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마카롱도 먹자 >
“보통 나 혼자였으면 스킬로 팬케이크를 만들었겠지만······.”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지혜양은 기대를 한껏 가진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꼭 암사슴 같은 모습이라 정말로 귀엽다.
“허허허, 그래요. 한 번 만들어 봅시다. 그럼 재료가······.”
“중력분, 설탕, 베이킹파우더, 우유, 달걀, 버터, 딸기, 생크림. 그리고 있다면 메이플시럽을 추가하면 좋아요.”
아주 줄줄 꿰고 있다.
괜히 파티시에 지망생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차례로 그 재료들을 검색해보았다.
중력분은 조합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 있었다.
밀가루를 이용해 만드는 것이다.
“설탕은 있는데, 베이킹파우더는 어디보자······ 이것도 조합 스킬인가보네.”
[조합, 베이킹파우더 1개
제빵, 제과에 이용되는 화학적 팽창제. 이스트처럼 빵을 부풀게 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스트를 사용하기에는 돈이 너무 들거나, 혹은 제과 과정상 이스트를 사용하기 곤란할 때 이용한다. 본래는 탄산과 베이킹소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현의 간편화를 위해 이스트를 이용해 조합하여 만든다.
필요한 재료 : 이스트 1개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베이킹파우더도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 외의 재료인 우유, 달걀, 버터, 딸기, 생크림은 모두 있었다.
“그럼 남은 재료는 메이플시럽 정도네.”
“메이플시럽도 만들 수 있어요?”
“일전에 만들 수 있다고 들었어요. 한번 검색해볼게요.”
이번에도 아마 조합 스킬로 만드는 것이라 예상하고 검색해보았다.
예상대로 메이플 시럽이 검색되었다.
[조합, 메이플 시럽 1리터
설탕단풍나무에서 얻는 수액. 단풍당밀이라고도 불리며, 네이티브 아메리컨들에게서 유럽인들에게 전래되었다. 구현의 간편화를 위해 나무수액에 설탕과 꿀을 조합하여 만든다.
필요한 재료 : 나무수액 1개, 설탕 1개, 꿀 적당히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나는 곧바로 메이플시럽을 만들어선 멋들어지게 만든 나무병에 담았다.
설명을 봐선 설탕이 많은 수액일 뿐인 것 같은데, 향이 매우 독특하고 좋았다.
“메이플시럽 먹어본 적 있어요?”
“네, 먹어봤어요.”
“저는 먹어본적이 없어요, 서민이라서. 그럼 이것부터 시식을 해봐야겠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곤 살짝 맛을 봤다.
물론 지혜양에게도 조금 줬다.
“음, 과일향 같은 느낌이네요. 나무 수액인데.”
“네, 실제 메이플시럽 맛이 잘 구현되어있네요.”
살짝 메이플시럽의 향과 맛을 즐긴 뒤, 나와 지혜양은 곧바로 팬케이크를 만들게 되었다.
사제의 연으로 내가 스승이고 지혜양이 제자지만, 사실상 조리의 대부분은 지혜양이 했다.
스킬을 안 쓰면 나로선 만들 방법이 묘연했기 때문이었다.
“중력분에 설탕을 넣고, 베이킹파우더와 섞은 뒤 체를 쳐야하는데, 충분히 가루가 고와서 잘 섞였네요. 그 과정은 생략해도 되겠어요. 거품기는 있나요?”
“없지만 나무로 만들어보죠.”
나는 바로 목공 스킬로 거품기를 만들었다.
원래는 쇠로 만들어야겠지만, 대장간을 쓰는 것은 여러모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목공 스킬로 대체했다.
나무 거품기를 본 지혜양은 문제는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 조리 도구라, 어쩐지 중세인이 된 기분이네요.”
“판타지 게임이니까요.”
소모적인 대화를 조금 나눈 뒤, 그녀는 나무그릇에 중력분과 베이킹파우더, 설탕으로 만든 ‘팬케이크 가루’를 넣고 거기에 우유와 달걀을 부었다.
그리곤 마구 거품기로 휘저었다.
능숙해 보이는 손놀림으로 휘저으니 얼마지 않아서 용액이 걸쭉해졌다.
“이제 프라이팬으로 구우면 되요. 기름이 약간 필요한데.”
“송로버섯 기름이 있어요.”
“그거면 되겠네요. 한 두 방울이면 되요.”
그녀의 말대로 송로버섯 기름을 아주 약간 둘렀다.
“그리고 약중불로 프라이팬을 대우고, 2스푼 정도의 양을 팬에 올리면······.”
“오, 넓게 퍼지네요.”
가열기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으로 팬케이크 반죽을 익혔다.
팬케이크가 부풀어 오르고, 기포가 생기고 있었다.
“기포가 생기면 뒤집으면 되요.”
“오오, 반대쪽이 다 익은 상태군요.”
“네. 비슷한 시간 동안 익히면 팬케이크 하나가 완성이에요. 참 쉽죠?”
지혜양은 꼭 그림 잘 그리는 어떤 서양인 같은 멘트를 날렸다.
나같이 스킬로만 요리하는 사람에겐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나라도 대충은 흉내는 낼 수 있는 수준처럼 느껴졌다.
팬케이크 자체가 어려운 음식이 아닌 것도 있지만, 지혜양이 알기 쉽게 요리한 것도 있었다.
“자 이렇게 하나를 굽고, 그 위에 버터를 올려서 바른 다음에, 또 하나를 구워서 쌓으면 되요.”
그녀는 나무 접시 위에 팬케이크를 쌓으며 플레이팅 했다.
그것만으로도 제법 팬케이크가 완성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딸기를 적당히 썰어서 토핑으로 얹고, 거기에 메이플시럽을 부으면······.”
“완성이네요!”
나는 과장되게 환호하면서 박수를 쳤다.
그녀는 내 리액션에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잘 만든 3등급 딸기를 곁들인 수제 팬케이크]
완성품은 멋들어진 이름으로 아이템화 되었다.
나는 군침을 조금 흘리면서 팬케이크를 바라보았다.
“먹어보실래요?”
“같이 먹죠!”
“하지만 아까 회도 먹었는데······.”
“게임이니까, 과식 좀 해도 상관없어요!”
“그렇지만, 그게······.”
“······?”
내가 같이 먹자고 종용했더니, 어쩐지 얼굴을 붉히는 지혜양이었다.
왜 그러는 거지?
“주인님.”
“응?”
“여성분들은 이성 앞에서 많이 먹는 것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래? 아, 그러니까······.”
골렘이 왜 뜬금없는 말을 하는지 몰랐는데, 지혜양의 눈치를 보고 깨달았다.
도리어 당황해서 얼굴이 빨갛게 된 것은 이제 내 쪽이었다.
“어, 저기 그렇게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저는 누가 많이 먹든 신경 안 쓰니까요. 게다가 잘 먹는 여자가 복스러워서 좋죠. 아니아니, 내가 무슨 소리하는 건지······ 그러니까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내 꼴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10살은 더 어릴 것 같은 학생 앞에서 쩔쩔매다니, 그럴만한 상황인 것도 맞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지, 지혜양은 조금 웃음을 머금었다.
“아니에요. 제가 괜히 내숭을 떤 것 같네요. 사실 저도 더 먹을 수 있어요.”
“그럼 같이 먹읍시다.”
나는 그렇게 말하곤 냉큼 칼을 꺼내 팬케이크를 반으로 잘랐다.
그리곤 냠냠하고 팬케이크를 먹었다.
음, 달고 또 달고, 계속 단맛이 역시 팬케이크다.
멍멍!
월월!
실버와 골드는 먹고 싶은 눈치가 한가득이었다.
나는 녀석들에게도 한 입씩 나눠주었다.
“개에게 단 음식을 줘도 될까요?”
“괜찮아요, 게임이라서 무슨 음식을 줘도 잘 먹어요. 그리고 안전해요.”
“아하.”
나와 지혜양은 극한의 단맛을 내는 팬케이크를 실버와 골드에게 맘껏 나눠주면서 시식했다.
단 것을 먹어서 그런지 지혜양도 한껏 웃었다.
팬케이크는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먹어도 웃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어느덧 만들었던 팬케이크를 다 먹었다.
“주인님, 밭의 작물이 다 자랐습니다.”
“수확하자!”
“주인님, 이번 작물은 저혼자 수확하겠습니다.”
“응? 왜? 내가 같이 도우면 더 빠르잖아.”
“그렇습니다만, 레이디와 계속 어울리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레이디? 지혜양을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골렘아, 혹시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은 아니지?”
“제 사고 알고리즘에 오해는 없습니다.”
“으음······ 뭐, 그럼 나는 제과점에 납품시킬 빵을 만들어야겠다.”
아직 아몬드 나무가 자라려면 두 시간 정도가 더 필요하다.
그 동안 빵이나 대량생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식용이 아닌, 스킬을 이용해서 잔뜩 만드는 것이다.
“저도 도울게요.”
“네? 하지만 이건 대량생산이라서 힘들 텐데요.”
“제가 도우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지 않을까요. 게다가 제가 제과점을 맡게 되면 저도 대량으로 굽는 연습을 해야하니까요.”
“그럼······ 한 번 해보실래요?”
이번엔 내가 가르쳐줄 차례였다.
나는 곧바로 스킬을 이용해서 빵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땀을 흘리면서도 불만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열정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빵을 만들고 있었다.
[퀘스트 달성]
[500 업적점수 획득]
어느덧 500개의 빵을 구웠는지 일일퀘스트가 완료되었다.
나는 그쯤에서 일단 멈추고 그녀에게 말했다.
“대량으로 굽는 건 처음이시지 않나요?”
“네.”
“그렇지만 굉장히 잘하세요.”
나는 솔직하게 칭찬했다.
그녀는 땀을 닦으면서 미소 지었다.
땀을 흘려 더워 보이는 그녀에게 수영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상식적이진 않겠지?
나 혼자라면 맘껏 수영했겠지만 말이다.
“물방울아, 바람아. 좀 시원하게 해줄래?”
냐아아옹
삐이익
그래서 그 대신 바람이와 물방울에게 부탁했다.
곧 냉기와 시원한 바람으로 나와 그녀의 땀을 씻어내고 말렸다.
“주인님, 아몬드가 열려 제가 수확해왔습니다.”
“앗, 고마워 골렘아.”
골렘이 아몬드를 수확해왔다.
“아몬드를 얻었으니까, 이제 마카롱을 만들 수 있겠네요.”
“바로 만들어봐요!”
얌전한 성격인 지혜양은 또 다시 활달하게 만들기를 종용했다.
나는 얕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카롱은 먼저 설탕으로 머랭을 만들어야 해요. 이렇게······.”
그녀는 적극적으로 거품기를 저으며 휘핑을 했다.
곧 걸쭉한 머랭이 만들어졌다.
그리곤 슈가파우더와 아몬드 가루를 차례로 넣어 머랭과 섞었다.
섞은 반죽이 끊어지지 않고 주르륵 흐를 정도가 되자, 그녀가 말했다.
“원랜 여기서 색소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 게임에는 타르색소가 구현되어 있지 않아요. 대신 스킬로 과일을 쓸 수 있어요.”
이쯤에서 스킬을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사과, 바나나, 딸기, 포도를 이용해 여러 가지 색깔을 냈다.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의 색깔의 반죽이 만들어졌다.
“짤주머니가 있으면 좋은데, 문제는 그게 없네요.”
“천 짤주머니는 목화를 이용해 만든 천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골렘이 답했다.
‘목화라, 이제 그 목화란 걸 찾아봐야겠네. 식료품점에서 팔려나?’
나는 속으로 양털 외에도 다른 천이 필요하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지금은 조심스럽게 반죽을 떠서 놓아보죠.”
지혜양은 짤주머니가 없으니 수저로 조심스럽게 떠서 마치 500원 정도 크기의 반죽들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걸 화덕에 넣어 익혔다.
그렇게 만든 것이 마카롱 꼬끄였다.
그 꼬끄 사이에 맛 좋은 생크림을 넣어주면 완성이다.
“다 됐네요.”
“정말 잘 만드네요, 지혜양. 당장 파티시에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뭘요, 아직 서투른 수준이에요.”
“에이, 너무 겸손하시네요. 자, 얼른 먹어봅시다.”
다양한 색깔의 마카롱이 완성되었다.
나는 얼른 시식을 하자고 재촉했고, 나와 그녀는 마카롱을 하나씩 먹었다.
“맛있다!”
“맛있어요!”
나와 지혜양은 함께 말했다.
그리곤 서로를 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