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약속된 승리, 넬슨 >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얼마 후, 오늘도 선술집의 문을 닫았다.
제과점과 경영 분리를 해서 느긋해진 선술집은 더 열어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해야할 일이 있었다.
무기점 경매에 올릴 아이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빠. 나중에 기회 생기면 재봉 스킬 꼭 배울게요. 그럼 내일 봐요.”
“응, 내일 또 보자.”
미나는 그렇게 말하곤 로그아웃했다.
“저는 마을에 가서 촌장과 대화해보겠습니다. 촌장에게 협조를 구하면 공진씨가 생각하시는 일에 도움이 될 NPC들을 소개해주겠죠.”
“네, 그럼 저는 그동안 아이템을 만들게요. 다 만들면 연락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시화씨도요.”
시화는 레거시 퀘스트를 적극 도와주기로 했다.
내가 아이템을 만드는 사이 여러 가지 정보를 모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시화도 농장을 떠났다.
“흠, 그럼 오늘 아이템에 쓸 재료들은······.”
[그리즐리베어의 정수 50개]
[흑우의 정수 2개]
[강화석 3개]
지난번에 스켈레톤과 슬라임의 정수로 옷과 가죽갑옷을 만들고 남은 강화용소재와 강화석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리즐리베어의 정수를 나눠서 무기 한쌍을 만들고 흑우의 정수로 갑옷을 만들 생각이다.
“불돌아, 용광로에 불 피우자.”
왈왈왈!
작은 화염 진돗개 불돌이는 깡충깡충 뛰어서 대장간의 용광로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정령과 동물 친구들은 대장간 근처에서 뛰놀았다.
물론 태산이는 꾸벅꾸벅 졸지만 말이다.
“이제 경매장에 올릴 무기니까, 외관이 멋진 무기를 고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제의 경험에 따르면 경매장에 올라가는 무기는 대단히 고가로 거래되는 무기다.
사치품이란 말인데, 그렇다면 기왕지사 멋진 것이 좋다.
물론 롱소드나 숏소드도 멋지지만, 그건 게임상에서도 흔한 무기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대장기술의 제작 카탈로그의 목록을 뒤지며 미리보기를 살펴보았다.
“아, 첫 번째건 이게 좋겠다.”
곧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대장기술, 세이버
Saber, 프랑스 어로는 샤브르(Sabre), 원형은 7세기 마자르 족이 사용했던 검에 기원한다. 명성을 펼친 것은 17~20세기 사이의 근대 유럽의 기병들의 도검으로 사용되면서였다. 아서왕 신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필요한 재료 : 철괴 6개
필요한 도구 : 망치, 대장기술 Lv5, 용광로]
이름부터 뭔가 멋진 느낌이 드는 검.
설명대로 전열보병 시대, 전열보병들의 악몽이었던 경기병들의 무기였다.
아직은 전장식 머스킷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빠른 기동력으로 보병들을 휘저으며 목을 베는 경기병들이 큰 위협이었다.
물론 그것도 미니에탄이나 퍼커션 캡, 혹은 뇌관식 소총이 발달하면서 기병대는 모습을 감추게 되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때 기병들이 들고 다니던 멋진 군도였다.
늘씬하게 잘 휘어진 검날과 힐트라 불리는 손잡이와 가드, 장식이 멋진 것이다.
“하지만 구글 검색은 엉뚱한 것만 검색하지. 애초에 고대 영국에선 세이버란 단어를 쓰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설명에서도 나온 말과 관련된 우스갯소리를 했다.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구글 검색조차 세이버라고 검색해보면, 이 늘씬한 곡도를 지칭하는 것과는 영 엉뚱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실제 중세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 캐릭터 설정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흠, 쓸 때 없는 생각은 이쯤으로 하고 망치나 휘둘어야겠다.
“주인님.”
“왜 골렘아?”
“레거시 퀘스트를 받으셨군요.”
“아, 알아차린 거야?”
“트리거가 발동한 순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지 그랬어. 그래서 골렘도 관심이 있어?”
나는 세이버에 망치질을 하면서 말했다.
“레거시 퀘스트가 발동되면서 봉인 된 데이터의 일부가 해금되었습니다. 레거시 퀘스트를 저를 만드신 창조주님이 설계한 것입니다.”
“아, 같은 사람이란 말이구나. 흠, 그런데 기가 막힌 우연이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미나의 오빠도 이 게임의 개발자라고 했거든. 응?”
나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미나의 오빠도 이 게임의 개발자다.
골렘의 창조주라는 사람도 이 게임의 개발자다.
그런데 두 사람은 모두 죽었다고 한다.
한 게임의 개발자 중에 죽은 사람이 우연히 둘이나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고 생각되었다.
“······골렘아. 네 창조주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니?”
“창조주님의 개인 신상은 제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은 그분이 이 세상에 생명을 바치셨단 것뿐입니다.”
“그래? 흠······.”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단 것이다.
뭐, 그렇게 파고들만한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레거시 퀘스트가 완료되면 그 분에 대한 정보를 더 알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방금 말한 봉인 된 데이터가 완전히 해금되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럼 더더욱 퀘스트를 깨봐야겠네.”
나는 레거시 퀘스트에 대해 골렘과 대화하면서 세이버를 만들었다.
이젠 숙달되어서 금방 만들 수 있었다.]
[스킬 대장기술 레벨 업]
[검명을 지으십시오.]
“약속된 승리.”
나는 알 만한 사람은 웃을 만한 검명을 지었다.
모르는 사람은 나름대로 멋진 검명이라고 생각할 거다.
무슨 뜻인지 알게 되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장인이 만든 3등급 세이버 ‘약속된 승리’ : 공격력 90, 내구도 40/40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혼신의 힘을 다 해 만든 명품. 좀 더 뛰어난 공격력과 훌륭한 내구도를 가졌다. 명품의 힘으로 강력한 특수효과가 추가되었다.
특수효과 : 강렬한 번개의 일격
강렬한 번개의 일격 : 24시간에 단 한 번, 강렬한 번개의 힘을 부릴 수 있다. 대규모 광역 공격으로 다수의 적을 처치하는데 유용하다.]
“흠, 뭔가 특수효과도 검 이름을 따라간 느낌인데······ 뭐 기분 탓이겠지!”
일단 세이버는 명품으로 잘 뽑혔다.
이제 여기에 속성강화를 할 시간이다.
이번엔 바람 속성을 부여해볼까?
나는 속성 강화 커맨드에 바람 속성을 선택했다.
[공격형 강화]
-15% 추가 바람속성 공격력 추가
-공격력의 50%에 해당되는 검풍(劍風) 시전(쿨타임 1분)
[방어형 강화]
-바람을 벨 수 있다.
-생명력의 15%에 해당되는 모든 바람 공격을 흡수할 수 있다.(쿨타임 3분)
[지원형 강화]
-무기가 무척 가벼워진다.
-소지자의 이동속도가 크게 증가한다.
여느 때와 같은 바람에 관련된 3가지 타입의 속성강화가 나타났다.
이중에서 적당해 보이는 것은······.
“공격형 두 번째가 끌리네.”
이번 검의 특수효과는 한 번 사용하면 24시간이나 쿨타임이 걸리는 액티브 스킬인 모양이다.
그러니 그 동안 대신할만한 짧은 쿨타임의 스킬을 부여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주저 없이 공격형 두 번째 속성강화를 했다.
[장인이 만든 3등급 바람이 흐르는 세이버 ‘약속된 승리’]
“음, 멋들어지게 잘 만든 거 같아.”
나는 흡족해하면서 완성품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하나는 완성했고 다음은 뭘 만들까, 생각하면서 곧바로 제작 카탈로그를 뒤적였다.
그 중에서 또 외형이 괜찮은 검을 골랐다.
[대장기술, 커틀러스
좁은 배 위에서 백병전을 하기 위해 고안된 도검. 중세부터 근대 해군까지 실전용으로 쓰였다. 백병전이 거의 의미 없어진 현대에 이르러서도 상징성과 의장용으로 1956년까지 생산되었다.
필요한 재료 : 철괴 6개
필요한 도구 : 망치, 대장기술 Lv5, 용광로]
세이버와 비슷하게 곡도지만, 세이버에 비해선 직도에 가까운 모습의 검이다.
짧은 편이고, 용도는 설명에 적힌 대로 함상 전투용으로 만들어졌다.
대포나 총격이 발달하기 전까진 해전은 도함을 이용한 백병전(Boarding action)이 주류였는데, 그럴 땐 장검보단 이렇게 적당히 날씬한 검이 더 유용했기 때문이다.
총기와 대포가 발달한 나폴레옹 시대에도 함상 백병전이 자주 일어났기에 선원들의 제식무기였다고 한다.
“자, 그럼 이걸로 만들어볼까.”
“저도 돕겠습니다.”
이번에도 골렘이 모루에 모형을 고정해주면 내가 열심히 두들겼다.
그러면서 또 골렘과 이야기를 나눴다.
“잘 생각해봤는데, 레거시 퀘스트를 통해서 네 창조주가 바란 걸 이룰 수 있을지도 몰라, 골렘아.”
일전에는 골렘의 창조주가 바란대로 사람들이 생활 스킬을 배우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골렘이 한 말대로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영지가 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활 스킬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몰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님.”
골렘도 내 계획에 찬성하는 듯했다.
내 기분 탓이긴 하겠지만, 골렘이 기뻐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나는 연신 망치를 두들겨 커틀라스를 완성했다.
[검명을 지으십시오.]
어김없이 찾아오는 작명타임.
나는 서양 해전에 관련된 이름을 생각해보면서 지었다.
“넬슨.”
[‘넬슨’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렇다!”
유명한 영국 제독 이름으로 했다.
제독 이름일 뿐만 아니라 전함의 이름이기도 하다.
해전에 관련된 서양 검이니, 그렇게 만들어 보았다.
이름이 명명되어 아이템이 완성되자, 나는 얼른 아이템의 옵션을 보았다.
[잘 만든 3등급 커틀러스 ‘넬슨’ : 공격력 85, 내구도 45/45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명검, 늘씬한 검을 이용해 재빠른 공격을 할 수 있는 한손검이다. 결투용으로 손색이 없다. 생활의 달인 효과로 인해 특수효과가 강화되었다.
특수효과 : 듀얼리스트
듀얼리스트 : 방패를 착용하지 않고, 한손검 상태로 싸울 때 힘과 민첩이 77% 증가한다.]
“흠, 약간 도박성이 짙은 옵션 같은데.”
한손검인데 방패를 쓰지 않아야 의미가 있는 옵션은 좀 위험한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내가 쓸 것도 아닌데 쓰는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물론 돈 많은 큰손의 장식품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곧 이어서 속성강화를 선택했다.
“무난한 것은 공격력 첫 번째 같은데.”
아무래도 공격에 올인한 성격의 무기 같으니, 평균적인 공격력을 더 올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15% 바람속성 추가 공격력이 올라가는 공격형 첫 번째로 선택했다.
[잘 만든 3등급 삭풍(朔風)의 커틀러스 ‘넬슨’]
이로써 오늘 두 번째 무기도 완성되었다.
좋구만 좋아.
그렇게 무기 두 개를 만들고 나니, 땀이 뻘뻘 흘렀다.
마지막으론 갑옷 만들기만 남았다.
흑우의 정수 두 개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런데 대장기술이 이제 7레벨이잖아?”
나는 꽤 많이 오른 대장기술 레벨을 보며 떠오른 것이 있었다.
이제 그걸 만들 수 있겠군.
바로 서양갑옷의 정수 ‘풀 플레이트 아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