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28화 (128/239)

< 109화 블루스 노인 >

무기상점 안으로 들어간 나와 시화는 그 안의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대부분 목재로 되어 있지만, 무기 거치대와 매대들이 늘어서있다.

전형적인 판타지풍 무기점의 모습이다.

물론 판매하는 무기나 방어구 같은 것은 전혀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아직 휑한 모습이지만, 안 쪽까지 제대로 만들어져 있군요.”

“그러네요. 무기 같은 것을 잔뜩 비치해두면 인테리어가 살 것 같은데.”

건축 스킬로 상점만 만들었으니 그 안에 무기까지 채워줄 리는 없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풍스럽지만, 다소 무기점인가? 싶은 인테리어의 상태였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

“원래 계획대로 아이템을 팔아야죠. 양모 옷 세트랑 가죽 갑옷 세트 말이에요. 한 번 얼마에 팔릴지 봅시다.”

“그럼······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겁니까?”

“네, 게임을 하면서 해본 적 있으시지 않나요?”

“그게······.”

내 물음에 시화는 다소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보아하니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공진씨와 했던 것 같은 개인적인 거래 정도는 해봤지만, 장사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요? 제가 가상현실 게임을 잘 모르지만, 초보 시절이라든지, 한 번쯤은 해보게 되지 않나요?”

“저는 아무래도 자급자족하는 스타일이라서요. 아이템을 사기보단 그 아이템이 드롭되는 몬스터들을 계속 사냥하는 식으로 아이템을 모았죠. 쓰던 아이템은 헐값에 처분하고요. 장사라고 해볼만한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뭐 상관 없습니다. 시화씨는 그냥 옆에 서있으시면 됩니다.”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됩니까?”

“네, 랭킹 1위가 옆에 서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아이템의 상품가치가 올라가겠죠.”

“······.”

나의 말에 시화가 조금 멋쩍은 표정이 되었지만, 딱히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그 후, 나는 작은 목판을 만들어 분필로 그곳에 글자를 썼다.

[잘 만든 3등급 산행하는 스켈레톤의 양모 옷 세트 : 방어력 30,  내구도 20/20

세트 효과 : 착용자에게 가해지는 화살 공격이 40% 확률로 무효화 된다.

속성 강화 : 거친 지형에서도 체력 페널티를 무시한다.]

먼저 경매할 물건인 스켈레톤 양모 상하의의 아이템 스테이터스를 간략하게 적었다.

그리고 그 목판을 세워두고 그 옆에 경매품인 양모 옷을 내놓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손님들 오면 애교부리면서 얌전히 있어야 한다.”

멍멍멍!

월월월!

왈왈왈!

냐오옹

삐이익

브어엉

꼬꼬꼭

나는 한 곳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당부했다.

애들은 알겠다는 듯이 울음소리로 대답했다.

기특해서 한 마리씩 쓰다듬어 준 뒤, 무기상점의 문을 열었다.

“장사 시작합니다! 제가 직접 만든 방어구 두 세트 팝니다! 와서 구경만 하셔도 좋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바깥에는 여전히 구경꾼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외쳤다.

왠지 인턴 시절, ‘나가서 아무거나 팔아봐.’라는 미션을 했던 때가 기억났다.

멋모르고 싸구려 양말과 팬티만 샀다가 고역을 치른 적이 있었다.

결국 야밤에 술 빨고 찜질방 앞에서 보따리 장사를 해서 다 팔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경험 덕분에 호객행위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저씨, 이제 아이템도 만들어 파시는 거예요?”

“네, 무기상점을 지어서 여기서 팔게 되었습니다. 아직 개장 첫날이라 아이템은 두 세트 뿐이지만요.”

“비싸게 팔 것 같은데······ 그래도 구경해볼래요.”

한 손님이 그렇게 들어왔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고, 선술집 사장님 아니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아이템도 파시는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마을에도 건물을 지을 수 있던가요?”

“아 그건······ 으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직은 영주가 되었단 것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은 껄끄럽게 여겨져서 대답을 대충했다.

눈치 빠른 사람은 그쪽을 의심할 것 같지만, 내가 입 다물면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

적어도 아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 귀찮은 일을 좀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가요? 어쨌뜬 음식이나 술 잘 먹고 있습니다. 원랜 즐기려고 먹고 마셨는데, 최근엔 틈틈이 버프빨로 사냥도 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아이템도 파신다니 기대가 되네요. 저도 좀 구경하겠습니다. 여차하면 사고요.”

“네, 들어오십시오.”

그 손님도 무기상점에 들어왔다.

또 다른 손님들이 말을 걸었고, 나는 그들에게 친절히 대답하면서 안으로 호객을 했다.

곧 상점 안이 북적해질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안 쪽에선 벌써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뭐? 저 천옷을 입으면 40% 확률로 화살 공격이 무효화 된다고?”

“그렇다고 적혀 있는 것 같네요.”

“에이 뻥이겠지. 설마 진짜겠어?”

“저런 거 하나만 입으면 궁수 상대로는 거의 무적이 되는 거잖아? 궁수 입장에선 템빨좆망겜 되는 거고.”

“게다가 천 옷이니까 이너아머 판정으로 갑옷이랑 중첩 착용도 되지. 물론 저 옵션이 사실이어야 좋은 거지만.”

내가 적어 놓은 목판의 옵션을 두고 모두 다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옵션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부터 시작해서, 사실일 경우 얼마나 사기인지에 관해서 말이 오갔다.

나는 그런 이들을 뒤로 하고 카운터를 통해 시화 옆으로 돌아왔다.

“자자, 여러분. 여기 적힌 옵션은 이 양모 옷의 실제 옵션이 맞습니다.”

“정말이에요? 어떻게 알아요?”

“그건······ 옆에 계신 시화님이 보증해주실 겁니다. 소개합니다, 군신 길드의 길드마스터입니다!”

누군가의 물음에 나는 기지를 발휘하여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시화를 앞세웠는데, 그는 조금 당황한 듯 하면서도 곧 침착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군신 길드의 길드마스터 류시화입니다.”

“와, 정말 흑태자다.”

“잘생긴 것 보소.”

“그보다 저 아저씨 말이 사실이에요?”

시화가 나서자 더욱 소란스러워졌는데, 시화는 마지막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본래는 저희 길드에 납품할 예정인 아이템이었으나, 오늘 여러 사정으로 이곳에서 시험 판매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군신 길드의 이름을 걸고, 이 아이템의 옵션은 여기 적힌 그대로입니다.”

“헐, 군신길드가 쓰려고 했던 거래.”

“그럼 거짓말일 리가 없지.”

사람들이 다시 숙덕였다.

하지만 전처럼 아이템의 옵션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어졌다.

역시 군신 길드의 명성 덕분에 보증이 확실히 되는 모양이다.

“자자, 그럼 바로 경매에 들어가겠습니다. 경매 시작가는 딱 20만 골드로 하겠습니다!”

“아저씨, 너무 비싸잖아요.”

“20만 골드라니······ 20만원이네. 현실 옷값인가.”

“근데 저런 옵션이면 20만 골드면 싼 거긴 한데······ 같은 성능의 레이드템들이 훨씬 비싼 거 생각하면.”

“아직 모르는 일이지, 겨우 경매 시작가니까.”

경매시작가를 부르자마자 사람들은 비싸다는 여론을 만들었다.

몇몇이 레이드로 얻는 템과 비교하면서 긍정하긴 하지만, 아직 입찰을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분, 이런 기회 자주 오는 거 아닙니다. 원래는 군신 길드에 납품하려 했던 아이템을 무기상점을 만든 기념 삼아 파는 겁니다. 앞으로 또 팔지는 미지수죠. 지금 기회를 놓치시면 앞으로 구경도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가격도 원래는 군신길드에 납품하던 단가입니다. 사실 이것도 제작 원가 수준입니다. 속성 강화에는 강화석이 하나씩 들거든요. 상하의에 한 개씩, 그러니까 합쳐서 20만 골드죠. 저는 지금 땅파서 장사하는 수준입니다.”

나는 옷장수로 빙의해서 입담을 내뱉으며 말했다.

침을 튀기며 말하자, 사람들의 여론이 조금 바뀌었다.

“강화석이 든다고? 아 그럼 저런 가격도 납득이 가지.”

“인챈트가 아니라 속성강화? 확실히 속성강화라고 적혀 있네.”

“속성강화 효과도 쩔잖아?”

“방어력이랑 내구도 좀 오르고 능력치 붙는 인챈트랑은 또 다른데······.”

“저거 강화해서 쓰면 대박일 듯.”

“저기요 내가 먼저 입찰하겠소!”

드디어 첫 입찰자가 나왔다.

나는 그 사람을 지목해 “네, 첫 입찰자! 20만골드!”라고 외쳤다.

그 사람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웃었는데, 그게 기폭제가 된 듯했다.

“20만 골드를 지르다니······ 확실히 그런 가치가 있는데······ 아 어쩌지.”

“어쩌긴 어째, 달려야지. 아저씨 21만 골드!”

“달려? 나도 달린다! 22만 골드!”

“와 이사람들 지갑 터지는 거 보소, 현실에선 동대문 옷입고 다닐 양반들이.”

“마, 게임에서라도 명품 입어야지. 23만 골드!”

“아니, 반칙이다! 24만 골드!”

곧바로 사람들이 경매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30만 골드가 순식간에 돌파 되었고, 어느새 40만 골드 가까이 되었다.

“39만 골드!”

“크윽······ 난 여기까지가 한계인데.”

“이거 사면 이제 술도 못마셔.”

“에이, 음식 도핑이나 하게 아껴야겠다.”

“신상보고 배 아프단 기분이 이런 거였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유저가 39만 골드를 부르자, 더 이상 부르는 사람이 없어졌다.

“39만 골드! 더 이상 없습니까?”

“하하, 이 아이템은 닌자늰자님께서 가져가시겠다!”

39만 골드를 부른 닌자늰자란 특이한 닉네임의 유저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이들이 이를 갈면서 그를 노려보았지만, 달리 하는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흠, 이대로 입찰이 되는 걸까? 생각했던 것보다 큰 이득은 아닌······

“50만 골드.”

그때, 정적을 깨는 한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말했다.

“5, 50만 골드 나왔습니다! 갑자기 등장하신 정체불명의 노신사님!”

50만 골드를 부른 사람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셨다.

나는 그 사람을 처음보는데, 사람들은 그를 아는 듯했다.

“앗! 왔다! 경매장의 큰 손, 블루스!”

“레이드템을 싹 쓸어 가신다는 거물 중의 거물이시잖아!”

“현실에서 건물 몇 채는 가지고 계신 땅부자라고 하던데!”

사람들이 놀라는 중에 그 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런 개꿀템을 요로코롬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니, 쯧쯧 젊은이들은 돈이 없어서 불쌍하구먼.”

“크윽······ 뼈 때리시네, 할아버지가.”

닉네임이 블루스인 것 같은 노인은 확실히 차림이 휘양찬란했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었는데, 광채가 나고 있었다.

시화만큼 멋지진 않아도 뭔가 ‘템빨’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허허허, 입찰 진행은 안할 텐가?”

“아, 하, 하겠습니다. 50만 골드, 더 없습니까? 그럼 경매 마감하겠습니다!”

양모 옷 세트는 결국 블루스 할아버지 것으로 확정되었다.

나는 그와 아이템과 골드를 교환하면서 그의 말을 듣게 되었다.

“허허허, 보아하니, 한 세트를 더 경매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 경매에도 참가하겠네.”

“아, 네······ 그런데 이런 가격이 경매장에서 오가는 것이 보통인가요?”

“보통이냐고? 더 비싸게 오간다네. 허허허, 내가 직접 쓸 거지만, 돈 없는 애들은 여기서 사서 그곳에 비싸게 팔 생각이었을 걸세. 나 같은 큰손이 있으면 그럴 순 없을 테니 경매 시작가를 올리는 것을 추천하는군.”

“아, 그렇군요. 하지만 어르신 같은 분이 매번 오실 리는 없겠죠.”

“자네 모르는군.”

“네?”

영문을 모르는 나에게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한 번 입소문 타면 바로 승냥이들이 오기 마련이지. 벌써 몇 명 보이는군.”

“······.”

노인의 말이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다음 경매의 가격은 대체 얼마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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