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대적자 >
시화가 강화석을 준 덕분에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멋진 츠바이헨더를 만들었으니 다음은 뭘 만들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또 다른 종류의 검을 떠올리려고 했는데,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검만 고집할 필요는 없잖아?”
소위 판타지에서 말하는 도검만능주의도 아니고, 굳이 만드는 무기를 검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나도 냉병기하면 검이라는 편견에 빠져 있었는지, 지금까지 검만 만든 것이다.
사실 고중세 전쟁사에서 검의 포지션은 매우 애매했다.
근접전에 있어서 탁월하나 다루는데 능숙해지기 위해선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상대를 제압해 이기려면 더 많은 훈련과 실전경험도 필요한 무기다.
창이나 장창보다 사거리가 매우 짧은 것도 흠이다.
그래서 전쟁사에서 보병들의 제식무기는 주로 창이었다.
반면에 검은 특수한 경우에 전술적으로 이용되었다.
“물론 검이 더 유용한 경우가 있긴 했지.”
예컨대 로마군과 팔랑크스 대형이 맞붙었을 때, 그들의 방패와 글라디우스는 유용했다.
중세 말기, 스페인의 군대는 버클러와 세이버로 파이크 대형을 파고들었다, 결과는 검과 방패의 승리였다.
팔랑크스 대형과 파이크 대형은 우월한 리치로 상대 보병을 밀어붙이는데 유용했지만, 방패로 막고 사각을 파고들면 창의 특징상 대응을 못하거나 창을 포기하고 검 따위를 들어 반격해야만 했다.
물론 이건 검의 유용성이라기 보단 방패의 유용성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고대, 중세 전쟁사에 가장 유용했던 무기는 단연 창이야.”
글라디우스를 쓴 것으로 유명한 로마군도, 사실 제식무기는 창이었다.
다른 특별한 이유보다도 더 큰 이유는 우선 경제적으로 창은 값쌌기 때문이다.
통짜 청동이나 쇠를 이용해야 했던 검에 비해 창은 창날만 금속이면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검에 비해 훈련도 쉽고 다루기도 쉽다.
주된 공격이 긴 리치를 이용한 찌르기라 교육수준이 낮은 평민이나 농노, 노예도 쉽게 다룰 수 있었다.
중국에선 창술이 발달해서 여러 다양한 창도 만들어졌는데, 정작 창술은 문화대혁명 때 실증되었다던가?
“그런 의미에서 창을 만들어봐야겠군. 창이라 창, 그것도 크고 아름다운 멋진 창······.”
창하니, 떠오르는 것은 사실상 나의 첫 번째 무기인 로렌의 창이었지만, 로렌의 창은 평범한 단창(spear)이다.
딱 판타지 소설에서 자경단들이 운용할 것 같은 특징 없는 것이다.
물론 멋으로 무기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멋진 무기는 일종의 로망인 셈이었다.
그래서 그냥 단창은 다소 밋밋하고 단순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럼 장창(pike)을 만들어 볼까? 아냐······ 그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길어. 이건 게임이지 전쟁이 아니야.”
나는 장창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장창은 짧은 것은 5m, 긴 것은 7m에도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긴 창이었다.
너무 길어서 오로지 찌르기만 가능한 창이었으며, 여러 사람이 들어서 파이크 대형을 이루어야만 진가가 발휘되는 창이었다.
그러니 한 명의 무장을 위해 만드는 무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을 바꿔 다른 창을 떠올려 보았다.
“중국쪽 창을 생각해서······ 청룡언월도를 만들어 볼까?”
“청룡언월도는 업적상점에 등록되어 있는 무기입니다.”
“이런. 그럼 방천화극은?”
“그것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음, 뭐 그럴만한 무기들이긴 하지.”
삼국지의 로망을 떠올리면서 유명한 무기 두 개를 떠올렸는데, 옆에 서 있던 골램의 말로 가차 없이 기각되었다.
확실히 네임밸류가 있을 만한 무기들이라 납득은 되었다.
장팔사모도 떠올렸는데, 있을 것 같아서 말도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냥 ‘언월도’나 ‘극’이나, ‘사모’라면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러면 왠지 짝퉁을 만드는 기분이란 말이지.”
중국산이라서 짝퉁이란 의미가 아니라, 청룡언월도나 방천화극이나 장팔사모를 만들지 못해서 흉내만 내는 것 같아 싫었다.
지금껏 검명을 지으면서 검을 만들다보니 진짜 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 그런 것은 꺼림칙해졌다.
게다가 내 영감이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 그게 있잖아! 할버드!”
츠바이헨더를 만들면서도 떠올렸던 무기였다.
전통적인 중세의 강군, 스위스 용병대가 애용했던 병기, 할버드.
물론 그건 초기의 이야기였고, 스위스 용병대가 대승을 거두게 만들어준 주요한 무기는 파이크였다.
하지만 파이크를 쓸 때도 파이크 대형의 중앙에 할버드를 든 이들을 배치하여 앞에 선 용병들이 쓰러지면 할버드를 든 이들이 광포한 돌격을 하면서 적들을 쓰러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할버드는 스위스 용병들의 상징적인 무기가 되었다.
“이건 당장 만들어야해.”
란츠크네흐트의 츠바이헨더를 만들었는데, 그들의 라이벌이었던 스위스 용병들의 무기를 만든다.
굉장히 상징성이 크다고 느껴졌다.
나는 얼른 대장기술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해보았다.
[대장기술, 할버드
중세 스위스 군대가 애용한 무기, 투구(helm)를 부수는 도끼(bart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늘창 혹은 도끼창으로도 불린다.
필요한 재료 : 철괴 10개
추가재료 : 강화용소재
필요한 도구 : 망치, 용광로, 숫돌, 대장기술 Lv5]
"있다, 있어!“
역시나 목록에 있었다, 그리고 미리보기를 보니 크고 아름다운 도끼창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최장길이 3미터, 무게는 약 4kg. 파이크에 비해선 짧지만 이것도 단창보단 긴 창이다.
창대는 나무일수도 있고 쇠일수도 있지만 이건 쇠였다.
목공 스킬과 섞어 만들 필요가 없으니 편하기도 하고, 쇠로 만드는 편이 더 튼튼하고 유용할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만들면 무게가 더 나가겠지만 말이다.
“좋아, 만들 걸 생각했으니 당장 만들어야지. 불돌아 가자!”
왈왈왈!
불돌이가 짖으면서 대장간으로 따라왔다.
용광로를 덥히고 골램이 긴 창의 모형을 집게로 고정해주었다.
내 역할은 역시 망치를 두들기는 역할.
깡깡하고 두드리면서 점점 모양을 만들어갔다.
3미터의 길고, 그 끝에는 흉흉한 도끼날과 창날이 달린 도끼창이 완성되었다.
[무기의 이름을 지으십시오.]
완성되자 역시 무기의 이름을 지으라는 메시지가 떴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나는 뻘뻘 흐르는 땀을 뒤로하고 이름을 고민했다.
기왕이면 할버드와 연관이 있는 이름······.
투구를 쪼개는 창······ 나쁘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간결하고 멋지고 강렬한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했는데, 문득 츠바이헨더를 도살자로 이름 지은 것을 떠올렸다.
그 츠바이헨더와 경쟁했던 무기인 할버드. 그에 걸맞는 이름은······
“······대적자.”
[‘대적자’로 하시겠습니까?]
“그렇다!”
도살자가 맞서는 대적자, 그런 의미를 부여했다.
물론 내가 만든 도살자를 든 사람이 이 창을 든 사람과 맞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둘 다 군신길드에 팔게 될테니 말이다.
물론 그 무기가 또 다른 이에게 팔리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템을 만듦으로써 이 게임에 내 이름과 역사를 남기는 셈이었다.
옛날의 대장장이들이 무기를 만들 때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여하튼 할버드가 완성되었다.
[잘 만든 3등급 할버드 ‘대적자’ : 공격력 200 내구도 30/30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명창. 무시무시한 크기의 도끼창으로 투구를 한 방에 쪼갤 수 있는 위력이 있다. 황무지 오우거의 정수를 써서 만들었기 때문에 특수효과가 추가된다.
특수효과 : 이 무기의 착용자는 ‘뚜껑 따기’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뚜껑 따기 : 3초간 힘을 모아 어마어마한 힘으로 내리찍을 수 있다. 3초간 무방비 상태지만 공격 명중시 80%의 공격력이 추가 된다. 머리에 명중시킬 경우 100% 확률로 치명타가 발동된다.]
“오오, 멋져. 한 번 들어볼까?” 나는 대장간을 나오며 그 긴 창을 들어보았다.
묵직한 쇠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 우월한 리치에, 묵직한 무게가 더해진 일격이면 기분만큼은 소드마스터가 빙의되서 돌격하는 적을 한 방에 찍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억울하면 너희들도 긴 창 들던가!
“위력시범을 한 번 해볼까.”
익숙하지 않아서 츠바이헨더처럼 골램에게 시범을 맡겨볼까 했는데, 스킬이라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커다란 장작 하나를 땅에 세워두고 창을 들어보았다.
골램과 불돌이, 물방울, 바람이, 태산이, 실버, 호크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장작 앞에 섰다.
“뚜껑 따기!”
스킬명을 외치며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자동으로 자세가 잡아졌다.
창을 뒤로 넘기듯 들더니, 3초 동안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3초가 되자마자 마치 전광석화처럼 그 긴 창을 휘둘렀다!
콰앙!
“헐······.”
나는 장작을 쪼개려고 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장작은 ‘파괴되었다.’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버린 장작.
이게 만약 사람의 머리였다면 아무리 게임이었어도 무사하지 못 했을 것이었다.
이 게임에 부디 모자이크나 그 비슷한 거라도 있길 기도해야 할 정도였다.
“이건 내 예상을 뛰어넘은 힘인데.”
“주인님의 공격력은 생활의 달인 패시브로 인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80퍼센트의 공격력 상승이 막대한 피해를 유발했습니다.”
“아 맞다, 내 공격력이 좀 셌지.”
뭔가 만들기만 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공격에는 문제가 있었다.
“세긴 센데, 3초의 시간이 너무 길어. 그리고 공격이 빗나가면 큰일이겠는데.”
공격 전에 딜레이가 너무 길고, 공격 후에도 빈틈이 너무 컸다.
물론 쓰는 사람은 군신 길드의 길드원이 될 테니 알아서 할 일이지만, 무기 장인이 된 기분을 내고 있는 나로선 해결책을 고민하게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지원형 물 속성강화에 좋은 게 있었던 거 같은데.”
스쳐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나는 속성강화의 메뉴를 띄워 지원형에 주목했다.
[지원형 강화]
-무기에서 냉기가 흘러 착용자와 주변인들에게 더위내성을 부여한다.
-오싹한 추위로 적을 위축시킨다.
“옳거니, 두 번째 걸로 적을 위축시킨 다음 스킬을 써버리면 무시무시한 연계가 되겠군.”
자연히 머리에 효율적인 전투방식이 떠올랐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골램도 말했다.
“전투 시뮬레이션 결과, 주인님의 예상은 80%의 이상의 확률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걸로 결정이다!”
나는 물 속성의 두 번째 지원형 속성강화를 선택했다.
[잘 만든 3등급 맹추위의 할버드 ‘대적자’]
역시나 할버드에 파란 오라가 깃들었다.
이걸로 뚝배기가 날아갈 적들에게 미리 명복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