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경매 결과 >
“3,500!”
이번엔 상대도 호락호락하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발악에 불과했다.
“4,000.”
“4,50······.”
“6,000.”
“······.”
블루스 노인은 5,000이라고 부르기도 귀찮은지 6,000을 불러버렸다.
나도 시화도 사람들도 블루스 노인과 경합하던 상대들도 모두 침묵하고 말았다.
세이버까지 합하면 벌써 9,000만 골드를 썼고, 어제에 비교하면 약 9배의 골드를 지른 것이다.
“미, 미쳤어. 무슨 집판검 경매장이야?”
“리얼 아이템 두 개로 집도 사겠다.”
“헐······ 저걸 다 쓰려고 사는 거긴 해?”
“너 재벌들이 미술품 다 감상하려고 사는 줄 아냐?”
사람들은 부러움과 시기가 섞인 눈으로 블루스 노인을 보았지만, 블루스 노인은 그들에게 피식 웃어 보일 뿐이었다.
“허허허, 젊은이들도 돈 많이 벌어서 나처럼 질러보게나. 크흠, 끝난 듯하니 경매 진행하게나.”
“아, 네. 6,000만 골드. 더 없습니까? 낙찰 되었습니다.”
상대편이 더 이상 의지를 보이지 않아서 낙찰시켜버렸다.
누군가의 대리인인 모양인 상대는 표정이 죽어 있었다.
“자네 주인에게 전하게. 현실에서도 돈으로 날 못 이기니까, 여기에서라도 이겨보려 했나 본데, 아무래도 무리가 아닌지 말일세.”
재벌 드라마의 재벌이 할 것 같은 대사를 마구 던지는 블루스 노인이었다.
실제로 재벌 아닐까? 돈을 저렇게 마구 쓰는 것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끝인가, 공진군?”
“아니······ 하나 더 있긴 합니다만.”
“허허허, 어서 올리게나.”
“예······.”
이미 9,000만 골드를 얻었는데, 하나 더 라니.
내 손이 덜덜 떨리는 기분이었지만 나머지 하나를 메뉴판에 적었다.
[장인이 만든 3등급 흑우의 칼바람 풀 플레이트 아머]
오늘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할 아이템이었다.
메뉴판의 옵션을 적고 아이템을 전시했더니, 사람들의 군침과 마른침을 동시에 흘리고 있었다.
돈지랄을 하고 있는 노인 한 명 때문에 그림의 떡에 불과하지만, 가지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럼 경매 시작가를······.”
“1억.”
“······.”
블루스 노인의 말에 좌중이 침묵했다.
1억? 정말로? 이미 9,000만을 썼는데 여기서 1억?
아니 여기서 왜 1억이 나와? 라고 하는 것 같은 표정들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푼돈으로 아등바등하는 것도 귀찮네. 까짓것 이제 1억도 못 낼 사람들은 경매 참여 못하게 했으면 하는군. 그리고 저 치들은 총알이 모자라 보이니 이만 끝내세.”
“네······ 더 없습니까? 그럼 낙찰되었습니다.”
나는 별 수 없이 경매를 진행했다.
고스란히 1억 9,000만 골드가 입금되었다.
거의 2억이라, 월급쟁이 소시민이 생각하기엔 너무 큰돈이었다.
그게 내 인벤토리에 있다고 하니, 못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 돈을 삥땅칠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
당연하게도 시화와 반으로 나눠야만 한다.
그러기로 계약했으니 말이다.
“와 개쩐다······ 근데 우리들은 저런 거 절대 못 사겠네.”
“부자들 돈지랄이 게임 다 망치네.”
“어떻게 저런 템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레이드라도 뛰어야 하나······.”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 무기점을 나갔다.
곧 블루스 노인이 나와 시화에게 다가왔다.
“끌끌끌, 돈 좀 보니까 견물생심이 드는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군요. 그런데 왜 이리도 비싸게 사주시는 겁니까, 어르신?”
나는 이유가 굉장히 궁금해져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블루스 노인은 지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란 말을 아는가?”
“등산가 조지 말로리의 명언이군요. 하지만 그분처럼 꿈이나 목표를 위해서 하시는 건 아니시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솔직히 말해 부자들 돈지랄이 맞다네. 조금은 서민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구먼. 하지만 어쩌겠나? 돈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버섯이 필지경인 사람들은 이렇게 노는 걸 말일세.”
“······.”
블루스 노인은 익살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시시한 이유 말고도······ 자네에게 흥미가 생겨서이기도 하다네.”
“네? 저에게요?”
“그렇지. 아까 했던 이야기를 더 해볼까 하는데······.”
블루스 노인은 시화에게 어쩐지 눈짓을 했다.
그러나 시화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듣는 귀가 없어지자, 블루스 노인이 말했다.
“오늘 제과점에 고용했다는 아이 말일세. 그 아이와 어떻게 만났나?”
“게임에서 만났죠.”
“아하하, 참. 내가 질문을 잘못했구먼. 둘이 언제 친해졌나?”
“친해진 건······ 흐음, 오늘 좀 친해진 것 같네요.”
“허허! 어쩌다가 말일세?”
“그건 프라이버시가 있어서 말씀드리기가 곤란한데요.”
이유는 몰라도 구체적으로 캐묻는 블루스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 관한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까봐 경계했다.
“아, 내가 말을 안했던가? 그 아이 말일세, 실은 전에 말했던 내 손녀가 그 아이일세.”
“어제 말씀하셨던 빵을 좋아한다는 손녀분 말인가요?”
“그렇다네.”
나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지혜양이 말했던 할아버지가 바로 브루스 노인이었군.
“그럼 어르신 아드님은 혹시 S그룹 고위직 임원이십니까?”
“임원이냐고? 뭐······ 따지고 보면 그런 셈이지. 왜 그러나?”
“아, 그게······.”
나는 블루스 노인에게 지혜양을 만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오늘 퇴근하는 길에 회사 앞의 벤치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그녀를 보았던 것부터 말이다.
“흠, 그렇군. 그 아이가 그래서 자네에게 고용된 건가.”
“네, 상당히 딱한 사정도 있고, 간절해 보여서 고용하게 됐습니다. 실력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게······.”
“자네에겐 좀 곤란한가 보군.”
“네, 임원이신 아드님의 허락을 구하고 고용한 것은 아니니까요.”
“허허허······ 자네 눈치는 그리 빠르지 않구먼.”
“네?”
“음, 아무것도 아닐세. 여하튼 그 아이 편을 들어주어서 고맙네. 그 앤 항상 잃은 어미를 그리워 했지. 내 아들 놈은 일하느라 무신경했지만 말이야.”
“그렇군요. 파티시에가 되기에 모자르지 않으면 어르신께서 아드님을 설득해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충분한 실력인 것 같습니다만.”
“그래, 그렇게 약속하긴 했었지······ 흠······.”
블루스 노인은 어쩐지 나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장난끼 어린 모습으로 웃었다.
“후흐흐흐······ 그런데 어쩐지 노인네가 끼어들 분위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네?”
“내가 아들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수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일세.”
“무슨 말씀이시죠?”
“아닐세 아니야. 자네 내일도 출근할 테지?”
“그렇겠죠.”
“그럼 말이야, 내 하나 조언하겠네. 상사를 대할 땐 솔직해지는 것이 좋다네. 자넨 심성이 발라 보이니까 별 문제는 없겠지만. 크흠, 나는 이만 가보겠네. 또 보세!”
“예, 어르신. 안녕히 가십시오.”
블루스 노인은 할 말을 다 하곤, 무기점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입구에 서 있던 시화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뭐라고 말했다.
나는 곧 시화에게 다가갔다.
“블루스씨가 뭐라고 하시던가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공진씨에게 말이죠.”
“······뭐하시는 분이신데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으니까요.”
“······.”
나는 더 이상 시화에게 묻진 않았다.
지혜양에게 물어볼까?
하지만 굳이 비밀로 해두는데, 캐는 것은 나쁜 짓 같다.
“일단 오늘 번 돈을 나누죠.”
“네, 그러니까······.”
“1억 9000만 골드를 둘로 나눠서 9500만 골드입니다.”
“······.”
“······.”
돈을 나눠가진 시화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난 인벤토리를 확인해 내 골드 현황을 재확인했다.
[134,629,700 골드]
보유 골드가 1억을 넘어버렸다.
이, 이거 스케일이 점점 장난이 아닌데.
“혹시 블루스 씨······ 암흑가의 대부시거나 뭐 그런 건 아니죠?”
“그건 아닙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지만요······ 이거 돈이 너무 커지니까 조금 부담스럽네요. 한동안 아이템 경매는 보류할까요? 무슨 게임 판타지도 아니고 심장 떨려서 무섭군요.”
“공진씨가 원하신다면 그래도 좋습니다. 그나저나 공진씨야 말로 무슨 일입니까?”
“네?”
“그 제과점······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영지 발전도는 어느 정도가 되었습니까?”
“아, 확인해보죠.”
시화의 말에 나는 바로 땅관리 스킬을 써보았다.
[영지, 하펜 마을
초보 이방인들을 인도하는 초보자 마을 중 하나. 본래는 촌장이 다스렸으나, 마을에 기여도를 쌓은 이방인 ‘사공진’이 영주가 되었다. 아직은 소속된 국가가 없는 자유 영지다.
거주 인구 : 481명
세금 수입 : 24시간마다 104,521골드
현재 자금 : 109,5244골드
영지 발전도 : 5,000/5,000
주민 사기 : 좋음]
[영지 발전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현실시간으로 약 24시간 후, 자동으로 정식 영지로 변경됩니다.]
“어, 시화씨.”
“영지 발전도가 다 찼나보군요.”
“네, 24시간 후에 자동으로 정식 영지가 된다는군요. 현실 시간으로요.”
“올 것이 왔군요.”
시화는 다소 비장한 모습이 되었다.
곧 시화가 나에게 말했다.
“공진씨. 정식 영지가 되는 즉시 적들이 여길 습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적이라고 하면······.”
“경쟁길드들이죠.”
“이런. 제 농장도 무사하기 힘들겠군요.”
“저희가 막을 겁니다. 아마 처음은 막기 쉬울 겁니다. 길드만으로는 격차가 크기 때문이죠.”
“길드만이 아니라면 다른 적도 있단 겁니까?”
“네, 게임상의 국가가 개입되기 시작하면 힘들어집니다.”
국가라고 말하니 어쩐지 본격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영지 상태창을 보면 아직 국가에 귀속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네, 내일 정식 영지가 되면 국가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드시 저희 길드가 거점으로 삼는 국가인 ‘메이거스’로 해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정하죠?”
“외교 대사들이 올 겁니다. 그들 중 메이거스의 대사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다른 국가와는 그럼 적이 되는 겁니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경쟁 길드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죠. 어쨌거나 이 영지도 국가에 귀속되어 보호받아야만 합니다. 안 그러면 절대 방어가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군요.”
“어쨌든 저는 이제 방어계획을 세우겠습니다.”
“제가 뭐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음식이나 물약 같은 거라도 만들어 드립니까?”
“그래 주시면 감사하긴 합니다만.”
“내일 접속하자마자 만들죠.”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저는 길드 회의를 하러 이만······.”
시화는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아무래도 내일은 유유자적한 게임 플레이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