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41화 (141/239)

< 122화 레거시 퀘스트 >

“퀘스트가 떴어.”

“네? 퀘스트가요?”

“응, 네가 나를 막 만졌을 때 갑자기 떴어.”

“뭐, 뭔가 잘못 된 건 아니죠?”

미나가 약간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레거시’ 퀘스트란 말 자체가 생소했지만, 그 내용도 매우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퀘스트, 창조주의 유언

당신은 창조주가 남긴 유산을 가질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창조주가 남긴 유산을 쫓고자 한다면 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바꾸십시오. 만약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해도 상관없습니다.

클리어 조건 : 퀘스트를 받은 시점에서 게임 내 50%의 유저들이 생활 스킬을 가지도록 유도.

클리어 보상 : 100,000,000 업적점수, 창조주의 유산]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설명도 조건도 보상도 매우 이상한 퀘스트였다.

도대체 창조주가 누구란 말인가? 골렘이 말하는 창조주와 같은 사람일까?

클리어 조건은 더더욱 이상했다.

유저들이 생활 스킬을 가지도록 만들라는 것? 생활 스킬이 사장된 게임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않는가?

보상은 더 기가막혔다.

창조주의 유산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업적점수를 1억이라 준다니.

보상이 어마어마해서 누군가 본다면 깨고 싶을지는 몰라도 클리어 조건이 너무 어려운 퀘스트다.

“어떤 퀘스튼데 그래요?”

“그게 그러니까······.”

미나가 물어보기에, 그녀에게 설명하려던 때였다.

선술집의 정문이 열리고, 멋진 검은색 갑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어, 시화씨 오셨네.”

“정말이네요.”

하려던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미나도 알아보았다.

시화는 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공진씨. 그리고 미나씨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길드 마스터님.”

그와 인사를 나눴고, 시화는 미나 옆의 스탠드바에 앉았다.

“후우, 이제 좀 쉬겠군요.”

“얼굴이 반쪽입니다. 오늘 힘들었습니까?”

“네, 하루 종일 레이드에 공진씨의 영지 관련해서 스폰서와도 계약 관련해서 미팅을 가져야 했습니다. 오늘은 정신 없이 바빴군요.”

랭킹 1위 길드의 길드 마스터 자리는 편한 자리만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위스키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마침 시화씨와 왔으면 하는 일이 있었는데, 잘 됐네요.”

“무슨 일이죠?”

“레거시 퀘스트라고 아십니까?”

“처음 듣습니다만, 유산(Legacy)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느낌이군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 네, 그게······.”

나는 자초지종을 시화에게 말했다.

더불어서 여전히 퀘스트 수락을 묻는 시스템창을 열어놓고 있단 것도 말이다.

“그러니까, 공진씨의 설명을 들어보면······ 일종의 히든 퀘스트 같은 거군요.”

“히든 퀘스트라,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나는 시화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어쩌면 ‘수상한 쪽지’가 이름만 다를 뿐인 히든 퀘스트를 준 것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 창조주라는 것이 무엇일까?

“창조주는 누굴 가리키는 걸까요? 이 게임에 관련된 설정 같은 것일까요?”

“숨겨진 설정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게임 설정 중의 신 같은 것을 말한다면 ‘가이아’라는 신 이름을 직접 언급했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다른 이인 것 같군요.”

“짐작 가는 것이 있습니까?”

“그게······ 클리어 조건이 그런 것을 보면, 어쩐지 게임 개발자를 말하는 것 같군요.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시화는 자신없게 말하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한다면 문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주는 ‘개발자’, 이 세상은 이 게임을 말하는 거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이 레거시 퀘스트를 만든 개발자는 현재 게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길 원했고, 그 과정으론 많은 사람들이 생활 스킬을 배우길 원한다······ 라는 건데.

어쩐지 이걸 보니 골렘과 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생활 스킬을 배워서 유유자적이 시간을 보낼 줄 알기를, 골렘의 창조주는 바라고 있었다지?

그것이 생각나서 괜히 골렘을 돌아보았는데, 그는 그저 열심히 음식을 서빙할 뿐이었다.

“흠, 그럼 어쩌죠. 퀘스트를 수락하는 게 좋을까요? 어차피 불가능한 퀘스트 같은데.”

“오빠, 퀘스트 수락 조건 같은 것도 없으면 그냥 수락해두는 게 어때요? 어차피 퀘스트는 여러 개 받을 수 있어요.”

“저도 찬성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무리인 클리어 조건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생활 스킬을 배울지도 모르잖아요?”

미나와 시화가 수락하는 것을 찬성하며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수락하는 걸 고민하는 게 아니다.

그들 말대로 수락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잘만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네? 뭐가 말이죠?”

“이 퀘스트, 우리가 클리어 가능하도록 만드는 거요.”

넌지시 시화에게 말해보았다.

그러자 시화도 곰곰이 생각에 빠지다가 말했다.

“어려울 것 같은데요. 생활 스킬을 하려면 여러모로 불편한 게 너무 많으니까요. 예를 들어 대장기술을 하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이 용광로나 모루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생산 수단이 없으니 생활 스킬을 배워도 대부분은 무용지물이죠. 공진씨처럼 이것저것 다 하면서 동시에 농장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점을······ 제가 개선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말이죠?”

“제 영지를 이용해서요.”

나는 좋은 기획이 떠오른 것 같은 느낌이라 자신감 있게 말을 이었다.

“똑같이 대장기술을 예로 든다면, 공용 대장간을 만드는 거죠. 관리할 NPC 한명을 고용하고 거기에 용광로와 모루를 여러 개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이 대여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건 물론 예시인 아이디어일 뿐입니다만.”

“흠······ 나쁜 생각은 아니군요. 큰 수익은 기대하기 힘듭니다만.”

“대신 대장기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죠. 이 퀘스트의 달성 조건을 조금씩 충족하는 겁니다. 예시의 대장기술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다른 방식으로 유도하면 사람들이 더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요?”

“흠······.”

나의 물음에 시화는 바를 두드리다가 말했다.

“나쁘지 않네요. 영지의 발전에도 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걱정은 그런걸 추진할 돈이 문제인데······.”

“돈이라면 뭐 저한테 많거든요.”

“사재를 쓰실 생각이십니까?”

“뭐, 시화님의 스폰서 쪽에서 도와준다면 고맙긴 하겠지만 아니라고 해도 저는 해보고 싶군요. 저는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나는 퀘스트를 수락하며 말했다.

말 그대로 나는 목표와 호기심이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다.

1억 업적점수도 달성해보고 싶고, 창조주의 유산이 뭔지도 알고 싶어졌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꼭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뭔가 재밌는 일을 하려는 것 같네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전 얼마든지 불러도 좋아요.”

“미나도 혹시 생활 스킬 하는 거 있어?”

“아직은 없지만······ 옷 만드는 건 조금 흥미가 있어요. 저 가정시간 때 꽤 잘했거든요? 스킬을 이용해서겠지만, 예쁜 옷을 만들면 또 흥미가 있을 것 같고요.”

“그럼 언제 한 번 가르쳐 줄게!”

“어머, 고마워요.”

미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한편, 위스키 한 잔을 다 마신 시화가 한 잔을 더 시키고 내게 물었다.

“혹시 지금 마을 발전도가 얼마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나는 시화의 요청에 즉시 땅 관리 스킬을 사용했다.

[영지, 하펜 마을

초보 이방인들을 인도하는 초보자 마을 중 하나. 본래는 촌장이 다스렸으나, 마을에 기여도를 쌓은 이방인 ‘사공진’이 영주가 되었다. 아직은 소속된 국가가 없는 자유 영지다.

거주 인구 : 481명

세금 수입 : 24시간마다 104,521골드

현재 자금 : 107,6344골드

영지 발전도 : 4,485/5,000

주민 사기 : 좋음]

“미묘하게 변한 게 많네요. 일단 발전도는 4,485입니다.”

“갑자기 많이 늘었군요?”

“네, 무기상점하고 제과점 때문이겠죠.”

“제과점이요?”

“아, 시화님은 아직 모르시는군요.”

나는 시화에게 어제 그가 떠난 후, 제과점을 만든 것에 대해 말했다.

물론 지혜양에 대해선 함부로 말하진 않았다.

어차피 제과점에 가면 유저를 파티시에로 고용한 것은 알게 될 사실이긴 하지만, 왜 내가 그녀를 고용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선 조금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회사 중역의 딸로 보였기 때문에, 혹은 슬픈 과거 때문에 파티시에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프라이버시에 속해서 남에게 말하면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 빵을 찾는 학생들이 선술집에 없는 건가요.”

“네, 분위기가 훨씬 느긋해졌죠?”

“그러네요. 하지만 공진씨, 일이 좀 안좋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요?”

“길드간 경쟁 말입니다.”

시화는 조금 심각한 모습으로 말했다.

“저희 길드가 영지를 얻었다는 것을 다른 영지의 사람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뭐 그렇겠죠, 딱히 비밀도 아닌데.”

“아직 공진씨가 진짜 주인이고, 저흰 계약 관계란 건 비밀이죠. 여하튼 그들은 길드 영지전을 준비 중입니다.”

“처들어 온다는 말입니까?”

“당장은 아니고, 정식 영지가 되어서 더 이상 초보존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면 처들어오겠죠.”

“그렇단 말은······.”

“네, 뭔가 더 건설하면 아마 발전도가 다 차고 정식 영지가 될 겁니다.”

아마 시화의 예측은 맞을 것이다.

제과점과 무기점을 세운 것만으로도 상당히 발전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럼 여기서 영지 경영을 멈출까요?”

“그걸 공진씨와 상의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일찍 맞는 게 좋을지도 모르죠.”

“이길 자신이 있나 보네요?”

“왜 없겠습니까? 저희가 괜히 1위가 아닙니다. 먼저 칼을 빼내고 덤비는 승냥이 정도는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간 공진씨 덕분에 급속히 성장한 것도 있고요.”

“자신만만하신 모습을 보니, 제가 다 든든하군요. 그럼 앞으로도 성장은 멈출 필요가 없겠네요?”

“예, 공진씨는 계속 내정에 힘써주십시오. 저희는 계속 타 길드를 견제하겠습니다.”

예컨대 내실은 내가 다지고, 시화와 <군신>길드는 국방을 맡겠다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좋습니다, 한 번 열심히 해보죠. 아, 그런데 시화씨. 오늘도 무기점에서 무기를 매매할 생각인데, 함께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아직 무기를 만들진 않았는데, 지난번에 준 ‘그리즐비 베어의 정수’와 ‘흑우의 정수’로 무기랑 갑옷을 만들어 보죠. 강화석 3개 남은 것도 여전히 있습니다.”

“아, 잊고 있었군요. 워낙 일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괜찮습니다. 그보다, 저도 영지 때문에 일이 바빠진다면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천히 상의해보죠.”

“네.”

시화와 일 이야기는 그쯤에서 끝냈다.

나와 미나, 시화는 곧 양념칠면조 하나를 시켜 술을 서로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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