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34화 (134/239)

< 115화 이지혜 >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옹야.”

농장으로 돌아오면 골렘이 늠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인사를 받으면서 농장에 들어섰다.

잠깐 다녀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는지 정신력의 비약도 완성되어 있었다.

사과주스와 함께 꿀꺽 마셔서 태산이를 중급 정령으로 재소환했다.

브어어어엉

“거북이가 돼서 기분 좋아, 태산아?”

브어엉

좋은지 고개를 꾸벅거리는 태산이었다.

그대로 기분 좋게 조는 태산이를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농사지을 시간이다.

“얼른 밭 갈고 씨 뿌리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옥스에게 다가갔다.

옥스는 내가 뭘 하려는지 이미 눈치 채고 온순하게 외양간을 나오고 있었다.

음머어어

“옳지, 착하다. 이 녀석.”

옥스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주면서 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쟁기를 씌웠다.

골렘이 따라와 괭이를 들었고, 태산이도 어느새 엉금엉금 기어와 있었다.

곧 옥스와 골렘, 태산이가 밭을 갈기 시작했다.

좀 더 넓어진 밭이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렵지 않게 모두 갈 수 있었다.

[힘이 2 올랐습니다.]

[체력이 2 올랐습니다.]

[정신력이 2 올랐습니다.]

“후우, 밭은 다 갈았고. 바람아! 씨 뿌리자!”

삐이이이익!

바람이는 이미 준비 되었다는 듯이 울었다.

곧 씨앗들을 뿌리자, 바람이가 일으키는 바람에 의해 알아서 제각각 밭에 뿌려졌다.

씨를 다 뿌리면 물을 줄 차례다.

냐오오옹

“오늘도 분수기를 작동시켜줘.”

물방울이 물의 힘으로 분수기를 작동시켰다.

물이 뿌려진 밭에는 잡초가 자라는데, 그건 가축들이 와서 먹는다.

완벽한 자동화 농업! 역시 자동화가 최고다.

오늘도 농사를 다 지었다.

이제 자라는 것만 기다리면 된다.

“그 동안 트로페 마을에 가서······.”

왈왈왈!

멍멍멍!

월월월!

“응?”

작물이 자랄 동안 할 일을 생각하던 차에 멀리서 불돌이와 실버, 골드의 짖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해보니 어느 틈에 밭이 아니라 울타리 쪽에 가 있던 것이다.

그것도 평소와는 달리 경계어린 울음소리로 짖으면서 말이다.

“구경꾼들이 울타리를 넘어왔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확실히 한 사람이 울타리의 입구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어어, 저기. 마음대로 들어오면 안 돼요. 개조심 팻말 있잖아요!”

나는 그 사람, 그러니까 그 소녀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째 그 소녀가 낯이 익었다.

“어라? 학생 아가씨잖아요.”

“······.”

그 사람은 선술집에 자주와서 빵에 대해 조언을 자주해주던 소녀였다.

학생처럼 보이는데, 부잣집 아가씨 같아서 학생 아가씨라도 내가 자주 칭하는 사람이다.

어째서 지금 왔는지는 몰라도 울타리를 넘으려 했었는지, 불돌이와 실버, 골드가 매우 경계를 했다.

물론 골드는 골든 리트리버라서 경계하는 건지, 환영하는 건지 조금 애매했지만 말이다.

“얘들아, 일단 진정해. 이분은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멍!

왈!

월!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애들은 친근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곧 헥헥 거리며 그녀에게 애정표현을 했고, 그 소녀는 그 애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그게······ 역시 맞네요.”

“네?”

뜬금 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맞다니, 뭐가 맞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저, 모르시겠나요?”

“어······ 뭘 말이죠?”

“오늘 봤잖아요.”

“네? 아 네. 지금 보고 있죠.”

“그게 아니라요!”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조금 답답하다는 눈치로 말하는 학생 아가씨였다.

그런데 학생 아가씨에게서 오늘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왜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아저씨, S기업 다니시죠?”

“어라? 제가 말한 적이 있던가요?”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아시죠?”

내가 알기로 학생 아가씨에겐 내가 S그룹에 다니는 걸 말한 적은 없었다.

딱히 비밀로 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게임에선 미나 정도에게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약간 수상하게 여기며 물어보았는데, 그녀가 곧바로 대답했다.

“오늘 회사 앞에서 봤잖아요.”

“회사 앞에서요? 저를요?”

“네, 아저씨도 저 봤잖아요.”

“회사 앞에서······ 어, 어라?”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회사 앞 벤치에 앉아 있던 학생.

뭔가 기시감이 들었던 그 학생.

그 모습이 이 학생 아가씨와 닮았던 것이다.

“앗! 그때 그 학생?”

“이제 아셨나보네요.”

“와 학생 아가씨. 저희 회사에 가족이 있으셨나 보군요.”

“······뭐, 그런 셈이에요.”

나는 뭔가 반가움을 느껴서 친근하게 말했다.

역시 회사에 가족이 있어서 기다렸던 거구나.

“밤에 아버지를 마중하러 오셨던 건가요?”

“비슷해요.”

“이야, 학생 아가씨 효녀네요.”

“이지혜.”

“네?”

“제 이름이에요.”

“아, 저는 사공진. 성이 ‘사’이고 이름이 ‘공진’입니다.”

통성명을 하는 그녀에게 내 이름도 말해주었다.

“공진씨. 그러니까 저는······.”

“이야, 그런데 어느 팀의 어느 분이 아버지세요?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인가 해서요.”

“······.”

“호, 혹시 임원 분이?”

나는 분위기적으로 월급쟁이의 딸 같지 않은 그녀가 혹시 임원의 딸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셈이에요.”

“아이고, 이거 높으신 분의 따님을 제가 몰라 뵙고······.”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허리를 푹 숙이면서 인사했다.

나이? 그런 것은 샐러리맨에게 중요하지 않다.

임원의 딸에게 함부로 대했다가 찍히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기에 극도로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공진씨.”

“아뇨, 그럴 순 없죠. 혹시 목 안 마르신가요? 주스라도 만들어 드릴까요?”

“······네.”

“아휴, 바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즉석에서 사과주스를 만들어서 주었다.

목이 말랐는지 그녀는 시원하게 마셨다.

“하아, 고마워요.”

“에이 별 말씀을. 사과주스 정도야 같은 회사 식구의······ 아니, 임원 분의 따님인데 얼마든지 드리죠.”

“······.”

나는 공손하다 못해 아부에 가깝게 말했다.

옆에서 헥헥 거리고 있는 실버였다면 지금쯤 꼬리를 흔들고 있을 것이다.

이런 팔자에도 없는 아부를 다 하게 되다니, 조금 기분이 묘하군.

사실 회사에서도 임원과는 마주칠 일도 거의 없는 말단 사원인데 말이다.

“저기. 그런데 오늘 찾아온 이유는요······.”

“네. 참 우연이죠? 게임에서 만났는데, 현실에서도 만나게 되다니. 꼭 소설에서나 있을 이야기잖아요. 앗! 이상한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에요.”

“저기 저 좀 도와주세요.”

“네 뭐든······ 네? 뭘요?”

갑작스레 도와달라는 말에 정신없이 아부하고 있던 내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아무리 아부를 떨더라도 부탁은 제대로 들어봐야하기 때문이다.

덥썩 도와준다고 했다가 뭔 일이 날지 모르니 말이다.

“빵을 만들고 싶어요.”

“만드시면 되잖아요.”

“못 만들어요. 아빠가 반대하거든요. 우리 집안에 그런 거 배워서 뭐하겠냐고요.”

“아······.”

대충 상상이 갔다.

대기업 임원의 부잣집 집안.

그 집안의 딸은 파티시에가 되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하는 것이다.

아마도 파티시에보단 의사나 변호사, 뭐 그런 돈이 더 되는 직업이 되길 바라는 부모겠지.

사실 요즘은 파티시에도 인기만 있으면 돈을 많이 벌지만 말이다.

부잣집 정도라면 딸이 파티시에를 해도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보수적인 집안인 모양이다.

“그럼 절 찾아오신 이유는······.”

“제과점을 만드셨잖아요.”

“네.”

“파티시에 필요하시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절 고용해주세요!”

“으음······.”

뭔가 다짜고짜 덤벼드는 모양새였다.

나는 조금 곤란함을 느꼈다.

사실 제과점의 파티시에가 필요하긴 한데, 아무나 고용하긴 곤란해서 NPC를 찾아낼 때까지 내가 빵을 만들어 운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받아들이기도, 거절하기에도 곤란한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받아들이자니, 일단 집안에서 반대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실력도 알아봐야하는 것은 둘째 치고.’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괜히 밉보이는게 아닌가 싶었다.

임원에게 찍히면 출세길 막히고 그대로 4년간 뛰었던 커리어가 날아가 버리니 말이다.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부탁해요, 집안에선 눈치가 보여서 연습도 못한단 말이에요. 돈은 필요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제가 드릴게요.”

“아뇨, 그럼 안 됩니다. 절대로.”

돈 이야기에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그냥도 부담스러운데 부잣집 임원의 딸을 돈 받아가면서 부려 먹는다?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그것만은 단호하게 거절했는데, 어쩐지 거절당했다고 받아들이는지 의기소침해 하는 이지혜양이었다.

게다가 내가 돈 받아가면서 파티시에 지도까지 해줄 실력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게임 시스템으로 흉내와 기분만 내는 것 뿐이다.

진짜로 빵을 굽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게······ 게임에서 빵을 굽는 거랑 현실에서 굽는 거랑은 많이 달라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 스킬로 구현되어 있지만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제과 혹은 제빵을 할 수 있도록 구현되어 있습니다. 혹은 스킬의 간섭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

내가 변명삼아 말하자, 골렘이 끼어들면서 말했다.

이런, 골렘의 친절한 설명이 곤란할 때가 다 있네.

골렘의 말을 듣자, 이지혜 양의 표정이 밝아졌다.

“음, 하지만 이지혜양, 집안에서 알면 제 입장도 많이 곤란해지고······.”

“게임하는 데엔 참견하지 않아서 알 수 없어요. 부탁이에요, 꼭 정식 파티시에가 되고 싶어요.”

“제 제과점에서 일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집안에서 반대하는데······.”

“제가 빵을 잘 굽기만 하면 할아버지께서 아빠한테 말해주기로 했어요. 할아버지라면 아빠도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

“흐음······.”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다.

까짓것 딸의 소원이라는데 그냥 들어주면 안 되나?

부자들의 심리는 알다가도 모를 것 같다.

게다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딱 잘라 거절하기도 뭣했다.

“음, 그럼 일단 실력 좀 봐도 괜찮을까요?”

결국 나는 마음을 조금 돌렸다.

“와아, 고마워요.”

“아, 일단 결정한 건 아니에요. 기본적인 빵들을 구울 줄 아는지 확인해야하니까요.”

나는 진짜 파티시에처럼 말했다.

그러니 꼭 기분이 묘한데, 요리 만화의 사부 캐릭터가 된 기분이다.

여하튼 곧바로 그녀를 데리고 화덕에서 빵을 굽게 되었다.

사과파이, 사과타르트, 크루아상을 구워보이곤 따라서 굽도록 해보았다.

나는 스킬을 이용해서 금방 구워버렸는데, 그녀는 일부러 스킬을 쓰진 않았다.

정확히는 골렘의 말대로 스킬을 적당히 이용해서 제빵에 필요한 시간은 절약하는 듯했다.

결국 나보다 더 잘 구운 완성품을 보였다.

“어때요? 맛있죠?”

“······맛있네요.”

먹어보면서 맛도 확인했다.

빵을 굽는 것이 정말 즐거운 모양인지 환하게 웃는 그녀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