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46화 (146/239)

< 127화 8일차 로그아웃 >

그나저나 슬슬 로그아웃할 때였다.

농장으로 돌아가 개인적인 마무리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그런데 그 전에 제과점을 들러 볼까?

지혜양도 먼저 로그아웃 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과점 쪽으로 향했다.

아침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사람들은 한산했다.

현실의 제과점은 이때에 아침 장사를 할 때지만, 게임에선 전문 게이머들 정도나 찾겠지.

“어서오세요!”

“어서오세······ 앗, 공진씨.”

제과점에 들어서자 점원 줄리아와 지혜양이 인사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때요, 오늘은 할 만했어요?”

지혜양에게 다가가며 물어보자, 그녀는 다소곳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제가 구운 빵을 막 사가는 거 있죠? 다들 좋아해서 더 열심히 만들었어요.”

“음, 힘들진 않았나요?”

“전혀요. 줄리아 양이 잘 도와줘서 저는 빵만 구웠어요.”

마지막엔 아예 방긋 웃으며 말하는 지혜양이었다.

나는 힘들어한다고 하면 그만두게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인 듯했다.

블루스 노인처럼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듯한 사람의 손녀라면 부자인 게 확실한데, 이런 노동을 즐겁게 하는 것이 좀 묘한 일이다.

흠, 그녀에게 블루스 노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좋을까나?

“저기 지혜양 오늘 말이죠. 블루스라는 분을 만났습니다만.”

“아, 제 할아버지를 만나셨군요. 제과점에도 오셨었어요.”

“네,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때요?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설득해주실 것 같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사실 할아버지도 아버지를 설득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아버지께서 정말 반대하시나 보군요.”

“네. 파티시에를 노동자나 연예인 정도로 생각하시거든요.”

“아하. 대충 이해가 갑니다.”

속된 말로 블루칼라나 딴따라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하긴 고위직 임원이면 상당히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고, 자식은 경영인, 법조인, 의사 같은 사회지도층인 직업을 가지길 바랄 것이다.

나 같은 소시민이자 미생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를 테니까.

“저기······.”

“네.”

조심스럽게 지혜양이 나에게 말했다.

“아빠가 허락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계속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거죠?”

“그건······ 네, 뭐 그러기로 했으니까요. 약속을 물릴 순 없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파티시에가 되지 못하셔도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 일 해보니까 무척 재미있기도 하고······ 실력은 계속 키우고 싶으니까요. 게다가 현실에서 못한다면 여기서라도 하고 싶어요.”

“그렇군요. 흠, 우선 오늘 일당을 드리죠.”

나는 그렇게 말하곤 땅관리 스킬을 써서, 제과점의 수익 현황을 확인했다.

[하펜 마을 - 제과점

상태 : 호황, 문제없음

수익 : 428만 골드]

“많이 팔았군요. 428만 골드라, 거의 선술집 수익이랑 비슷해요. 그럼 약속대로 반으로 나누죠. 여기 214만 골드요.”

나는 곧바로 지혜양에게 거래를 걸었다.

그러자 그녀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저, 정말로 안 받아도 괜찮은데요. 저는······.”

“부자라도 받을 돈은 받아야해요, 지혜양.”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혜양이 전문경영인 대신 파티시에가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일을 하면 돈을 받아야한다. 그건 사회적인 룰이고 지혜양이 부자이건 말건 상관없는 일이에요. 만약 제가 지혜양을 공짜로 부리면 전 임금체불이나 하는 나쁜 놈이 되는 겁니다. 정말 그렇게 만들고 싶으세요?”

“아, 아뇨······.”

“훗날 파티시에가 된다면 지혜양의 개인소유의 식당이나 제과점의 경영인이 되는 셈입니다. 그때 오늘의 기억을 꼭 잊지 마시고, 직원들이나 보조 셰프들을 잘 챙겨주세요.”

“네.”

훈계가 되어버린 내 말에 지혜양은 조금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흠, 주제에도 없는 어른 흉내를 내버렸군.

“그건 그렇고, 오늘은 이쯤 해두고 등교해야 하지 않나요?”

“네, 아쉽지만 그러네요.”

“학교 마친 뒤에도 내킬 때에나 여세요. 안 열어도 뭐라 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저도 이만 가볼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곤 제과점을 나서려했다.

정령과 동물 친구들도 나를 따라오면서 지혜양에게 인사를 하는 듯했다.

“저······ 정말로 고마워요.”

뒤에선 지혜양의 말이 들렸지만, 나는 돌아보진 않고 손을 흔들어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 다음엔 곧장 농장으로 향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아 골렘아. 안녕.”

농장에는 로렌의 창을 들고 경비를 서는 골렘이 있었다.

나는 좀 쉬다가 로그아웃을 한 생각인데, 그런 골렘을 보니 그에게 내일에 관해서 주의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렘아. 내일 말이야. 우리 영지가 정식영지가 될 계획이야.”

“확인했습니다. 정확히 22시간 43분 남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농장을 침입하거나 농장에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이 생길지도 몰라.”

“실버와 함께 농장을 철통같이 지키겠습니다.”

“응, 그런데 무리할 건 없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도망쳤으면 해. 농장이야 뭐 다시 지으면 그만이니까.”

나는 농장에 욕심은 없었다.

적대길드에 의해 부서져도 다시 지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골렘이나 실버가 죽는 것은 싫었다.

그들은 죽어도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님, 무기를 이용한다면 제 전투효율은 상당한 편입니다. 주인이 가지신 마법공학 톱날검과 방패를 빌려주시면 농장의 방어는 무리가 없을 거라 계산됩니다.”

“그래? 그럼 그거 줄게.”

나는 골렘의 의견을 수용해 마법공학 톱날검과 어윈의 방패를 주었다.

그 두 개로 무장한 골렘은 정말 위협적으로 보였다.

골렘의 말이 허튼소리가 아닐 것 같다.

“저에게 특별히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흠······ 내일 전투가 있다면 군신 길드의 사람들에게 물약을 나눠주고 싶은데, 만들 시간이 없네. 골렘도 스킬이 필요하니까 만들 순 없지?”

“만들 수 있습니다.”

“어? 만들 수 있어?”

“자동 연금술도구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제조 과정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비록 등급은 낮게 나오겠지만, 주인님이 없는 동안 물약을 만들어 둘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인님이 부재하실 64시간 동안 2개의 자동연금술 도구로 만들 수 있는 물약의 용량은 64병, 체력 회복의 물약과 마나 회복의 물약을 하나씩 만든다면 붉은 석양초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아, 그것도 문제네. 지금 주으러 갈 시간이 없네.”

“하지만 그 일은 스킬이 필요 없기 때문에 돼지들을 허브돼지로 만들어주시면 제가 붉은 석양초를 모아놓을 수 있습니다.”

“그럼 부탁 좀 해도 될까?”

“물론입니다. 목표한 64병의 물약을 반드시 만들어 놓겠습니다.”

골렘은 기계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으나, 듬직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일을 맡겨 놓으면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골렘의 요청대로 돼지들에게 다가가 등을 쓰다듬으며 ‘허브돼지’ 상태로 바꾸어주었다.

꿀꿀꿀

돼지들이 기분 좋은지 꿀꿀 거렸다.

곧바로 골렘은 그 아이들을 호위하면서 약초를 모으기 위해 떠났다.

그 동안 농장은 실버가 지키는 것이다.

“얘들아 이제 나는 출근해야할 때야.”

멍멍멍!

왈왈왈!

월월월

냐아아옹

삐이익

브어어엉

아쉬운 소리를 했기 때문일까? 다들 울음소리가 아쉬운 듯했다.

나는 차례로 모두를 쓰다듬어 주면서 생각했다.

딱히 이 생활에 욕심을 내거나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뺏기고 싶지 않았다.

내일,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볼 생각이다.

싸움은 내 특기가 아니니 불가능하지만 그 외의 것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 모두들 내일 보자!”

나는 아쉬움과 각오를 뒤로하고 로그아웃했다.

* * *

이지혜는 가상현실 캡슐에서 나왔다.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의 방이라고 생각하기엔 상당히 화려한 방.

모든 가구들이 고급 브랜드이고, 옷장은 어지간한 중산층 집의 방만큼 컸다.

다른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방에서 살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화려할 뿐인 새장에 가까웠다.

“아가씨, 아침 식사 시간입니다.”

“네, 곧 갈게요.”

집의 사용인이 문 너머에서 조심스럽게 말했고, 그녀는 예의 바르게 말했다.

곧 방을 나서서 화장실에서 간단한 세면을 한 후, 넓은 거실로 향한다.

그곳에는 마찬가지로 고용된 셰프가 만들었을 맛있는 음식 냄새가 퍼져 있다.

거실 역시 하나하나가 억대를 호가하는 가구와 미술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한민국에선 두 글자로 부른다.

‘재벌’

물론 단순한 부자들도 흉내는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뱁새가 황새 따라하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짓일 뿐이고, 재계순위에 드는 재벌들이나 이런 생활을 할만하다.

“일어났니?”

“네, 아빠.”

식탁에서 신문을 보면서 앉아 있는 이는 그런 재벌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S그룹의 현직 회장.

이용재였다.

그가 바로 이지혜의 아버지였다.

“오빠는 이미 나갔나요?”

“그래, 출근했다. 너도 등교 준비해야지?”

“네.”

상냥하게 말하는 아버지.

하지만 이지혜는 기운없이 대답했다.

현실은 답답하다, 아버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요즘 공부는 어떠냐? 여전히 1등이라고 들었지만, 게을리 하진 않겠지? 가상현실인가 뭔가 하면서 말이야.”

“아니에요.”

“공부 열심히 해야, 너도 오빠처럼 뭐라도 경영하면서 살 수 있다. 열심히 하거라.”

“······.”

지혜는 전문경영인이 되고 싶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순 없었다.

여기서 유명 외국 요리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크게 경을 칠 것이 분명했기에, 지혜는 아무 말 없이 아침을 먹었다.

부녀간의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겨우 아침에야 대화를 나누는데, 두 사람 간에는 대화가 없다.

어릴 적, 그녀의 어머니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 후부터 쭉 이어진 것이다.

지혜에겐 마음이 상처였지만, 그때부터 일에 미쳐 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무신경할 따름이다.

어쩐지 오늘도 마음이 울적해지는 지혜는 얼른 식사를 마치고 등교를 준비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렴. 음?”

교복을 입고 나가려던 차에, 아침부터 전화를 받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지혜는 무심하게 나가려고 했던 때에 낯익은 이름이 뒤에서 들렸다.

“네, 아버지. 네? 사원 중에 사공진이라고요? 처음 듣는데, 중요한 사람입니까? 아 네, 일단 찾아보겠습니다.”

지혜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혹시 일을 들키는 걸까? 라는 생각에 일단 자리를 피하기로 하고, 자신의 운전기사를 닦달해 등교했다.

그 날, 그녀는 친절한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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