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65화 (165/239)

< 146화 만석꾼이 되다. >

“듣자하니, 하펜 마을의 영주가 되셨다고요?”

“예, 어르신께 들으셨습니까?”

“네, 중립 마을의 영주가 되는 건 정식 영지의 영주가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데, 대단하십니다.”

“운이 좋았죠. 그런데 게임을 처음 하시는 것 같지 않군요?”

“네, 사실은 베타테스터였습니다. 정식 오픈하고 난 뒤에는 일이 바빠서 못했지만요. 덧붙이면 베타테스트 때도 제 특기를 살려서 영지의 부동산을 관리했습니다. NPC들에게 땅을 매매하는 일을 했죠.”

테리우스씨는 초보자 차림이었지만, 베타테스터라서 게임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 그러니까 유저들에게 땅을 판매하실 거라고 전 회장님······ 아니, 블루스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다만 조금 특별한데······.”

나는 테리우스씨를 신용하기로 하고, 레거시 퀘스트에 대해 말하면서 농사 스킬을 장려하기 위해 땅을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흠, 그런 퀘스트가 다 있군요. 히든 퀘스트까진 알고 있는데, 레거시 퀘스트라니. 뭔가 사연이 있는 퀘스트 같습니다. 여하튼 그럼 토지조사부터 해야하는데······ 측량 작업을 하려면 꽤나 고생 좀 하겠군요.”

테리우스씨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골렘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인님, 현재 주인님의 영지의 영향권에서 농토로 사용할 수 있는 토지의 넓이는 약 5,000,000㎡입니다. 이는 숲과 방목지, 광산 인근 등의 땅을 제외한 통계입니다.”

“아니, 이 갑옷 친구는 뭐죠?”

“아, 얘는 골렘입니다. 제 소중한 동료죠.”

“아하, 아주 똘똘한 친구군요. 좋아요, 골렘씨, 제가 지도를 가지고 있는데, 농토로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말해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테리우스씨는 골렘에게 지도를 보였고, 골렘이 가리키는 농토 범위를 펜으로 표시했다.

“덕분에 측량작업을 생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매매전략을 짤 때군요. 임대와 매매를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서민들에겐 임대를 하고 부자들에겐 매매를 해야 합니다.”

“잠깐, 테리우스씨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만······ 아무래도 매매는 지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블루스 어르신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블루스 어르신은 신경쓰지 않으시는 듯했다.

계속 말해보라는 눈치다.

“저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농장을 주고, 농사 스킬을 배우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레거시 퀘스트를 깰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농토를 임대로 하고 싶습니다.”

“설마, 공동분배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네, 100㎡ 정도의 땅으로 임대권을 추첨으로 돌릴 생각입니다. 골렘이 말한대로라면 50,000명이 농지를 가질 수 있겠죠.”

100㎡이면 농작물 100개분의 밭을 만들 수 있는 땅이다.

평으로 따지면 30평정도, 게임에서 농사를 즐길 정도의 땅이라면 그 정도도 꽤 많은 땅일 것이다.

그리고 100개분의 땅으로도 수입이 상당할 것이다.

현실시간으로 2시간이면 게임 시간으론 8시간이고 8시간이면 고급 비료를 쓰지 않아도 작물이 맺어지는 시간이다.

농사를 짓기만 하면 2시간마다 수익이 난다는 의미이니 사람들에겐 상당한 메리트다.

물론 사이버 농사에 흥미가 있어야만 하지만 말이다.

“그럼 임대료를 많이 받아야겠군요. 한 달에 대략 1,000만 원 정도를······.”

“아뇨, 그렇게 계산하지 않을 겁니다. 현실 시간으로 한 달이 아니라 게임 시간으로 한 달에 100㎡ 당 10만 골드를 받을 생각입니다. 현실시간으론 1주일이군요.”

“그럼 한 달에 임대료가 40만원이란 의미인데, 현실의 농지 임대료에 비해 턱없이 쌉니다.”

“저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농지를 나눠주고 농사 스킬을 배우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갚을 수 있는 임대료를 정해야 합니다. 제 계산에 따르면 게임 시간으로 한 달이면 농사 스킬을 이용할 경우 10만 골드 정도는 충분히 갚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줄을 서서 임대하려 하겠죠. 제가 노리는 것이 그 점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테리우스 씨는 어깨를 으쓱이며 블루스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보곤 말했다.

“돈 욕심이 별로 없으시군요.”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제 계획대로 50,000명이 농지를 전부 임대하면 저는 1주일에 50억의 불로소득을 얻게 되는군요. 물론 5,000,000㎡ 땅을 전부 임대했을 때 이야기지만요. 어쨌든 그 정도로도 상당한 자산 아닙니까?”

“호오······ 어르신, 이 친구 돈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사업하는 눈이 꽤 있습니다. 정말로 일개 사원이 맞습니까?”

“허허, 나도 꽤 허점을 찔린 것 같은 기분이군. 현실의 부동산과는 다른 점을 제대로 꿰뚫어 본 것 같네. 게임이라면 이런 박리다매적인 부동산 전략이 더 잘 먹힌다, 이거로군?”

나의 말에 블루스 어르신과 테리우스씨가 납득한 모습이었다.

예컨대 나는 최대한의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박리다매한다는 생각으로 싸게 임대했지만, 그건 결코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선택이 아니다.

게임상의 토지에 현실의 가격으로 임대료를 먹인다면 사는 사람이 드물어질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다면? 골드가 돈이 되는 상황에 사람들은 줄을 서서 임대하려 할 것이다.

현실의 농사보다 수월하기도 하고, 자연재해에 대한 보험 같은 것도 계산할 필요 없으니 더욱 메리트가 있다.

물론 가상화폐처럼 비현물거래라는 점이 있긴 하지만, 이 게임이 망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농사로 돈을 벌려고 할 것이다.

‘이러면 최대 5만 명의 사람들이 농사 스킬을 배우게 할 수 있어. 돈으로 유인해서 하는 식이지만 말이야. 다만 이게 게임을 망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이게 어떻게 게임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후폭풍을 만들어낼지는 모를 일이니까.’

물론 그런 후폭풍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순 있지만,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할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거라서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것을 다 척척 알 수 있다면 현실의 경제를 경제학자들이 다 살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주인님, 말씀드리자면 5,000,000㎡가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영주의 통제 하에 있는 영지의 접점까지 영지의 영향력은 계속 뻗어나갑니다. 그 땅으로 인해 농지는 점점 늘어날 수 있습니다.”

“아, 그래? 조금 부담스러운 수준이네.”

골렘의 말에 나는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

계산상으로는 나로선 일주일에 50억이라는 불로소득을 얻게 되어서 상당히 판이 커져서 부담스런 느낌까지 든다.

이것에 대해 <군신>길드가 자신들의 협조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해서 절반을 준 다해도 25억이다.

물론 이건 500만㎡이라는 땅이 모두 임대됐을 때 이야기다.

아무리 메리트가 있는 일이라고 해도 50,000명이란 사람들이 쉽게 모일까?

그건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500만㎡면 굉장히 넓구나, 우리나라가 약 10만㎢인데, ㎢단위로 고치면 5㎢라는 의미다.

왜 그렇게 넓은 걸까? 아니, 이 게임의 전체 땅 넓이는 얼만지가 궁금해졌다.

“주인님, 하펜 마을이 있는 주변 영토는 전부 중립 영토이기 때문에 모두 영주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00만㎡ 간의 모든 땅과 마을이 중립 영토이자 중립 마을입니다. 따라서 소유권이 없는 땅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정식영지가 된 하펜 마을이 공토에 영향권을 가지게 됩니다. 즉, 빈 공토 모두 잠정적인 주인님의 땅인 셈입니다. 덧붙이면 이 중립지대를 두고 밀레스, 메이거스, 밀리아리움이 패권을 다투는 것입니다.”

골렘이 나의 궁금증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아하, 그러니까 이 일대가 전부 중립지대, 그러니까 DMZ같은 곳이란 의미다.

물론 비무장지대란 의미는 아니지만 말이다.

굳이 따지면 골렘의 말대로 공해의 육지버전인 공토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이 대륙의 넓이는 70만㎢입니다. 주인님이 세상에 있는 ‘텍사스’주의 면적과 비슷합니다.”

“아득해지는 통계인걸.”

어쨌든 이 장사가 성립될 수 있단 것을 납득했다.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것이 좀 불안하기도 하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나 나름대로 그냥 열심히 게임을 할 뿐이지 말이다.

“그럼 매매전략은 세웠으니, 업무처리가 문제군요. 사실 이건 제가 해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테리우스씨가 말했다.

“가능하시다면 저에게 부동산 사무소를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자유건설로 그냥 아무 건물이나 만들어주시고 NPC한명만 고용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제가 그 NPC를 교육시켜서 부동산 관련 업무를 처리하도록 만들어드리죠. 베타테스트 때 이미 해본 일입니다. 물론 저는 NPC들을 상대로 한 일이지만요.”

“그렇군요. 그럼 당장 마을로 향하죠. 제가 건물을 짓고, 촌장에게 사람을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대화가 거기까지 이어진 후, 나와 모두는 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에 지혜와 미나가 내 양 옆에 나란히 서서 걸어갔는데, 살짝 블루스 노인의 눈치가 보였다.

블루스 노인은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말이다.

“흐음, 오빠가 그런 모습인 건 처음 보네요. 역시 대기업 사원이란 건가요?”

“그런 모습이 처음이라니, 내 평소 모습은 어떤데?”

“먹는거 좋아하고, 조금 게으른 농부 아저씨 같은 느낌?”

“하하, 정답이라서 할 말이 없네.”

미나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럼 저도 오빠 일 좀 도울게요. 공동조리소 지을 때처럼 촌장님 댁에 가서 사람 좀 보내달라고 할게요.”

“그래 줄래?”

“네, 지혜야, 너도 함께 가자.”

곧 미나와 지혜는 마을에 도착 한 후엔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나와 블루스 노인, 그리고 테리우스 씨와 동물, 정령 친구들은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이번엔 별 특색 없는 집 하나를 지었다.

간판에는 ‘부동산’이라고 적고 말이다.

“어? 또 뭔가 지었다.”

“부동산? 서, 설마! 이제 농토를 파는 건가?”

“나나나나! 내가 먼저 땅 살래!”

부동산을 만들자마자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급격히 몰렸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군요. 벌써 한 1,000명은 몰리는 것 같습니다.”

“임대 조건을 말하면 마음에 안들어 하는 사람도 있겠죠. 임대가 아니라 땅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룰을 고수할 생각입니다. 다만 임대권을 서로 주고받아 판매하는 것은 막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차피 임대료는 100㎡단위로 받을 거니까요. 하지만 이런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법적 강제성이 필요한데······.”

“아, 그건 걱정할 거 없어요. 게임 시스템이 지원하거든요. 계약서에 사인하면 그 조건으로 단 1원도 빠짐없이 임대료가 들어올 겁니다. 개인적으로 부럽군요. 큰돈을 거머쥐게 되었으니까요.”

“테리우스씨의 도움도 있었는데, 제가 보상을 해드려야 할 것 같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블루스 노인이 나섰다.

“그럴 필요 없네. 이 친구에게 보상하는 거야, 내가 해줄 거니까. 그나저나, 내 생각 이상으로 잘했군. 우리 지혜를 믿고 맡겨도 될 정도인 것 같아.”

“하하하, 농담도 참 재밌게 하십니다.”

“허허허! 어쨌든 일이 끝나면 선술집을 열게나. 자네가 만든 술이 고프군.”

블루스 노인은 지긋이 웃으며 말했다.

< 146화 만석꾼이 되다. > 끝

작가의말

지혜에 관해서 말씀들이 많기에 글을 남깁니다.

괜히 긁어부스럼 같아서 말하는 것을 지양했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인공과 지혜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게임에서 알게 되어서 친해진 관계이고 지혜의 경우에는 약간의 호감을 ‘일방적으로’ 품은 정도입니다. 선생을 동경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10대의 감정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공진은 흔히 말하는 페도X끼 마냥 응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주변인물들이 지혜와 공진의 관계에 대해서 뭐라하는건 전부 그냥 개그일 뿐입니다. 진지한게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미나에게 대사를 더 밀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은 지혜가 더 받게 되네요.

앞서 말했지만 제가 이걸 작가의 말로 말하는건 긁어부스럼이라서 말씀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번화에도 어쩐지 그런 말씀들이 나올 것 같았고, 그것에 대해 입장을 공고히 밝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적었습니다(그리고 뭐 구매수도 여러모로 떨어지고 있어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도 들어서 말이죠... 슬픈일이지만요)

또 어떤 분들은 그냥 로맨스 자체가 없는 것이 좋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미 넣었으니 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로맨스를 양념 이상의 용도로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나와 지혜 중 누구랑 이어지냐는 말에 민감하게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위에 언급한 이런저런 이유들로). 보통 지혜랑 이미 이어질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어디까지나 지금 그 결말에 대해선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상태입니다. 미나인지 지혜인지 아니면 열린 결말로 끝낼지는 저만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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