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50화 (150/239)

< 131화 하펜 마을 전투 >

“공진 오빠, 그럼 이제 뭐하실 거예요?”

“뭐, 어디서 구경이라도 해야겠지.”

<군신>길드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미나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심드렁히 대답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유저들도 싸움 구경을 할 마음이 다분한지, 토끼밭으로 나가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어디서 보실 건데요?”

“저기 언덕이 있네. 마을 밖에 나갈 거 없이, 저기서 볼 거야.”

“에헤헤, 저랑 같이 봐요.”

미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착 달라붙었다.

팔짱은 뭐하러 끼나, 이 젊은 처자가!

나는 미나의 스킨십에 깜짝 놀랐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고 걸어갔다.

이제 시들어가는 20대의 말엽이지만 나도 남자라서 싫지는 않다고······.

“저, 저기요······ 저도 같이······.”

“아, 지혜야! 너도 같이 보자!”

지혜양이 뒤에서 조심스레 말하면 미나가 활기차게 말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양의 손을 잡고 그녀의 팔짱도 꼈다.

“자, 가요!”

씩씩하게 말하는 미나에게 끌려가듯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언덕에 올라오니, 두 세력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판타지 영화의 전쟁씬 같은 모습이다.

“영화 보는 기분이네요! 팝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동물과 정령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앉아 있는 중에 미나가 말했다.

팝콘이라······ 팝콘을 튀기는 건 지금으로선 무리긴 하지만, 비슷한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옥수수가 있긴 한데. 군옥수수라도 만들어 먹을까?”

“아, 저 군옥수수 좋아해요! 지혜도 먹을 거지?”

“네······.”

전투를 보면서 먹을 주전부리로는 군옥수수가 결정되었다.

나는 즉석에서 장작불을 만들고 일전에 군옥수수를 만들어 먹은 것처럼, 옥수수를 굽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빠. 만약에 우리 길드가 지면 어떡할 거예요?”

“어떡하긴, 영지 뺏기는거지.”

“농장도 뺏기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에이, 저항해서 싸운다던가, 그런 건 없어요?”

“내가 전설의 조각사도 아니고, 싸움에 도가 튼 사람들이 지면 무슨 수로 저항해.”

군옥수수를 구우면서 미나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눴다.

지혜양은 여러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는데, 특히 옥스와 태산이를 귀여워하는 듯했다.

음머어어어어

브어어어어엉

옥스와 태산이도 지혜양의 손길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곧 치즈 바른 군옥수수 3개를 만들어 미나와 지혜양에게 나눠주었다.

미나와 지혜양 모두 군옥수수를 호호 불어가며 붙잡곤 먹기 시작했다.

하는 김에 콜라도 만들어 주어서 영화관에서 팝콘 먹는 기분이다.

아직 전투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곧 시작할 것 같네요.”

미나의 말대로 대치상황이 거의 끝난 듯,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두 세력이었다.

걸어가다가 어느덧 달려가기 시작했는데, <군신>길드의 선두에는 익숙한 사람들이 많았다.

블루스 노인, 시화, 수호자를 든 사람, 대적자를 든 사람, 그리고 도살자를 든 사람도 보였다.

곧 멀리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렸는데, 블루스 노인의 목소리였다.

“엑스칼리버!”

······의미 모를 외침과 함께 황금빛 광선이 뻗어나갔다.

들고 있는 무기를 보면 분명 내가 만든 세이버인 ‘약속된 승리’였다.

아, 어르신도 그거 보셨구나.

하긴 2050년대인 지금에서 그건 고전외국문학 수준이니 말이다.

어쨌든 내가 만든 무기인데 성능이 끝내주는 걸?

24시간에 한 번 밖에 못 쓴다는 점만 감안하면 말이다.

“와, 시작부터 화려한데요. 지혜야, 네 할아버지 멋지시다.”

“하, 할아버지······.”

미나는 블루스 노인의 화려한 선제공격에 감탄하는 듯했지만, 지혜양은 어쩐지 부끄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곧 이어서 양측에 화살과 마법들이 난무했는데, 엄청 장관이었다.

판타지 영화 보러 따로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 이후로는 눈여겨 보았던 사람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나에게 집결하라!”

두석린갑을 입고 수호자를 든 길드원이 수호자를 들어올리며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 수호자의 옵션은 아군의 수에 따라 방어력이 증가하고 동시에 증가한 방어력 비율만큼 아군의 체력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모양이다.

마치 조선시대 군인처럼 견고한 방진을 짜서 싸우는 모습이 사극의 장군 같은 모습이다.

“와, 저 커다란 검 든 사람, 엄청 잘 싸우는데요.”

미나가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사람은 츠바이헨더 ‘도살자’를 든 사람이었다.

그는 골렘이 보여준 검술만큼이나 뛰어난 몸놀림으로 츠바이헨더를 휘둘렀다.

그의 칼춤에 적들은 난도질당했고, 상처를 입자 도살자의 특수효과인 ‘처형인’에 의해 더 큰 피해를 입는 모양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전장의 도살자였다.

“우왓! 저 사람은 방금 사람을 반으로 갈랐어요. 모자이크 효과가 없었으면 꽤나 잔인했겠어요.”

할버드 ‘대적자’를 든 사람도 활약을 했다.

그는 방금 미나가 말한 것처럼 유저 한 명을 반으로 갈라 죽였는데, 그냥 유저도 아니고 온갖 갑옷을 껴입은 전형적인 탱커였다.

그를 ‘뚜껑 따기’ 스킬로 내리찍었고, 머리를 정확히 가격한 것이다.

80퍼센트의 대미지에 100% 치명타가 발동되서 상대는 버틸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데 미나야, 다들 아는 사람 아니었어?”

“네? 아, 별로요.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죠.”

자주 선술집에 같이 오길래, 아는 사이인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여하튼 그들 외에도 <군신>길드원들은 정말 잘 싸웠다.

물론 적도 굉장히 잘 싸우고 있었다.

<군신>길드원들이 그런 활약을 하는데도, 남은 이들은 더욱 힘을 내면서 분전하는 것이다.

프로의 전투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블루스 노인은 저런 프로들 사이에서도 비등하게 싸운단 말이지.

아무리 템이 좋아도 쉽지 않을텐데, 엄청난 노익장이다.

“시화님이랑 헥토르가 맞붙기 시작했어요!”

“헥토르? 상대 길드의 수장 말이야?”

“네, 바리사다의 헥토르예요. 참고로 흑태자 시화님이 들고 있는 검은 아론다이트죠.”

“흠······.”

멀리서 보는데도 시화와 헥토르의 대결은 엄청났다.

시화의 검붉은 검은 불을 연상케 했고, 헥토르의 푸른 검은 얼음을 떠올리게 했다.

두 검이 서로 맞부딪힐 때마다 불길과 냉기가 교차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이 라이벌임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앗! 시화님이 필살기를 쓰려나 보네요.”

“필살기?”

“네, 흑태자의 검 아론다이트는 ‘아수라’라는 필살기를 쓸 수 있어요. 앗! 헥토르도 맞대응 하려고 하네요.”

“헥토르도 필살기가 있어?”

“네, 바리사다의 필살기는 ‘프로즌 판타즘’이예요.”

어쩐지 이름만 들어도 속성이 상반되는 것 같았다.

시화의 검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헥토르의 검에서 얼음이 마구 생겼다.

둘의 필살기는 서로의 적을 공격했다.

개인을 향한 필살기가 아니라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광역 필살기였던 모양이다.

지금껏 노련하게 버텼던 적군과 아군들이 서로의 공격에 죽어나갔다.

그 후 시화와 헥토르는 잠시 거리를 벌렸고, 전투가 소강 상태에 빠져드는 추세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길드가 이길 것 같네요. 다들 물약을 마시고 있어요.”

“아······.”

필살기를 교환하고 살아남은 양측의 전력은 비등했는데, 사소한 차이는 내가 시화에게 건네준 물약이 만들어냈다.

시화를 비롯한 길드원들, 그리고 블루스 노인이 물약을 마셔서 체력과 마나를 보충했다.

하지만 상대 길드원들은 물약을 다 써버렸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 물약, 오빠가 만든 거죠?”

“응.”

“저도 몇 번 써봐서 성능이 좋은 거 알아요. 추가 체력 회복이 어마어마하죠.”

“그런가? 나는 써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여하튼 이제 이긴거나 다름 없어요.”

미나의 말대로 이제 싸움은 <군신> 길드에게로 기울어져 있었다.

상대 길드는 최후의 저항을 해보았지만, 곧 헥토르가 시화의 검에 의해 쓰러지고 하나 둘 최후를 맞이했다.

“축하해요, 오빠. 영지는 안전하네요!”

“뭐,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뭘.”

“에이, 한 게 없긴요. 피자로 도핑도 해주고, 물약도 제공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요.”

미나가 방긋 웃으며 치켜세워줬다.

자기 일처럼 좋아해주니, 어쩐지 기분은 좋아졌다.

“저, 저기······ 축하드려요.”

“아, 고마워요. 지혜양.”

지혜양도 나한테 축하해주었다.

음, 그런데 이제 뭘하지?

“다들 이겼으니 축하라도 해야겠죠, 선술집을 여는 게 어때요?”

“아, 그래. 선술집을 열면 좋겠다. 음, 뭐 축하할 정도로 술은 남아 있을 거야.”

아직 농사를 짓고 재료를 보충하진 못 했지만, 술만으로 축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제 제과점이 있으니 손님도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참, 지혜양, 오늘 제과점은 어떻게 했어요?”

“빵을 많이 만들어뒀어요. 저도······ 같이 선술집에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지혜양 마음대로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제과점을 한다고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허락을 구하는 듯이 말하는 그녀에게 조언하듯 말해주었다.

일단 자리를 털고 마을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는 시화와 블루스 노인, 그리고 길드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공진씨, 약속대로 이겼습니다.”

시화도 드물게 흥분한 상태로 말했다.

“네, 잘 싸우시더군요.”

“공진씨의 음식과 물약의 효과가 탁월했습니다. 공진씨 덕에 이긴거나 다름 없습니다.”

“아, 그렇게 금칠해도 뭐 안 나옵니다. 아, 지금 선술집을 열러 가는데 같이 가시죠. 군신 길드원 분들에겐 50% DC하겠습니다.”

“최고군요.”

시화는 시원시원히 웃으며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길드원들에게도 말했다.

길드원들은 아주 기뻐하며 환호했다.

“헐헐헐, 이겨버렸구먼.”

“수고하셨습니다, 블루스 어르신.”

“잘 보고 있었나, 자네? 이몸이 첫 공격을 했다네. 그것도 자네의 아이템으로.”

“네, 봤습니다. 음, 멋졌습니다.”

“후후후, 지혜야 너도 봤지? 이 할애비가 젊은이들 상대로 신나게 썰어먹는 거.”

“네······ 할아버지.”

지혜양은 블루스 노인의 말에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눈치다.

그럼에도 블루스 노인은 껄껄 웃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선술집을 연다고? 이 노인을 빼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어르신도 DC 해드릴까요?”

“물론이지. 나도 깎아 먹는 거 좋아한다네. 지하철 타면 노인 우대권은 항상 뽑아 타지!”

음, 재벌이신 분이 지하철도 타시는 건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사양하시지 않으신 거다.

그렇게 나는 선술집을 열러 농장으로 향했다.

곧 선술집엔 술잔을 가득 채운 전사들의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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