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24화 (124/239)

< 105화 5일차 선술집 오픈 >

선술집이 열렸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언제나 그렇듯 학생 손님들과 성인 손님들도 나뉘어져 있었다.

학생 손님들은 버프효과에 관심이 많아서 빵을 주로 사먹었고, 성인 손님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술과 음식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특별했다.

“아저씨, 여기도 돈가스랑 샐러드 하나요!”

“저도 주문 받아주세요!”

“돈가스 멀었나요?”

“나도 돈가스 먹고 싶다······ 풀 버프 받는다는데 개쩔듯.”

학생이나 성인을 가리지 않고 유독 돈가스가 인기인 것이다.

버프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돈만 여유로우면 돈가스를 시키려고 했다.

모든 능력치 30 증가가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었다.

물론 버프만 좋은 건 아니다.

“크으, 맥주랑 같이 먹으니까 술술 넘어간다.”

“국산 맥주랑 맛이 다른데, 이게 뭐지?”

“외국 맥주가 베이스인가봅니다.”

맛도 나쁘지 않은지 호평이었다.

밥도 넉넉히 주고 샐러드도 풍성한데다가 고기도 큼직하니 평이 나쁠 수가 없을 것이다.

맛잘알이 아닌 나도 그렇게만 내놓으면 누구든 좋아할 거란 사실은 알고 있다.

“사장님 오늘은 김치도 내어주네요?”

“네, 오늘 담가서 반찬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김치 맛이 괜찮네요. 앞으로도 반찬이 더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치에 대해서도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반찬이기 때문에 그리 각광받진 않지만, 그래도 호평인 듯했다.

사실 지금까진 음식에 반찬이 없어서 썰렁한 면이 있었는데, 김치 하나만 추가해도 많이 보완이 되는 것이다.

“저기, 오빠! 저 왔어요.”

“아, 왔니?”

한창 장사를 하던 중, 오늘도 <군신>길드와 장미나가 찾아왔다.

아직도 미나의 오빠 소리가 낯간지럽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어색하지 않게 인사했다.

미나와 인사를 나눈 다음엔 <군신>길드원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 중에는 지난번에 환도‘수호자’차고 두석린갑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눈에 띄었는데, 내가 만든 쯔바이헨더 ‘도살자’와 할버드 ‘대적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도살자’와 ‘대적자’는 너무 커서 가지고선 앉기 불편했는지 곧 인벤토리에 넣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내 인사를 받곤 한 마디씩 했다.

“좋은 무기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별명도 무기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네? 그렇다면······.”

“제 별명이 도살자가 되었죠.”

“저는 대적자입니다.”

“같은 길드라서 경쟁할 일은 별로 없지만, 그런 별명 덕에 라이벌 같은 느낌이 됐네요. 하하!”

두 사람은 넉살 좋게 웃었고, 나도 작게 웃었다.

만들때도 라이벌 구도로 만든 무기인데, 무기를 쓰게 된 사람도 그 의도를 따라가게 된 것 같다.

묘하게 흥미로운 일이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되었다.

“언젠가 공진씨도 저희 길드가 사냥하거나 전투하는 모습을 보게 되셨으면 좋겠군요.”

“벌써 공진씨가 만든 아이템들이 큰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향후엔 더 큰 활약이 기대되고요.”

“그렇군요.”

소모적인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그들도 음식을 주문했다.

<군신>길드원들은 버프보단 식도락을 위해 먹는다.

그래서 술과 안주 위주의 주문을 했다.

“오빠, 벌꿀주 맛이 좋네요. 사과향이랑 사과맛이 나는데······ 사과를 넣었나요?”

“응, 사과벌꿀주인 셈이지. 그런데 너는 길드원들과는 안 마셔?” “전 여기가 좋아요.”

미나는 <군신>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이 아니라 bar에 앉아서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랑 섞이는 스타일은 아닌 걸까?

활발해 보였는데 의외였다.

“사람들하고 마시는 건 불편해서 그런 거야?”

“네? 아니요. 저 사람들하고 잘 마셔요.”

“그럼 왜 여기 앉아 있는데?”

“음, 그건 말이죠. 오빠랑 이야기하는 쪽이 더 재밌는 것도 같아서요.”

“뭐?”

“길드원 분들하고는 다른 때에 자주 이야기 나누니까요. 여기선 오빠랑 더 말하고 싶어요.”

“나랑 이야기해서 뭐가 좋다고?”

천진하게 말하는 미나였고, 나는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조금 두근거렸다.

연예인 지망생인 만큼 예쁜 여자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데,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나한테 관심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옷깃만 스쳐도 결혼에 손주까지 생각한다더니 사심이 벌써 가득하구나.’

두근거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온갖 망상이 다 떠오르는 것을 느낀 나는, 극도로 자제심을 발휘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어머니에게 결혼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이 영 심란한 모양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미나가 계속 말했다.

“그야 공진 오빠와 대화하면, 어쩐지 제 오빠가 생각나서요.”

“네 오빠가? 왜?”

“후훗, 그러게요, 왜일까요? 그냥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 말? 그럼······.”

“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 미안하네. 괜히 떠올리게 해서.”

“에이, 뭐 공진 오빠가 무슨 잘못이에요?”

“날 보면 오빠가 떠오른다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기분 풀라는 의미에서 한 잔 더 서비스 할 게.”

“어머 고마워요.”

미나에게 서비스로 벌꿀주를 한 잔 더 주었다.

그런 뒤, 나는 주문을 받기 위해서 바를 잠시 떠났는데, 이번엔 어제 못 보았던 낯익은 소녀가 있었다.

“앗, 안녕하세요. 학생.”

“안녕하세요.”

빵에 대해 자주 조언해주는, 어쩐지 부잣집 아가씨 같은 여학생 손님이었다.

어제는 무슨 일인지 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넉살 좋게 인사했다.

“애인이신가요?”

“네?”

“방금까지 이야기했던 사람이요. 저기 바에 앉아 있으신 분.”

“아, 아하하하. 그냥 아는 사람입니다. 애인 같은 거 아니에요.”

“그래요?”

“네, 주문은 뭘로 하시겠어요?”

“오늘은 돈가스를 파시네요?”

“네, 빵은 그다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돈가스를 만들어봤죠. 버프효과가 뛰어나고 맛도 그럭저럭 괜찮아요.”

“한 번 먹어보죠.”

학생 아가씨는 품위있는 목소리로 주문을 했다.

나는 다소 귀빈을 대접하는 느낌이 들어서 긴장하며 돈가스를 만들어 내놓았다.

왠지 이상하게 이 아가씨에겐······ 뭐라고 해야 할까······ 굽실거리게 되는 것 같다.

뭐, 실제로 부잣집 아가씨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니까.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예쁘게 플레이팅 한 후, 포크와 나이프를 함께 내놓았다.

음료는 사과주스를 선택한 아가씨였다.

“샐러드도 맛있고, 고기도 부드러운데다가 튀김옷도 너무 느끼하지 않네요. 소스도 그럭저럭 좋아요. 다만 우스터소스는 아닌 것 같군요.”

“아, 네. 우스터소스는 넣지 않았습니다. 재료가 없어서 만들지 못 했거든요.”

“나름대로 풍미가 있어서 나쁘지 않아요.”

돈가스를 스테이크 먹는 것처럼 우아하게 먹는데, 김치도 곁들여 먹는 것이 보여서 참 묘한 모습이다.

그 돈가스 집에서 재벌집 상견례하는 드라마가 생각나서 조금 웃기기도 했다.  물론 웃지 않고 겨우 참았지만 말이다.

곧 그녀는 돈가스를 다 먹었다.

우아하게 먹는데도 제법 먹는 게 빨랐는데, 먹는 것에 나름대로의 테크닉(?)이 있는 모양이다.

“디저트가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아, 그렇군요. 디저트라······.”

“디저트로는 마카롱을 추천해요. 만들 수 있나요?”

“글쎄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찾아서 만들어 보는 재미로 하는 거죠 뭐.”

“그럼 토스트와 팬케이크도 추천할게요. 그 두 개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매번 좋은 아이디어를 주시네요.”

“별 거 아니에요. 그럼 이만.”

학생 아가씨는 그렇게 떠났다.

묘한 손님이다.

게임 내의 차림새는······ 마법사? 아마 그런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다시 바로 돌아왔다.

“뭐에요, 오빠?”

“응?”

“완전 도둑놈이시네. 애인이에요?”

“무슨 소리야.”

“방금 나간 학생 말이에요. 엄청 친하게 지내던데······ 나이를 생각하면 아웃 아닌가요?”

“멀쩡한 사람 범죄자로 만드는 소리 하지 말아줄래?”

미나가 시답지 않은 소리를 했다.

자신도 시답지 않은 소리란 것을 아는지 베시시 웃었다.

“그나저나 오빠는 회사일 안 힘들어요?”

“응? 당연히 힘들지.”

“그래요? 그게······ 길드 마스터님께 들었는데, 제법 많이 벌지 않아요? 아이템을 팔아서 말이에요. 물론 이 선술집도 많이 벌 것 같지만.”

“선술집이 더 벌어. 꽤 많이 벌긴 하지.”

“그럼 왜 회사를 관두지 않아요?”

미나는 어쩐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묻는 이유를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미나는 자신의 일이 힘든 모양이다.

“확실히 돈만 보면 이제 회사를 그만두고 이 게임에만 집중하는 게 맞는지도 몰라. 하지만 이래저래 관두면 난 후회할 것 같아.”

“어째서요?”

“당연히 회사에서 쌓은 인맥 같은 것을 잃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회사를 관두고 일로써 이 게임을 하면 더 이상 힐링이 아닐 것 같거든.”

“아, 지난번에 말한 힐링 말이군요.”

“응. 만약에 내가 돈에 집착해서 하루 종일 게임에만 몰두한다면······ 그건 더 이상 여가가 아니지. 지금 같은 재미를 느끼지 못할 거야. 게다가 게임은 불안정하잖아? 언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특수가 끝날지 모르는데, 불안해서 잠이나 오겠어?”

“흐응······.”

“자, 내 이야기는 그 정도고. 미나도 한 번 이야기해봐.”

“네?”

“너도 일이 힘드니까,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한 거 아냐?”

“······예리하시네요. 둔한 줄았는데.”

미나는 싱긋 웃으면서도 곧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연예인 지망생이 비전이 별로 없어요.”

“응, 힘들겠지. 연예인이 되는 건 말이야. 인맥도 필요할 테고, 그 외 여러 가지도······”

“단순히 그런 게 아니에요. 이제 시대가 바뀌었어요. 연예인이란 직업 자체의 정체성도 위협받는 시대에요.”

“왜?”

“이 게임을 하시니 잘 아시잖아요? 지나가던 NPC들도 연예인 수준으로 아름다워요. 생각도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죠. 기획사가 마음만 먹으면 가상현실 인공지능 연예인을 만들 수도 있어요.”

“아······.”

미나의 말은 SF공상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더 이상 공상이 아닌 이야기기도 했다.

미나의 말대로 내가 아는 마을의 여성형 NPC들도 연예인들만큼이나 예쁘니 말이다.

“그런 세상에선 연예인도 입지가 좁아지는데, 연예인 지망생이 힘든 건 당연한 일이겠죠. 활로를 다들 찾으려고 하지만, 길은 묘연해요. 이제 무엇이 연예인을 연예인답게 만들어주는 걸까요?”

“그건 너무 철학적인 말인데.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방법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 특히 미나는 말이야.”

“저요? 제가 왜요?”

“난 말이야. 이 게임을 하면서 NPC를 보고 두근거린 적은 없어. 근데 음, 조금 쑥스러운 말이지만 미나와 이야기하면 조금 그러거든? 그런 차이가 아닐까? 나도 논리적인 답은 낼 순 없지만,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해. NPC도 사람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

우는 연예인하면 여전히 진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물론 이게 조금 모순적이긴 해. 나는 게임에서 가짜 농사를 지으면서 힐링을 느끼고 있는데 말이야.”

“······.” 어쩐지 심각한 이야기로 발전했다.

하지만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그 정도였다.

이 문제의 답은 사람의 인식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내 말이 도움이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힘내.”

“흐음······ 알겠어요. 그나저나 조금 그러던가요?”

“응?”

“절 보면 조금 두근거리던가요?”

“······.”

“오빠, 저한테 관심있죠?”

“어······ 벌꿀주 하나 더 줄까?”

나는 모른 척하면서 서비스를 하나 더 챙겨주었다.

장사를 하는 내내 미나가 끈질기게 물어보았지만, 다행히 얼버무릴 수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