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풀 플레이트 아머 >
나는 제작 카탈로그를 뒤적여 풀 플레이트 아머를 검색했다.
[대장기술, 풀 플레이트 아머
중세 철제 갑옷의 정수. 보기보다 가볍고,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
필요한 재료 : 철괴 20개
추가 재료 : 강화용소재
필요한 도구 : 용광로, 망치, 대장기술 Lv7]
처음 대장기술을 이용해 방어구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만들려고 생각했지만 대장기술 레벨이 모자라 좌절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대장기술이 7레벨이 되어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며칠만의 일이지만 뭔가 감회가 새롭다.
“골렘하고 비슷한데, 좀 더 인체공학적인 느낌이군.”
빈틈없이 온 몸을 감싸지만, 결코 둔해 보이지 않는 매끈한 디자인.
실제로도 체인메일을 입은 것보다 훨씬 좋은 운동성을 보인다.
전신갑옷이라 입고 넘어지면 못 일어난다는 잘못된 상식이 있는데, 멀쩡하게 잘 일어나고 웬만한 체조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상식이 퍼진 이유는 풀 플레이트 아머와 플레이티드 메일을 헷갈리거나 혹은 마상시합용 플레이트 아머를 보고 착각한 경우다.
마상시합용 플레이트 아머는 실전용이 아닌 스포츠용이라서 운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두껍게 만들었기 때문에 보통의 풀 플레이트 아머와 상당히 다르다.
이래저래 재밌는 중세상식이군.
“주인님, 풀 플레이트 아머를 비롯한 몇몇 갑옷들은 외형에 대한 프리셋이 존재합니다. 프리셋을 이용해 다양한 외형의 갑옷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알겠군, 이런 식이구나.”
“뿐만 아니라 제작자가 임의의 외형을 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음, 그건 나한텐 무리인 것 같다.”
스킬에 의존해서 만드는 나에게 새로운 외형을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난 디자이너도 아니고, 실제 대장장이도 아니니 말이다.
여하튼 풀 플레이트 아머를 만들기 위해 망치질을 시작했다.
만드는 과정은 골렘의 몸체를 만들 때랑 비슷했다.
다만 골렘의 몸체를 만들 때처럼 마법공학 처리를 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통짜 모형을 망치질 한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무척 망치질을 많이 해야했다.
대략 300번은 한 것 같다.
“에고고 힘들다.”
만약에 실제로 망치질을 이렇게 했으면, 나는 진작 근육질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땀범벅이 되고서야 망치질을 끝내고, 아이템을 완성할 수 있었다.
[장인이 만든 3등급 흑우의 풀 플레이트 아머 : 방어력 180, 내구도 60/60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혼신을 다 해 만든 명품. 뛰어난 방어력과 내구도를 자랑한다. 흑우의 정수로 만들어져 훌륭한 특수효과가 부여되었다.
특수효과 : 끈질긴 인내심
끈질긴 인내심 : 어떤 악재에도 끈질기게 버티는 흑우의 대단한 인내심으로 받은 피해가 누적될수록 방어도와 체력재생률이 증가합니다.]
“음, 흑우라는 몬스터가 뭔진 몰라도 대단하게 잘 버티는 녀석인가 보군.”
특수효과가 탱킹에 최적화되어 있는 듯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흑우라는 몬스터의 특징이 반영된 듯하다.
여하튼 이제 속성 강화를 할 차례다.
나는 이번에도 바람 속성 강화를 선택했다.
[공격형 강화]
-착용자의 생명력의 4%에 해당되는 풍 속성 피해를 주변에 가한다(초당 1%의 마나소비)
-착용자의 생명력에 40%에 해당되는 대미지로 사방에 강렬한 윈드 노바를 시전(쿨타임 3분)
[방어형 강화]
-풍속성 내성이 21% 상승한다.
-일시적으로 생명력의 21%에 해당되는 풍속성 공격을 흡수(쿨타임 3분)
[지원형 강화]
-방어구의 무게가 상당히 감소한다.
-격렬하게 움직일 때마다 풍압을 일으킨다.
“음, 뭘 골라야 할지 잘 모르겠네······ 하지만 잘 버티면서 적을 위협하려면 공격형 첫 번째나 두 번째 옵션이 좋을 것 같다.”
마음이 가는 것은 공격형 강화였다.
흑우의 인내심······ 아니, 끈질긴 인내심으로 오래 버티면서 반격을 가하는 것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첫 번째로 해야겠다.”
나는 마음가는대로 옵션을 선택했다.
어차피 뭘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인이 만든 3등급 흑우의 칼바람 풀 플레이트 아머]
“다 만들었다!”
왈왈왈!
멍멍멍!
월월월!
풀 플레이트 아머까지 완성하자, 나는 사우나처럼 더운 대장간을 뛰쳐나왔다.
용광로에 있던 불돌이도 뛰어나왔고, 실버와 골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내 주변을 돌았다.
나는 곧바로 호수로 뛰어들어 몸을 식혔다.
“어푸어푸.”
꼬꼬꼭
냐아옹
수영을 하면서 호수의 찬물을 만끽하는 내 주변을 겉도는 호크였다.
그 위에는 물방울이 타고 있었고 말이다.
나는 얼마간 둥둥 떠다니다가 내킬 만큼 수영을 즐긴 뒤에 뭍으로 나왔다.
“후우, 이제 마을로 가서 경매하는 일만 남았군.”
오늘 만든 3개의 아이템을 챙기며 시화에게 귓속말을 했다.
“시화씨, 아이템을 모두 만들었습니다.”
-아, 저도 마침 촌장과 이야기를 마친 참입니다. 만나서 말씀드리죠.
“네, 마을 쪽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시화와 마을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도 골렘에게 농장을 맡긴 뒤, 정령과 동물 친구들을 데리고 떠났다.
곧 마을 입구에서 시화를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시화는 촌장과 나눈 이야기를 말했다.
“촌장은 저희 계획에 적극 찬성하는 모양입니다.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면 적당한 인물을 소개해주겠다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다만 단순히 사람만 구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인프라의 문제라고 해야할까요······ 예를 들어 선술집에서 말씀하셨던 공용 대장간의 경우 용광로 여러 개에 불을 지피기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
시화가 말하는 문제가 뭔지 대충 눈치 챘다.
정령술의 도움 없이 용광로의 불을 지피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전에 그것에 대해 골렘과 대화한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인데······ 음?
“시화씨. 한 번 해결책을 물어볼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누구죠?”
“이 마을의 정령사입니다. 정령사 길드는 없지만 정령사가 한 명 살고 있죠. 저도 그녀에게 정령술을 배웠습니다. 그녀가 어쩌면 절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기점에 가기 전에 한 번 들러보죠.”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시화는 내 생각에 동의했다.
곧 우리들은 정령술사의 집을 찾아갔다.
“실례합니다.”
나는 그녀의 집 문을 노크했다.
상점도, 길드도 아니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들어가는 건 실례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앗! 오랜만에 뵙네요.”
“안녕하세요,”
정령술사 아가씨가 곧 문을 열고 나와 활기차게 인사했다.
그녀는 나를 보다가도 옆의 시화나 정령들을 보았다.
“어머, 귀여운 정령들이네요!”
왈왈왈!
냐오옹
브어어엉
삐이익!
정령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말하는 그녀였다.
정령들은 그녀가 마음에 드는지 친근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처음 뵙는 분도 계시네요.”
“시화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시화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제야 나는 그녀에게 볼일을 말할 수 있었다.
“정령사 아가씨······ 아니, 실례지만 저희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요. 저는 사공진입니다.”
“제 이름은 ‘시스’에요.”
“시스씨, 오늘은 시스씨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어요.”
“음, 일단 들어오시죠. 차를 내드릴게요.”
시스씨는 나와 시화를 집안으로 들였다.
곧 그녀의 쟈스민 차를 대접 받으면서 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러니까 공용 대장간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생활 스킬을 활성화시키시려는 거군요?”
“네.”
나는 레거시 퀘스트에 대해서 말하진 않았지만, 생활 스킬을 활성화하려고 이런저런 건물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공용 대장간의 경우 용광로를 쉽게 지필 수 없는 게 문제라는 거네요.”
“그렇죠. 저 같은 경우는 정령술을 이용해서 쉽게 지필 수 있는데, 혹시 여러 개의 용광로를 지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할 수 있어요.”
그녀는 확답부터 말했다.
오, 이거 일이 잘 풀리려는 것 같은데.
“정령술 용광로를 만들면 정령석으로 쉽게 용광로를 데울 수 있어요. 다만······.”
“다만?”
“공진씨가 만들긴 힘들 거예요. 정령술사의 2차 전직인 ‘엘리멘탈 마스터’여야 만들 수 있거든요. 정령술 용광로는 상급 정령술 도구기 때문이에요.”
“아······.”
“제가 만들 수 있긴 하지만 그것도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이죠?”
내가 그러헥 묻자, 그녀는 난색이 되었다.
“정령술사 길드가 있어야 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 마을엔 길드가 없어요.”
“제가 정령술사 길드는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네?”
“아, 그걸 아직 설명하지 않았군요.”
소식이 느린 것 같은 그녀에게 내가 영주가 된 경위를 설명했다.
“아, 제가 집에만 있다 보니 잘 몰랐네요. 하지만 정령술사 길드를 만들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 거예요.”
“얼마 정도가 필요할까요?”
나는 땅관리 스킬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100만 골드 정도요.”
“에이, 별로 안 비싸네요.”
“네?”
“저 골드가 꽤 많거든요. 그 정도는 쉽게 낼 수 있어요.”
시스씨는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듯했지만, 사실이다.
현재 내가 가진 골드는 39,629,700골드다.
100만 골드 정도는 부담스럽지 않게 낼 수 있다.
물론 현금으로 100만 원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비싸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지금 내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골드에 비교하면 부담스런 가격은 아닌 것이다.
“저, 정말로 만들어주실 생각이세요?”
“네. 참, 혹시 정령술사 길드를 만들면 길드에서 여러 편리한 정령술 도구를 만들어 팔 수 있나요?”
“물론이죠. 다만 사람들이 살진 모르겠지만요.”
“생활 스킬이 활성화되면 사람들이 많이 찾을 거예요. 가열기만 하더라도 어디서든 불을 지펴서 요리를 만들 수 있게 해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더더욱 정령술사 길드를 만들 이유가 생겼네요.”
“저······ 그럼 저는 대가로 뭘 해드려야 하나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묻는 시스, 내가 그녀에게 특별한 대가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에이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에요. 아, 굳이 있다면 여러 공용시설을 만들 때 정령술로 협조해주시면 고맙죠. 그리고 정령술 길드를 만들면 그곳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그럴게요! 꼭 하게 해주세요!”
그녀는 의욕적으로 대답했다.
정령술이 비주류라서 항상 의기소침한 듯한 그녀는 이번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럼 부지부터 정해야 하니 함께 가실래요?”
“네!”
나는 쇠뿔도 단김에 뽑기 위해, 당장 정령술사 길드를 만들기로 했다.
곧 그녀와 함께 집을 나와 길드를 지을만한 적당한 곳을 찾아갔다.
당연하게도 광장의 비어있는 공터가 목적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