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59화 (159/239)

< 140화 8일차 선술집 오픈 >

음머어어어어

농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옥스를 데리고 밭을 갈았다.

기존의 밭을 가는 것이 아니라, 목화 전용으로 1,000개 분량의 밭을 더 확보했다.

그만큼 농장의 울타리도 더 넓혀야만 했다.

미나는 그런 작업을 하는 나를 계속 촬영했고, 지혜는 동물들과 놀았다.

골렘은 벌목과 수액채집을 하러 갔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농장이었다.

“수고했어, 모두들.”

음머어어어

브어어엉

냐아아아앙

삐이이익

밭을 갈고 목화를 심는 것을 도운 애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모두 기분 좋게 울음소리를 내곤 애정표현을 했다.

“흠, 이제 슬슬 선술집을 열까나.”

“벌써 그런 시간이네요.”

“응, 오늘도 술을 팔고 인생을 바꿔줄 시간이야.”

“시적인 표현인데 어디서 들은 건가요?”

“인디게임.”

“······.”

미나와 잡담을 나누면서 선술집을 열었다.

오늘도 삶에 지친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찾듯 선술집을 들렀다.

미나와 지혜가 일을 돕겠다고 했지만, 골렘이 서빙을 다 맡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혜는 선술집 일을 시키는 것이 곤란했다.

가상의 술이긴 하지만 술집에서 미성년자를 일시키면 뭔가 안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크으 오늘도 살살 녹는다.”

“제과점 열고나서 좀 한가해졌나 싶은데, 다시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네.”

“그게 농장 아재가 영주되서 그러잖아. 마을에 공용대장간하고, 제과점하고, 무기상점에 좀 전에는 의류점도 만들었더라. 사람들이 몰려오다보니 여기도 늘어날 수밖에.”

“나만의 작은 선술집이었으면 했는데······.”

제과점을 열어서 줄어들었던 선술집의 손님들이었는데, 오늘은 다시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수다에서 들리는 것처럼, 마을의 유동인구가 늘어나다보니 자연스레 선술집의 손님도 늘어난 모양이다.

“지혜야 제과점에서 특별히 만들고 싶은 거 있어?”

“여러가지 있죠. 케이크, 도너츠, 번, 베이글, 와플, 스콘, 소보로빵, 웨하스, 머핀······.”

“그런 걸 다 만들 수 있어? 누구에게 배운 거야?”

“독학했어요.”

“대단하다!”

미나와 지혜는 스탠드바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서빙을 완료하면서 돌아와선 둘의 수다를 들었다.

“그런데 초콜릿이 없어서 만들 수 있는 빵이 좀 제한적이에요.”

“그래? 그럼 오빠한테 구할 수 있나 말해봐.”

“그래도 괜찮을지······.”

지혜는 말끝을 흐리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트로페 마을에 가면 아마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초콜릿이면 카카오 열매지?”

“네, 카카오버터, 카카오매스, 카카오 파우더 모두 카카오빈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게임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거야 심어보면 알겠지만, 오늘은 시간이 좀 촉박할 것 같네.”

“내일 가죠. 미나 언니도 같이 트로페 마을에 가서 해변에서 놀아요.”

지혜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미나도 바다에서 노는 것에 찬성했다.

흠, 오늘은 무리겠지만 내일 가서 바다 구경도 하고, 카카오 열매도 알아보고······ 가능하면 새로 키워볼만한 농작물도 알아볼까?

“공진씨, 안녕하세요.”

“아, 시화씨 오셨군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선술집에는 어느새 시화와 <군신>길드의 길드원들이 들어와 있었다.

길드원들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골렘에게 주문을 하고 있었고, 시화는 나와 지혜, 그리고 미나가 있는 스탠드바에 와 앉았다.

그녀들도 시화와 인사를 했다.

“피곤해 보이네요, 오늘도 레이드하셨나요?”

“네, 매일 그렇죠. 그나저나······ 일단 좋지 않은 소식을 알려드려야겠네요.”

“뭐죠?”

“그게······ 라이벌 길드들이 전부 밀레스 쪽으로 연합하는 모양입니다. 지난 번 오딧세이 길드를 꺾은 역풍이죠.”

시화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나는 그에게 위스키 한 잔을 건넸다.

“그럼 또 길드전이 벌어지는 건가요?”

“평범한 길드전이 아니라, 국가간 전쟁이 될 겁니다. 당연히 이 하펜 마을을 두고 말이죠.”

“내일 당장 일어나나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길드 연합의 주축인 오딧세이 길드가 참패하면서 한동안 전력을 다시 모아야 할 테니까요. 물론 언제라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국가간 전쟁인 만큼 밀레스가 강행돌파를 선택하면 내일 당장 처들어올 수도 있겠죠.”

“저흰 메이거스에 속했잖습니까? 그들이 당연히 지원군을 보내주겠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밀리아리움이죠. 그들이 누구 편을 들지 모를 일입니다.”

아, 대충 이해가 갔다.

나와 <군신>길드가 촉나라라고 하면, 밀레스가 위나라란 말이다.

그 둘이 싸우게 되는데, 오나라인 셈인 밀리아리움이 촉나라 편을 들지 위나라 편을 들지 모른다는 말이군.

“말론이란 신관······ 그러니까 밀리아리움의 대사는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눈치던데요.”

“외교적으로 이득을 보려는 거죠. 아마 눈치를 보다가 이길 것 같은 쪽에 붙을 겁니다.”

“저희 쪽이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길드간의 전력으로 따지면 오딧세이 길드와 나머지 길드를 합친 거 보다 저희가 좀 더 강합니다. 사실 하위 길드의 실력은 그리 좋지 않거든요. 하지만 밀레스는 기사의 나라라는 컨셉이라 군사력이 좀 강합니다. 반면에 메이거스는 마법과 상업의 나라라는 컨셉이고요.”

“전쟁은 흔히 경제력 싸움이란 말도 있는데, 메이거스라고 약할 것 같지 않은데요.”

“그렇긴 합니다만, 이건 판타지 게임인지라······ 경제력의 싸움만이 아닙니다. 그것보단 소드마스터가 잔뜩 있는 나라와 대마법사들이 잔뜩 있는 나라의 싸움에 가깝겠죠.”

“묘한 비유네요. 꼭 판타지 소설 같습니다.”

문득 들으면 웃긴 이야기인 것도 같은데, 시화는 근심이 약간 되는지 술을 마셨다.

“최선을 다 할 거지만, 솔직히 말해 걱정이 좀 되는군요. 여기서 무너지면 공진씨의 재산을 지켜드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저희 길드가 쌓아올린 1위의 자리도 뺏기니까요.”

“뭐, 부담을 좀 덜어드린다면 저야 뭐 영지나 농장을 뺏겨도 시화씨에게 뭐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그저 최선을 다 해주십시오.”

나는 게임은 게임일 뿐이란 주제넘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게임이 곧 일이며 직장인 시화에겐 실례인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만약 시화가 패배해 내가 영지나 농장을 잃게 되더라도 그를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런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게임을 즐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같은 게 일어나기 전에 생활 스킬을 활성화하는 건 이루고 싶은데 말이죠. 만약에 다른 길드가 이 영지를 차지하면 저처럼 생활 스킬을 활성화하려고 할까요?”

“아닐 겁니다. 공진씨도 레거시 퀘스트란 것을 받은 뒤에야 생각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그런 퀘스트도 없는데 좀 더 돈이 될 방법을 궁리하겠죠. 그냥 영지의 세금을 올려버리고 직접적으로 골드가 나오는 내정만 하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흠······.”

다른 길드가 차지하게 되면 레거시 퀘스트를 완료할 방법은 거의 없다는 건가.

그럼 그 전에 최대한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사실 지금도 상당히 이것저것 저지른 느낌이지만 말이다.

“여어, 모두들 모여있구먼.”

“오셨습니까, 블루스 어르신.”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블루스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내 인사를 받은 후 시화와 미나에게도 인사를 받곤 지혜를 바라보았다.

“오늘도 재밌게 놀았니, 지혜야.”

“네, 할아버지.”

“공진군하고 있으니 재밌게 논 모양이구나. 뭐하고 놀았니?”

음, 대화가 꼭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손녀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대화 같다.

어쨌든 지혜는 오늘 홍보 영상을 찍었고, 낚시를 하고, 의류점을 짓는 것을 구경한 걸 말했다.

“대장기술의 홍보영상은 나도 보았네. 그럼 오늘 찍은 것은 농사랑 요리인가?”

“네, 아직은 그 정도죠.”

“홍보 영상을 담을 땐 꼭 돈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게. 그래야 사람들이 더 득달같이 달려들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전 회장님 다운 조언을 해주시는 블루스 노인이었다.

그는 곧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지혜가 영상을 탄다고 생각하니, 내가 어쩐지 긴장되는구만. 미나 양, 자네가 찍었다고?”

“네! 사실 홍보 영상 말고도 일상 영상도 찍었어요.”

“예쁘게 찍어주게. 우리 손녀가 파티시에가 되고 싶어 하는데, 기왕지사 스타셰프가 되면 좋지 않은가?”

“호호호, 그럼 저도 정말 기쁠 것 같네요.”

“처자가 마음이 아주 곱군.”

블루스 노인은 허허 웃곤 내가 내드린 와인을 마셨다.

그리곤 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시화군이랑 공진군은 더 이상 무기상점에서 경매는 하지 않는 건가?”

“아 그게······ 판이 너무 커지는 기분이라 잠시 쉴까 싶었습니다.”

“쯧쯧. 젊은 사람들이 뭐그리 간이 작을꼬. 사람이 큰 돈 만질 줄 아는 배포도 키울 줄 알아야지. 자네에게도 돈 벌 기회가 항상 있는 건 아니니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두게.”

“물론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곤 시화를 바라보았다.

시화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일부턴 다시 정수랑 강화석을 드리죠. 아니, 좀 더 특별한 것도 해봅시다.”

“특별한 거요?”

“전에 만티코어의 가죽을 드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처럼 더 좋은 소재를 드리겠습니다. 그럼 더 좋은 아이템이 나오겠죠.”

“아, 그거 말이군요. 확실히 그렇죠.”

그때 만티코어 가죽으로 하이드 아머를 만든 적이 있었다.

피해를 내구도가 대신 입고, 내구도가 0이 되도 파괴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옵션이 붙었지.

물론 그건 슬라임의 정수 때문인 것 같지만 말이다.

하지만 만티코어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가죽치곤 내구도가 높아서 효율이 더욱 좋아졌었다.

“그런데 경매를 하면 어르신께서 또 전부 사실 생각이십니까?”

“참여는 할 생각인데······ 이제 좀 자중할까 하네. 아들에게 게임에 돈을 뭐그리 쓰냐고 잔소리를 들어서 말이지.”

“아, 그렇군요.”

“그래서 아이템 한 개당 5,000만 골드까지만 지를 생각이라네. 참 검소하지 않나?”

“······네.”

검소하셔도 스케일이 남다르시다.

하긴, 현실에선 5,000만원보다 더 비싼 쇼핑을 즐기는 것이 부자들의 소비라는데, 저 정도면 엄청 검소한 것 같다.

“그나저나 자네 말일세.”

“예, 어르신.”

“내가 말이지, 아들에게 좀······ 바람을 집어넣어 버려서 말이야.”

“회장님께요? 무슨 바람 말씀이시죠?”

“그게 자네와 지혜가······ 커흐흐흠. 그러니까 아주 친하다고 말이야.”

“예? 네 뭐······ 친하게 지내긴 하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혜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지혜는 수줍어하는 듯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녀석이 딸바보 아니랄까봐 오해를 해선 화를 내길래, 내가 따끔하게 혼구멍을 냈지. 아이쿠, 지혜야, 그렇게 안 봐도 된다. 아비에겐 잘 말해뒀으니.”

어쩐지 찌릿한 눈길로 블루스 노인을 바라보는 지혜였고, 블루스 노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크흠, 지혜가 민감한 나이인데, 친구 사이인 사람을 갈라놓지 말라고 따끔하게 말했네. 근데 그 팔불출이 자네에게 뭐라고 하지 말란 법이 없어서 말이야. 그 놈이 뭐라해도 너무 놀라지 말게.”

“아,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르신. 회장님이 전에 저를 불렀을 때, 이미 지혜와는 친구 사이라고 잘 말씀드렸습니다. 회장님도 더 이상 이상한 오해는 안하실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블루스 노인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라네. 응? 지혜야 넌 왜 울상이냐?”

“아니거든요, 할아버지.”

어쩐지 지혜를 놀리는 듯한 블루스 노인이었고, 지혜는 이유는 몰라도 그에게 톡쏘듯 말했다.

사이 좋은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이라 나도 흐뭇하게 웃었다.

< 140화 8일차 선술집 오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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