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힐링 호 >
“만티코어라면 전에 정수로 받았던 몬스터군요.”
“네, 중상급 몬스터죠. 이번엔 도축 스킬을 배운 길드원이 있어서 가죽을 가져와 봤습니다.”
“가죽이라······ 확실히 동물 가죽보다 더 질긴 것 같군요.”
만티코어의 가죽을 만져보았다.
눈으로만 봐도 사자가죽처럼 질겨보였지만, 만져보니 확연히 더 단단하고 탄력이 느껴졌다.
이거라면 충분히 좋은 가죽옷이나 갑옷을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옷을 만들어드릴까요, 가죽 갑옷을 만들어 드릴까요?”
“공진씨 마음대로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어제 만들어주신 가죽 옷도 무척 길드원들이 좋아했습니다. 너도나도 가지고 싶어 했죠.”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흠, 그럼 안 만들어 본 걸 만들어보죠. 하이드 아머라고 생가죽을 이용해 만드는 가죽 갑옷이 있는데, 그걸 만들어보겠습니다.”
“기대되는군요.”
시화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나는 가죽을 챙기곤 상식도 얻을 겸 게임의 근황을 물어보기로 했다.
“별 다른 뉴스는 없습니다. 길드 랭킹도 저희가 부동의 1위고요. 아, 그걸 유지하는데 공진씨의 아이템이 정말로 유용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그런데 길드 랭킹이라······ 길드끼리 서로 싸우기라도 하는 겁니까?”
“아, PVP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직 입니다. 아무도 영지를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지금은 몬스터 수렵과 레이드로 경쟁하고 있죠.”
“아직이란 말은 조만간 할수도 있단 말처럼 들이는군요.”
“하하, 네. 누구든 영지를 가지게 되면 조만간 길드간 PVP를 하게 될 겁니다. 서로 그러려고 물밑작전을 펼치는 중이죠. 스폰서를 확보하고, 더 좋은 템을 모으려고 하고, 사람도 모으고 있고······.”
“게임인데도 상당히 바쁘고 생각할 것이 많아 보이는군요.”
“네, 사실상 저희에겐 일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따라잡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한동안 시화와 잡담을 나눴다.
“그럼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네, 안녕하가십시오.”
이야깃거리가 떨어진 뒤에서야 그와 작별을 했다.
뭐, 곧 또 보게 되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시화가 떠난 뒤, 나는 다음 할 일을 생각해보았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김장을 담가야하는데······ 문제는 재료네.”
대부분의 재료는 이미 있다.
하지만 단 하나가 문제였다.
“액젓이 없어. 골렘아, 액젓의 재료인 생선이나 새우를 얻으려면 바다야 가야한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트로페 마을로 가야겠네.”
까나리, 멸치, 새우 등을 잡으려면 바다 낚시를 해야한다.
그것도 배를 타고 나가서 그물로 낚시를 하는 것이다.
취미로 하는 낚시라기보단 뱃노동이 될 것 같은데······.
“주인님, 이번엔 제가 동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응? 골렘도 바다에서 놀고 싶어?”
나는 골렘의 말에 반쯤 농담으로 말했다.
물론 골렘이 그런 이유로 말했을 리는 없고, 매우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바다항해는 연안항해라고 해도 여러 잡무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이번엔 동물들보다 저를 데려가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확실히 배에 개들을 태워도 할 만한 일은 얼마 없을 것 같았다.
또한 바다항해에 동물들을 동행시키는 것은 위험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럼 정령들이랑 너와 나만 가도록 하자. 실버랑 골드가 여길 지키고.”
나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그 후 시화가 떠난 선술집을 나와서 동물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음머어어
꼬꼬꼭
옥스는 여전히 온순하게 울기만 할 뿐이었고, 호크는 알아들었는지 몰라도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낑, 끼잉······.
다만 실버가 아쉬워하듯이 낑낑 거리고 있었다.
최근엔 골렘이 경비를 서서 자주 같이 다녔는데, 오랜만에 경비를 맡기니 외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골드가 옆에서 그에게 맹렬히 애정표현을 하면서 달래고 있었다.
실버의 표정도 덕분에 밝아졌는데, 역시 골드를 분양하긴 잘한 것 같았다.
“그럼 가자, 얘들아.”
왈왈왈!
냐오옹
삐이익
브어엉
정령친구들과 함께 마을로 향했다.
다만 걸음이 무척 느린 태산이는 품에 안고, 걸음은 빠르지만 아직 아기고양이라 보폭이 느린 물방울은 머리에 얹었다.
불돌이는 신이나서 뛰어다녔고, 바람이는 용맹하게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내 뒤를 수행하듯 골렘이 따라왔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저흰 지금 바다로 가는 중입니다, 주인님.”
“아냐아냐, 골렘아. 이건 동요야.”
“제 데이터베이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야 오래된 동요니까. 없을 수도 있지.”
골렘과 잡담을 나누면서 마을에 도착했고, 한달음에 마법사 길드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오오······ 앗, 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의욕 없는 마법사 아가씨.”
“뭐에요, 그런 호칭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아직은 사과파이 팔러 오신 거 같지도 않고.”
“텔레포트 서비스를 쓰러 왔어요. 트로페 마을로 갈 거거든요.”
“아하, 뭐 그런 거 같았어요. 이번엔 그 마법공학 골렘이 동행자인가요?”
“네. 그럼 2만 골드죠?”
“맞아요.”
“여기 있습니다.”
나는 텔레포트 서비스의 값을 치렀다.
동물친구들 없이, 골렘이 동행인이라 2인분으로 취급받아 2만 골드를 냈다.
정령들은 나와 합쳐서 1인분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값을 따로 치를 필요가 없었다.
“그럼 좋은 여행 되세요.”
마법사 아가씨의 인사와 함께 나와 골렘, 그리고 정령들은 트로페 마을에 도착했다.
지난번과 같은 해변에 도착했다.
“바다는 또 봐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야.”
왈왈왈!
그림 같은 해변에 푸른 바다를 보면서 말했다.
여전히 아름답고 느긋한 풍경이지만, 사람은 없다.
이 해변에는 몬스터가 없기 때문에 사냥을 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주인님, 배를 빌리시거나 만드셔야 합니다.”
“음, 직접 만들어보자. 그 편이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
“목공스킬을 이용해 간단한 배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어디 찾아볼까······.”
[목공, 바사
가장 기본적인 소형 범선. 연안항해에 적합하다. 주로 어부나 연안무역상들이 이용한다.
필요한 재료 : 목재 30개, 못 30개, 돛 만들기용 가죽 혹은 천 20장
필요한 도구 : 망치, 목공 스킬 Lv5, 재봉스킬 Lv5] “이거면 될 것 같네.”
바사라는 마스트 한 개짜리 배, 소위 말하는 돛단배가 있었다.
척봐도 가장 초보적인 함선처럼 보였다.
곧바로 배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는데, 목재가 부족했었지만 근처 숲에서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엔 모형을 망치로 두들겨 배를 만드는 작업과 돛을 바느질해 만드는 작업을 골렘과 나눠서 했다.
대략 1시간 정도 느긋이 만드니 배가 완성되었다.
[목공 스킬 레벨 업!]
“다 만들었다. 그런데 이건 범선이라기 보단 그냥 크기만 큰 나룻배 같은 느낌이네.”
만들고 나니 그런 느낌이 더 들었어.
한 10명은 탈 수 있을까? 그것마저도 10명이나 타면 비좁아질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대단한 항해를 하려는 것도 아니라서 실망할 것도 없었다.
곧 배를 밀어 바다에 띄우려 했다.
아무리 소형이라도 범선은 범선이라서 무거웠으나 골렘이 괴력을 발휘했고, 태산이가 땅을 모래밭을 조종해서 쉽게 배를 띄울 수 있었다.
곧 나는 모든 정령들을 배에 태웠다.
특히 불돌이가 물에 젖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제가 돛을 조정하겠습니다. 주인님은 키를 이용해 배를 운항해주십시오.”
배에 타자마자 골렘은 능숙한 선원처럼 돛을 조정했다.
내가 할 일은 키를 이용해 바람을 타고 전진하는 배를 조종하는 것 뿐이었다.
“야후, 난 세상의 왕이다!”
나는 배에 관련된 영화 대사를 외쳐보았다.
아니 잠깐, 이 대사 어쩐지 불길한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타이타닉이라고 배가 침몰하는 이야기의 대사였다.
뭐, 정말로 배가 침몰할 리는 없겠지.
“주인님, 낚시 스킬을 이용하셔서 어류를 추적하십시오.”
“아, 그래. 정신 놓고 아무 곳에나 가면 안 돼지.”
선장이 된 기분으로 마구 항해하고 있었는데, 골렘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나는 먼 곳에서 보이는 물고기 무리를 향해 배를 몰았다.
“물방울아, 물고기들을 유인해줄래?”
냐오오옹
물방울은 울음소리를 낸 뒤, 물고기들을 유인했다.
그 후 철광석을 대충 묶어 닻처럼 내려놓아 배를 고정시킨 뒤, 그물을 던졌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순식간에 묵직해진 그물을 골렘과 함께 잡아당겼다.
제대로 찾아왔는지 까나리, 멸치, 작은 새우들이 잔뜩 잡혔다.
물론 그것만 잡히지 않았고 큰 새우와 여러 바닷물고기들도 잡혔다.
“오늘도 회를 많이 팔 수 있겠는데.”
여기 온 이유는 김장에 쓸 액젓을 만들려고 했던 거지만, 부수적으로 횟감으로 쓸만한 바닷물고기들을 잔뜩얻었다.
“후후후후, 내 그럴 줄 알고 초장과 고추냉이 간장을 챙겨왔지롱.”
더불어서 막걸리도 챙겨왔다.
TV에서 막 건져 올린 물고기를 배에서 회쳐먹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런 체험을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렇게 하게 되었다.
나는 광어 한 마리를 순식간에 회를 쳤다.
40cm는 족히 되어보여서 푸짐한 횟감이 차려졌다.
그것을 초장과 간장에 찍어 인벤토리에 쌓인 싱싱한 상추와 함께 먹었다.
“으음, 정말 맛있다.”
회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다.
나는 흥취가 돌아 막걸리도 들이켰다. “캬아······ 배에서 마셔서 그런가? 더더욱 좋네.”
물론 현실에선 음주항해는 음주운전만큼이나 위험한 짓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항해 중이 아니라 쉬는 중이기도 하고, 게임에선 술을 마셔도 만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배멀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선지 그냥 뱃놀이하면서 유유자적하는 기분이었다.
음음,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여유란 말이지.
“냠냠 쩝쩝 후루룩. 부어라, 마셔라, 먹어라!”
왈왈왈!
냐오옹
“불돌이 너도 한 입 먹어라!”
왈!
“물방울아 막걸리 한 잔 할래?”
냐오오옹
정령중에서 유일하게 뭔가 먹을 수 있는 불돌이에게 회도 주고, 술 좋아하는 물방울에겐 막걸리를 주었다.
태산이는 브어어엉하면서 마음껏 졸고 있었고, 바람이는 넓은 바다를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 정말로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이다.
필요한 까나리와 멸치, 새우를 다 잡았으니 유유자적하게 놀았다.
다시 배를 운항한 것은 술이 깬 다음이었다.
“항구로 돌아가 배를 정박시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래, 항구로 가야겠다. 그런데 내가 길을 모르는데.”
“제가 알고 있습니다. 방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골렘이 있어서 나침반도 없이 항해가 가능했다.
우리들은 곧 트로페의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관리자가 다가와서 정박료로 1만 골드를 요구했다.
초보자들에겐 비싼 돈이지만 나에겐 푼돈이라 그냥 주었다.
“배 이름이 뭐요?”
항구관리자가 물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힐링"
그렇게 힐링 호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