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26화 (126/239)

< 107화 영지 >

“언젠가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르군요.”

촌장의 제안을 들은 시화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반응으로 볼 때, 이 일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닐 것 같았다.

물론 시화가 괜히 엄살을 떨거나 연기를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시화는 그렇게 영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흑태자라는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강직하고 정직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신용해서 부른 것이기도 하고.

“본래는 그래도 저희가 먼저 영지를 얻은 다음에 공진씨가 영지를 얻으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아직 얻은 것은 아니죠. 제가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니까요.”

“촌장의 제안을 거절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엔 이건 제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시화씨와 상의하려 한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의 물음에 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습니다. 아, 물론 공진씨를 무시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지를 가지는 것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여러 가지 면에서요. 예를 들면 영지를 가지게 되면 조만간 영지전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영지전이라······ 길드나 혈맹끼리 영지를 두고 싸우는 그것 말입니까?”

“네, 뭐······ 혈맹이란 말은 엄청 오래된 게임에서 쓰인 단어지만요. 여하튼 그런 겁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역시 그렇군요. 그럴 땐 두 말할 필요 없이 군신 길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길드는 기꺼이 도움을 드릴 겁니다. 공진씨도 저희 길드의 일원이고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할 때, 저희가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가입하시지 않았습니까?”

시화는 호언장담하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나는 군신 길드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도와줄 것.’을 걸었다.

혹시 몰라서 걸었던 세 번째 조건이었는데, 이럴 때 딱 필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도와달라곤 할 순 없겠죠? 영지가 걸린 일인데.”

“음, 그게 좀 민감한 문제입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공진씨가 먼저 말씀하셨군요.”

“아직 영지를 어떻게 다스리게 될지, 어떤 이득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나는 수익을 배분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네, 하지만 얼마나 벌고, 얼마나 배분하느냐가 문제죠. 저희 길드의 스폰서도 영지를 원했고 거기서 나는 부가이득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문제인 것이······.”

“저는 그 스폰서와 계약하지 않았다는 점이군요.”

“예, 그 점이 스폰서와 마찰을 빗을 수 있습니다. 사실 길드 단위로 얻기 마련인 영지를 개인이 얻으면서 생기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계약과 돈이 얽힌 문제라 단순한 의리와 약속만으로 도움을 바랄 수 없단 의미다.

물론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촌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약속을 어긴 군신 길드와 거래를 끊을 순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군신 길드는 영지를 얻을 기회도 잃고, 나와의 신뢰관계도 잃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나 시화나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혹시 그 스폰서 대표자와 연락이 가능하십니까?”

“네? 직접 말씀을 나눠보시려고요?”

“아, 제가 직접 말할 필요까진 없고요. 그냥 말만 전해주면 됩니다. 저는 5:5 계약을 원합니다. 영지에서 나는 수익을 정확히 절반으로 나눠가진다는 조건으로 군신길드의 도움을 받는 거죠.”

“5:5라······ 스폰서의 입장에선 저와의 계약 내용인 3:7을 원할 겁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공진씨도 저의 길드원이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 점을 확실하게 구분 지어야 합니다. 저는 일종의······ 고용된 프리랜서라고 말이죠. 군신 길드가 아니라, 개인인 제가 얻은 것을 길드의 협력을 구한다는 조건으로 수익을 나누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다고 받아들일까요?”

“합리적이라면 받아들일 겁니다. 프리랜서로 계약된 사람이 이윤이 나는 일을 스스로 나누려고 하면서 5:5 조건을 내건다? 이런 것을 거절하거나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건다면 정상적인 곳이 아닌 겁니다. 더욱이 이 영지를 얻으면서 길드가 얻는 부가효과도 많을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다른 영지를 얻을 때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든지.”

“······맞는 말입니다. 그럴 수 있죠. 그럼 지금 당장 대표에게 연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화는 그렇게 말하곤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가상현실 캡슐에선 전화를 걸거나 받는 기능이 있다.

그걸 통해 스폰서 대표자와 통화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와 말했다.

“다행히 잘 설득 된 모양입니다. 처음엔 5:5 조건을 마음에 들지 않아했지만 공진씨의 말을 거의 그대로 전했더니 설득되었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이번 일은 문서화된 계약이 필요합니다. 사안이 무겁기 때문에 길드가입때처럼 구두계약만으로는 하기 어렵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지만, 저희가 나중에 배신이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네, 그러니 스폰서 쪽에서 저에게 연락을 줬으면 하는군요.”

“음, 그럼 연락처와 주소를 말씀해주셔야 하는데······.”

“어쩔 수 없죠. 시화님을 중개인으로 믿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네, 절대 사적인 일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아 물론 공적인 일로도 허락없이는 쓰지 않을 겁니다.”

나는 시화에서 주소와 연락처를 가르쳐주었다.

다시 시화가 스폰서 중개인에게 연락하는 듯했고, 곧 그는 일이 잘 되었다는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스폰서 측에서 계약서를 작성해서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조만간 연락도 드리기로 했고요.”

“자세한 사항은 그쪽과 얘기해보도록 하죠.”

“그럼······ 촌장에겐 계약이 성사된 이후에 말해볼 생각이십니까?”

“아뇨, 지금 당장해볼 생각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시화씨도 함께 보고 여러 가지 의논을 했으면 하는군요.”

“저야말로 괜찮은지 여쭙고 싶군요. 계약사항을 확인한 후에 하시는 것이 좋지 않나요?”

“뭐, 여기까지 구두계약이 오갔는데 계약으로 장난치진 않을 겁니다. 제가 그런 장난에 속을 레벨도 아니고요. 시화가 게임에서 선수인 것처럼, 저도 이런 것에는 선수거든요.”

“그렇군요.”

“그보다 어서 빨리 촌장에게 가보고 싶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 영지 획득은 베타테스트 때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얻진 못 했거든요.”

나나 시화나 모두 기대에 부푼 상태였다.

그래서 당장 촌장의 집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실버, 골드, 호크, 불돌이, 물방울, 태산이, 바람이도 같이 가기로 했다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농장은 제가 안전하게 지키겠습니다.”

골렘은 농장에 남기로 했지만 말이다.

동물과 정령들을 이끌며, 나와 시화는 마을로 향했다.

가는 도중 유저들의 시선을 사게 되었다.

“농장 아저씨잖아? 앗! 옆에 저 사람은?”

“군신 길드의 길드마스터 시화잖아. 너무 멋지다.”

“두 사람이 무슨 일로 같이 가는 거지? 마을에 가는 모양인데.”

“농장 아저씨야 여기서 농사만 짓지만, 흑태자는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지나가거나 토끼를 잡던 사람들이 숙덕였다.

나는 조금 신경 쓰여서 별 의미 없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시화는 이런 일이 익숙한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마을에 도착한 나는 경비병에게 말을 물어, 촌장의 집 위치를 알아냈다.

그런 후, 그를 찾아갔다.

촌장의 집은 다른 NPC들의 집과 별 차이 없이 소박한 집이었다.

“자네왔군. 그리고 어쩐지 명망있어 보이는 이방인도 함께. 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어르신.”

촌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나는 즉답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따윈 없었다.

“자넨 이제 이 마을의 영주일세.”

[하펜 마을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촌장의 간단한 말이 끝나자, 즉시 그런 메시지가 떴다.

“이걸로 끝입니까?”

“뭐, 취임식이나 그런 거라도 기대했나? 애석하지만 우리 마을은 그리 사정이 넉넉하진 않아서 말일세. 자유 영지이기도 하고······ 물론 원한다면 나중에 성대하게 할 수는 있네.”

“꼭 바라는 건 아닙니다만······ 뭐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허례허식이죠.”

“끌끌, 마음에 드는구먼. 물론 몇 가지 조언을 해주겠네. 우선 자네가 영주가 되었지만, 귀족이 된 거라고 착각하진 말게나. 귀족서임을 받진 않았잖나? 물론 마을 사람들은 자네가 영주인 만큼 존경을 표하겠지만, 성격상 친근하게 구는 이들도 있을 걸세. 뭐, 자네의 모나지 않은 성격을 볼 때, 그건 별 문제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귀족놀음 하고 싶어서 영주가 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내 성격이라면 귀족이 된다고 해도 NPC에게 친절하게 굴지 않을까?

게임 속에서 귀족이 되었다고 진짜 귀족인양 으스대는 것이 더 이상할 것 같다.

촌장이 계속 말을 이었다.

“자네 혹시 땅 관리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농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일세. 분명히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여하튼 그걸로 영지를 다스릴 수 있네. 영지를 가졌으니 땅 관리 스킬이 강화되는 것이지. 직접 써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걸세. 한 번 지금 써보게나.”

“알겠습니다.”

나는 촌장의 권유대로 땅 관리 스킬을 써보기로 했다.

“땅 관리.”

[소유영지]

[하펜 마을]

땅 관리 스킬을 사용하자, 주변이 초록색으로 표시되었다.

영지를 얻으면서 본래 붉은 색이었던 마을이 녹색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개인자산인 촌장의 집이나 다른 NPC들의 집, 상점 등은 여전히 붉은 색이다.

사유재산의 개념인 듯했다.

그런 변화 외에도 소유영지 밑에 하펜 마을이라는 커맨드가 생겼다.

나는 그것을 클릭해보았다.

[영지, 하펜 마을

초보 이방인들을 인도하는 초보자 마을 중 하나. 본래는 촌장이 다스렸으나, 마을에 기여도를 쌓은 이방인 ‘사공진’이 영주가 되었다. 아직은 소속된 국가가 없는 자유 영지다.

거주 인구 : 472명

세금 수입 : 24시간마다 102,421골드

현재 자금 : 103,2364골드

영지 발전도 : 2385/5000

주민 사기 : 나쁘지 않음]

그러자 마을의 대략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시스템창이 떴다.

거주 인구는 NPC들의 숫자를 말하는 것 같고, 세금 수입은 그들이 세금으로 내는 골드를 말하는 것이리라.

세금 수입과 자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 선술집의 하루치 수익보다 훨씬 초라했다.

발전도는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고, 사기는 주민들의 만족도 같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스템창 외에 눈에 띄는 것이 또 있었다.

[건물 건설]

하단에 그런 세부 커맨드가 생긴 것이다.

나는 호기심에 그것을 눌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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