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6일차 선술집 오픈 >
잔뜩 먹고 잠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나는 선술집을 열 준비를 했다.
수확한 작물들로 술을 빚고, 호수의 물고기들을 잡았다.
유유자적히 그물을 던지며 물고기를 잡다보면 술이 익어 어느덧 장사준비가 끝났다.
오늘도 술과 함께 시름을 덜어줄 시간이 되었다.
“오늘 선술집은 대대적인 메뉴 개혁이 있을 거야.”
멍멍!
브어어엉
나는 마치 기획을 발표하는 것처럼 동물과 정령 친구들 앞에서 말했다.
별 의미 없는 내 말에도 실버와 태산이가 울음소리로 대답해주었다.
나는 연신 즐겁게 오늘의 메뉴를 적어보였다.
[오늘의 메뉴
음식 : 된장삼겹살(7,000골드), 매운탕(7,000골드), 피자(10,000골드, 버프 5종), 들소고기 안심스테이크(10,000골드), 양념칠면조(7,000골드), 회(7,000골드), 돈가스(7,000골드)
안주 : 과일 모둠(3500골드), 베이컨 5개(3500골드)
음료 : 사과주스(3,500골드), 포도주스(3,500골드), 딸기주스(3,500골드), 요구르트(3,500골드), 콜라(3,500골드), 레몬주스(3,500골드), 망고주스(3,500골드)
술 : 그레인 위스키(6,000골드), 스카치 위스키(6,000골드), 블렌디드 위스키(6,000골드) 와인(6,000골드), 막걸리(1,500골드), 브랜디(6,000골드)]
“무슨 차이인지 알겠어?”
냐오오옹
왈왈왈!
월월!
애들은 메뉴판을 보면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울음소리를 내었다.
“바로 메뉴를 확 줄였단 거지! 제과점을 냈으니 빵 메뉴는 완전히 빼버렸거든!”
삐이이익
꼬꼬꼭!
내가 결론을 말하자, 바람이는 박수치듯 날개를 퍼득였다.
호크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이 고개를 흔들 뿐이다.
“이걸로 빵을 찾는 손님들은 제과점으로 갈테니, 선술집 운영은 더 손쉬워질 거야.”
나는 자화자찬하듯 박수를 쳤다.
물론 이렇게 되면 선술집 수입은 좀 줄 것이다.
제과점 쪽으로 수입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과점 수익은 지혜양에게 나눠줘야 하니 전체적인 이윤은 감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내가 돈만 바라보고 이러는 것도 아니고 재미로 하는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설렁설렁 음식을 만들어 팔아서 장사하는 재미를 보는 게 내 목적이다.
돈은 그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자 그럼 장사 시작합니다!”
나는 선술집으로 들어간 뒤, 정문으로 나오며 외쳤다.
그리곤 Open 표지판을 내걸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왔는데, 내 예상대로 학생 손님들이 확 줄었다.
제과점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술꾼들과 음식을 통한 버프를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주인장, 이제 스테이크도 파는 건가?”
“예, 와인과 곁들어 마시면 맛이 좋습니다.”
“하나 줘봐. 와인 한 잔이랑.”
“어떻게 구워드릴까요?”
“미디엄 레어로‘
장년의 손님이 스테이크를 처음으로 주문했다.
‘어떻게 구워드릴까요?’라고 물으니 꼭 내가 고급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색다르다.
나는 얼른 구워서 대령했고, 장년의 손님은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이거, 비주얼이 괜찮은데? 플레이팅이 좀 아쉽지만 확실히 잘 구운 스테이크야. 음, 맛도 아주 좋군!”
“하하,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이런 게 현실에서도 만 원이면 얼마나 좋을까. 누가 그렇게만 팔면 날개 돋친 듯이 팔릴 텐데. 정말 현실보다 게임이 훨씬 낫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참 뿌듯하군요.”
“빈말이 아냐, 빕스니 아웃백이니 그런 곳에 가서 스테이크 구경이라도 해보려면 세종대왕님 한 분으로는 택도 없지. 호텔 같은 곳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정말이지 주인장 덕분에 별별 식도락을 다 해보는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손님이다.
이런 덕담 나누는 기분으로 선술집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농장 아저씨! 양념칠면조는 뭐예요?”
제과점을 열어서 많이 줄긴 했지만, 음식 버프를 보고 찾아온 학생 손님이 물었다.
“닭고기 대용으로 칠면조 고기를 쓴 양념통닭이에요.”
“칠면조요? 미국에서 자주 먹는 그거요?”
“네, 농장의 닭들을 잡아서 고기를 충당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칠면조 쪽이 더 양이 많아요. 물론 맛도 보장합니다.
“우왕, 그럼 하나 먹어볼래요.”
학생 손님의 눈에는 기대가 어렸다.
버프를 생각하고 온 것 같지만, 치킨을 좋아할 한창 나이대다.
7,000골드, 그러니까 7,000원에 사먹을 수 있는 치킨은 현실엔 없다.
봉황을 튀긴 것 같은 양심 없는 가격의 치킨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양도 많다고 하니, 당연히 기대가 되겠지.
나는 그 기대에 한껏 부응해주려고 정성껏 양념칠면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대령했을 때, 학생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정말 한 마리에요?”
“네, 정말 양이 많죠?”
바로 칠면조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그에 따른 고기의 양 때문이었다.
양념 칠면조를 처음 시킨 손님이라 다른 손님들의 이목도 확 끌었다.
“와 진짜 이거 현실에서 팔렸으면 대박 났겠는데요. 물론 가격도 대박 오르겠지만.”
“네, 칠면조를 튀겼다는 핑계로 봉황보다도 비싸게 팔겠죠.”
“음, 양념도 살코기도 너무 맛있어요. 맨날 사먹어야겠다.”
학생은 행복한 표정으로 칠면조 다리를 뜯었다.
이렇게 두 메뉴가 선전하듯 팔리니 이어지는 수순은 명약관화였다.
“아저씨 저도 양념 칠면조!”
“스테이크 하나! 웰던으로!”
“나도 스테이크 썰래!”
“난 치느님으로!”
곧바로 스테이크와 양념칠면조의 주문이 쇄도했다.
골렘과 내가 바쁘게 주문을 받고 요리하면서 장사를 했다.
음식이 잘 팔리니 술도 잘 팔렸고, 장사하는 재미는 더욱 커졌다.
그러다가 반가운 사람들도 왔다.
“어머, 오늘은 선술집 분위기가 다르네요?”
“오, 미나 왔어?”
미나와 군신 길드원들이 온 것이다.
미나와 인사한 뒤, 군신 길드원들과도 인사를 했다.
군신 길드원들은 테이블 몇 개에 앉았고, 미나는 스탠드바에서 내 앞에 앉았다.
“항상 북적댔는데, 오늘은 좀 한가한 느낌이네요.”
“응, 그게 말이야······.”
나는 미나에게 제과점을 열어서 빵 메뉴를 갈아치웠단 것을 말했다.
“아하, 그랬군요. 확실히 이러니까 선술집이 좀 여유있어 보이네요.”
“응, 나도 일감이 좀 많이 줄어서 좋아.”
“스테이크도 드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정말 서부시대 선술집 같은 분위기에요.”
“흐흐흐, 그럼 위스키 줄까? 총잡이 아가씨?”
“네, 스카치로 주세요. 바텐더.”
간단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그녀에게 술을 건넸다.
미나는 위스키를 홀짝이더니 말했다.
“저기요, 오빠. 제가 말했던 거 기억나요? 요즘 연예인이 어렵다는 거.”
“응? 당연히 기억나지.”
“인식의 문제라는 오빠 말 듣고 이래저래 생각도 해보고, 가십거리도 찾아봤어요.”
“그래? 어떻던데?”
“결론부터 말하면 사이버펑크 시대에 연예인은 구시대의 유물 같다는 생각만 더 강해졌어요.”
“어때서 그런데?”
나는 맞장구를 쳐주며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바텐더의 기본 소양은 번지르르 하게 말하는 것보다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물론 나는 진짜 바텐더가 아니지만 말이다.
“확실히 오빠 말대로 아직 기계나 인공지능에 대해서 사람과 같은 인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있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전통주의자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하는 주장은 기계나 인공지능이 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나 코딩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영혼이 없대나 뭐래나······.”
“틀린 말은 아니지 않아? 그리고 네 입장에선 그 사람들의 주장에 찬성해야 하는 입장 아냐?”
“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생각은 그럴 수가 없어요.”
“왜?”
나는 순수하게 이유가 궁금해졌다.
연예인 지망생인 그녀의 입장에선 기계로 인해 좁아지는 연예계 시장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에 찬성해야하지 않나?
하지만 미나는 그러지 않는 듯했다.
“제 오빠는 프로그래머였어요. 게임 개발자였죠.”
“어, 그랬어?”
나는 그녀의 말에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전에 듣기로 그녀의 오빠는 최근에 타계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오빠가 늘 하던 말이 있었어요. 자신은 창조주이며 게임에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라고요.”
“뭔가 굉장한 말을 하시는 분이셨네.”
창조주라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골렘이 생각났다.
골렘은 자신을 만든 게임 개발자를 창조주라고 말했었지.
게임 개발자들은 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저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
미나는 어째선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보고 있는 이 모든 게 오빠가 만든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요.”
“어? 그 말은······.”
“네, 제 오빠는 이 게임을 만든 개발자 중 한 명이었어요. 그래서 이 게임은 저에게 오빠의 유품이나 다름없어요. 유품에는 흔히 영혼이 깃든다고 하잖아요? 전 그 말을 믿고 싶어요.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은 그런 생각에 산통만 깰 뿐이죠.”
“······.”
미나는 슬프게 위스키 잔을 바라보다가 잔을 마저 비웠다.
“후흐흐, 물론 그런 허무맹랑한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연기도, 노래도, 작곡조차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시대에 고작 영혼이란 말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논하려고 하는 게 너무 변명 같아 보이거든요. 기계에 뒤처진 인간이 하는 마지막 변명 같은 느낌?”
“변명이라, 세상은 그런 변명으로 돌아가는 게 많지. 나도 그런 변명 중 하나야.”
“왜요? 대기업 사원이잖아요?”
“대기업 사원도 조만간이면 필요 없어지는 시대일지 어떻게 알겠어? 노래도 부르는 인공지능이 서류작업을 못할까봐? 기획조차도 이제 기계가 할지도 모르지. 그런 때가 되면 나 같은 사람들도 그런 변명에 의존하면서 일자리를 지켜야할지도 모르고. 우린 그런 세대에 살고 있을 뿐이야.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한 게 지금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
자동화 설비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인력을 요구하던 공장에서조차 사람들의 일자리가 대폭 감소했다.
인공지능이 발달한 현시점에는 두말할 것도 없다.
“호호호, 그럼 오빠도 저처럼 알백수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뭐, 그렇게 되면 거래장에 골드 좀 풀어야겠다. 내가 골드를 좀 모았거든.”
“어머 그래요? 하긴, 이 선술집만 해도 장사가 무척 잘 되니까요. 지금까지 번 돈하면 꽤 되는 거 아니에요?”
“목돈은 꽤 모았지.”
“아, 이러면 오빠한테 시집갈까 보다.”
“얘, 얘가 못하는 이야기가 없네!”
미나의 농담에 나는 호들갑을 떨며 반응했고, 미나는 살짝 나를 툭 쳤다.
그런 작은 스킨십에도 숯총각의 가슴에는 불을 지르는 것 같았다.
띠링
“응?”
“왜 그래요?”
하지만 그때 한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히든 트리거 발견]
[레거시 퀘스트 발동]
깜짝 놀라는 내 모습에 미나가 물어보았지만, 그 시스템 메시지들은 미나가 나를 건드리자마자 발동했다.
마치 그것이 원인인양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