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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113화 (113/239)

< 95화 6일차 로그아웃 >

그 후 나는 사과파이를 100개 만들었다.

군신길드와 마법길드에 팔기 위한 것이었다.

만들 것도 다 만들었으니 나는 시화에게 귓속말을 하고 휴식을 취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물소고기를 하나 구우면서 와인을 곁들여 마셨다.

“후우, 역시 고기엔 와인이지.”

고기엔 레드와인, 생선엔 백포도주, 상식선에서도 널리 알려진 궁합이다.

즉석 직화구이 스테이크를 해먹고 있으니 와인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멍멍!

“알겠다, 욘석아. 자, 여기.”

멍!

실버가 맛있게 구워진 고기를 먹고 싶은 눈치라 잘라 주었다.

친근하게 한번 짖더니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실버였다.

“공진씨, 저 왔습니다.”

“아, 시화씨. 오셨군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고기를 다 먹었을 무렵 시화가 찾아왔다.

나는 그를 항상 그랬듯 선술집으로 들였다.

이젠 그도 익숙한 손님인지 불돌이와 실버가 그의 주변을 맴돌며 환영하듯 애정표현을 하고 있었다.

“오늘 만든 브랜디와 과일모둠입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과일모둠도 엄청 풍성하네요.”

“열대과일을 추가하게 되어서요.”

나는 그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했다.

그는 목이 말랐는지 브랜디를 한 모금하곤 사과와 바나나를 맛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했다.

“오늘 저희 길드원들이 이 선술집을 방문했을 텐데, 폐를 끼치지 않았을지 모르겠군요.”

“아뇨, 전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와주셔서 감사했죠 뭐. 제가 판 갑옷과 무기를 쓰고 계시던 분도 만났습니다. 덕분에 흥미가 솟아서 오늘도 아이템들을 제법 재밌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시화와 적당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도 술을 꺼내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뒤, 우리는 거래를 시작했다.

[잘 만든 5등급 홉 고블린 주술사의 시원한 후드 달린 양털 점퍼]

[잘 만든 5등급 홉 고블린의 얼려버리는 양모 바지]

[잘 만든 4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차가운 라이더 자켓]

[잘 만든 4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냉기돌풍 라이더 바지]

[잘 만든 4등급 싸늘한 츠바이헨더 ‘도살자’]

[잘 만든 3등급 맹추위의 할버드 ‘대적자’]

[장인이 만든 3등급 얼어붙은 자이언트 슬레이어의 플레이티드 매일]

“오늘은 꽤 심열을 기울여 만들었습니다. 양모 옷은 더위와 추위 모두 잡을 수 있게 만들었고, 가죽 옷은 공격에 콘셉트를 맞췄습니다. 무기와 갑옷도 마찬가지로 얼음속성에 맞췄고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옵션이 정말로 좋군요, 이걸로 저희 길드의 전력이 더 강화될 겁니다. 잘만 활용하면 더 위험한 레이드에도 도전할 수 있겠군요.”

“조금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보통은 아이템을 어떻게 얻는 거죠?”

“사냥이나 레이드를 통해서 전리품으로 얻거나, 업적점수를 쌓아서 업점상점을 이용합니다. 드물게 NPC들에게 재료를 주고 만들 때도 있었습니다만, 공진씨를 만나고 난 뒤엔 그러지 않죠.”

“그렇군요.”

골렘과의 대화가 떠올라서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역시나 아직까지도 생활 스킬을 쓰는 ‘유저’는 없는 모양이다.

있어도 길드에 나처럼 길드에 납품할 만큼 뛰어난 사람이 없거나 말이다.

“이번에도 100만 골드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런데 지난번에도 물어보았지만, 스폰서가 있어도 돈을 너무 쓰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요. 제가 걱정할 건 아니지만······.”

“하하, 그렇게 보이겠죠. 하지만 이게 다 투자입니다. 린저씨라는 말 들어보셨죠?”

“아 네. 엄청 오래된 게임을 하시는 분들 아닙니까?”

“네, 그 분들의 은어에 성주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성을 가진 길드나 군주를 말하는 건데, 지금은 다소 시장이 사그라졌지만, 과거에는 그 성주가 되면 그 게임의 게임머니를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였고, 그걸 현금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단 말씀은 이 게임에도 그런 ‘성주’같은 것이 있단 겁니까?”

“네, 베타테스트에서 구현했었죠. 지금은 아직 해금되진 않았지만 곧 영지전 시즌이 올 겁니다. 거기서 영지를 차지하면 세금의 형태로 골드를 벌어들일 수 있죠. 그 돈이 어마어마합니다. 스폰서들도 그 수익금을 나눌 요량으로 저흴 지원해주죠.”

나는 시화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프로게이머들의 세계에 얽힌 이야기인 것 같다.

그 후 아이템을 건네주고 100만 골드를 건네받았다.

다음은 물약을 거래할 차례였다.

“이번에도 하급 마나 물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하급 정신력의 비약이란 것도 있습니다.”

“오······ 비약이라, 기대가 되는군요.”

시화는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정신력의 비약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신력이 무척 많이 오르는군요. 이 정도면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다른 클래스에도 유용할 겁니다. 레이드는 무척 장기전이라 마나 수급이 항상 문제거든요. 정신력이 올라서 마나가 늘어나면 그만큼 더 오래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단 의미죠.”

“그렇군요. 아, 그런데 하나는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필요한 곳이 생각나서 말이죠.”

“물론 그러셔도 됩니다, 팔고 말고는 공진씨 마음대로니까요.”

“그럼 하급 마나 물약 8개에 정신력의 비약 7개군요. 항상 그랬듯 개당 2만 골드로 할까요?”

“그러도록 합시다.”

“오늘도 사과파이는 50개 팔겠습니다.”

“30만 골드에 35만 골드군요.”

거래와 계산을 마쳤다.

165만 골드를 벌었다, 나는 그저 재밌게 아이템을 만들었을 뿐인데 말이다.

인벤토리를 확인해보니 18,782,200골드가 있었다.

이젠 골드에 대한 감각이 무감각해지는 기분이다.

주식이나 로또를 하는 것도 아닌데, 2000만원 가까이 돈을 벌었다.

나중에 돈 쓸 구석을 또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오늘 거래는 이쯤이군요.”

“네, 항상 감사합니다.”

“저야 뭐, 재밌는 일을 하면서 만든 것을 파는 것뿐인데요.”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시화와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가 떠나고 난 뒤에도 나는 선술집에 앉아 남은 과일모둠을 먹으면서 술을 마셨다.

“오늘도 슬슬 로그아웃할 때군.”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나는 생각에 잠겨, 내일 만들어 볼 것이나 할 일을 고려해보았다.

물론 게임에서 할 일 말이다.

“으음, 딱히 영감이 떠오르는 요리도 없군.”

“제작 카탈로그를 보시면서 골라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주인님?”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나는 뭔가 영감을 받고 만드는 것이 더 좋아.”

기분 내키면 아무거나 골라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나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회사일을 하면서 그 날은 먹은 음식을 재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음식을 먹기 위해 농사를 짓는 과정도 재밌고 말이다.

그게 이 게임을 느긋하게 즐기는 내 방식이다.

“자, 그럼 일단 마법사 길드에 납품을 하러 가볼까.”

멍멍멍

왈왈왈

냐아옹

삐이이익

[꾸벅꾸벅]

실버와 정령들이 뒤따랐다.

골렘은 로렌의 창을 들고 농장을 지키기로 했다.

나는 농장을 떠나기 전, 꾸벅꾸벅 조는 태산이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봤는데, 정신력을 올려서 태산이를 중급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그래서 비약을 하나 남기신 겁니까?”

“응, 정신력을 150으로 만들면 태산이도 중급으로 소환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24시간 지속이면 지속시간이 끝난 뒤엔 어떻게 되지? 다시 하급으로 역소환되나?”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러 다시 역소환 시키지 않는 이상 소환은 계속 유지됩니다. 다만 정령들의 마나 효율이 나빠집니다.”

“그 정도야 조금 감수하면 되겠네. 그나저나 비약과 음식 버프를 포함시켜도 정신력이 부족하니까 내일은 광산에 가서 레벨 업을 좀 해야겠네. 하는 김에 여러 광석들도 보충하고.”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일단 마을에 다녀올게.”

골렘의 무미건조한 아부를 들은 뒤, 나는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마법사 길드에 들어갔다.

“오늘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마법사 길드에 들어서자 언제나 그렇듯 마법사 아가씨가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과파이를 받곤 35만 골드를 지급해주었다.

“여전히 생활 스킬만 고집하시고 계신가요?”

“고집이라고 할 것은 아닌데, 그냥 그게 재밌어서 할 뿐이에요.”

“흐응, 그럼 제가 힌트 하나 드릴까요?”

“어떤 힌트 말이죠?”

“마법공학에 대한 건데, 마법공학은 부착물을 만들어서 무기나 방어구를 강화시킬 수 있어요.”

“그런 게 있어요?”

“네, 제작 카탈로그를 통해 알아보세요. 여러 가지 보조마법을 부여할 수 있어요. 경우에 따라선 공격마법도 부여할 수도 있을 거예요. 음, 그리고 마법공학을 베이스 만드는 무기도 있어요. 일반적인 무기보다 훨씬 개성적이죠.”

“호오, 그렇군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마법공학을 배우지 않는 걸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배우는 비용도 비싸고, 눈이 빠질 것처럼 집중하면서 회로를 새겨 넣는 걸 누가 하겠어요?”

“제가 합니다만.”

“이방인님은 별종이시잖아요.”

“별종이라······ 하하, 뭐 반박은 못 하겠네요.”

마법사 아가씨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그 뒤론 그녀와 헤어져 다시 농장으로 향했다.

마법공학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 조만간 써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응.”

“이제 로그아웃하실 겁니까?”

“그래야겠지······.”

이제 내가 로그아웃할 때인걸 학습한 듯한 골렘이 그렇게 묻자, 나는 아쉬움이 가득한 말투로 대답했다.

오늘은 상당히 재밌게 보냈다.

특히 바다에서 즐겁게 논 것은 주말에도 출근하는 스트레스를 완전히 해소해주었다.

물론 일요일인 오늘도 출근이지만 말이다.

멍멍멍!

“실버야, 난 이제 회사 가야해. 골렘이랑 집 잘 지켜야 한다?”

머엉······.

오늘따라 실버가 유독 외로워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골렘이 몸을 얻기 전에는 항상 혼자서 농장을 지켰을 것이다.

골렘이 있어도 정령친구들도 없으니 친구라고는 옥스와 호크 정도인가?

나는 실버에게 동족의 친구가 있으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불돌이가 있긴 하지만, 불돌이는 내가 없으면 실버와 함께 있지 못하니 말이다.

“업적점수를 좀 써야겠네.”

“애완동물을 더 분양하실 겁니까?”

“응, 그러는 편이 좋겠어. 실버가 외로움을 탈 것 같으니까. 기왕이면 짝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애완동물 목록에서 자세히 보시면 성별을 정하실 수 있습니다.”

“응.”

나는 골렘과 대화를 나눈 뒤, 업적상점을 검색했다.

마음에 둔 애완동물 하나가 있었다.

[골든 리트리버 1000QP, 황금빛 털의 신사. 친근한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 전투용이나 경비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음]

전에 스쳐지나가듯 보았던 골든 리트리버였다.

나는 일부러 경비견이 아닌 친구견을 골랐다.

외로움을 타는 실버를 달래주기 위해서다.

지금 내 업적점수는 1000점, 딱 맞게 사들일 수 있는 점수다.

나는 암컷으로 설정한 뒤, 이 녀석을 분양했다.

곧 빛무리가 일면서 황금빛 털을 자랑하는 골든 리트리버 하나가 나타났다.  왈왈왈!

멍멍멍!

월월월!

나타나자마자 불돌이와 실버가 그 녀석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애정표현을 했다.

하지만 친근함의 대명사인 골든 리트리버는 더욱 친근하게 녀석들을 핥았다.

특히 실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골든 리트리버가 나에게도 다가와 애정표현을 했다.

[골든 리트리버가 이름을 지어달라고 합니다.]

“네 이름은······ 골드다! 절대 돈이란 의미는 아니야! 실버의 단짝이란 의미야.”

월월!

[골드가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합니다.]

이렇게 동물가족 하나가 더 늘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로그아웃 할때가 되었다.

“골드야, 실버랑 잘 놀아줘야해?”

월월월!

골드는 맡겨달라는 듯이 활짝 웃으며 짖었다.

“그럼 얘들아 안녕!”

멍멍멍

왈왈왈

월월월

냐아옹

삐이익

꼬꼬꼭

음머어

[데굴데굴]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로그아웃을 했다.

얼른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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