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35화 (135/239)

< 116화 부잣집 아가씨가 왜 이럴까 >

“그럼 저 이제 고용된 건가요?”

“그게요, 이지혜양. 이게 또 돈에 관련된 문제기도 해서······.”

“얼마면 돼요?”

“네?”

“저 돈 많아요, 얼마면 고용해주실 거예요?”

“음, 그 말은 좀 이상하네요. 세상에 돈 주고 고용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제과점을 저한테 팔아주시는 건······.”

“아, 그건 좀 내키지가 않아서······.”

“그럼 고용해주세요.”

나는 적잖이 곤란함을 느꼈다.

고용 안 해주면 제과점을 사겠다는 의지도 내비치는 것이, 부잣집 딸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실력도 괜찮고,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고용하면 그만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순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고용한다고 할만한 사이즈의 사람도 아닌데.’

아무래도 부잣집 딸, 그것도 내가 다니는 회사 임원의 딸을 몰래 고용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 임원이 알면 나는 그대로 모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하면 또 척을 지게 되겠지.

그건 또 싫다.

“지혜양, 조금 전에 빵 구워봐서 알겠지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한 두 번이야 할 만하지만 사실 계속하면 피곤하고 힘들고······.”

“그럭저럭 할 만하던데요.”

“그게 또 장사를 준비한다고 해보면 그렇지가 않아요.”

나는 거절한 핑계거리를 찾아 말하고 있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야 재밌다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힘들어할만한 일이었다.

장사가 마냥 재밌으면 자영업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괜히 힘들어하겠는가?

“여러모로 체력싸움이 되거든요.”

“저 운동 잘해요.”

“그런 거랑은 또 다른데······ 일 해보면 너무 질려서 못 버틸 거예요. 생각해봐요. 게임에 들어와서 빵만 굽고 그걸 팔아야 한다니까요? 제가 만약 하루 종일 제과점에 붙어있어 달라고 하면 어쩔 거예요? 물론 학생이니 가능하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시키진 않을 거지만요.”

“점원은 고용하셨다면서요. 학교 간 동안엔 미리 빵을 많이 구워둬서 계속 장사하게 하면 되죠. 그리고 제가 더 일찍 게임에 접속하니까 먼저 빵을 구워 놓을 수도 있고요. 제과점이 잘 활성화되면 선술집에서의 부담도 줄어들지 않겠어요?”

“······.”

합리적인 지적이었다.

요즘 학생은 무서울 정도로 똑똑하다.

“그리고 저, 빵 굽는거 재밌어 하니까. 하나도 안 지루해요.”

“그래도 이건 일인데요. 학생은 공부를 해야······.”

“전 학교 외에선 공부 안 해요. 그래도 1등이지만요.”

“······.”

학생의 본분을 이용해 핑계를 대려고 해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같은 대답이 돌아와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계속 핑계거리를 찾았지만, 마음 한편에선 못해줄 거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야 학생이 이리도 절실하게 구니 말이다.

나는 결국 백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좋아요.”

“그럼 고용해주시는 거예요?”

“오늘 한 번 일하는 걸 보고요.”

오늘 한 번 일하는 것을 보고 고용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조금이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거절할 생각이다.

“그럼 바로 제과점을 열거예요?”

“아뇨, 그러진 않을 거예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척 많거든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친구 추가 할 테니까, 적당히 놀다가 나중에 오셔도 되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학생에게 친구추가를 했다.

그녀는 그것을 수락하면서 말했다.

“뭐하실 건데요?”

“트로페 마을이라고, 바닷가 마을에 갈 생각이에요. 거기서 우선 이것저것 할 게 있어서요.”

“저도 갈래요!”

“네?”

트로페 마을에 대해 말하자, 학생이 갑자기 화색이 되었다.

“저, 바다보고 싶어요.”

“게임에서 다른 할 일은 없어요?”

“없어요, 사냥도 별로 재미없고······.”

“그럼 평소엔 게임에서 뭘 했는데요?”

이지혜양의 차림새는 그냥 흰 원피스라서 클래스가 뭔지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굳이 추정하자면 갑옷을 입지 않아도 될 마법사일 것 같았다.

“그냥 사냥보단 산책에 가깝게 놀았어요. 빵집도 찾아다녀봤지만, 다 여기보다 맛없더라고요.”

“흐음······.”

“그러니까, 따라가도 되요?”

“안 될 건 없지만, 꽤 심심할 걸요?”

“괜찮아요, 저 혼자서도 잘 놀아요.”

지혜양은 그렇게 말하면서 근처에서 애정표현을 해대는 골드를 쓰다듬었다.

뭐, 따라오게 해도 동물이랑 정령들도 있으니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좋아요, 따라와도 괜찮아요. 사실 저 따라 안와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곳인데······.”

“아무렴 어때요.”

내가 궁시렁대면서 농장을 나서기 시작하면 그녀가 뒤따라 붙으며 능청스레 말했다.

요즘 학생들은 다 이렇게 당돌한가? 하긴, 평소 보는 구경꾼 학생들도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다녀올게!”

“다녀올게요······ 갑옷 아저씨.”

골렘이 배웅을 했고, 그런 골렘에게 나와 지혜양이 인사했다.

나는 학생에게 그의 이름은 골렘이라고 말해주었다.

하펜 마을로 가는 동안 동물과 정령들 몇몇이 호기심에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불돌이는 활발하게, 물방울은 경계심을 가지듯, 태산이는 그저 졸뿐이고, 바람이는 충직하게 내 옆을 지켰다.

실버는 나와 학생을 이리저리 오갔고, 골드는 더 활발히 돌아다녔다.

호크의 경우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와 그녀를 따라올 뿐이었다.

“그런데 동물들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좋아하는 편이죠.”

“저희 집에도 푸들 한 마리가 있어요. 집에서도 키우세요?”

“아뇨, 아파트라서 못 키워요.”

“어라, 아파트에선 못 키우는 거예요?”

“네. 공동으로 사는 곳이니까, 개를 키우려면 여러모로 힘들어요.”

“그렇군요······.”

마법사 길드로 향하면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어쩐지 서민과 부자간의 인식 차이가 느껴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언제나 그랬듯이 마법사 길드에 도착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오······어라?”

“안녕하세요. 마법사 아가씨.”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시네요?”

마법사 아가씨가 내 옆의 학생을 의식하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같이 텔레포트할 사람이에요.”

“흐음······ 혹시 애인?”

“절대 아닌데요.”

마법사 아가씨의 말에 나는 즉답했다.

이상한 오해를 사서, 나는 괜히 그 학생을 흘낏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고 마법사 길드 안 쪽을 둘러 볼 뿐이었다.

“그럼 뭐에요? 숨겨놓은 딸이에요?”

“제가 그렇게 나이 많아 보이나요?”

“호호, 농담이에요. 친구인가요?”

“그것도······ 아니라고나 할까나······.”

“뭐에요, 대체.”

“그보다 얼른 텔레포트 서비스나 이용하고 싶네요.”

마법사 아가씨와의 농담은 그쯤으로 하고, 나는 얼른 텔레포트 서비스를 이용했다.

돈을 지불하고, 이지혜양과 함께 트로페 마을의 해변으로 텔레포트했다.

텔레포트 하기 전에, 나는 그녀가 바다를 보면 보통 학생처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려먹었다.

“하와이 해변이랑 비슷하네요.”

“······.”

······뭐, 부자니까 이런 바다도 많이 봐왔겠지.

그럼 왜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한 거야?

“오랜만에 보는 바다라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엄마랑 자주 왔었는데.”

“그렇군요.”

“그럼 이제 뭐할 거예요?”

“음······.”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잠깐 생각했다.

여기서 좀 쉴까? 원래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혼자도 아니다보니 괜히 신경 쓰여서 놀기가 힘든데.

아니지, 내가 언제 남의 시선을 신경 썼다고 그러는가?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도 빤쓰맨이 되어 호수에 뛰어들 수 있는 남자가 바로 나라고.

“그냥 바다 좀 구경하면서 쉬죠.”

“네.”

나는 그렇게 말하곤 학생이 없다고 생각하곤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닷바람이 시원해서 정말 좋았다.

“······.”

힐끔 학생 쪽을 바라보니, 그녀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파도가 적신 모래사장을 밟고 있었다.

그 뒤를 물방울과 골드가 뒤따르고 있었고 말이다.

······이런, 신경 안 쓰려고 해도 신경 쓰이는군.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기요, 학생. 아니, 지혜양.”

“네?”

“궁금해서 그런데, 왜 그렇게 절실하게 매달리는 거예요? 꼭 파티시에가 되어야할 이유라도 있어요?”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릴 때요. 엄마랑 자주 빵을 만들었거든요. 저는 옆에서 장식만 도왔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빵도 맛있었고요.”

“그렇군요. 하지만 아버지께선 장래희망에 반대하셨나요?”

“아빠는 그냥 무관심했죠. 일이 너무 바쁘다고 집에도 잘 안 들어왔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파티시에가 되고 싶다고 한 것도, 어릴 적부터 되고 싶었단 걸 지금도 몰라요. 제가 갑자기 이상한 진로를 꿈꾼다고 화만 내요”

“······.”

흐음,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쩐지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아서 분위기를 전환해보려고 했다.

“그럼 어머니께 부탁해서 아버지를 설득해보는 게 어때요? 어머니께선 찬성하시지 않나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학생은 어쩐지 쓰게 웃었다.

뭔가 웃는데도 슬픔이 느껴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엄마랑 빵을 구웠던 적은 어릴 때뿐이었어요.”

“왜요?”

“지금은 계시지 않으니까요. 병원에서 쓸쓸하게 떠나셨죠.”

“······.”

그렇게 말하는 학생은 슬픈 눈빛을 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 슬픔에 이미 익숙한 모양이었다.

“외롭게 가셨어요.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시는 날에도 오지 못 했으니까요.”

“······.”

“왜 그렇게 절실하냐고 물으셨죠? 그게 제 이유에요. 저는 평생 엄마를 기억하면서 살고 싶어요.”

학생은 그렇게 말하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상상할 따름이지만, 그 모습이 학습된 의태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슬프지 않은 척할 뿐이었다.

“으음, 그러니까······ 미안해요. 제가 괜한 것을 물었나 보네요.”

“아뇨, 괜찮아요. 그리고 물어보지 않는 쪽이 더 이상했고요. 저는 솔직하게 말한 것뿐이에요.”

“음······.”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히려 섣부르게 위로하려고 하면 더 실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다시금 화제를 바꿔볼 생각 뿐이었다.

“그러니까······ 마을에 갔다가, 바다에 나가 볼래요?”

“바다에 이미 왔잖아요?”

“제 말은 배를 타고 나가는 것 말이에요.”

“아, 요트 말이군요.”

“뭐, 부자가 생각할만한 대단한 요트는 아니지만요. 고깃배인데, 어차피 선술집에 쓸 횟감으로 고기를 좀 낚아야 해서······ 아니면 여기서 쉬고 계실래요? 애들이랑 같이 있어도 상관없는데.”

나는 어쩐지 허둥지둥 말하고 있었다.

정령과 동물들도 그녀를 잘 따르니 함께 있도록 해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을 봐서 그런지 학생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같이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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