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양털 점퍼와 바지 >
[집중력이 필요한 섬세한 노동으로 민첩과 정신력이 오릅니다.]
[민첩이 2 올랐습니다.]
[정신력이 2 올랐습니다.]
골램과 나는 상당수의 굵은 실과 양모 천을 만들었다.
양모 옷을 만들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수였다.
평소엔 딱 맞춰서 만드는데, 골램을 만든 이후 양털이 많아진데다가 베틀로 내는 음색에 정신이 팔리다보니 천을 많이 만든 것이다.
“많이 만든 김에 오늘은 좀 다른 옷도 좀 만들어볼까.”
매번 양모 상의와 양모 바지만 만들었는데, 다른 것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즉흥적으로 뭔가 만들 것을 정해보기로 하고, 제작 카탈로그를 띄워 살펴보았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양모 옷은 대부분 겨울용 옷처럼 보이네······ 전에 그래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긴 하지만, 봄 기후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
시화는 냉기저항이 필요한 공략에 유용해서 상관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옷을 만드는 입장에선 가능하다면 범용성을 지닌 옷을 만들고 싶었다.
“아니면 다른 옷감 재료를 찾아봐야하나?”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주인님. 천옷의 또 다른 재료로는 대표적으로 목화와 아마가 있습니다. 양모보다 가볍고 시원하며 경우에 따라 더위 저항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목화랑 아마라······ 둘다 농작물이지? 한 번 찾아서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골램과 그런 잡담을 했지만, 지금 당장은 그 두 재료가 없으니 적당히 카탈로그에서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을 곧 찾을 수 있었다.
[재봉, 후드 달린 양털 점퍼
점퍼에 후드가 달린 옷. 매우 따뜻하여 기본적인 추위저항이 매우 높다. 다만 더운 곳에서는 입기 힘들지도?
필요한 재료 : 양모 옷감 6장, 굵은 실 14개
필요한 도구 : 재봉 스킬 Lv4]
재봉 스킬의 레벨이 4인 내가 만들 수 있는 것들 중에 고른 것이었다.
명백히 겨울용으로 보이는 것.
어차피 다른 양모 옷들은 평소에 만드는 양모 상의를 제외하면 다 겨울용 옷이었다.
별 수 없이 겨울용 옷으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더운 곳에 들어서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는 홉 고블린의 정수를 넣기로 했지, 만드는 것은 그냥 바느질하면 될 것 같네.”
양모 상의보다 조금 복잡한 디자인이지만, 어차피 스킬의 힘으로 간소화된 제작과정인 바느질을 하면 그만이다.
단지 요구하는 바느질의 수가 80번으로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급할 것도 없고, 천천히 만들면 그만이었다.
단지 문득 생각나는 것이, 후드 달린 점퍼는 다소 판타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게임이니까 무슨 상관이겠냐만, 중세 판타지의 마법사가 로브 대신 이 옷을 입고 설원에서 싸우는 모습을 떠올리니 퍽 웃겼다.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바느질을 다 하니, 완성품이 만들어졌다.
[재봉 스킬 레벨 업!]
[잘 만든 5등급 홉 고블린의 후드 달린 양털 점퍼]
[잘 만든 5등급 홉 고블린의 양모 바지]
“음, 정말로 따뜻해 보이는군. 뭐, 지금 기후에선 더워 보인다는 말이 더 맞겠지만.”
내 생각대로 현실에서 팔리는 양모 점퍼의 모습이었다.
푹신해서 추운 곳에서는 정말 따뜻할 것 같은 모습. 염료를 쓰지 않아 흰색일색이지만 그럭저럭 패션적인 아름다움도 갖추고 있었다.
나는 능력치도 궁금해져서 상세정보를 살펴보았다.
[잘 만든 5등급 홉 고블린 주술사의 후드 달린 양털 점퍼 : 방어도 18 내구도 23/23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5등급 아이템. 재봉에 익숙해진 솜씨 덕분에 내구도가 더욱 좋아졌다. 양질의 양모 옷감으로 만들어서 추위내성이 매우 높다. 홉 고블린의 정수를 넣어 얻은 세트 효과 또한 강화되었다.
세트 효과 : 잘 만든 n등급 홉 고블린 주술사의 양모 하의 필요/전투시 20퍼센트 확률로 ‘신비한 각성’이 발동하여 주문 캐스팅 속도가 반감된다.]
“이번 것은 어쩐지 정말로 마법사용 아이템이 만들어져 버렸네.” 게임을 잘 모르는 나도, 이번 것은 마법사용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만 주문 캐스팅 속도가 이 게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말이다.
뭐, 그건 시화와 대화하다보면 알게 될 것이라 그리 궁리하진 않았다.
나는 세트 효과를 맞추기 위해서 양모 바지도 만들었다.
그런 다음엔 시화가 준 강화석을 이용해 속성 강화를 할 차례였다.
“흠······ 지난번엔 강화석이 두 개 뿐이라 무기와 갑옷에만 했었지. 이번엔 7개나 있으니,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만큼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아져버렸다.
선택장애인 것은 아니지만, 혹시 잘못 골라서 안 좋은 효과를 부여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은 드는 것이다.
하지만 시화가 그렇다고 공연히 화낼만한 인물도 아니고, 10만 골드라는 강화석을 물어내주지 못할 이유도 없기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르기로 했다.
“전엔 불을 골랐었으니까, 이번엔 물로 해야겠다.”
옆에 있는 물방울을 살짝 쓰다듬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방울은 하악질을 하며 냐아아아, 거렸지만 손길이 기분 나쁘진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씩 웃고선 정령강화 커맨드를 입력했다.
그러자 물속성의 3가지 유형의 강화옵션들이 나타났다.
[공격형 강화]
-매 공격마다 착용자의 마나의 4%에 해당되는 추가 얼음속성 피해를 가하고, 상대를 동결시킨다.
-마법공격력의 40%에 해당되는 냉기돌풍 시전(쿨타임 1분)
[방어형 강화]
-얼음속성 내성이 12% 상승한다.
-일시적으로 생명력의 12%에 해당되는 얼음속성 공격을 흡수(쿨타임 3분)
[지원형 강화]
-옷에서 냉기가 흘러나와 착용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더위 내성을 부여한다.
-위협적인 냉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온 적들이 동결에 걸린다.
“불속성이랑은 조금 다르네.”
“속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님.”
“그런데 지원형 강화에 더위 내성이 부여된단 것은 시원해진다는 말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럼 따뜻해야할 양모 옷이······ 그러니까 양모 옷의 추위 내성이 사라져버리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 추위 내성과 더위 내성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옷은 더울 때도 추울 때도 괜찮다는 말이네?”
“맞습니다.”
“마음에 드는데······ 문제는 다른 옵션들이 눈에 밟힌다는 거로군.”
양모 옷이 더울 때도, 추울 때도 유용해진다면 참 좋은 것 같아서 지원형 강화의 첫 번째 옵션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다른 옵션들이 더 마음에 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좀 덥거나 추운 것보다 더 강한 능력치를 얻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건 나 혼자 고민하기가 좀 힘든 문제였다.
“시화씨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네. 시화씨, 계십니까?
[네, 공진씨.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또 속성강화에 관련해서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세요.]
시화는 친절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물속성의 옵션들을 말해주면서, 내가 선택하려고 하는 지원형 강화를 골라도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화도 조금 고민하더니 말했다.
[솔직히 저도 고민이 좀 됩니다만, 공진씨의 우려와는 달리 저희도 추위내성이나 더위내성이 중요합니다.]
“그런가요?”
[네, 위험한 던전이나 지역은 설원지역이거나 화산지대 같은 곳이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만약 대비하지 않으면 엄청난 디버프나 불이익을 감수하고 싸워야하죠. 기존의 대응방법들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비효율적인데, 만약 그 옷에 그런 옵션
이 붙으면 효과적일 것 같군요.]
“전 그렇게 대단한 이유로 고른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아참, 바지에는 또 따로 속성강화를 할 수 있는데······ 그건 다른 걸로 고를까요?”
[그게 좋을 것 같군요. 다른 옵션들은 모두 좋아보입니다. 적당한 걸로 정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수고하십시오.]
시화와의 귓속말이 끝났다.
나는 그의 동의도 받았으니 양털 점퍼는 지원형 강화의 첫 번째 옵션으로 강화시켰다.
그러자 파란 오오라가 양털 점퍼에 일었다.
나는 다시 상세정보를 확인해보았다. [잘 만든 5등급 홉 고블린 주술사의 시원한 후드 달린 양털 점퍼 : 방어도 18 내구도 23/23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5등급 아이템. 재봉에 익숙해진 솜씨 덕분에 내구도가 더욱 좋아졌다. 양질의 양모 옷감으로 만들어서 추위내성이 매우 높다. 홉 고블린의 정수를 넣어 얻은 세트 효과 또한 강화되었다.
세트 효과 : 잘 만든 n등급 홉 고블린 주술사의 양모 하의 필요/전투시 20퍼센트 확률로 ‘신비한 각성’이 발동하여 주문 캐스팅 속도가 반감된다.
속성강화 : 옷에서 냉기가 흘러나와 착용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더위 내성을 부여한다.]
아이템 이름에 ‘시원함’이 추가되고, 속성강화에 대한 설명이 적혔다.
나는 시험삼아 그 양털 점퍼를 입어보았다.
그러자 매우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농장이 있는 이 하펜 마을 근처의 기후는 완연한 봄.
이렇게 두터운 양털 점퍼를 입으면 더워야 한다.
하지만 입고 있어도 전혀 덥지가 않은 것이다.
마치 시원한 물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흠, 더위 내성은 확실한 것 같은데······ 그럼 추위 내성을 실험해보아야 할 것 같다.
“물방울아, 내 주변을 춥게 해줄 수 있니?”
냐아아아옹
[물방울이 귀찮지만, 해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부탁해!”
냐아아아앙!
물방울이 울음소리를 내자, 내 주변에 한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얼굴이나 손에 한기가 느껴졌는데, 양털 옷 안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양털 옷 답게 방한 능력도 만점인 모양이다.
이걸로 추위와 더위 모두에 대처할 수 있단 것을 확인했다.
나는 물방울에게 그만해도 좋다고 말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럼 바지의 옵션을 정해야겠네, 이번엔······.”
나는 공격형과 방어형, 지원형의 옵션들을 잘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이 아이템을 쓸만한 사람이 바로 마법사들인 것을 고려했다.
상식선으로 알고 있는 게임지식으로 볼 때, 마법사는 근접전에 약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약점을 메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예컨대 지원형 두 번째 옵션이 그런 것 같았다.
-위협적인 냉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온 적들이 동결에 걸린다.
“가까이 온 적이 냉기에 얼어버리면 마법사들에겐 좋은 일이겠지?”
“그렇습니다, 주인님. 몇몇 특수한 히든 클래스나 특수 클래스를 제외하고 마법사들은 근접전에 취약합니다. 그들에게 거리를 벌릴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이게 좋겠네.”
골램도 동의하고 있어서 그걸로 결정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바지에도 파란 오오라가 일기 시작했다.
[잘 만든 5등급 홉 고블린의 얼려버리는 양모 바지]
아이템이 완성되었다.
이름도 꽤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