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7일차 선술집 오픈 >
“그럼 이제 나라를 골라야하겠군요?”
“네, 조만간 메이거스, 밀레스, 밀리아리움이 각각 대사를 보낼 겁니다.”
“뭐, 그럼 대사관이라도 지어야 합니까?”
“네, 그런 건물도 있습니다. 외교관계가 나아지고 여러 효과를 불러올 순 있는데······ 솔직히 말해 필수는 아닙니다.”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나와 시화가 대화를 나눴다.
스탠드바에는 시화 뿐만 아니라, 미나, 지혜, 그리고 블루스 노인이 있었다.
“헐헐, 그럼 정식 영주인 자네는 영지로 뭐든 할 수 있겠구먼?”
“뭐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넨 뭘 하고 싶나?”
“일단 레거시 퀘스트를 할 생각입니다.”
“레거시 퀘스트?”
아, 블루스 노인에게는 처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받은 레거시 퀘스트에 대한 정보와 계획을 말했다.
“허허허, 뭔가 사연이 있는 퀘스트 같구먼.”
“예, 일단 클리어 해보면 진상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활 스킬을 배우도록 해볼 생각인데, 일단 떠오른 건 공용대장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네, 생활 스킬을 하는데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흠, 내 생각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네.”
블루스 노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자네, 영업계지?”
“네.”
“영업에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뭐라고 생각하나? 손님들을 끌어 모으려면 말일세.”
“마케팅입니다.”
“알고 있군! 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고민 중 입니다. 현실에서야 이곳저곳에 광고를 하면 그만이지만······.”
“여기선 신문 같은 것은 없으니. 고작해야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이나 올리는 거겠지만, 그거론 안 될 걸세.”
음.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딱히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데······.
“오빠, 그럼 영상홍보는 어때요?”
“영상홍보? CF를 찍자고?”
“에이 CF가 아니라요. 넷튜브 영상 말이에요.”
“아, 그거.”
“생활 스킬을 이용해서 직접 뭔가 만드는 영상을 올리면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잖아요. 흠, 오빠 정도면 얼굴도 나쁘지 않아서 인기도 꽤 있을 거예요.”
“그게 그렇게 효과가 있을까? 그리고 그거 하려면 편집자도 필요하잖아.”
“소소한 영상일 거니까 편집도 그리 필요하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촬영이랑 편집은 제가 해도 되요. 대학 다니면서 그런 것도 교양으로 배웠거든요.”
“오, 그래?”
나는 조금 솔깃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방법들 중에는 가장 좋은 방법 같았기 때문이다.
블루스 노인도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방법 같구먼. 하지만 말이야, 사람들이 더 끌리는 건 뭐인지 아는가?”
“무엇입니까, 어르신?”
“뻔하지 않나, 바로 돈일세. 생활 스킬의 장점을 어필하려면 돈이 된다는 점을 어필하게나.”
블루스 노인은 비록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지만, 경제인다운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곤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 점에선 내가 좀 도와줄수도 있네. 나를 선전에 써먹어도 좋아.”
“제가 감히 어르신을 어떻게······.”
“어허, 점잖 빼는 소리는 하지 말고. 써먹는다고 해봐야 이 노인네도 영상에 나와서 몇 마디 하는 것뿐일세. 자, 이렇게 잘 만든 아이템은 누가 만들든 상관없이 사준다! 그렇게만 말하면 줄을 서서라도 아이템을 만들려고 하지 않겠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럴지도가 아니야. 액션을 취할 땐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블루스 노인은 상사처럼 훈계했다.
엄밀히 말해서 상사가 아닌 것은 아니지.
우리나라 기업은 딱히 오너와 경영인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 경영에서 물러났다해도 지분은 가지고 계실 테니까.
“저······ 공진씨.”
“네, 지혜양?”
“그럼 비슷하게 제과나 요리도 홍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꼭 대장기술에만 국한할 이유는 없다.
지혜양의 의견도 충분히 일리는 있었다.
그러자 시화가 맞장구치듯 말했다.
“베타테스트 때 실패한 점을 보완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조리도구를 구입하는 법을 알리고, 화덕 같은 것은 만들어준 뒤에 조리 스킬이 높아지면 이런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면 되겠죠. 베타테스트 땐 그런 인프라도 부족했고, 정보도 부족해서 효율이 좋지 않다고 여겼거든요.”
“그런 단점들을 보완한 걸 보여주고 버프효과를 보여주면 되겠네요.”
미나가 시화의 말에 수긍하며 말했다.
나는 그런 의견들을 듣다가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내친 김에······ 농사도 한 번 해볼까요?”
“농사? 이 농장처럼 말인가?”
“네, 어르신. 만약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자신들의 농장을 가꿀 수 있게 된다면······ 농사처럼 다소 힘이 드는 것도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농사는 직접적으로 돈도 되고 요리의 재료도 됩니다만.”
“돈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그게······.”
나는 블루스 노인에게 각종 과일들을 트로페 마을에 판매하여 얻는 수익을 말했다.
“호오, 그 정도면 영세하지만 나쁘지 않군.”
“······.”
몇 백만 골드씩 버는 것을 영세하다고 말씀하시는 블루스 노인이었다.
하지만 뭐, 영세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템 하나에 1억도 쏴버리는 그에겐 극히 영세한 소득일 테니 말이다.
“충분히 사람들을 낚을 만하네. 한 번 해보는 게 좋을 듯싶네.”
“네, 하지만 농사는 여러모로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주변 땅을 풀어야 할 것 같은데, 구획을 잘 나눠야 할 겁니다. 하지만 저에겐 측량 지식이 없어서 쉬운 일이 아닐 것 같군요.”
“그건 내 사람 좀 쓰면 되니 걱정 말게.”
“어, 어르신께 도움만 받는 것은 좀······.”
“헐헐헐, 내가 재밌어서 하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게나.”
블루스 노인은 별 거 아니란 듯이 손사레를 치면서 말했다.
그 뒤로는 다소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물론 지혜양은 술이 아니라 주스지만 말이다.
“그래서 자네, 히든 피스를 찾아서 돈을 꽤 벌었다고?”
“네. 그럭저럭 벌었습니다.”
“그럼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투자하면 돈을 더 벌었을 텐데······ 왜 회사를 관두지 않나?”
“4년을 바친 제 커리어를 그냥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게임만 해선 게임이 일이 되지 더 이상 게임이 아니지 않습니까? 농사를 짓는 재미도 분명 없어질 겁니다. 아, 시화씨를 흉보는 건 아닙니다.”
블루스 노인의 물음에 답하다가 은근히 전업 게이머인 시화를 뭐라하는 것 같아서 말했다.
시화는 별 신경 쓰지 않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스카치 위스키를 마실 뿐이었다.
블루스 노인은 흥미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애사심이란 건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단지······ 괜히 버리지 않아도 되는 걸 버리는 기분이라, 그러지 않았습니다.”
“돈을 더 벌 수 있어도 말인가?”
“돈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니까요. 가끔은 돈으로도 못 사는 것은 있지 않습니까?”
“후하하, 내가 그 말에 동의할 것 같나? 돈으로 정말 못 사는 것이 있을 것 같나?”
“예, 있습니다. 제가 당장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아도 회장님이나 어르신의 회사 지분은 절대 못 사겠죠. 억만금을 드려도 못 살 겁니다. 그것엔 돈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허허! 이거 생각보다 똘똘한 친구군!”
블루스 노인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곤 곧 다시 말했다.
“맞네. 내가 평생 돈만지고 산 사람이지만, 돈으로도 못 사는 건 있어. 다들 착각하지, 나 정도 위치되면 돈으로 못 사는 건 없을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룹을 굴리면서, 그리고 또 그룹을 물려주면서 느낀 건데 말이야, 삶의 재미는 돈에 구애받는 건 아니었어. 매일 같이 결제지옥을 하면서 살다가, 이렇게 한적하게 게임이나 하면서 사는 삶. 어느 쪽이 더 재밌는 지는 두 말할 필요 없겠지? 그런 면에서 자넨 좀 특이하군.”
“제가 특이합니까?”
“그래. 자네도 사원으로써 퇴근이 매일 늦고, 주말에도 평일 출근하지 않나? 지겹고 싫을 만한데, 자넨 그래도 그 삶을 버리지 않겠다고?”
“네, 저에겐 그것도 가치 있는 삶입니다.”
“그건 꽤 좋은 자세야. 사원으로 썩히기 아까울 정도인 걸? 자네 그룹 연수원은 가봤나?”
“어르신, 저는 그렇게 엘리트는 아닙니다. 근처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룹 연수원은 해외 유학파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룹의 인재들이 또 한 번 사내 연수를 받는 곳이다.
엄청나게 힘든 곳으로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자네를 그곳에 보내준다, 그러면 어떡하겠나? 받아들일 텐가?”
“······.”
블루스 노인의 물음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곳에 간다면 버틸 수 있을까? 그곳에 가고 싶은 걸까? 가면 재미있을까? 그곳에서 뭔가 배우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뀔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 것이다.
“후후흐흐흐······ 망설이는군. 그것도 특이해. 다른 친구들 같았으면 어느 대답을 하든 망설이지 않았을 거야. 힘들 게 뻔하니, 현실에 안주하려 하거나, 아니면 공명심에 눈이 멀어서 덜컥 가고 싶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자넨 생각부터 하는군.”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맞네. 그래, 신중히 생각해본 결과는 어떤가?”
“흥미는 생기지만, 저는 지금의 회사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지금처럼 밤을 즐기는 여유도 없을 것 같군요.”
“거절하는 건가? 내 제안은 농담이 아니었네. 그걸 발판삼아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도 있어.”
블루스 노인의 눈빛은 진지했다.
내가 마음에 들어서든, 아니면 그저 돈 많은 사람의 장난거리든, 그 제안은 농담이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내 대답도 농담은 아니었다.
“어르신, 저는 어차피 미생입니다. 그렇게 역할이 이미 정해졌죠. 버려진 돌이라도 그곳에서의 역할은 있습니다. 지금 와서 제 사내동료들과 헤어지는 것도 싫고, 제 삶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도 싫습니다. 미생이 집을 버리고 떠나봐야 완생이 될 리는 없습니다.”
“소시민적이군. 그건 좋지 않아. 야망을 가지게. 자네라면 패기는 충분해. 내 아들에게 감히 충고도 할 수 있지 않나? 하하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블루스 노인과 그런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어쩐지 지혜양의 시선을 느꼈다.
이유는 몰라도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돌아봤는데, 눈을 마주치자 시선을 홱 돌려버렸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나는 괜히 멋쩍어졌다.
“자네 말이야, 그럼 유학은 어떤가? 그나마 연수원보단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경영을 배울 수 있을 걸세.”
“유학은 꼭 가보고 싶었던 겁니다만, 어르신께서 절 유학 보내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흠, 이유는 생길수도 있지 않나, 자네와 지혜가······.”
“하, 할아버지! 많이 취하신 것 같아요!”
“응? 나 안 취했다. 애초에 게임상의 술로는 취하지 않는데······.”
“취하셨어요!”
“알았다, 알았어! 나 취했다. 우헤헤!”
“······?”
블루스 노인과 대화 중에 지혜양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대화의 맥이 끊겨서 블루스 노인이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별 거 아닌 수다는 선술집을 닫을 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