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골렘과의 대화 >
“이제 강화석이 하나 남았군.”
아이템 만드는 재미도 이제 끝이다.
마지막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철제 갑옷.
두석린갑을 만들었을 땐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그런 재미를 찾아 대장기술의 제작 카탈로그를 뒤적였다.
[대장기술, 플레이티드 매일(Plated mail)
트랜지셔널 아머의 한 종류, 판금과 사슬갑옷이 일체화되어 있다. 주요부위는 판금을 입혀 방호력을 높이고 관절부위는 사슬로 보호한다.
필요한 재료 : 철괴 15개
추가 재료 : 강화용소재
필요한 도구 : 망치, 용광로, 대장기술 Lv6]
“이건 좀 기사가 입는 갑옷답게 생겼네.”
“실제로 중세 유럽의 라틴 기사들이 주로 입던 경번갑(트랜지셔널 아머)입니다.”
“보통 기사들의 갑옷하면 풀 플레이튼데 말이야.”
“풀 플레이트는 기술과 경제적인 문제로 활약한 시기는 협소합니다. 중세 대부분의 시간 동안 라틴 기사들이 사용한 갑옷은 체인 메일과 스케일 아머, 플레이티드 메일 등입니다.”
“그렇지, 풀 플레이트 하나의 가격이 성 하나인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까. 이래저래 판타지 매체는 과장된 게 많다니까.”
판타지 영화에선 적어도 수천은 될 것 같은 병사들이 전부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 모습도 간간히 나온다.
당연히 멋있기 때문인데, 현실에선 아주 부유한 영지의 귀족만이 그런 돈지랄을 할 수 있었거나 아니면 가문 대대로 갑옷을 물려 입은 봉건 기사들이 모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돈 없는 기사들은 이 플레이티드 매일 정도로 만족해야 했을 거다.
“하지만 가성비에선 절대 밀리지 않는 갑옷이지.”
“실제 가격대비 방호율은 풀 플레이트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쉬었으니 만들어 볼까.”
왈왈왈!
동물과 정령 친구들과 뒹굴며 충분히 쉬었다.
나는 또 다시 대장간으로 향했고, 불돌이가 짖으며 나를 따랐다.
“가끔 망치질만 하고 사는 인생도 좋을 것 같군. 꼭 농사짓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야.”
“현대의 지구에는 무형문화재인 사람을 제외하곤 대장장이가 없습니다.”
“여기 있잖아, 게임이지만 말이야.”
나는 망치질을 하면서 골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말을 창조주님께서 들으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널 만든 사람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럼 게임 운영자, 아니 개발자일 테니까 지금 이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왜?”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무미건조한 골렘의 기계음으로 슬픈 말이 나왔다.
“창조주님께선 현실에 더 이상 계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아······ 미안해, 골렘아. 괜한 말을 했구나.”
“괜찮습니다. 오히려 주인님 같은 분이 히든 피스를 찾았기에 창조주님께선 기뻐하실 겁니다.”
“내가 찾아서 다행이라고? 아무나 찾으라고 폐가에 놔둔 거 아니었어?”
“그렇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농사를 비롯한 생활 스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제대로 된 히든 피스를 발동시키지 못 했거나 찾지도 못 했을 겁니다.”
“그렇긴 했지.”
사냥하느라 바쁜 유저들이 폐가에 있던 물품들을 유심히 볼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물론 호기심 많은 사람이 나보다 먼저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농사에 관심이 없었다면 사탕무 씨앗을 심기 위해 밭을 갈 생각도 못 했을 것이고, 히든 피스도 발동시키지 못 했을 것이다.
설령 히든 피스를 발동시켰다고 해도, 나처럼 생활 스킬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면 금방 그만뒀겠지.
골렘이 말을 계속 이었다.
“창조주님은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삶을 돌아보시고 저와 히든 피스를 만드셨습니다. 그 분께선 히든 피스의 소유자가 느긋한 삶의 소중함을 알 길 바라셨습니다.”
“하하, 그건 성공했네. 난 지금 그런 기분이거든. 회사는 여전히 다니고 있지만, 이렇게 농사를 짓거나 망치나 두드리는 느긋한 삶이 너무 좋아. 네 창조주라는 분의 유지를 잇는 것 같아서 의미도 깊어지는 기분이야.” 어쩌다보니 골렘과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골렘은 자주 나에게 조언을 해주지만, 이렇게 터놓고 대화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골렘이 말한 창조주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고 말이다.
“주인님.”
“응?”
“창조주님의 유지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고? 그럼 뭔가 다른 것도 바랐던 거야?”
“그렇습니다.”
“그게 뭔데?”
이야기가 거기까지 흐르자, 갑옷이 거의 다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망치질을 남겼을 때, 골렘이 말했다.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님과 같은 즐거움을 알길 바라셨습니다.”
“······.”
깡.
나는 망치를 두들겼다.
불돌이가 헥헥거리는 소리 외엔 대장간에 적막함이 흘렀다.
갑옷이 완성되었다.
[장인이 만든 3등급 자이언트 슬레이어의 플레이티드 매일 : 방어력 120 내구도 50/50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명품, 뛰어난 방어력과 내구도를 자랑한다. 자이언트의 정수가 추가되어 강력한 특수효과를 지니고 있다.
특수효과 : 착용자는 ‘철두철미함’ 스킬을 가진다.
철두철미함 : 스킬 사용시 10초간 방어력이 100% 상승하고 방해효과에 면역이 된다(쿨타임 15분)]
“골렘아.”
“네, 주인님.”
“사람들은 말이야, 적응의 동물이야. 힘든 현실에 처하면 처음엔 힘들어하다가도, 나중에는 그 힘든 현실에 적응하고 말아. 현실이 바쁘고 힘드니까, 게임에서도 경쟁을 하게 되는 거지. 그러다보니 이 아름다운 것이 넘치는 게임에서도 사람들은 그것에 눈을 돌리지 못
하고 있어. 생활 스킬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도 아마 그런 거겠지. 물론 정보의 부족이나 진입장벽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사람들에게 느긋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야.”
“······.”
왠지 센티멘털한 기분이 되어서 그런 말을 했다.
내가 이 게임 속에서 평온함과 느긋함, 행복함을 찾고 있지만, 그건 이 게임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냉혹할 만큼 각박하고, 숨 막힌다.
느긋함은 현실에선 최악의 덕목이다.
“이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바뀌긴 힘들 거야. 난 게임이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거든. 아쉽게도 너의 창조주가 바라던 것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아.”
골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창조주라는 개발자의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비록 진입장벽이 있긴 하지만 생활 스킬 곳곳에선 개발자가 유저를 많이 배려해준 것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유저들이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의 각박한 인내심을 생활 스킬이 뛰어넘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 마저도 나처럼 히든 피스가 아니면 이만한 효율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돈도 나만큼 벌리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처럼 그저 ‘재밌어서’ 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
“그건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주인님.”
“그래? 왜 그렇게 생각······ 아니, 분석하는 거야?”
“주인님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습니다. 주인님은 농장을 키우셨고, 선술집을 만드셨습니다. 비록 간접적이긴 하나, 그 손님들은 그곳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버프를 위해 음식을 먹든, 맛있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든, 모두 잠깐이나마 느긋한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속되면 그들
도 주인님과 같은 플레이를 따라할 수도 있습니다.”
“흠······ 그 확률은 얼만데?”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0%는 아닙니다.”
골렘은 뭔가 철학적인 대답을 했다.
계산할 수 없는 확률이다, 그러나 0%는 아니다.
즉,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갑옷도 다 만들었으니까, 어디 한 번 입어 볼까.”
나는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며 말했다.
인벤토리를 이용해 장착하면 무거운 느낌의 갑옷이 철렁 거리면서 착용되었다.
“플레이트는 별로 무거운 것 같지 않은데, 사슬이 너무 무거워.”
“실제로 풀 플레이트 아머의 무게와 무게감이 더 가볍습니다.” “여기에 그리브랑 투구까지 쓰면 힘이 어지간히 높아야 움직이겠다.”
로드릭 경의 갑옷에 비해 너무 무거웠다.
로드릭 경의 갑옷은 풀 플레이트 아머기 때문이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가 우수한 점은 이런 사슬달린 판금 갑옷에 비해 무게가 더 가벼우면서도 방어력이 더 뛰어난 것이었다.
“무거워서 그런지 특수능력의 설명도 뭔가 묵직한 느낌이네.”
‘철두철미함’이란 이름이나, 방어력이 오른다는 설명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하긴, 이걸 입으면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할 테니 방어력은 필수로 올라야 할 듯 했다.
별로 움직이지 않고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역할이라면 제격이겠지.
“그럼 이건 방어적인 속성강화를 해야겠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전투효율을 시뮬레이트한 결과, 방어형 속성강화가 착용자의 생존률을 올려줄 것입니다.”
“그럼 첫 번째와 두 번째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단 말인데······.”
[방어형 강화]
-얼음속성 내성이 12% 상승한다.
-일시적으로 생명력의 12%에 해당되는 얼음속성 공격을 흡수(쿨타임 3분)
“문제는 둘 다 얼음속성에 관한 거란 점인데, 별로 효율적인 것 같지 않아. 냉기속성만 방어해준다는 말이잖아?”
“하지만 그만큼 얼음속성에 한해선 뛰어난 방어력을 제공하게 됩니다.”
“흠, 뭐 쓰는 사람이 알아서 잘 쓰겠지.”
어차피 내가 쓰는 게 아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긴 하지만, 쓰는 사람은 결국 군신 길드원이다.
그들이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속성강화를 부여했다.
갑옷에 차갑고 푸른 기운이 깃들었다.
[장인이 만든 3등급 얼어붙은 자이언트 슬레이어의 플레이티드 매일]
[연금술 스킬 레벨 업!]
“‘얼어붙은’이라, 이번에도 멋진 수식어가 붙었네.”
“주인님, 마지막 포션의 제조가 끝났습니다.”
“아, 그래 딱 8시간이 지난 모양이네.”
갑옷까지 만들고 나니, 자동 연금술도구로 만들던 포션의 제조가 완료된 모양이었다.
“어디보자, 하급 마나 회복 포션 8개랑, 이번에 새로 만든 거네.”
[잘 만든 7등급 하급 정신력의 비약 8개]
“이걸 마시면 정신력이 오르는 건가?”
“아이템 설명으로 효과를 확인해보십시오.”
“응, 그럴 생각이야.”
나는 골렘의 말대로 아이템 설명을 확인해보았다.
[잘 만든 7등급 하급 정신력의 비약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비약. 마시면 정신력이 크게 향상된다. 비약이 아닌 다른 효과와 중첩된다. 24시간동안 지속.
복용 효과 : 정신력 25증가]
“헐, 정신력이 너무 많이 오르잖아?”
“비약은 하나의 능력치에 특화되는 소모품이기 때문에 상승치가 높습니다. 또한 정신력은 직접적인 공격력이 오르지 않아 다른 능력치의 2배로 상승합니다. 게다가 주인님의 생활의 달인 패시브 덕분에 비약의 효과가 더욱 증가되었습니다.”
“그 말은, 내가 만들지 않으면 이 정도로 크게 오르진 않는단 말인가?”
“생활의 달인 패시브가 없을 경우 계산되는 복용효과는 15만큼의 정신력 상승입니다.”
“흠, 생활의 달인이 사기긴하군.”
어쨌든 쓸모가 있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