 경우는 이제 180레벨이 넘었으니 괜찮지만, 랭커들만 솔로플레이가 가능한 곳이어선 의미가 없죠.”
“그렇군요.”
시화의 설명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추운 곳이라 기본적으로 유저들이 가기 힘든 곳인데, 몬스터들도 상당히 강해서 광산이 위험한 모양이다.
하펜 마을의 광산과는 사정이 다르단 말 같다.
“그럼 저도 보석은 수월하게 얻는 것이 힘들겠군요.”
“혹시 원하신다면······ 제가 함께 가드릴 수 있습니다. 이젠 저희 주력 사냥터가 아니긴 하지만 공진씨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돕고 싶군요. 제 개인시간을 이용해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개인시간이란 말을 들어보면, 시화는 게임 플레이도 일정이 잡혀서 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에겐 게임이 직업이니 말이다.
“어머, 설원지대라면 눈이 오는 곳이잖아요? 한 번 가보고 싶네요.”
미나가 거들었다.
나도 미나처럼 약간 호기심이 동했다.
꼭 보석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게임에서 눈을 본다면 꽤 신기하고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나가 그렇게 말하니, 시화가 덧붙였다.
“노슬론 마을이란 곳으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습니다. 그곳 근처에 광산도 있고요.”
“꼭 가서 눈사람 만들어보고 싶어요! 가죠, 오빠!”
시화가 그렇게 말하자, 미나가 나를 보채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자고 했는데, 미나가 뛸 듯이 기뻐했다.
“허허, 지혜야, 너도 따라가지 그러려무나.”
그때 블루스 노인이 거들 듯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지혜가 내 눈치를 보는 듯 했다.
“지혜야, 너도 갈래?”
“네······.”
지혜는 어쩐지 낯을 가리는 듯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음, 초콜릿 케이크를 먹은 뒤로 어쩐지 계속 그런 느낌인데?
여하튼 보석에 관한 이야기는 그쯤으로 하고, 나와 모두는 무기상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호객행위를 하여 사람들을 모았다.
블루스 노인은 이제 ‘억’소리 나게는 못 부르신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다른 사람들이 낙찰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경매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전에 시화에게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만 했다.
“시화 씨, 지금까진 블루스 어르신께서 아이템을 모두 사주셨지만, 이젠 그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의 적이 아이템을 사간다면 적들의 전력이 늘어나는 건 아닐까요?”
일전에도 논했던 것 같지만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겸해서 말해보았다.
그러자 시화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사려고 한다면 사라고 하십시오. 저흰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단독무력으로는 저희 길드를 여전히 이길 수 있는 길드는 없습니다. 레이드에서 이미 몇 발자국은 앞서 있기 때문이죠. 공진씨에게서 얻는 자금력까지 더해지면 두말할 것도 없어질 겁니다. 걱정마십시오, 그러니 오히려 파는 것이 이득입니다.”
“알겠습니다.”
그의 당당한 대답에서 신뢰감이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걱정하진 않고 경매를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블루스 노인이 장난끼 넘치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젊은이들, 그리고 우리 공진군의 아이템을 노리고 온 승냥이들. 내 말을 먼저 듣게나. 내가 최근 아들놈에게 잔소리를 좀 들어서, 아이템 한 개당 5,000만골드 밖에 쓸 수가 없다네. 참 껌값인데 말이지. 그래서 나는 무조건 공진군의 아이템에 5,000만골드부터 지르고 시작할 걸세. 경매시작가가 5,000만 골드란 말이지. 그러니 괜히 돈 없는데 군침 흘리는 젊은이들은 가서 부침개나 부쳐 먹게나, 허허.”
블루스 노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또 저 할배다!”
“경매장 큰 손!”
“아놔, 할배요. 할배가 다 가져가면 우린 뭐 먹고 살아요?”
“우리도 저런 아이템 좀 써보고 싶다 이 말이야.”
“너무하구만 진짜! 흙수저들 기분도 이해해달라.”
“나는 어차피 입찰 안할 거니까, 상관없음. 개꿀잼 구경거리네.”
사람들의 야유에도 블루스 노인은 오히려 즐기는 듯이 허허 웃었다.
여하튼 블루스 노인의 말대로 아이템들은 전부 5,000만 골드를 시작가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리폰 가죽 상하의는 블루스 노인이 각각 5,000만 골드, 그러니까 1억에 사갔다.
하지만 팔카타는 다른 입찰자들이 약간 경쟁하여서 8,000만 골드에 가져갔고, 풀 플레이트 아머는 1억 3,000만 골드에 팔렸다.
총합 3억 1,000만 골드를 번 것이다.
음, 이게 다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이란 생각을 하니까, 나의 금전감각이 서민의 것에서 약간 흔들리는 기분이다.
사람이란 게, 돈을 너무 쉽게 벌면 금전감각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시화처럼 노력하는 것을 보면 꼭 쉽게 번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화씨, 오늘 몫인 1억 5,500만 골드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길드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공진씨를 영입한 건 제 인생 최대의 업적인 것 같습니다.”
“뭘요, 제가 한 건 별로 없는 걸요.”
금칠을 해주는 시화에게 나는 겸양을 떨었다.
시화는 그 후, 내일도 강화석과 소재들을 가져올 거라 말하고 떠났다.
떠나기 전엔 다시 보석세공 이야기를 잠깐 꺼내어, 보석을 캐러 가고 싶다면 말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하튼 그는 또 레이드 일정이 있는지 바삐 마법사 길드로 향했다.
“허허, 그럼 나도 이제 로그아웃을 해야겠군.”
“들어가십시오, 어르신.”
“자네도 수면모드라고 너무 하진 말게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금은 진짜 수면을 해야한다고 하는구먼. 지혜도, 미나양도 염두해두게.”
블루스 어르신은 나와 미나, 지혜에게 훈화를 한 뒤, 로그아웃을 하셨다.
“오빠, 이제 뭐하죠?”
“마법사 길드에 가서 지혜가 만들어준 사과파이를 납품할 생각이야. 하는 김에 연금술 상점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답변도 들어야겠다.”
“그럼 어서 마법사 길드로 가죠!”
“그래.”
나와 미나, 지혜, 그리고 정령과 동물 친구들은 마법사 길드로 향했다.
마법사 길드를 가니, 꾸벅꾸벅 조는 마법사 아가씨가 잠이 덜깬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이방인 분들은 정말 밤낮이 없군요. 아함.”
그야 우리들은 아침이기도 하고, 수면모드로 플레이하니까요······ 그나저나 NPC들도 고역이다.
그들도 잠을 자거나 개인생활을 하는 모양인데, 계속 유저들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니, 인공지능이라 피로를 못느끼는 걸까? 아니, 아니지. 이 아가씨는 방금 하품을 했으니 피곤함을 느끼는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그녀에게 사과파이를 납품했고, 곧 연금술 상점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거요, 말씀드린 대로 길드마스터는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셨어요. 무엇보다 이방인님이랑 사제의 연을 맺으면 포션에 추가효과가 붙는다는 것에 크게 관심을 보이셨죠. 당장이라도 포션가게든 연금술 가게든 만들면 마법사를 파견해드리기로 했어요.”
“다행이군요. 그럼 당장 만들겠습니다.”
“지금 당장이요?”
“네, 머뭇거릴 이유도 없으니까요. 다만 만들 수 있는 것은 건물 뿐이니 내부에 필요한 것들은 길드에서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죠.”
“그리고 제가 다른 이방인들도 연금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것도 길드마스터에게 말씀해주셨습니까?”
“물론이죠, 그것도 적극 찬성하셨어요. 연금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저희도 약초 수급을 이방인 분들에게 맡길 수 있어서 좋거든요. 무엇보다 이방인님들 사이에선 사장되어 있는 연금술사 직업도 활성화될지도 모르고요.”
아무래도 내 계획이 마법사 길드의 이익과도 잘 부합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마법사 아가씨와의 대화를 끝마치고, 연금술 상점을 만들기 위해서 마법사 길드를 나섰다.
< 151화 아이템 경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