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29화 (129/239)

< 110화 돈으로 때리는 노인 >

나는 곧바로 다음 경매를 시작하기 위해 목판을 지우고 다시 글을 썼다.

다음 경매품인 ‘잘 만든 3등급 슬라임의 만티코어 가죽 하이드 아머 세트’의 옵션을 적는 것이다.

[잘 만든 3등급 슬라임의 만티코어 가죽 하이드 아머 세트 : 방어도 70, 내구도 30/30

세트 효과 : 물리공격 대미지의 50%를 갑옷이 흡수하여 내구도가 대신 피해를 입음

속성 강화 : 내구도 감소 속도가 2배 둔감해지며, 내구도가 0이 되어도 파괴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옵션을 받아적고, 목판을 세워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 멋진 사자머리와 사자갈기가 인상적인 하이드 아머를 전시해놓았다.

그러자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다.

“와, 진짜 옵션이 저렇다고?”

“사실상 내구도가 온전한 동안 물리 대미지가 절반으로 감소한다는 거잖아?”

“내구도가 30정도면 그리 낮은 편도 아닌데······.”

“진짜 사기템이네.”

“이 겜 템빨좆망겜이었음?”

다들 목판에 적힌 옵션을 보고 경악하기도 했고, 환호하기도 했고, 몇몇은 이 게임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들 이 아이템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공통적인 모양이었다.

옆에 있는 시화는 물론이고 조금 전에 대화한 블루스 노인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나는 경매를 빨리 해서 결과를 알아보고 싶었다.

“자 그럼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시작가는 마찬가지로 20만 골드부터 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 가격입니다.”

“손!”

“자, 벌써 20만 나왔습니다. 다음······.”

“21만!”

“22만!”

“에라이 25만!”

사람들이 너도 나도 손을 들며 경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1만이나 3만 단위로 계속 가격이 올랐다.

그렇게 30만의 가격이 돌파되었을 때였다.

“50만.”

“크윽, 또 저 할배가 돈지랄을 시작하네.”

“아놔, 할아버지. 젊은 사람들 템 맞춰서 게임 좀 하겠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껄껄! 내가 자네 같은 젊은이 놀리는 재미로라도 이 짓을 못 그만두지.”

블루스 노인이 이번에도 50만을 불러버렸다.

순식간에 저가 경쟁을 하던 사람들은 전부 낙오되어 버렸다.

그렇게 블루스 노인이 또 다시 가져가는가 싶었을 때였다.

“60만.”

“6, 60만 나왔습니다!”

정적을 깨고 한 젊은 사람이 60만이라는 가격을 불렀다.

그 사람의 차림은 그냥 평범한 초보자 옷이었는데, 다른 사람과 귓속말을 하는 눈치가 보였다.

블루스 노인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허허허, 역시 승냥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군. 70만.”

경매 시작 전에 내게 말했던 ‘승냥이’를 언급했다.

아무래도 저 초보자 옷을 입은 사람은 그 승냥이 중 하나인 모양이다.

하지만 난 그 승냥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지 이해는 못하고, 그저 경매가를 따라 부르기 바빴다.

블루스 노인처럼 돈 많은 부자들일까?

“80만.”

“어림없다네, 90만.”

“······.”

“벌써 고민하기 시작하나? 자네 주인에게 이번 보물도 이 블루스가 가져간다고 전해주게.”

마치 경주하듯 경매를 하다가 90만 골드에 이르자, 초보자 옷을 입은 이가 더 이상 지르지 않았다.

블루스 노인은 그를, 정확히는 그에게 귓속말로 지시를 하는 이를 조롱하듯 말했다.

그때였다.

“100만.”

또 다른 초보자 옷을 입은 사람이 끼어들었다.

“허허허, 다른 승냥이도 왔구먼. 그쪽은 강노인 쪽 사람인가? 150만. 어디 계속 해보세.”

블루스 노인은 도발하듯 말하면서 아주 가볍게 경매가를 불렀다.

사람들은 경매가 이어가는 것을 숨죽여 보고 있었다.

큰손들끼리 돈다발로 싸우는 모습은 심장이 멎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임 아이템 하나에 벌써 150만 원이 불린 것이다.

어지간한 알바 한 달 월급이다.

하기야, 뉴스에서 아이템 하나가 억대를 호가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있었다.

이 게임에도 그런 아이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비하면 150만 원 정도야 새 발의 피겠지.

“160만.”

“어허, 170만.”

“180······.”

“200만.”

“······.”

블루스 노인은 상대가 포기하지 않자, 그냥 200만 골드를 불렀다.

그러자 그 사람도 입을 다물어버렸다.

블루스 노인이 씨익 웃었다.

“하루 용돈이 다 떨어졌나? 나는 아직도 총알이 많다네. 아들내미가 벌어주는 돈이 좀 많아야지. 자네들도 하루 1,000 정도는 쉽게 부를 텐데, 이 아이템이 아깝지 않은 건가?”

“······300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블루스 노인의 도발에 당한 것인지는 몰라도 상대가 100만 단위를 불러 버린 것이다.

“껄껄껄!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럼 나도 단위를 올리겠네. 400만!”

블루스 노인도 그에 맞서듯 따라서 100만을 더 불러버렸다.

좌중이 시끄러워졌다.

“미쳤다, 미쳤어. 게임 아이템 하나에 저렇게 돈 막 지르는게 말이 돼?”

“나중에 딴 소리하는 거 아닐까? 돈 없다고 환불해달라고.”

“경매에 그딴 게 어디 있어? 게다가 이거 아마 시스템으로 강제되는 것일걸?”

“환장하겠다. 나는 언제 저렇게 막 질러보냐······.”

구경꾼들의 한탄이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돈의 치킨 레이스는 계속 이어졌다.

“500만!”

“후후, 600만.”

“7, 700만······.”

블루스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의 맞수는 목소리가 흐트러지는 것이 들렸다.

초보자 옷을 입은 사람에게 귓속말을 하는 사람이 화를 내기라도 하는 걸까?

“1,000만!”

결국 블루스 노인이 단위를 갱신해버렸다.

그는 과장되게 지루하다는 표정을 하고선 1,000만 골드를 질러버린 것이다.

이제 내 손도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선술집이 하루 매상의 두 배가 아이템 하나에 붙어 버린 것이다.

초보자 옷의 사내가 더 이상 경매를 하지 않자, 블루스 노인은 코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후우, 오늘도 시시하게 내 승리군. 역시 싸움은 곗돈 싸움이라던가? 이거야 원 시시해서······ 슬슬 종료하게나, 젊은 친구.”

“아, 예. 어르신. 1,000만······ 더 없으시죠? 그럼 종료하겠습니다.”

물어볼 것도 없을 것 같았지만, 사람들에게 통보하듯 말하곤 경매를 종료했다.

만티코어 하이드 아머 세트도 그렇게 블루스 노인의 것이 되었다.

경매가 끝나자 구경꾼들이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다.

“와, 진짜 지려버리는 줄 알았다.”

“저런 건 뉴스나 아니면 경매장 경매리스트에서나 볼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보니까 박력 장난 아님.”

“진짜 돈다발로 싸운단 게 이런 거구나.”

“우씨, 나도 레이드 뛰어서 저런 템 하나 주워가지고 경매로 올리고 싶다.”

“님, 저 템 레이드 템 아님. 저 농부 아저씨가 만든 거임.”

“헐, 이 겜 생산직이 있었음? 나 이번 경매에 들어와서 몰랐음.”

“아저씨, 오늘 경매는 더 없어요?”

사람들은 여전히 방금 구경한 경매 싸움에 대해 떠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 경매가 더 없냐고 물어서 다시 말해줘야만 했다.

“오늘 준비된 아이템은 이게 끝입니다!”

“아, 아쉽다. 다음에 오면 나도 살 수 있으려나?”

“저런 퀄리티만 내놓는다면 큰손들 너무 와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없을 듯.”

“그래도 경매 구경하러 와야지. 꿀잼이여.”

“오늘 만들어서 그런가? 무기상점인데 보통 무기나 방어구들은 팔지 않네.”

“팔 필요가 뭐있어? 이런 경매만 해도 수익이 엄청날 텐데.”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기상점을 떠났다.

조금 한산해지자, 블루스 노인이 나와 시화에게 다가왔다.

“허허허, 오늘 시화군을 찾아서 우연찮게 걸음을 해보았더니 재밌게 놀았구먼.”

“네? 시화씨를 아시나요?”

“그럼, 시화군도 나를 알지.”

블루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시화를 바라보았다.

시화는 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허허, 여전히 예의바른 청년일세.”

“감사합니다. 헌데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자네가 요즘 이 마을에 어떤 사람하고 거래를 틀고 있단 말을 들어서 말이지. 마침 자네가 있는 곳을 물어보았는데, 또 그를 찾아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 마을에 와봤네.”

“아······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네. 자네로군, 맞지?”

블루스 노인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섰다.

나는 괜히 긴장이 되어서 공손히 말했다.

“예, 최근 시화씨랑 거래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름은 사공진입니다. 게임 닉네임도 사공진이고요. 공진이라고 부르십시오.”

“그렇군, 공진군. 듣기로는 자네 여기서 선술집도 한다고?”

“네, 알고 계셨습니까?”

“자주 들었네. 내 손녀가 자네 단골이라더군.”

“손녀님이요?”

“손녀님은 무슨, 자네보다 한참 어릴 텐데. 자네 선술집에서 먹는 빵이 맛있다더군.”

“아, 그렇군요.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허허, 그러지. 나도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자네 선술집에 들리지.”

“예, 문 여는 시간은······.”

“나도 대충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네. 술맛이 좋다는데, 나도 가봐야지. 허허, 그럼 나중에 보세.”

블루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곤 무기상점을 떠났다.

“아이템 경매란 게 이 정도로 호황일 줄은 몰랐군요.”

시화에게 말했다.

그러자 시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예상 밖의 말을 했다.

“경매장에선 이런 것이 다소 흔하게 일어납니다. 레이드템을 두곤 경쟁이 치열하죠. 아마 그래서 비슷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될 줄은 예상 못 했지만요.”

“그렇군요. 레이드템이 원래 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까?”

“네, 그래서 레이드템이 나왔다고 레이드템을 전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수익을 위해 경매장에 내놓습니다. 그 레이드템들은 부자들의 개인 아이템이 되거나 아니면 경쟁 길드가 사버리죠. 저희들은 그런 식으로 이윤을 남깁니다.”

“그렇군요.”

그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의심 되는 점이 있던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제가 만든 아이템들을 경매장에 팔아도 됐던 것 아닙니까? 훨씬 큰 이윤이 남았을 텐데······.”

“그건 공진씨를 두고 기만하고 이용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공진씨가 만든 아이템은 절대 개인용도로 팔지 말고 길드 레이드 용으로 쓰도록 했습니다. 군신 길드의 명예를 걸고 그런 더러운 짓은 용납 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제가 만든 아이템을 길드원 분들이 직접 사용하고 계신 것을 봤습니다.”

“네. 그런데 이번 일을 보니 마냥 저희가 사용하기만 하는 것도 비효율적인 일로 판명되었군요.”

시화는 그렇게 말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나에게 다시 말했다.

“공진씨, 거래 계약을 조금 바꾸도록 할까요?”

“어떤 것을 말이죠?”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어서 저희들에게 팔기보단 이렇게 경매를 하고 수익을 나누는 것으로 말이죠.”

그의 말에 나는 조금 생각을 했다.

아니,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하죠.”

재밌게 아이템을 만들고, 그걸 더 비싸게 판다면 더 재밌지 않겠는가?

더 이상 기존의 거래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시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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