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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155화 (155/239)

< 136화 10일차 로그인 >

오늘 출근하면 내 책상이 없어져 있지 않을까, 라는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걱정하는 나 자신이 무색해질 정도로 아무 일이 없었다.

적어도 회장님이 어제 일로 화가 나시진 않은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회장님과 지혜의 사이가 풀어졌는지도 궁금하지만, 내가 함부로 참견할 일은 아닐 것 같다.

물론 게임에서 지혜를 보면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늘도 잔뜩 야근하고 집에 돌아왔다.

[사용자 신원 ‘사공진’ 확인

<마일스톤>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접속한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요기하고 씻은 뒤, 게임에 접속했다.

주변의 풍경이 언제나 평화로운 농장으로 바뀌었다.

꼬꼬꼭!

삐약삐약

음머어어어

멍멍!

월월!

접속하자 동물친구들이 다가왔다.

실버와 골드는 득달같이 달려왔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호크의 뒤에는 병아리가 있었다.

옥스도 송아지를 돌보며 걸어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다녀왔어! 별 일 없었지, 골렘아?”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면서 골렘에게 말했다.

평소처럼 아무 일 없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손님이 와계십니다.”

“어? 손님?”

“레이디 미나께서 호수에 계십니다.”

“아, 미나가 왔구나.”

내가 없는 사이 미나가 농장에 찾아온 모양이다.

나는 얼른 호수쪽으로 가보았다.

그곳에선 낚싯대를 가지고 호수에서 낚시 중인 미나를 볼 수 있었다.

“미나야.”

“아, 오빠왔어요?”

“낚시하는 거야? 많이 낚았어?”

“몇 마리 낚았어요, 은근히 재밌는데요?”

“그래? 그런데 농장엔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요, 오빠 보고 싶어서왔죠.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닌데······.”

내가 오자, 낚싯대를 집어넣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미나였다.

나는 괜히 쑥스러움을 느껴서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곧 미나가 말했다.

“물론 오빠 얼굴만 보려고 온 건 아니에요. 혹시 제가 영상 편집해서 올린 거 보셨어요?”

“아, 아니? 내가 워낙 바빠서······.”

“그럴 것 같았어요. 자, 여기요 같이 봐요.”

미나는 내게 밀착하면서 영상 홀로그램을 띄웠다.

“채널은 임시로 제 명의로 하긴 했는데요.”

“아, 그건 그냥 계속 두자.”

“네? 오빠걸로 안 바꾸고요?”

“미나가 수고해줬는데, 미나 명의로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어머······ 어쨌든 봐바요. 채널이름은 ‘농사짓는 플레이어’고요······.”

미나는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어제 롱소드를 만드는 영상을 올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 아이템도 그 젊은이가 만든 거라네. 지난 번 하펜 마을 전투에서 오딧세이 길드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가한 아이템이지. 이름은 ‘약속된 승리’라네. 얼마에 샀냐고? 1억은 줬던가······ 껌값이라 잘 기억 안 난다네. 이런 아이템이 또 있으면 얼마든지 살 생각이지. 내가 아니더라도 나랑 경쟁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낼 거야. 근데 이상한 건 이렇게 돈 되는 일을 왜 사람들이 안하냐는 거지. 다들 돈 벌기 싫은 가봐 허허허.]

바로 블루스 노인의 인터뷰였다.

미나는 그의 인터뷰를 부각시켜서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낸 모양이다.

-와 생활 스킬로 아이템을 만들면 1억? 당장 배우러 갑니다.

-하펜 마을이라고 했지? 거기에 공용대장간이 있다고? 당장 간다.

-나는 돈 안 벌어도 좋으니까 내가 쓸 아이템 좋은 것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

-근데 스킬 노가다는 좀 해야겠지?

-인터뷰 하는 여자 예쁘다.

댓글 반응도 좋은 편이고, 조회수도 상당하다.

겨우 하루도 안 된 영상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오빠, 퀘스트는 어때요? 이 정도면 스킬을 배운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은데요.”

“아 맞아. 한 번 확인해볼까.”

영상을 다 보자, 미나가 물었다.

나는 퀘스트창을 띄워 레거시 퀘스트의 진척률을 확인했다.

[퀘스트, 창조주의 유언

당신은 창조주가 남긴 유산을 가질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창조주가 남긴 유산을 쫓고자 한다면 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바꾸십시오. 만약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해도 상관없습니다.

클리어 조건 : 퀘스트를 받은 시점에서 게임 내 50%의 유저들이 생활 스킬을 가지도록 유도.

클리어 보상 : 100,000,000 업적점수, 창조주의 유산

클리어까지 진척률 : 5/100%]

“5%까지 올라가 있어. 50%유저들이 생활 스킬을 가지도록 하는데 목적이니까······ 2.5%의 유저들이 생활 스킬을 배웠다는 의미네. 영상 한 번으로 상당히 많이 배우게 만들었구나.”

수십만 유저들이 하는 게임에 2.5%면 상당한 숫자다.

그것도 점점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굉장한 것이다.

“미나야, 니 아이디어 덕에 이 퀘스트도 쉽게 깰 것 같아. 고마워.”

“어머, 뭘요. 제가 대단한 거 한 것도 아닌데요 뭘.”

미나는 내 칭찬에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나도 여자애를 칭찬하는 일이 드물어 살짝 부끄러워졌다.

“그나저나 이제 뭐하실 거예요?”

“농사지을 생각인데. 어제 선술집으로 술이 많이 나갔으니까, 술을 채울 작물을 심을 생각이야.”

“그럼 그것도 영상을 찍어두죠!”

“벌써? 그건 찍어도 아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서······.”

“홍보영상만 미리 찍어두는 거죠 뭐. 그럼 나중에 급하게 찍을 필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이번에도 어떻게 하면 생활 스킬이 편하다, 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찍어요.”

“아, 정령술을 이용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이면 되겠다.”

미나가 아이디어를 내자, 나도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말했다.

미나도 동의했고, 나는 곧바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선은 옥스를 데려가서 쟁기로 밭을 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소를 이용해서 밭을 갈면 편합니다. 쟁기는 목공스킬을 이용해서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소가 없다면 괭이를 이용해서 밭을 갈 수 있고, 땅의 정령의 도움을 받아서 개간할 수 있습니다.”

브어어어엉!

정령을 소환하고 농사를 지었다.

태산이가 자신에 대해 언급하자, 영상을 찍는 미나에게 거북이 손을 흔들며 귀엽게 울었다.

“그런 후 비료를 밭에 뿌리면 좋은데, 비료를 뿌리면 작물의 등급을 높힐 수 있습니다. 고급 비료의 경우 조합 스킬로 만들 수 있는데, 가축의 똥이나 아니면 나무수액으로······.”

나는 비료를 만들어서 작물의 등급을 올릴 수 있고, 또한 작물의 성장속도를 촉진 시킬 수 있다는 귀중한 정보를 담는 걸 잊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중요할 정보였다.

“그런 다음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릴 땐 이렇게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서 쉽게 뿌릴 수도 있습니다.”

삐이이익!

바람이가 바람을 일으켜 씨앗을 뿌리는 모습도 영상에 담았다.

“씨를 뿌린 다음엔 물을 주어야 합니다. 고급 비료를 썼다면 4시간, 쓰지 않았다면 8시간 동안 1시간 마다 뿌려 주어야 하는데요. 이 분수기라는 정령술 도구를 이용하면 스프링클러처럼 편하게 자동으로 물을 뿌려줍니다. 정령술사 길드에 가면 살 수 있고, 물의 정령이나 아니면 정령석을 이용해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냐아아옹

물을 뿌리는 것에 대한 정보도 꼼꼼히 알려주었다.

물방울이 관심 있는 듯 없는 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물을 뿌리게 되면 잡초가 자라게 되는데, 제거 해주어야 작물의 등급이 오릅니다. 하지만 만약 목축을 병행하고 있다면, 가축들을 이용해 잡초만 뜯어먹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목축에 관해선 목축 편에 따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계속 농사에 대한 지식을 영상에 담았다.

밭농사를 전부 지은 모습을 영상에 담으면서, 다음은 과수에 대해서도 설명했고, 양봉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돌이켜 보면 게임이어도 농사에 대해 여러 가질 했던 것 같다.

참 재밌었지.

“수고했어요, 오빠!”

“미나도 영상 찍느라 수고했어.”

“헤헤, 이것도 편집해둘게요. 그나저나 오빠 화면빨 잘 받아서 여성팬이 늘어날까 무섭네요!”

“그렇게 금칠해줘도 뭐 안나와.”

“호호호.”

농삿일을 끝낸 후, 미나와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 받았다.

나는 땀을 닦으면서 사과주스를 마셨다.

시원해서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골렘이 나에게 다가왔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어? 또?”

“레이디 지혜입니다.”

“지혜구나.”

골렘이 알려주자마자, 지혜가 농장의 울타리를 지나 오는 것이 보였다.

나와 미나, 그리고 정령과 동물친구들은 그녀에게로 향했다.

“공진 오빠, 그리고 미나 언니 안녕하세요.”

“안녕 지혜야! 그런데 공진 오빠?”

“아······ 저도 오빠로 부르기로 했어요. 오빠도 저한테 편하게 말씀하라고 했고요.”

“흐응, 그래?”

먼저 지혜와 미나가 서로 인사를 나눴다.

“안녕, 지혜야. 오늘도 제과점 재밌게 잘 했니?”

“네, 지금은 줄리아양에게 맡겨놓고 왔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그······.”

나는 지혜에게 어제 일에 대해서 묻고 싶어졌다.

가정사에 참견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러워졌지만, 혹시 회장님이 나한테 화가 난 것은 아닌지 제대로 확인해두고 싶었다.

“고마워요, 공진 오빠.”

“응?”

“공진 오빠 덕에 아빠가 마음을 돌렸어요.”

“오, 그래?”

“파티시에, 해도 괜찮데요. 대신 경영에 대해서도 배운다는 조건으로요. 그 정도로도 만족해요.”

“힘들지 않겠어?”

“저 공부 잘해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가 엄마에 대해서 생각해주는 게 가장 기뻐요. 조만간 묘에 성묘하러 가자고 하셨어요.”

“아, 잘 됐다. 잘 됐어.”

나는 내 일처럼 기쁘게 느껴져서 박수치며 말했다.

미나도 잘됐다며 박수를 치며 웃었다.

지혜가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숙였다.

“저, 그런데······ 회사에서 아무 일도 없던가요?”

“응? 회사에서? 별 일 없었는데? 왜? 회장님이 뭐라셔?”

“아, 그게······ 공진 오빠에 대해 좀 묻긴 했어요······.”

“뭐라고?”

“그게······ 그러니까······.”

지혜는 뭔가 말하려는데 어려운 모양이다.

무슨 말을 했길래 그러는 거지?“

“저, 저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게 그렇다고 꼭 아닌 것은 아닌데요······.”

“뭘······ 아니라고 했는데?”

“그게 공진씨와 제가······.”

지혜는 새빨개진 얼굴로 뭔가 말하려 했다.

그때 미나가 끼어들 듯 말했다.

“저기 지혜야! 오늘은 홍보 영상을 찍었는데······.”

“아, 네. 미나 언니.”

미나는 지혜에게 어제 찍은 홍보 영상이 대박을 친 것과 조금 전까지 농사 홍보 영상을 찍은 것을 말했다.

어쩐지 화제가 돌려진 느낌이지만, 별 상관없나?

“그럼 미나 언니. 요리나 제과를 하는 것도 홍보 영상을 찍는 게 어떨까요?”

지혜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나는 그것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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