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도살자 >
[잘 만든 4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라이더 바지]
“흠, 여기엔 무슨 옵션을 부여할까······.”
이제 바지에 속성강화를 할 차례인데, 조금 고민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옵션을 선택해서 더욱 공격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바지는 방어형이나 지원형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컨셉은 통일 시켜야지. 공격형 두 번째 옵션을 부여하는 게 좋겠다.”
공격형 두 번째 옵션은 ‘마법공격력의 40%에 해당되는 냉기돌풍 시전(쿨타임 1분)’이다.
이걸 바지에 부여하면 이 ‘라이더 세트’는 얼음속성 공격에 올인한 격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갑옷도 아니니까 선택과 집중으로 공격에 모두 투자하는 것이 옳은 것 같았다.
뭐, 그건 이걸 입고 싸울 군신 길드원에게 달린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속성강화를 마쳤다.
[잘 만든 4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냉기돌풍 라이더 바지]
‘냉기돌풍’이란 수식어가 붙었고, 마찬가지로 바지에도 파란색 오오라가 흘러나왔다.
나는 호기심 삼아서 자켓과 바지를 입어보았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터프가이 이미지의 연예인이나 영화 속 폭주족의 모습이었다.
“내 눈을 봐라!”
왈왈!
멍멍!
니야아아아옹
나는 재밌는 생각이 들어서 미국 영웅만화 원작의 영화 대사를 읊었다.
해골 얼굴에 얼굴과 몸이 불타는 폭주족 영웅의 대사였다.
물론 장난으로 했기에 진중함은 조금도 묻어나지 않았고, 불돌이와 실버, 물방울은 놀아주는 줄 알고 울음소리를 내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크흠, 장난은 이쯤하고 다음 것을 만들어볼까.”
[황무지 오우거의 정수 50개]
이제 황무지 오우거의 정수 50개를 반으로 나눠서 무기 두 개를 만들 시간이다.
어떤 무기를 만들지 고민부터 시작했다.
그냥 고민하긴 뭣해서 제작 카탈로그를 열고 이리저리 넘기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았다.
곧 눈에 띄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대장기술, 츠바이헨더
독일어로 양손검이란 의미다. 말 그대로 커다란 양손검이며, 그 유래는 깊지만 유명하게 된 것은 유명한 독일의 중세 용병 란츠크네흐트들이 사용하면서 유래되었다.
필요한 재료 ; 철괴 10개
추가 재료 : 강화용소재
필요한 도구 : 망치, 용광로, 숫돌, 대장기술 Lv5]
“츠바이헨더! 아주 크고 아름다운 검이지!”
독일의 유명한 검, 아주 무시무시하게 큰 양손검이다.
중세 전쟁을 조금만 알아본 사람들은 이 검이 스위스 용병들의 할버드와 경쟁한 것임을 알 것이다.
당시에 란츠크네흐트와 스위스 용병은 용병의 위상과 자존심을 걸고 서로 경쟁했었다.
승리는 번번이 ‘최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스위스 용병이 가져갔었으나, 점차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변했던 전쟁의 흐름 속에서 란츠크네흐트는 적응했고 스위스 용병은 자신들에게 쇠퇴한 전술전략을 고집하다가 최후에는 최강자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물론 그 후로도 스위스 용병은 명성은 남아 있어서 프랑스혁명기의 루이 16세의 호위병까지 맡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 무기는 그런 스위스 용병과 경쟁한 역사가 있는 검이었다.
“좋아, 오늘 첫 무기는 이걸로 정했다.”
지난번에 환도 ‘수호자’를 만들 땐 아주 재밌었다.
고작 검을 만드는데도 우리나라 역사가 느껴졌고, 군대에 두고 왔던 것 같은 애국심도 다시 느꼈다.
외국의 검이라 환도를 만들 때처럼 애국심을 느끼긴 힘들겠지만, 알고 있는 역사의 검을 만드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음, 그저 게임일 뿐인데 정말로 검만드는 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불돌아, 불지피자, 불불불불!”
왈왈왈왈!
내 말을 따라하는 듯이 짖는 불돌이를 쓰다듬으며 대장간으로 향했다.
불돌이가 용광로로 들어가 불을 지피면 나와 골램이 작업을 시작했다.
골램이 집게로 검신을 단단하게 잡아줘서, 내가 할 일은 망치를 내려치는 것 뿐이었다.
깡깡깡, 소리를 내면서 망치질을 30번 정도 하니, 미리보기로 보았던 커다란 검이 완성되었다.
그립부터 칼끝까지 2미터를 훌쩍 넘겨서 내 키를 뛰어넘는 검. 날이 갈리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용이다.
그러자 생각하지 못 했던 걱정이 일었다.
“군신 길드원이 이걸 쓸 순 있을까?”
이렇게 큰 검을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거운 거야 힘을 보정 받는다고 하지만, 길이가 긴 것은 그것 자체로 다루기가 어렵다.
까짓것 시화와 길드원들이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강화석은 귀한 것이라 들어서 함부로 쓰기가 뭣했다.
그래서 다시 시화에게 귓속말을 해보기로 했다.
“시화씨.”
[네 공진씨.]
“제가 무기를 만들었는데, 츠바이헨더라고······.”
[아, 양손검 말이군요.]
시화도 츠바이헨더가 뭔지 아는 눈치였다.
역사적 지식으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게임 지식으로 아는 것인지 알 순 없었지만 말이다.
“네, 그걸 만들었는데 조금 걱정되는군요. 매우 큰 검이라서 길드원 분들이 쓸 수 있을지······.”
[걱정하지 마시고, 만드십시오. 저희 길드원들은 여러 가상현실 게임을 하면서 여러 무기를 다뤄봤습니다. 커다란 무기도 말이죠. 설령 다룰 줄 모르는 무기라고 해도 다룰 수 있도록 연습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믿고 만들겠습니다.”
[네, 수고하십시오.]
“수고하세요.”
시화가 자신있게 말했기에 나는 그를 믿기로 했다.
그렇게 말했으니 적어도 나한테 책임을 묻진 않을 것이다.
확신을 얻은 나는 다음 단계로 뭉특한 날을 마법공학 칼갈이를 이용해 갈았다.
카가가가가가각!
빙글빙글 돌아가는 숫돌에 칼날을 대어 갈기 시작했다.
롱 소드와 환도에 이어서 이것도 세 번째라서 익숙해졌다.
다 갈고 나니 무거우면서 날카로워서 들고 있는 것조차 간담이 서늘해지는 양손검이 완성되었다.
[대장기술 레벨 업!]
[검명을 지으십시오.]
이번에도 검명을 지으라는 메시지가 떴다.
이번엔 어떤 이름으로 할까, 잠깐 고민이 되었다.
이 무시무시한 검에 걸 맞는 이름을 지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쓰는 사람은 끔찍한 상상이지만 사람이든 몬스터든 반 토막을 내버릴 것이다.
마치······
“······도살자처럼.”
[‘도살자’로 하시겠습니까?]
“그래!”
나는 자연스럽게 이름을 정했다.
도살자, 정말이지 이 흉흉한 검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되었다.
검명이 정해지고, 검이 완성되어 아이템화 되었다.
[잘 만든 4등급 츠바이헨더 ‘도살자’ : 공격력 150 내구력 50/50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명검, 방패를 포기하고 양손으로 드는 검이라 공격력이 매우 준수하다. 내구도 또한 대단함. 황무지 오우거의 정수를 써서 만들었기에 특수효과가 추가된다.
특수효과 : 이 검의 사용자는 ‘처형인’ 특성을 얻는다.
처형인 : 부상당한 적에게 50%의 최대 공격력 상승효과를 얻는다. 부상이 심할수록 50%에 가까워진다. 만약 적이 빈사상태에 놓였다면 100%의 공격력 상승효과를 얻는다.]
“처형인이라니, 특수효과 이름도 무시무시하네.”
본의 아니게 또 도살자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특수효과가 만들어졌다.
물론 도살자와 처형인은 어감과 의미가 다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제 이것에도 속성강화를 할 차례였다.
이번엔도 물의 속성을 부여할 생각이다.
나는 속성강화의 메뉴를 띄워보았다.
[공격형 강화]
-12% 추가 냉기속성 공격력 추가
-공격력의 40%에 해당되는 아이스 쟈벨린 시전(쿨타임 1분)
[방어형 강화]
-물속성 및 얼음속성 공격을 무기로 방어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생명력의 12%에 해당되는 냉기속성 공격을 흡수(쿨타임 3분)
[지원형 강화]
-무기에서 냉기가 흘러 착용자와 주변인들에게 더위내성을 부여한다.
-오싹한 추위로 적을 위축시킨다.
방어구에 부여하는 속성강화는 약간 달랐지만, 수호자를 속성강화 할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불 속성이 물이나 얼음속성으로 대체된 정도? 딱 그런 느낌이다.
이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나는 다시금 전술적인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이 커다란 검은 방패를 들고 싸우지 못한다.
그리고 환도처럼 짧지도 않아서 이 검으로 얼음속성의 마법 같은 것을 방어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전술적으로 볼 때, 이 검은 오로지 공격에 투자하는 것이 옳다.
적이 날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적을 죽인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공격형 첫 번째 옵션이 좋겠다.”
추가 공격력을 얻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상을 입은 적에게 최대 50%의 공격력을 얻는데, 거기에 12%의 추가 냉기속성 공격력을 얻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빈사상태에 놓여서 100% 공격력이 상승했을 때도 이 옵션이 적용되면 112%란 의미다.
숫자계산만으로도 적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좋은 물건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검에 속성을 부여했다.
[잘 만든 4등급 싸늘한 츠바이헨더 ‘도살자’]
“푸른 오라가 나오는 게 꼭 오러 블레이드 같군.”
판타지 감성이 묻어 있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검기’니, ‘검강’이니 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불 속성을 부여했던 ‘수호자’도 멋졌다.
그건 불붙은 검을 연상시키면, 이 검은 푸른 오라에 커다란 검신 때문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검집도 만들어서 등에 맬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등에 매도 검이 너무 길어서 뽑으려면 힘들겠는데.”
그냥 인벤토리에 넣고 꺼내는 것이 편할 정도였다.
검집을 괜히 만든 것이 되었지만, 멋으로 들고 다니라지 뭐.
착용감은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 휘두르는 감각은 어떨까? 라는 생각에 양손으로 들어보았다.
“무겁네······.”
첫감상은 당연하게도 너무 무겁다였다.
내 힘은 버프 없이는 33 밖에 안 된다.
어윈의 방패를 겨우 드는 수준이니, 이 무거운 검도 당연히 무거울 것이었다.
사실 무게는 철덩어리나 다름없는 어윈의 방패가 좀 더 무겁긴 하지만 말이다.
휘둘러보고 싶었는데, 내 힘이 부족해서 곤란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들었다.
“골램아!”
“네, 주인님.”
“혹시 무기 다룰줄 알아?”
“스킬은 없지만 제 데이터베이스에 각종 무기술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럼 이것도 다룰 수 있겠어? 한 번 휘두르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래.”
“가능합니다, 주인님.”
“그럼 휘둘러봐.”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골램에게 츠바이헨더를 건네주었다.
골램의 건장한 체구에 츠바이헨더는 아주 어울렸다.
곧 골램은 그것으로 횡베기와 종베기, 찌르기를 선보였는데,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워낙 무기가 크고 흉흉해서 절로 감탄사가 느껴졌다. “대단해! 이 정도면 진짜 뭐든 벨 것 같아······ 쓸 수만 있다면 말이지.”
이렇게 무기 하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