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7일차 로그아웃 >
나는 그후 곧바로 마법사 길드로 갔다.
제과점에서 만든 납품용 사과파이 100개를 납품시키기 위해서였다.
동물과 정령 친구들을 데리고, 활기차게 마법사 길드의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오, 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여전히 의욕이 없으시군요.”
“하루 종일 여기 앉아 있으면 있던 의욕도 사라지거든요?”
마법사 아가씨가 살짝 뺨을 불리며 말했다.
나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대답했다.
“오늘도 사과파이를 가져왔습니다.”
“그래도 그 파이 먹는 낙에라도 사네요.”
“그런가요?”
“아, 근데 영주 되신거 축하드려요.”
“들으신 모양이군요.”
“네, 무기점이랑 제과점도 냈다면서요? 제과점은 좀 기대되네요.”
내가 영주가 된 것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런 잡담을 나눈 뒤에야 계산을 하게 되었다.
“사과파이 100개, 700,000골드 여기 있습니다.”
“매번 고마워요······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죠.”
“뭐가요?”
“제가 이제 여기 영주잖아요? 근데 마법사 길드의 돈을 이렇게 빼내면 마을의 발전도가 올라가는 겁니까, 내려가는 겁니까?”
“그야 올라가는 거죠. 사과파이 덕분에 우리 연구가 더 촉진되니까요.”
“그런가요?”
“덧붙이면 저희 수입에 비하면 64시간마다 70만 골드를 쓰는 것은 그다지 큰 비용이 아니에요.”
꽤 흥미로운 말을 하기에, 마법사 길드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여러가지로 벌죠. 텔레포트 서비스 비용, 물약 판매금, 전직 비용, 마법 전수 비용, 스킬북 판매금, 인챈트, 등등······.”
“음, 대충 알 것 같군요.”
“64시간 동안 평균 100만 골드 정도는 벌어요. 그래서 이방인님의 비싼 사과파이도 사먹죠.”
“이 마을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건물일 것 같은데요?”
“맞아요, 다른 상점이나 길드에 비해 잘 벌죠.”
“하지만 세금은 그다지 많이 내지 않는 것 같군요.”
“버는 만큼 더 내긴 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내니까요.”
땅 관리 스킬로 확인한 영지 자금은 100만 골드 정도였다.
영지 세금은 10만 골드 정도였으니, 세금은 아마 상당히 적은 듯했다.
영지를 운영하는데 세금과 영지 자금에 의존하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참, 근데 물약을 판다고 하셨죠?”
“네, 저희 마법사 길드에서 물약을 취급하죠.”
“하나 봐도 됩니까?”
“뭐에 쓰시게요?”
“좀 확인할 게 있어서요.”
“뭐 그러세요, 아무거나 드리면 되나요?”
“네.”
마법사 아가씨는 곧 나에게 최하급 체력 물약 하나를 보여주었다.
아이템 설명을 보니, 내가 만드는 것처럼 추가 효과는 붙어 있지 않았다.
‘흠, 여기서도 더 뛰어난 포션을 판매할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건 군신 길드가 독점하고 싶어 할 수도 있겠어. 사실 독점 판매 계약은 없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한 번 의견은 물어보는 게 좋겠지.’
연금술도 영지 경영에 이용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일단 군신 길드의 의견, 그러니까 시화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됐나요? 사실 거예요?”
“아뇨, 한 번 구경해봤어요.”
“아이참 싱거운 분이시네.”
“그럼 저는 싱겁게 이만 갈게요.”
멍!
마법사 아가씨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자 실버가 그녀에게 한 번 짖었다.
곧 나는 애들과 함께 마법사 길드를 나왔다.
“으음, 슬슬 농장에 돌아가서 로그아웃 준비나 할까.”
오늘은 영지에 관한 일 때문에 이래저래 스케줄이 평소 루틴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운 게임라이프도 좋지만, 조금씩 변화가 있어야 지루하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들을 데리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다녀왔어, 골렘아.”
“농장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응, 근데 내가 여러 일이 있었어.”
“알고 있습니다. 주인님의 히든 피스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골렘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겪은 일들을 아는 모양이었다.
“마을의 영주가 되신 것은 고무적인 일이십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거 같더라. 그리고 말이야, 이거 내 생각인데, 잘하면 골렘의 소원도 들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무기점과 제과점을 연 것 말이야, 좀 더 사람들에게 생활 스킬의 강점을 어필하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동의합니다. 변화가 빠르진 않아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됩니다.”
“골렘이 그렇게 말하니, 나도 뭔가 기쁘네.”
내 기분이긴 하지만, 골렘이 어쩐지 기뻐하며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골렘의 말투는 그저 기계적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좀 쉬면서 내일 할 일을 생각해볼까.”
난 모닥불을 하나 피웠다.
애들과 함께 캠프파이어하듯 그곳을 빙둘러 앉아, 들소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셨다.
“일단 학생 아가씨에게서 토스트랑 마카롱, 팬케이크를 만들어보란 조언을 들었지.”
제과에 대한 조언을 늘 해주는 학생이었다.
뭔가 그쪽으로 잘 아는 눈치인데, 파티시에 지망생인 걸까?
“음식은 뭘 만들까······ 오늘은 딱히 추천받은 것이 없는데.”
제과 외에 음식을 생각해보았는데, 오늘 딱히 추천받은 것은 없다.
하지만 굽고 있는 들소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항상 생각해왔는데, 스테이크에 도전해볼까?”
들소고기를 얻었던 시점부터 스테이크는 항상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쩐지 내가 만들기엔 너무 고급 음식인 것 같아서 미뤄둔 것 같았다.
재료면에서도 후추가 없었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후추도 있고, 어쩌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스테이크랑······ 또 한 번도 안써본 고기가 있지. 칠면조 고기.”
자연히 칠면조 고기도 떠올렸다.
닭고기의 대용으로 쓸만한 고기.
물론 닭고기에 비해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칠면조로 통닭을 만들어 팔면 인기 있을까?”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한 번 상상해봤던 것이었다.
듣기로는 칠면조는 닭과 식감이 좀 다르고, 무엇보다 양이 너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게임의 모든 식료는 맛있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맛있는데 양도 많다면 인기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해봐야겠어. 내가 좋아하는 양념통닭으로. 아니, 양념칠면조구나.”
그렇게 메뉴 하나를 더 생각해두었다.
그리고 오늘 한 일을 되새겨 보며 잊은 것이 없나 생각해보았다.
“아참, 이걸 잊었네.”
[아다만타이트 도끼]
광산에서 3층 보스인 오크를 잡고 주웠던 아이템이었다.
도끼 자체는 내가 쓰기엔 너무 거추장스럽게 컸고, 이미 마법공학 톱날칼이 있다.
주목할 점은 도끼가 아니라 ‘아다만타이트’라는 재질이었다.
“골렘아, 아다만타이트는 무슨 광물이야?”
“철보다 한 단계 높은 광물입니다. 여기보다 더 레벨이 높은 지역의 광산에서 채굴할 수 있습니다.”
“이걸로 무기를 만들면 더 좋은 걸까?”
“물론입니다. 다만 아다만타이트는 미스릴과는 달리 철보다 더 무거운 재질이기에 착용제한이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한다면 철의 대용품으로 쓸 수 있으나, 그 점을 주의해야합니다.”
“그렇구나.”
골렘에게 물어서 아다만타이트의 용도를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일의 계획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만들기로 한 요리의 재료들을 농사짓고······ 트로페 마을로 가서 과일도 팔고 낚시도 하고······ 요리를 만든 다음엔 시식해보고 선술집을 열고, 그다음은 아이템을 만들고, 영지를 관리해보는 것. 흠, 그 정도가 될 것 같네.”
대충 그림을 그려졌다.
물론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어떻게 흘러가든 변수가 생기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생각한대로 되든, 그렇지 않든, 유유자적하기 짝이 없는 게임 플레이를 할 뿐이다.
“으······ 로그아웃하기 싫다.”
멍멍멍!
왈왈왈!
월월월!
삐이익
냐오옹
꼬꼬꼭
브어엉
음머어
내가 드러누워 그렇게 말하자, 모두가 울음소리를 내면서 날 격려하는 듯했다.
멀리서 옥스까지 울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어쩐지 즐겁고 기분 좋아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이 녀석들아. 알았다, 알았어. 게으름 안 피울게.”
나는 벌떡 일어나, 애들을 모두 쓰다듬어 주었다.
애들은 얌전히 쓰다듬을 받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쓸쓸함이 느껴졌는데, 그들도 내가 로그아웃하려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얘들아, 새로운 한주도 힘내서 다녀올게.”
멍멍멍!
실버가 대표로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럼 모두 안녕!”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로그아웃을 했다.
현실을 잊는 오아시스를 떠나, 다시금 현실이라는 사막을 떠돌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외롭지 않았다.
오아시스는 언제든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 * *
“큰일 났다. 큰일 났어!”
김 팀장은 공진의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계속 머리를 쥐어뜯었다.
요즘 그것이 너무 반복되어서 물리적 탈모가 일어날 지경이었다.
“벌써 영지라니, 말도 안 돼. 그것도 고랭크 길드가 영지를 차지한 게 아니라 생초보 생활직 유저가 영주가 되다니! 큰일 났다!”
매일 같이 혼자 야근하면서 공진의 플레이를 감시 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하필이면 장기래가 만든 이상한 히든 피스가 게임에서 사냥은 뒷전이고 생활 스킬만 하는 이상한 애한테 가버리다니, 정말이지 그는 하늘을 저주했다.
“평범한 유저였다면 저렇게 끈덕지게 생활 스킬만 하진 않았을 텐데······ 벌어들이는 골드만 해도 생태계 파괴 수준이잖아!”
오늘 무기점에서 그가 경매로 얻은 이윤만 봐도 일반 유저가 보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길드단위로 레이드를 해서 템을 팔아 벌 돈을, 그냥 제작으로 만들어서 벌고 있단 것이다.
명백한 밸런스 붕괴였다.
“이게 외부로 알려지면 나 말고도 여럿 모가지가 날아갈 거야.”
거기다가 그가 돈을 버는 구석은 무기점만이 아니었다.
평소에 선술집으로 벌어들이고 있는 돈도 이미 상식 외적이었다.
거기에 영지까지 생겼으니 날개가 달린 격.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야. 영지가 생겼고, 얼마지 않아 정식 영지가 된다는 거야. 군신 길드가 중립 영지를 정식 영지로 가지게 되었단 걸 외부로 알려지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되면 다른 길드들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고, 공진의 존재를 주목할 것이다.
단순히 초보자 마을의 기인으로 여기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난리가 나겠어, 젠장! 근데 이자식은 유유자적하게 놀고 있네? 어휴 열받어!”
김 팀장은 속이 타서 죽겠는데 공진은 유유자적한 모습만 보여서 더 열받는 김 팀장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군신 길드가 영지를 방어하는데 실패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다.”
정식 영지가 되면 다른 길드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김 팀장이 거는 희망은 거기서 군신 길드가 패배하고, 공진도 가진 재산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진을 저주하면서 그의 아침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