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09화 (109/239)

< 91화 라이더 자켓 >

“다음은 가죽 갑옷을 만들 차례인가.”

홉 고블린의 정수로 양모 옷을 다 만들었다.

그럼 이젠 화산 코볼트의 정수로 가죽옷을 만들어볼 차례였다.

지난번엔 브리건딘을 만들었는데, 새로운 가죽갑옷이 있나 싶어서 카탈로그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카탈로그에 보이는 가죽갑옷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가죽갑옷이 종류는 그리 많지 않네.”

“가죽갑옷을 예부터 널리 사용했다는 역사적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수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죽은 소량이며 가축이 귀했을 고대, 중세에 가죽을 위해 가축을 도살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즉, 당시 가죽갑옷은 실용성이 많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매우 비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구나. 판타지 매체에선 100골드에도 사는 게 레더아머라 실감이 잘 나지 않는걸.”

골램에게 가죽갑옷에 대한 짧은 역사적 소견도 듣게 되었다.

확실히 가죽갑옷은 판타지 쪽에서 이상하게 고증된 것 같다.

골램이 말한 이유로 당시에 가죽은 매우 귀한 것이었을 텐데, 모험을 막 시작해서 돈도 얼마 없는 모험가의 푼돈으로 살 수 있는 방어구로 묘사되는 일이 흔하다.

철제 갑옷보다 방어구가 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저렴할 거라는 생각이 만든 오류인 것 같다.

“지난번에 말해준 생가죽을 써서 만드는 하이드 아머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문제는 몬스터의 가죽이 없네.”

골램의 말대로라면 하이드 아머는 생가죽을 쓰는데, 멧돼지, 물소 같은 동물의 가죽 수준으로는 그리 튼튼한 것을 만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가죽으로는 레더아머나 브리건딘처럼 무두질을 통해 가공한 가죽갑옷이 좋다는 것이다.

“흠, 레더아머나 브리건딘을 또 만드는 것도 좋은데······ 이번엔 갑옷이 아니라 옷으로 해볼까?”

사고의 전환을 해보았다.

사실 가죽갑옷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현실에서도 가죽은 이제 갑옷보단 옷의 재료니 말이다.

애초에 갑옷을 입는 세상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철제 갑옷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가죽으로 갑옷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몬스터 가죽을 얻는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가죽 옷을 찾아보았다.

[재봉, 라이더 자켓

오토바이를 모는 라이더들이 자주 입는다고 하여서 바이커 자켓 혹은 라이더 자켓이라고 불리는 가죽옷. 지퍼와 주머니가 매우 많고 가죽재질이라 방풍 성능이 뛰어나다.

필요한 재료 : 적당한 가죽 5장, 몬스터의 힘줄 혹은 실 10개, 적당한 기름 1리터, 철제 지퍼 3개

추가 재료 : 적당한 몬스터의 정수

필요한 도구 : 재봉 스킬 Lv5, 조합 스킬]

“이게 적당할 것 같은데, 지퍼가 필요하다네?”

“대장스킬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것 같아. 지퍼라, 판타지라기 보단 모던한 느낌이 많이 나네. 옷 자체도 세련되어서 중세 판타지 풍에는 이질적일 것 같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멋질 것도 같고.”

라이더 자켓을 입은 검사가 판타지의 세상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걸 상상해보면 퓨전 판타지 같아서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럴 사람은 내가 아니라 군신 길드의 누군가가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 두석린갑을 입은 사람이 온 걸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사실 나는 내가 만든 것을 팔았을 뿐인데, 그걸 사람이 사용한다는 것을 직접 느낀 것이다.

대기업의 영업계 사원이 되면서 잊지 않아야할 감각이긴 했다.

내가 짜는 사업 아이템은 공허한 탁상공론으로 머물러선 안 되고, 정말로 사람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선술집에서 음식을 파는 것도, 군신 길드에 물건을 파는 것도 전부 그런 수요를 공급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즐겁고 힐링처럼 느껴져서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신입사원 시절의 열정이 돌아오는 기분이야. 이 옷도 누군가가 좋게 입어주면 좋겠군.”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꼭 디자이너가 된 기분이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불돌아, 가자.”

왈왈!

지퍼를 만들기 위해 불돌이를 데리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잠깐이라도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는 불돌이는 언제나 즐거워보였다.

용광로 안쪽에서 고개를 쏙 내밀어 나를 보는 모습도 얼마나 귀여운지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그래선 화상을 입으므로 나중에 쓰다듬어 주기로 했다.

지퍼는 거푸집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태산이 꾸벅꾸벅 졸면서 도와줘서 금방 만들 수 있었다.

“그럼 지퍼로 만들었으니 제작해볼까.”

재료가 모였으니 주저할 것 없이 제작 버튼을 눌렀다.

자동으로 얼추 라이더 자켓의 외형이 만들어지고, 일부분만 내가 바느질을 하고 기름을 먹이면 되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지퍼도 바느질로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꽤 섬세한 바느질이 필요해서 애먹었다.

하지만 실패하면 재료가 날아가거나 실패작이 되므로 조심스럽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얼마 후 바느질을 완전히 마칠 수 있었다.

[잘 만든 4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라이더 자켓]

“됐다!”

나는 구슬땀을 보람차게 닦으며 완성품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윤택이 나는 라이더 자켓은 충분히 멋져 보였다.

물론 현실이라면 핏이 사는 사람이 입으면 좋겠지만, 여긴 가상현실 게임이다.

모두들 자신의 외모를 아름답게 설정하는 편이다.

내 경우는 그냥 귀찮아서 내 본래 모습으로 설정했지만 말이다.

사이즈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게임이기 때문에 알아서 조절되기 때문이다.

나는 상세정보가 궁금해져서 얼른 보았다.

[잘 만든 4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라이더 자켓 : 방어도 20 내구도 28/28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4등급 아이템. 재봉에 더욱 익숙해진 솜씨 덕분에 내구도가 더욱 좋아졌다. 매끈하게 만들어진 가죽 옷이기 때문에 방풍 성능이 뛰어나다. 화산 코볼트의 정수를 넣어 세트 효과 또한 더욱 좋아졌다.

세트 효과 : 잘 만든 n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라이더 바지/ 빠른 속도로 움직일수록 공격력이 최대 60%까지 상승함.]

“굉장히 특이한 세트효과인데? 폭주족 컨셉인가?”

외향과 어울리는 세트 효과라고 생각은 되었지만, 실용성이 조금 의심되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였을 때 공격력이 상승한다? 그럼 가만히 있을 때에는 공격력 상승이 없단 의미다.

내가 전투를 잘 모르긴 해도 싸우려면 보통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지, 뛰어다니지 않는다.

뭐 물론 첫 공격 정도는 광포하게 돌격해서 공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만 60%나 오른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시화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시화씨.”

[네, 공진씨.]

“제가 또 이상한 것을 만들어서 그렇습니다만······.”

시화는 부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쓸모 있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겪은 전투로는 움직이면서 싸우진 않아서······.”

[이 게임엔 돌격 보너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공격은 안전한 자세로 취해지지만 첫 공격은 광포한 돌격으로 시작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의 일격이 상당히 커서 무시할 게 아니죠.]

“그렇군요.”

몰랐던 사실이다.

정예 고블린과 오크와 싸우면서도 경험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시화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도적 계열 클래스는 계속 현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돌격 보너스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죠. 그런 클래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합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닙니다.]

“또 뭔가가 있단 겁니까?”

[네, 몇몇 길드원 분들은 말을 타고 싸울 수 있습니다. 이 옵션은 말을 타고 달리는 속도에도 적용되는 겁니다. 그 경우에는 최대속력으로 돌격하면 60퍼센트라는 공격력 상승효과를 전부 받을 수 있겠죠.]

“오······.”

시화의 설명에 나는 기사돌격이 생각나서 감탄했다.

그런데 갑옷이 아니라 라이더 자켓을 입은 누군가가 검이나 랜스를 들고 돌격하는 모습이라 역시 퓨전판타지 같다.

멋지면서도 뭔가 묘한 느낌, 음······ 정통판타지적이진 않지만 나쁘지 않아.

[말씀을 들으니 오늘도 아이템 수령이 기대되네요.]

“네, 하지만 아직 무기와 철제 갑옷은 못 만들었습니다.”

[적당한 시간에 들리겠습니다, 혹시 먼저 만드셨다면 귓속말을 주십시오. 또 뭔가 궁금하셔도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시화와의 귓속말을 끝냈다.

흠, 여하튼 쓸모가 있단 말이지?

아니, 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나는 바지를 마저 만들기로 하고 라이더 바지를 찾아 제작 버튼을 눌렀다.

바지도 만드는데 꽤 손이 갔지만 자켓보단 간단한 편이라 수월하게 만들었다.

곧 ‘잘 만든 4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라이더 바지’를 만들었다.

“이제 속성강화를 해야지. 오늘은 물 속성을 쓰기로 했으니까, 똑같이 물로 할까. 그런데 이 세트효과라면······.”

공격적인 효과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과 집중이란 말처럼 공격적인 옵션이 붙었으니 속성 강화도 공격적인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격형 강화 옵션 두 개를 보았다.

[공격형 강화]

-매 공격마다 착용자의 마나의 4%에 해당되는 추가 얼음속성 피해를 가하고, 상대를 동결시킨다.

-마법공격력의 40%에 해당되는 냉기돌풍 시전(쿨타임 1분)

“하나는 매 공격마다 추가 피해이고, 다른 하나는 뭔가 광역공격 같은 느낌이네.”

나는 그 두 개를 비교해보며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 생각해보았다.

후자를 먼저 검토해보았는데, 이건 아무래도 마법사에게 더 효과적인 것 같았다.

비상시에 그 냉기돌풍이란 것을 쓰고 도망치는 용도가 아닐까? 혹은 적들이 모였을 때 써버린다거나.

여하튼 검을 든 근접 전사나 뭐 그런 쪽의 클래스들이 활용할만한 옵션 같지 않았다.

반면에 첫 번째 옵션은 그런 ‘밀리’ 계열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화의 말대로 도적들이나 말을 탄 사람들이 공격해서 추가 얼음피해를 주고, 적을 동결시키면······ 또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내 상상이긴 하지만 그런 전투가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착용자는 재빠르게 움직이거나 말을 타고서 움직이며 공격한다.

적은 반격하려 하지만 동결되어서 실패하거나 비효율적이고, 착용자는 유유히 몸을 빼내어 재공격을 하는 것이다.

“음, 좋아. 상의는 이걸로 해야겠다.”

나는 결정을 내렸고, 상의에 속성강화를 부여했다.

[잘 만든 4등급 화산 코볼트 헌터의 차가운 라이더 자켓]

수식어 ‘차가운’이 붙었고, 아이템이 완성되었다.

다음은 라이더 바지에 속성 강화를 부여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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