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사제의 연 >
“그런데 오늘 아직 쓰지 못한 정수와 강화석이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할까요?”
“가지고 계십시오. 그걸로 내일 아이템을 만들어서 다시 한 번 경매를 해보죠.”
“그러죠. 참, 오늘 분의 포션이나 사과파이를 만들어두지 못 했군요.”
“그건······ 오늘은 일단 생략합시다. 저도 지금부터 바쁠 것 같거든요.”
“알겠습니다. 일단 오늘 수익인 1,050만 골드를 반으로 나누죠. 여기 525만 골드입니다.”
“감사합니다.”
나와 시화가 그런 대화를 나눈 뒤, 나는 동물과 정령들을 데리고 무기상점을 나왔다.
시화는 곧바로 나에게 인사를 하고 마법사 길드 쪽으로 달려갔다.
텔레포트 서비스로 이동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농장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그런 나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허허허, 자네 벌써 새로운 건물을 지었구먼.”
“아, 촌장님.”
바로 촌장이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몰라도 내 곁에서 날 부른 것이다.
그에게 짧게 목례하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상점을 지은 모양이로군. 우리 마을엔 대장간이 있긴 했지만 제대로 된 무기점은 없었지. 헌데, 제대로 준비를 하고 지었나?”
“아, 그렇진 않습니다. 그게······.”
나는 촌장에게 조금 전까지 했던 일을 말했고, 무기상점 안은 장비들도 전시되어 있지 않아 휑하다는 것도 말했다.
“허허허, 그렇단 말은 점원이나 관리인도 없단 말이군.”
“그렇습니다.”
“자넨 몸이 하나뿐인데, 농장을 경영하면서 동시에 무기상점을 돌볼 수 없지 않겠나?”
“네, 그래서 조금 고민이군요.”
“사람을 고용하면 해결되지 않겠는가? 이 늙은이가 소개해줄 수 있다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다 우리 마을을 위한 일인데, 늙은이가 도움이 되면 당연히 도와야지.”
촌장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무기상점은 대장간과 연계를 하기 쉽다네. 그러니 대장간의 해밀튼 노인을 설득해보는 게 어떤가?”
“아, 그러면 되겠군요.”
그러고보니 무기상점의 설명창에서도 대장간과 연계할 수 있다는 말이 적혀 있던 것 같았다.
“덧붙이면 꼭 내 소개가 아니더라도 자네가 다른 건물을 지었을 때, 관리인이나 점원을 고용할 수 있다네. 일단 이번에는 내가 소개하기도 했으니 같이 가서 해밀튼 노인에게 찾아가보세.”
“예, 어르신.”
그런 뒤 나와 촌장은 마을 대장간으로 향했다.
목공소 옆의 대장간은 연로한 노인이 지키고 있었다.
그가 바로 해밀튼 노인이다.
“콜록 콜록, 험험. 무슨 일인가? 촌장? 그리고 자넨 요즘 농장을 지었다는 이방인 아닌가?”
“안녕하세요.”
나를 알아보는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촌장이 나서서 말했다.
“이제 다들 소식을 들었겠지만, 자넨 대장간에 틀어박혀서 모를 게 뻔하니 말해주겠네. 이제 이 젊은이는 우리들의 영주일세.”
“영주? 허허, 결국 그렇게 됐구먼. 그럼 영주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나를 보고 지긋이 웃으며 말하는 해밀튼 노인이었고, 나는 고개를 공손히 저었다.
“아닙니다, 어르신. 영주라고 해봐야 같은 평민인데요. 귀족도 아니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허허, 예의바르구먼.”
나는 거만 떨지 않고 정중히 말했다.
해밀튼 노인이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그런데 나한테 무슨 일인가? 그냥 인사차 온 겐가?”
“그럴 리가 있겠나.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다네.”
“내 도움이? 무슨 도움 말인가?”
“그건 말일세, 크흠. 자네가 한 번 말해보게.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촌장이 나에게 바톤을 넘겼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마을에 무기점을 지었습니다.”
“그런가? 흠, 이제 내 무기는 필요 없으려나, 이제 무기보단 농사도구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르신,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직 이르십니다. 저는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바로 무기점의 관리인으로 말이죠.”
“관리인? 내가 말인가?”
“예, 촌장님이 어르신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대장간과 연계해서 무기상점에 장비들을 채우고 싶습니다.”
“허허, 확실히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겠구먼······ 대장간은 내 아들에게 물려주고 나는 이제 무기점을 관리하는 편이 좋으려나.”
그는 아무래도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일단 내 아들을 소개해야겠군. 스미스야, 이리와 보거라.”
“예, 아버지!”
그가 스미스란 이름을 부르자, 대장간 안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해밀튼 노인의 아들로 여겨지는 중년의 남자였다.
해밀튼 노인은 그에게 내가 이제 이 마을의 영주이며, 해밀튼 노인을 무기점의 관리인으로 고용했단 점과 대장간과 무기점을 연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버지, 그럼 드디어 제게 대장간을 물려주시는 겁니까?”
“그렇다. 너도 이제 겨우 쓸만한 실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영주님보다 경지가 낮아 보이는구나.”
“그, 그렇습니까?”
“실망하지 말거라, 영주님의 실력이 워낙 좋은 것 같으니.”
순박해 보이는 스미스 씨가 머리를 긁적였다.
해밀튼 노인은 그렇게 말하곤 나에게 말했다.
“크흠, 일이 이렇게 됐으니 한 가지 부탁 좀 해도 되겠는가?”
“무슨 일입니까?”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제의 연을 맺는 법을 아는가?”
“사제의 연이라면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일반적으로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일스톤의 인도 아래에 정식으로 사제의 연을 맺는 것이 있지.”
아무래도 게임 시스템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연을 내 아들과 맺어줬으면 하네.”
“제가 스승이 되어달란 말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걱정말게, 딱히 뭘 가르쳐주란 말은 아니니. 사제의 연을 맺으면 스승의 능력을 제자가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게 된다네.”
“그렇군요······ 아, 그럼 혹시······.”
“혹시······?”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제 생활의 달인 능력이 아드님에게 적용될지도 모르겠군요.”
“생활의 달인? 자네의 직업 이름인가?”
“그렇습니다. 좀 더 농사를 비롯해서 모든 생활 직업의 능률과 결과물이 좋아지죠. 우선 그 사제의 연을 맺고, 한 번 아이템을 만들어보면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어서 맺어야겠군. 맺는 방법은 악수를 하고 ‘사제의 연을 맺는다.’라고 말하면 된다네.”
나는 해밀튼 노인이 말하는대로, 스미스 씨와 악수를 하고선 그 말을 했다.
[수습 대장장이 스미스 해밀튼과 사제의 연을 맺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창이 떠서 사제의 연이 맺어졌음을 알렸다.
그러자마자 스미스씨가 매우 고무된 모습이었다.
“오오 이 능력은······ 제 손재주가 벌써 대단해진 기분입니다, 아버지.”
“이 녀석아. 그럼 허둥대지 말고 얼른 단검 하나라도 만들어 보거라.”
“예, 아버지!”
스미스씨는 곧바로 망치를 들곤 철괴로 단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연신 망치를 두들긴 뒤, 얼마 후 단검을 만들어 우리들에게 보여줬다.
[잘 만든 7등급 스틸레토]
“음, 확실히 적용되었군요.”
“그런 것 같군. 나나 내 아들이 만들어선 ‘잘 만든’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으니까. 공격력과 내구도도 더 좋은 모양이고.”
“네, 생활의 달인 패시브 효과를 적용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무기점의 장비들은 내 아들 녀석이 만든 걸로 충당할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다만 경매로 파는 아이템은 제가 직접 만들 생각이지만요. 아, 그런데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나도 해밀튼 노인에게 부탁할 일이 떠올랐다.
“무기점에서 강화용소재를 사들여줬으면 합니다.”
“강화용소재 말인가?”
“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스미스씨가 무기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럼 무기에 좋은 옵션이 붙을 겁니다. 제 패시브 효과도 붙어서 더 좋아진 효과로요.”
“그렇지, 강화용소재를 사용하면 옵션이 더 붙지. 옵션이 없는 무기나 방어구보다 더 잘 팔릴 걸세.”
“네, 그 점을 노리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장사를 더 잘하려고 한 말이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일전에 골렘과 한 대화가 떠올라서 그렇게 말한 이유도 있었다.
‘생활 스킬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골렘을 만들어준 개발자가 바라던 일이랬지······ 우선 강화용소재가 쓸모 있다는 것부터 알리면 사람들이 대장기술이나 재봉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지.’
나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행운을 얻은 것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골렘과의 정 같은 것 때문에 골렘의 창조주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물론 내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이득을 보면서 동시에 가능성 있는 일을 해볼 뿐이다.
“잘 알겠네. 내 부족함 없이 준비하도록 하지. 우선은 대장간에 있는 무기들은 장식용으로 무기점에 진열해야겠구먼.”
“감사합니다. 그럼 임금 문제는 어떻게 할까요?”
“시간당 5,000 골드면 충분하겠구먼. 물론 우리들의 시간으로 5,000골드일세. 따로 계산할 것 없이 우리를 고용하고 있으면 자동으로 골드가 지급된다네.”
“알겠습니다.”
임금 문제는 민감한 것이기 때문에 지저분하게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꼬치꼬치 따져야할 만큼 골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윤이 넘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이 잘 풀린 것 같네. 덕분에 내 마음이 다 훈훈하구먼.”
“촌장님 덕분이죠.”
해밀튼 노인은 아들과 함께 대장간의 무기와 방어구들을 챙겨 무기점으로 향했다.
그 후 촌장이 그런 말을 했는데, 나는 촌장에게 공을 돌렸다.
“여하튼 요령은 이제 알겠지?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 자네가 다 일하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관리인이나 점원을 고용하게. 꼭 새로운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는 건 아닐세. 만약 이미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의 주민과 대화 나눠서 계약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물론 그 경우 수익을 좀 나눠야겠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영지를 번영시키면 될 걸세. 오늘 무기점을 운영한 것도 반영되서 번영도가 올랐을 걸세. 자네가 얼마나 영지를 부유하게 만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먼. 자자, 그럼 시끄러운 노인네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도움이 또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게.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안녕히 가십시오. 촌장 어르신.”
촌장은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나는 그 후, 잠시 생각에 빠졌다.
‘영지를 경영하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는데. 한 번 이런 식으로 계속 해볼까.“
무기점 외에도 지을 것은 많다.
그리고 대장간 외에도 계약해볼 만한 사업들은 많을 것이다.
진짜 영주가 된 마음가짐으로 이 마을 내가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농장을 키우는 기분과 대동소이하게 재밌다.
‘꼭 건물주······ 아니, 갓물주가 된 기분이군. 그나저나 다음 건물은 뭐로 해본다?’
아직 로그아웃 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앉아, 동물과 정령들을 쓰다듬어 주며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제과점이다.”
다음 건물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