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9일차 로그아웃 >
“엥? 농장 아저씨가 영주?”
“정말이에요?”
“아, 그렇다면 다 설명되긴 하네. 영주니까 무기상점도 짓고 제과점도 지은 모양이네.”
나의 대답에 사람들이 대체로 수긍하면서 믿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내가 바라던 반응도 보였다.
“나도 한 번 배워봐야겠다.”
“저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망치질만 하면 되잖아?”
“대장도구랑 스킬은 대장간에 가면 배울 수 있다고 했지?”
“나도 저런 옵션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으면, 확실히 배울만하겠어.”
사람들이 대장기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스미스씨가 있는 대장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곳에 가면 도구를 사고, 스킬을 배울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반응이 괜찮은데요?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더 좋을 거예요.”
“그럴 것 같네.”
“제가 잘 찍었으니까, 편집해서 올릴게요. 아, 그리고 내일 블루스 노인이 오면, 그분의 인터뷰도 따서 추가하고요. 반향이 얼마나 클지 벌써부터 기대되요.”
“그럼 부탁해, 미나야.”
“맡겨주세요.”
미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자신감이 넘쳐 보여서 믿고 맡겨도 될 듯했다.
“해밀튼 어르신.”
“왜 그러나?”
“이건 무기상점에서 팔아주셨으면 합니다. 옵션이 제법 좋으니, 가격을 높게 불러도 될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경매를 하든, 가격을 높게 책정하든 내가 알아서 팔도록 하지.”
“부탁드립니다.”
나는 시범삼아 만들었던 롱소드를 해밀튼 노인에게 건넸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상점에 저거 팔려나 보다.”
“내가 바로 살 거임! 찜했음.”
“찜 같은 소리하고 있네, 찜은 식당가서 드시고, 저건 내거임.”
“아, 이런 또 경매하겠네.”
아직 대장기술을 배우러 가지 않은 사람들은 롱소드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 블루스 노인의 말대로 돈이나 아이템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대장기술에 입문하길 원했다.
해밀튼 노인은 무기상점으로 돌아갔고, 더 이상 공용대장간엔 그냥 새로 생긴 대장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들만 남았다.
“이제 슬슬 로그아웃이나 준비할까.”
“무슨 준비 하실 거예요?”
“마법사 길드에 가서 사과파이를 납품하고, 내일 심을 작물의 씨앗을 사려고요.”
“아, 피자 만들 때 같이 만들었던 사과파이 말이군요.”
지혜양과 피자를 만들 때, 나는 마법사 길드에 납품할 사과파이도 함께 만들어뒀다.
곧 나와 모두는 마법사 길드로 향했다.
“어서오세요오, 오? 오셨네요.”
언제나처럼 늘 의욕이 없는 마법사 아가씨가 늘어지는 대답을 하다가 나인 걸 확인하곤 제대로 인사했다.
“납품하러 오신건가요?”
“네, 여기 사과파이요.”
“음, 오늘도 맛있어 보이네요.”
교환창으로 사과파이를 넘기자, 방긋 웃으며 말하는 마법사 아가씨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 혹시 정령술사 길드에서 연금술도구를 사고 있습니까?”
“아뇨, 그런 매매 기록은 없는데요.”
음, 아직 만들지 않고 있나보군.“
“제가 선금을 줄테니, 100개 정도 연금술 도구를 그쪽으로 넘겨주세요. 그걸 자동 연금술도구로 만들어서 팔라는 말과 함께요.”
“뭔가 장사할 생각이신 모양이군요. 포션이라도 잔뜩 만들어서 파시게요?”
“아뇨, 그럼 마법사 길드와 경쟁하게 되는 거잖습니까. 제가 팔려는 건 도구 그 자체에요.”
“연금술 도구를요? 연금술을 배우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 있지 않나요?”
“네, 그건 홍보로 어떻게 해결해보려고요.”
“흐응, 큰 뜻이 있겠죠. 어쨌든 거래 수락입니다.”
마법사 아가씨와 매매 계약을 하고선 인사를 하고 마법사 길드를 나섰다.
“연금술로 홍보하려고요?”
“응,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고.”
“과연, 확실히 가짓수가 많으면 뭐든 배우는 사람들도 많겠죠.”
미나는 내 생각에 동의해주는 모양이다.
나는 그 후, 식료품점을 들러, 술을 빚는데 필요한 작물의 씨앗들을 샀다.
오늘 선술집을 운영하면서 술을 많이 팔아버려서 보충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농사를 짓는 것은 내일로 할 생각이다.
“난 이제 농장으로 가서 좀 쉬다가 로그아웃할 생각이야. 너희들은?”
“음, 마음 같아선 오빠랑 좀 더 놀고 싶지만, 저도 로그아웃 해야겠네요. 이런저런 영감도 떠오르니 지금 편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지혜양은?”
“······.”
미나는 지금 로그아웃 할 생각인 모양인데, 지혜양은 침묵했다.
그리고 어려워하면서 나직이 말했다.
“저······ 조금 더 함께 있으면 안 될까요?”
“어머. 오빠랑 더 있고 싶어?”
“······.”
어쩐지 얼굴을 붉히면서 그런 말을 했고, 미나는 확인하듯 물어보고 있었다.
지혜양은 얼굴이 빨갛게 된 채로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다.
“전 상관없는데, 가서 할 건 없어요. 그냥 출근해야할 때까지 쉬는 것뿐이에요.”
“그, 그럼 방해일까요. 저······ 거기 있는 게요.”
“으음, 그렇진 않은데. 원한다면 와도 상관없어요.”
지혜양은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섰다.
같이 가고 싶은 모양이다.
“후후후, 두 사람 꼭 남매 같아서 보기 좋네요. 아, 저는 그럼 이만 들어갈게요.”
“잘 가.”
미나는 손을 흔들며 로그아웃했다.
그녀가 사라지자 나와 지혜, 그리고 정령친구들이 남았는데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그럼 농장으로 갈까요?”
“저기······.”
“네?”
“말 놓으셔도 괜찮아요.”
“네?”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데······ 계속 존대하시고 계시니까요.”
“그야······.”
“제 아빠나 할아버지는 상관없어요.”
마지막 말은 어쩐지 결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으음, 확실히 상관 없긴 하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그럼 지혜야. 가서 새끼들이나 또 볼까?”
“네!”
내가 친근하게 말하자, 지혜양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웃으니 어쩐지 더 예쁜 모습이다.
역시 웃는 것이 최고의 화장이란 말은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곧 나와 지혜는 농장으로 돌아갔다.
멍멍멍!
왈왈왈!
월월월!
가장 먼저 우릴 반기는 것은 실버와 골드였고, 그들의 마중에 반갑게 뛰어다니는 것은 불돌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응, 골렘아. 별 일 없었지?”
“경계중 이상무입니다.”
마법공학 톱날검에 어윈의 방패를 들고 있어서 더욱 듬직한 골렘이 절도 있게 대답했다.
브어어엉
음머어어어어
태산이가 엉금엉금 기어가서 옥스를 바라보고 울음소리를 내면 옥스도 화답했다.
근처의 송아지가 태산이를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애정표현을 했다.
태산이는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숨기다가도 다시 ‘브어어엉’ 울며 내밀기도 했다.
삐약삐약
냐오오옹
물방울은 병아리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앞발을 내밀면, 병아리가 그 앞발에 다가가 작은 부리로 건든다.
그럼 물방울은 앞발을 쑥 빼는데, 병아리는 그걸 따라가서, 물방울은 하악질을 하면서 물러선다.
그리고 병아리가 흥미를 잃어서 다시 물러서면 물방울이 또 관심을 끌기 위해 앞발을 내민다.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삐이이익
바람이는 새끼양에게 다가가 있었다.
새끼양은 자신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바람이에게 큰 흥미를 보였다.
어린 새끼답게 호기심이 왕성해서 바람이가 날아다니며 앉는 곳을 따라다녔다.
“다들 귀여워요.”
“응. 새끼돼지도 귀엽네.”
“네, 그런데 새끼돼지는 젖을 먹기만 하네요.”
“돼지니까.”
새끼돼지는 여전히 누워 있는 어미 곁에서 젖만 물고 있었다.
나와 지혜는 한동안 어린 새끼들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목축도 홍보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목축은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서. 내 경우에는 골렘이 있어서 편했지만. 게다가 상품성이 있을지 모르겠네.”
지혜와 목축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각 가축의 장점을 어필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골렘이 끼어들어 말했다.
“가축의 장점들 말이야?”
“그렇습니다. 암탉은 알을 낳고, 수탉은 전투에 쓸만하며, 수소 역시 전투와 기승에 적합합니다. 뿐만 아니라 밭을 가는데 유용합니다. 암소는 우유를 만들 수 있고, 양들은 양털을 만듭니다. 돼지의 경우는 버섯과 약초를 더 손쉽게 찾게 해줍니다.”
“알고 있는데, 그 점들이 먹힐까?”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지. 미나가 오면 한 번 홍보영상을 만들어봐야겠다.”
나는 골렘의 말을 기억해두었다.
“흐음, 그건 그렇고, 이제 좀 쉬다가 로그아웃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곤 호숫가로 다가갔다.
지혜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고, 정령과 동물친구들도 따라왔다.
곧 모닥불 하나를 피웠다.
난 거기에 드러눕듯 앉고선 와인이 든 가죽물통을 꺼내, 한모금씩 했다.
“크으, 지혜도 주스 만들어줄까?”
“네.”
“자, 여기 사과주스.”
“고마워요.”
즉석에서 사과주스를 만들어주었다.
지혜는 실버와 골드, 불돌이를 곁에 두고 모닥불 근처에 앉았다.
아이들은 나만큼이나 그녀를 잘 따르는 모양이다.
나는 오른손에는 태산이를, 왼 손에는 물방울을 두고 둘의 등을 긁어주면서 술을 마셨다.
호수가 아름다워서 눈이 심심하진 않았다.
“저, 고마워요.”
“응?”
“제 아빠에게······ 그런 말 해주신거요.”
“아, 뭐 감사받을 일은 아닌데. 오히려 난 걱정이야. 회장님에게 지혜가 혼날까봐.”
“아닐 거예요. 아마도요.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지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저 직감으로만 말하는 걸까? 아니면 아빠를 신뢰하는 걸까?
물론 회장님이 지혜에게 파티시에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식의 진로에 대해서 부모와 자식간의 견해는 항상 부딪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대화는 하길 바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자식간에 그 일로 골이 생기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만약에 파티시에 되는 걸 허락받지 못하더라도 회장님을 미워하진 마. 회장님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고, 중요한 것은 지혜가 회장님과 대화하는 거니까.”
“그럴 거예요. 저도 아빠가 절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파티시에가 곡 되지 않아도 좋으니까, 어머니를······ 조금은 기억해줬으면 하는 걸요.”
“······.”
지혜도 회장님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제대로 된 가족애인 것 같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알아봐주고, 이해해주는 것 말이다.
“어쨌든 공진 오빠 덕분에 아빠랑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내가 뭘. 그나저나 이제 가야하지 않아?”
“아, 네······ 그러네요. 그럼 내일 또 뵈요!”
“응, 잘가.”
지혜는 로그아웃을 했다.
그녀가 흐릿하게 사라지자,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얘들아, 나도 갈게.”
멍멍멍!
왈왈왈!
월월월!
브어어어엉
음머어어어
꼬꼬꼭
삐이이익
동물과 정령 친구들은 내가 그런 말을 하자, 떠나지 말라는 듯이 내게 다가와 모두 애정표현을 했다.
나는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녀석들, 역시 너희들뿐이다. 일하고 돌아올 테니까, 골렘 말 듣고 얌전히 잘 있어! 그럼 안녕!
브어어엉!
대표로 태산이가 손을 흔들며 우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나는 로그아웃을 했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