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지혜와 제과점 >
지혜양과 함께 토스트와 팬케이크, 그리고 마카롱까지 만들었다.
오늘 만들기로 한 것들 중에서 과자와 빵들은 전부 만든 것이다.
본래 나 혼자라면 이것에 이어서 술을 빚거나 음식을 요리했겠지만, 빵에만 흥미 있는 지혜양을 두고 스테이크와 양념통닭을 만드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럼 지혜양, 제과점을 열러 가볼까요.”
“네!”
멍멍멍!
왈왈왈!
월월월!
지혜양은 의욕적으로 대답했다.
그녀와 친해진 불돌이와 실버, 골드도 따라서 울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다시금 골렘에게 농장을 맡기고 마을로 향했다.
“생각해봤는데, 어머님을 추억하는 정도라면 취미로 빵을 만드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아, 조금 실례되는 질문이었으려나······.”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물론 취미로만 빵을 구울 수도 있지만······ 아빠 말대로 살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사업을 이어 받는 거요?”
“네. 아빤 제가 외국에서 MBA과정을 밟길 바라고 계세요.”
“오, 대기업에 들어가시길 바라시는 모양이네요. MBA과정을 밟으면 임원 자리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
“······.”
“아참, 파티시에가 되고 싶다고 하셨죠.”
마을로 가는 길에 지혜양과 사소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유학파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 했기 때문에 MBA라는 말에 반색하며 말해버렸다.
내 커리어의 단점은 그것이었다.
S대를 경제학과를 나오고, 4개 국어를 할 줄 알지만 그게 끝.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오는 유학파 엘리트에 비해선 한참 밀린다.
물론 4년간 대기업에 붙어 있으면서 실력도 나름대로 인정받고 실적도 올렸지만, 아마 나는 정년쯤에나 임원을 잠깐 맡고 퇴직하게 될 거다.
나 같은 미생에겐 잘 되어봐야 그런 코스가 한계이니 말이다.
“저······ 공진씨가 보기엔 제가 철이 없어 보이나요?”
“네?”
“엄마를 추억하고 싶고, 아빠를 따라하고 싶지 않아서 파티시에가 되고 싶은 것뿐인데, 그건 너무 철없는 바람일까요.”
지혜양은 심각한 모습으로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아주 솔직하게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그러네요.”
“······.”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꿈을 좇다니, 꼭 드라마에 나오는 일 같아요.”
“······.”
“저 같은 서민은 유학을 가고 싶어도 못가서 안달인데, 보내준 데도 안 간다니 조금 질투나기도 하네요.”
“······.”
다소 신랄하게 말했더니 지혜양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으음,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28살이나 먹고 10살은 더 어릴 학생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다.
불편한 사실에서 눈을 돌리기만 하도록 말해주는 것은 별로 좋은 조언일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쓴 소리를 한 것이다.
물론 쓴 소리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파티시에가 된다는 거? 그런 거 서민의 기준으론 전혀 철없는 게 아니에요. 철없다는 건 그런 꿈조차 없거나 허황된 생각을 가지는 걸 말하는 거예요.”
“제가 파티시에가 되는 게 허황된 생각은 아닐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부잣집 딸이라서요? 아니면 부친께서 그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뭐, 물론 부친분의 입장에선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가씨 인생은 아가씨 거잖아요? 부친이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자기앞날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지 못하거나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슬픈 사람들이에요. 감옥에 갇힌 것과 마찬가지죠. 뭐, 현실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슬픈 것도 있지만요.”
그녀에게 그런 충고를 하면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현실의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드물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이들은 타의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다.
부모님에 의해서든, 돈에 의해서든.
진정으로 자기 진로, 미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만큼 현대사회가 각박하기 짝이 없단 의미였다.
“그러니까 제가 해드릴 만한 조언은 스스로 결정하라는 것 밖에 없어요. 어느 선택을 해도 꽃길만은 있진 않을 거예요. 경영인이 되는 것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테고, 파티시에가 되는 것도 당연히 힘들겠죠. 아가씨의 나이엔 꿈과 현실을 저울질해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많은 학생들은 돈 때문에 현실에 무게를 줘버리지만, 아가씨는 솔직히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꿈을 좇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그럴싸한 대답을 했다.
어차피 정답은 나에게 없는 이야기였다.
정답을 가진 이는 지혜양이고, 그녀가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건 수능처럼 달달 외워서 답을 적는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내 말을 귀담아 들은 모양인 지혜양은 곧 나에게 물었다.
“그럼 공진씨는 꿈과 현실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하신 거예요?”
“저요? 저는 뭐······.”
그 물음에 나조차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바랐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대충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음, 대기업에 가고 싶었던 것은 제 꿈이었어요. 제 아버지도 회사원이라 동경했거든요.”
“그럼 공진씨는 꿈을 좇은 거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주말밤낮으로 야근해도 4년간 버텼죠. 근데 최근엔 열정이 식었다고나 할까, 지쳤었는데 마침 이 게임을 하게 되면서 좀 나아졌어요. 뭐, 이건 제 넋두리였네요.”
그런 말을 나누고 있으니, 어느덧 식료품점에 도달했다.
나는 식료품점 안으로 들어가, 식료품점 아가씨에게 제과점을 열 생각이니 줄리아를 불러달라고 했다.
식료품점 아가씨는 알겠다고 말했고, 나는 곧장 다시 나왔다.
“자, 지혜양. 그럼 이제 파티시에가 될 준비는 됐나요? 말해두지만, 엄청 힘들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그 일이 힘든 것은 별개의 일이니까요.”
“저······ 할 수 있어요.”
“좋아요, 한 번 부딪혀 보죠.”
나는 곧바로 제과점을 열었다.
줄리아가 도착해서 미리 만들어둔 빵의 진열을 도왔다.
“사장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런데 같이 계신분은 애인······.”
“아닙니다.”
“아니군요! 그럼 딸······”
“아닙니다.”
“도 아니군요!”
참 기운 넘치는 NPC다.
항상 의욕이 없어 보이는 마법사 아가씨랑은 조금 성격이 다른 사람인데?
여하튼 그녀는 의욕적으로 빵을 진열시켰다.
곧바로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앗, 농장 아저씨잖아! 아저씨, 오늘부터 빵은 여기서 파는 건가요?”
“네, 이제 선술집에선 안 팔려고요.”
“근데 어제 열고선 계속 잠겨 있던데······.”
“파티시에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어쩌면 제대로 영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와싸 개이득! 여기 있는 빵 다 내꺼!”
처음 온 손님부터 범상치 않은 학생이었다.
그는 가진 돈을 다 써서 최대한 많은 빵을 사갔다.
버프를 이용해서 무한 사냥을 하겠다나 뭐래나······.
그 이후로도 손님들이 계속 들이닥쳤다.
“아저씨 토스트 하나!”
“예, 금방 나갑니다!”
“마카롱 한 개 얼마에요?”
“한개 2,000골드요.”
“비싸당, 하지만 존맛일 듯한데.”
주문이 계속 쇄도했고, 미리 만들어온 빵들은 순식간에 다 털렸다.
본래의 빵집이라면 여기서 문을 닫겠지만, 나는 요리 스킬로 빵을 구워내면서 충당하고 있었다.
지혜양도 스킬과 실제 요리 실력을 섞어서 빵을 잘 굽고 있었다.
“좀 더 빨리 구워야해요. 손님들이 기다리니까요.”
“네, 넷!”
다만 스피드가 조금 떨어져서, 그녀를 다독여야만 했다.
체력적으로 버티는 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안간힘을 다 써서 버티는 듯했다.
나는 다소 냉정하지만 그녀에게 사실을 상기시켜야만 했다.
“지혜양, 이래선 지혜양에게 제과점을 맡길 수 없어요. 저 없을 때도 운영하겠다면서요? 물론 잘 못 운영한다고 해서 지혜양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영업시간동안 손님들의 주문을 소화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요.”
“여, 열심히 할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쉬지 않았다.
지혜양도 마찬가지였다.
딱 3시간만 지켜보기로 했는데, 몰리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솔직히 누가하더라도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혜양은 빠르게 배워 주문처리량도 늘었고, 손님들도 수 또한 조금씩 줄었다.
어느새 3시간이 흘렀고, 그 때엔 몰렸던 손님들도 한적 해졌다.
모두 사냥하러 간 것이다.
“대충 한 번 몰려온 뒤엔 사냥하러 가고, 나중에 또 몰려오겠네요. 현실의 제과점보다 더 바쁜 건 사실이었어요. 그에 비해 지혜양은 처음 하는데도 잘했어요.”
“가, 감사합니다.”
칭찬을 하자, 환하게 웃는 지혜양이었다.
“그럼 지혜양, 아까 골렘에게 들은 바로는 제 건물의 소유권을 공유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 제과점의 소유권을 지혜양에게 공유할 게요. 원할 때 언제든 제과점을 운영하세요. 재료는 옆의 식료품점에서 사도되지만 언제든 농장에 와서 얻어도 되요. 골렘에게 부탁하면 가지고 있는 것을 줄 거예요.”
“고마워요······ 제가 떼쓴 거나 다름 없는데,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요. 어떻게 갚아드려야······.”
“뭐, 저도 선술집에서 자주 빵 같은 거 조언을 들었는데, 그걸로 퉁치죠. 그나저나 이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해보니, 연습이 되겠나요?”
“네, 충분히 되는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제가 빵에 대해 조언할 것은 아니지만, 만들고 싶은 거 이것저것 만들어 봐요. 저는 그럼 농장으로 갈게요. 지혜양도 쉬고 싶으면 언제든 쉬면서 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공진씨.”
손을 흔들곤 나가는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하는 그녀였다.
부잣집 아가씨답지 않게 예절이 참 바르다.
아니, 부잣집 아가씨더라도 예절이 바른 것이 정상인가?
드라마에선 항상 표독스럽게 나와서 뭐가 정상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것보다······.
“얼른 가서 스테이크랑 양념통닭 만들어야지!”
나에겐 그게 더 중요하다!
한달음에 농장으로 돌아가서 오늘 만들어 보려고 한 두 요리를 만들 생각이다.
하나는 들소고기를 이용한 스테이크, 다른 하나는 칠면조 고기를 이용한 통닭.
둘 다 기대가 되어서 벌써부터 침이 흘렀다.
맛있는 술과 함께 마시면 대단하겠지?
“얘들아, 너희들도 기대 되지?”
멍멍멍!
왈왈왈왈!
월월월!
브어어엉
삐이이익
냐오오옹
꼬꼬꼭
동물과 정령친구들도 화음을 넣듯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하면서 농장으로 돌아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응, 골렘아!”
“지혜님은 함께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과점을 맡기고 와버렸어. 아참, 이후에 지혜양이 농장에 찾아와도 통과시켜주고 필요한 재료 같은 거 다 줘야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실버와 골드도 알았지?”
멍멍!
월월!
내가 없을 땐 골렘과 함께 농장을 지키게 될 실버와 골드에게도 말해두었다.
이러면 이제 됐겠지.
자, 그럼 나는 여유롭게 술과 요리나 만들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