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촌장 방문 >
오늘도 선술집을 닫을 때가 되었다.
버프를 얻은 사람들이 사냥을 떠났고,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하나 둘 선술집을 떠났다.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나는 적당하다 싶을 때 폐점을 알렸다.
늘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서 술을 홀짝이던 손님들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아,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먼. 잘 마셨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장님 덕분에 회사에서 겨우 버팁니다. 내일도 오겠습니다.”
박리다매 전략인 저렴한 술들을 팔면서 술꾼들이 더더욱 늘었다.
그들은 모두 고맙다며 인사를 하곤 떠났다.
“장사 끝인가요?”
“그렇지. 넌 길드원분들이랑 같이 안가?”
“저는 이제 로그아웃하려고요. 실제로 자는 편이 피부에 더 좋거든요.”
“연예인 지망생도 고생이구나.”
“후후, 그래요. 가끔은 엄마 말대로 결혼이라도 하고 싶어요.”
“오, 너도 그런 소리 들어?”
“어? 그럼 오빠도?”
“응, 오늘 애인은 없는지, 결혼은 안하는지 물어보셔서 심란하더라고.”
“어머······.”
우연히 화제가 그렇게 흘러갔다.
미나는 어쩐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말했다.
“그래서 사귀는 애인은 없으신······ 거죠?”
“응? 물론 없지. 사귈 틈이 어디 있어. 매일 자정까지 야근하는데.”
“우와, 너무하네요. 혹시 오늘 주말인데도 출근한 거예요?”
“응. 대기업은 다들 그래.”
“휴가 같은 건 안 내요?”
“낼 순 있긴 한데······ 사실 이제 딱히 낼 이유도 없으니까. 일하는 거, 익숙해졌거든.”
“오빠 조금 워커홀릭 아니에요?”
“하하, 그럴 지도.”
워커홀릭이란 말에 반박할 건덕지가 별로 없어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미나는 어째선지 조금 심각하게 말했다.
“너무 일에만 몰두하면 좋지 않아요. 제 오빠도······.”
“네 오빠가?”
“과로로 쓰러졌거든요. 암도 그것 때문에 걸렸던 모양이고요.”
“아······ 그렇구나.”
미나는 그런 말을 하곤 다소 의기소침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내게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공진 오빠도 무리하거나 그러진 말아요.”
“그러지 않아. 예전에는 그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을 하고 난 뒤엔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잘 풀고 있으니까. 뭐, 애인은 여전히 못 사귀겠지만.”
“호호호, 그럼 저는 어때요?”
“뭐, 뭐라고?”
미나의 마지막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갑작스런 말이라 깜짝 놀라면서도 나는 순간 온갖 망상이 다 들었다.
말 그대로 결혼하고 난 뒤 손자까지 보게 되는 망상을 한 것이다.
“자, 장난이에요!”
“아, 아하하 그렇지. 진심으로 그럴 리가 없잖아.”
미나도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자, 당황하면서 말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뻘쭘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요······ 오빠가 매력 없는 사람이란 말은 아니에요, 오히려······ 아으으 저 그냥 갈게요.”
“응? 그래. 잘 가.”
미나는 갑자기 서둘러 선술집을 떠났다.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쪼르르 달려가 버렸다.
잠시 후, 선술집에는 더 이상 손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정리를 마치곤 정산을 해보았다.
“29,729,700골드. 500만 골드를 좀 넘게 벌었네.”
근소하지만 메뉴를 추가해서인지 갈수록 수익이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덧 3,000만 골드도 바라보았다.
나는 쌓이는 골드를 어떻게 쓸지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거금을 쥔 적이 없어서 쓸 곳이 마땅찮긴 하네.”
부모님께 또 뭔가 선물을 해줄 수도 있지만, 괜한 잔소리를 들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흔히 돈 생기면 떠올리는 차, 옷, 집 같은 것도 그다지 욕심이 나지 않아서 곤란했다.
혼자 사는데 그런 것들은 딱히 필요 없는 것이다.
회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출근하면 되었고, 옷도 필요한 만큼이면 그만이다.
집도 넓을 필요가 없었다.
“연애도 결혼도 안 하니 돈 쓸 곳도 없어지는군. 어머니께서 보면 또 한 소리하겠네.”
남은 것은 저축이나, 주식인데 둘 다 마땅찮은 일이었다.
그저 저축만 할 생각이라면 그냥 골드 상태로 놔두는 것이 세금을 내지 않아서 더 좋다.
돈으로 환전하는데도 원천징수가 따라붙기 때문이었다.
주식은 속칭 ‘개미핥기’를 당하고 싶진 않아서 전혀 생각이 없었다.
사실 돈을 신경 쓴다면 가장 베스트인 선택은 그냥 이대로 이 게임을 하는 것이다.
“모르겠다, 그냥 쌓아둬야지. 가상현실 게임은 해킹도 안 당하니까 현실보다 안전하기도 하고······.”
마음에 걸리는 점은 이 게임이 만약 인기를 잃어서 골드 수요를 잃어버리는 것인데, 스폰서가 어마어마한 것 같은 <군신>길드를 보면 그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골드는 이대로 가지고 있기로 했다.
“끄응, 이제 좀 쉬다가 아이템이나 만들어 볼까?”
오늘도 <군신> 길드에 납품할 아이템을 만들 예정이다.
그전에 좀 쉬려고 선술집을 나왔을 때였다.
“이보게.”
“음?”
선술집을 나서자, 흰 수염과 흰 머리가 성성한 노인이 나를 불렀다.
외향으로 볼 때 NPC같았다.
울타리에 있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가 이 농장의 농장주인가?”
“그렇습니다. 농장주 공진입니다. 처음 뵙는 분이시군요.”
농장에 NPC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다.
NPC들 사이에서 소문은 있었지만 다들 마을의 자기 위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지 여기까지 오진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NPC는 그럼에도 찾아왔단 것인데, 무슨 일이지?
“나는 하펜 마을의 촌장 하르파일세. 노라에게 소개를 받고 왔다네.”
“노라? 혹시 여관집 아가씨입니까?”
“그렇다네. 그 아이가 자넬 소개해주었지. 보기 드문 이방인 농부라고 말이야.”
“뭐, 그런 셈이죠.”
나는 여관집 아가씨, 그러니까 노라가 촌장에게 소개하겠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그 후로 노라를 찾아갈 일도 없었고 별 소식 없어서 잊었거니 했는데, 진짜로 촌장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저에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네와 상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다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선술집 안에서 말씀 나누시죠.”
나는 노인을 계속 울타리에 세워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뭣해서, 안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를 선술집의 테이블로 안내한 후, 위스키를 권했다.
노인은 수락했고, 그에게 스카치 위스키와 과일모둠을 내주었다.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술을 한 모금 했다.
“맛있군. 잘 담근 술일세.”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군요.”
“허허허, 노인에게 친절한 것을 보니 자넨 분명 좋은 사람이지?”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오늘 찾아오신 일과 연관이 있는 질문이십니까?”
“그런 셈이라네.”
촌장은 그렇게 답하곤 술을 한 모금 더 했다.
그리곤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하펜 마을은 영주가 없다네.”
“아, 들어본 적 있습니다. 자유마을이라고요.”
“그렇다네. 초보 이방인들을 인도하는 조건으로 받은 축복인 셈이지. 하지만 마냥 축복만은 아닐세.”
“뭔가 문제가 있나요?”
“문제라고 해야 할까······ 문제라기 보단 자유의 대가라고 보는 게 맞겠지. 다스리는 지배자가 없으니, 우리 마을은 발전이 더딘 편이라네. 초보자들은 빨리 떠나니까 상주하는 인구도 적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
“그렇군요.”
“하지만 최근 유동인구는 좀 늘었다네. 왜인지 알겠나?”
“설마······.”
“그렇다네. 자네 덕분이지.”
촌장은 거기까지 말하곤 술을 다시 한 모금했다.
그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선술집을 연 덕분에 이곳에 더 이상 찾아올 이유가 없는 고레벨의 유저들도 와주었다네.”
“단순히 제 선술집에 온 걸로 마을에 큰 이득이 될 일은 없었을 텐데요.”
“그렇지, 하지만 가능성은 열어주었다네. 그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마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야. 물론 지금처럼 낙후된 초보자 마을이어선 그럴 수 없겠지.”
“그렇군요.”
“자네, 마법사 길드에 도움을 주었다고?”
“도움이라기 보단 거래를 했을 뿐이죠. 마법사 길드가 필요로 했던 것을 돈을 받고 제공했을 뿐입니다.”
“어찌되었거나 마법사 길드가 마탑 회원 자격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 자네 덕에 말일세. 이 또한 가능성이라네. 우리 마을도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야.”
촌장은 목이 자주 타는지 다시 술을 마셨다.
그리곤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슬슬 우리 마을에도 지도자를 정할 때가 온 것 같다네.”
“그런 말씀을 저한테 하시는 것은······.”
“그래, 자네를 염두에 두고 있다네.”
“······.”
나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일전에 시화와 대화하면서 이 마을이 ‘영지’가 될 가능성에 대해 들어 보았기 때문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영주가 되는 조건인 마을에 대한 기여도를 많이 높여버린 것이다.
“저는 농장주인을 뿐인데, 영주는 좀 더 대단한 사람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마을을 거들떠도 안 보는 사람들 말인가? 그런 이들을 신용하긴 어렵지.”
“저도 선의로 마법사 길드를 도운 것은 아닙니다. 돈이 되니까 한 것일 뿐이죠.”
“마을을 다스리게 되면 더 많은 돈을 벌 기회가 있을 것일세.”
“그게 또 저는 돈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거든요. 돈보단 재미를 우선시하죠. 제가 만약 영주 같은 것이 되면 마을을 망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자넨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모양이지만······ 이 농장을 보면 자네는 충분히 성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네.”
“농장을 가꾸는 일은 재미있으니까요.”
“그럼 우리 마을을 자네의 농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을 가꾸는 것 또한 재미있을 걸세.”
“······.”
촌장의 마지막 말에 나는 조금 혹하는 기분이 들었다.
농장만 가꾸는 것도 재밌을지 모르지만, 마을 단위를 성장시키는 것도 뭔가 재밌지 않을까?
영지물 소설이나 유명한 도시 건설 게임처럼 말이다.
하지만 덥썩 맡아버리면 농장을 신경 쓰지 못할까봐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나 혼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촌장에게 말해야만 했다.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절 도와주는 사람의 의견도 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거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네. 결정을 하게 되면 마을을 찾아와 내 집에 와주게나.”
촌장은 내 대답에 일단 만족했는지 술을 마저 마셨다.
그리곤 자리에 일어섰다.
“만약 자네가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나누도록 하지. 자네의 일에 최대한 방해되지 않도록 배려하겠네. 사실 우리들의 영주가 되면, 자네는 자네가 편한 대로 하면 될 일이지만 말이야.”
“흠, 일단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허허허, 그렇다니 다행이라네. 그럼 좋은 대답을 기대하겠네.”
“안녕히 가십시오.”
촌장은 그리 말하곤 선술집을 떠났다.
나는 잠시간 테이블에 앉아 생각했다.
“이거 판이 더 커지는 느낌이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