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4일차 선술집 마무리 >
오늘도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선술집의 손님들이 줄어들었다.
으레 그렇듯이 늦은 시각까지 남은 이들은 술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군신 길드원들도 있었다.
그들도 술과 음식을 즐기는 부류였다.
듣기로는 군신 길드원들에게 게임은 사실상 일이라는 느낌이라, 술을 마시며 쉬는 날이 드물었다는 것이다.
“오늘 정말로 잘 마시고 갑니다. 게임이 일이다보니, 바깥에 나가는 일이 드물었는데 오랜만에 좋은 술을 마셨습니다. 음식도 맛있었고요.”
잘 마시고 떠나는 길드원들의 대표로 두석린갑을 입은 길드원이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마시고선 또 ‘사냥’을 하러 간다는 것이다.
정말로 게임을 일처럼 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런 열정이 있기에 최고의 길드겠지만 말이다.
“저도 가요, 오빠.”
“응. 너도 사냥하러 가는 거야?”
미나도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녀도 게임을 마저 하러 가는 줄 알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로그아웃할 거예요. 사실 저는 라이트유저로 길드에 들었거든요.”
“아, 나랑 같네. 하긴, 연예인 지망생이면 이것저것 할 일이 있을 거 아냐?”
“공부하고 연습하고, 그런 것 정도죠. 아, 오빠 덕분에 오늘 스트레스 한껏 풀었어요.”
“내가 뭘 했다고.”
“술이랑 음식 먹었잖아요. 현실에선 몸매 관리한다고 못 먹거든요.”
“그렇구나.”
그 말 한마디로 연예인 지망생의 노력을 실감하긴 어렵지만, 배고파도 못 먹는 것은 고단한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현실의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푸는 모양이었다.
“그럼 다음에도 또 올게요, 어쩌면 내일 또 올지도!”
“응.”
“······저기, 조금은 기뻐해도 좋아요?”
“와주면 나야 기쁘지.”
“저기 그럼 저희 친추해요!”
나에게 친추를 요청하는 미나였다.
지금 나는 시화 외에는 친추를 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한 사람 더 해도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와, 친추 받아주셨다! 그럼 잘 있어요!”
미나는 그런 말을 남기고 선술집에서 나간 뒤, 로그아웃을 했다.
군신 길드원들은 마을로 향해서 텔레포트 서비스를 이용해 다시 자신들의 사냥터로 돌아간 모양이다.
그 후 선술집이 한산해졌고, 슬슬 문을 닫아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늘 영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꺼억, 잘 먹었다.”
“내가 술을 마시고 술이 나를 마신다.”
“사장님 잘 마셨습니다.”
술꾼들은 제각각 한 마디씩 하고 선술집을 나섰다.
그들이 나선 선술집을 정리하면서 오늘도 뿌듯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술집을 하면서 사람들의 애환도 듣고,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환상이면 어떤가? 이건 게임이거늘.
“어디보자······ 17,132,200골드니까 대충 400만 골드를 벌었네.”
여느 때와 같이 술이 매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막걸리는 매진되었고, 새로 내놓은 브랜디도 더욱 인기였다.
비싼 양주를 싸게 내놓는 격이다 보니 술꾼인 손님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물론 요리와 빵도 꾸준히 팔렸다.
그런데 오늘은 회를 내놓아서 그런지 매운탕은 그다지 팔리지 않았다. 사과타르트와 사과파이도 서로 대체제다 보니 수익이 나뉘는 기분이었다.
장사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예전부터 생각했던 순환메뉴를 도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걸 만드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란 말이지······ 역시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냐.”
게임의 장사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많다.
물론 나는 힐링이 되는 선에서 하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을 추구해야할 것 같았다.
어쨌든!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 나는 선술집을 정리하곤 브랜디를 와인잔에 담아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아직 출근 시간까지 12시간 정도가 남았다.
조금 쉬다가 시화의 의뢰인 아이템 제작을 하고, 정리를 하면 딱 들어맞을 시간이다.
그러니 조금 쉴 생각이었다.
“아, 정말 언제봐도 좋은 풍경이야.”
호수는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그 위에 물방울을 태운 호크가 오리처럼 둥둥 호수를 떠다니고 있었다.
바람이가 호수를 높이 날았다가 저공비행하는 것도 멋졌고, 호수 주변에서 서로 뒹굴며 놀고 있는 불돌이와 실버도 정겨웠다.
태산이는 골램과 나란히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서 기분 좋았고, 브랜디의 맛도 좋았다.
입이 심심해지면 사과 하나를 꺼내 깨물어 먹었다.
브랜디는 과일주라 그런지 사과와 같이 먹어도 잘 어울렸다.
“아, 그런데 오늘은 그 학생은 오지 않았네?”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선술집을 열었을 때마다 왔었던 빵을 좋아하는 여학생 말이다.
어쩐지 부잣집 아가씨 같았던, 뭐 그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 아가씨한테서 다음에 구울 빵 같은 것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서 유독 기억에 남았는데, 오늘은 오지 않은 것이다.
“흐음, 조금 아쉽네. 그럼 오늘은 대충 카탈로그를 훑어보면서 새 메뉴를 정할까.”
피자와 햄버거도 그 학생이 말해준 아이디어였는데, 맛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뭐, 손님이란 것이 매일 온다는 법은 없는 거지.
내일 올수도 있고, 아니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연이란 것이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그렇게 흐르자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특별한 인연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으아아, 잘 쉬었으니 또 뭔가 만들어 볼까!”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뭔가 만들 시간이었다.
우선 물약을 만들까 했는데,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골램아. 금빛 야생삼으로는 비약을 만들 수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주인님. 기초적인 비약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기초적인 비약이라, 뭐 한번 찾아볼까.”
골램과 대화를 나눈 나는, 연금술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금빛 야생삼이 드는 제작 목록을 검색할 수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연금술, 하급 정신력의 비약
정신력이 오르는 효과를 가진 비약. 비약이 아닌 다른 버프 효과와 중첩이 된다. 24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필요한 재료 : 금빛 야생삼 1개, 나무수액 10개
필요한 도구 : 연금술도구, 연금술 Lv2]
“정신력이라, 내게도 필요한 건데.”
개인적으로 태산이도 중급 정령으로 소환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정신력이 오른다는 설명이 눈에 띄었다.
다른 버프 효과와 중첩이 된다는 말은 분명히 음식 효과와도 중첩이 된다는 말이겠지?
난 그런 생각을 하며 골램에게 재차 확인하듯 물어보았다.
“그렇습니다, 정신력을 올려주는 음식의 추가효과와 중첩됩니다. 그것이 비약의 강력함입니다.”
“그럼 내 순수 정신력이 91이니까, 음식 효과로 30정도 올린다면 비약으로도 30정도를 올려야 태산이를 중급 정령으로 만들어줄 수 있겠네. 하지만 힘들겠어.”
지금 내 연금술 레벨은 고작 2다.
생활의 달인 효과를 받는다고 해도, 정신력이 30이나 오르는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안 만드는 것보단 낫겠지. 그나저나 오늘 이걸 만들면 마나 물약은 만들기 힘들어질 텐데······ 안 되겠다, 연금술도구를 하나 더 만들어야겠어.” 지금 가지고 있는 연금술도구는 마법사 길드에서 사서 나중에 정령술을 이용한 자동 연금술 도구로 만든 것이었다.
그땐 유리를 만들 방법이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으면 그냥 만들면 되기에, 나는 주저 없이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불돌이가 벌써 내 뜻을 헤아리며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대장간으로 가자고 하니, 왈왈 거리며 뛰어가 용광로 안에 쏙 들어가버렸다.
[대장기술, 연금술도구
연금술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 당연하지만 유리가 필요하다.
필요한 재료 : 유리 8개, 철괴 1개
필요한 도구 : 유리공예용 철봉, 용광로, 조합스킬, 대장기술 Lv3]
"좋아, 이걸 만들어볼까.“
“저도 돕겠습니다, 주인님.”
삐이이익
유리를 만드는데 골램과 바람이가 도우러 왔다.
물방울도 할 일은 없지만 호크와 실버를 대동해 대장간 바깥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즐거운 기분으로 유리를 만들 수 있었다.
골램과 함께 만들어서 4개씩만 만들면 되었기에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곧 연금술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걸 자동 연금술도구로 만들어야지.”
그 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처럼 정령술을 이용한 자동 연금술도구로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확인하게 되었는데, 정령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골램도 마력석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마력석도 다시 캐야할 것 같았다.
“내일까진 버틸 양이긴 한데, 아무래도 내일은 광산에 또 가야겠군. 레벨업도 할 겸해서.”
태산이를 중급 정령으로 만들어보려면 레벨업을 하는 것이 간편한 방법일 것 같았다.
겸사겸사 정령석과 마력석도 보충하고, 소금이랑 철광석도 더 캐야 할 것이었다.
여하튼 자동 연금술도구를 하나 더 만들었다.
“자 그럼 하나는 마나 물망초로 하급 마나 물약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하급 정신력의 물약을 만들면 되겠지. 괜찮은 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기대 반 초조함 반으로 연금술 도구에 재료들을 넣고 제조를 시작했다.
일단 그렇게 알아서 만들어지는 비약과 물약을 뒤로하고, 나는 다른 것을 생각했다.
“이제 시화가 준 재료들을 살펴볼까.”
[홉 고블린의 정수 50개]
[화산 코볼트의 정수 50개]
[황무지 오우거의 정수 50개]
[자이언트의 정수 2개]
[강화석 7개]
오늘 접속해서 시화가 주었던 아이템들을 보았다.
이름만 봐도 뭔가 대단한 몬스터들의 정수 같았다.
강화석을 7개나 준 것은 양모 상하의, 가죽 상하의, 무기 두 개, 철제 갑옷 하나를 모두 강화시켜 주길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느낌상으로는 홉 고블린은 양모, 코볼트는 가죽, 오우거는 무기 두 자루, 자이언트는 갑옷을 만들면 될 것 같네.”
그 차례대로 강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직감이긴 하지만 아마 틀리지 않을 것이었다.
“자 그럼 오늘도 직공과 대장장이가 된 기분을 되어볼까.”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방직과 방적이다.
양모에서 실을 뽑고 실로 천을 만드는 작업 말이다.
곧 나는 골램과 함께 그 작업을 시작했다.
골램은 물레를 돌리고, 나는 골램이 만들어 주는 실로 천을 짰다.
베틀로 리듬게임을 했는데, 기분이 좋아선지 베틀이 내는 음이 마치 하프의 선율 같이 느껴졌다.
조용한 호수의 농가에 하프 같은 음색이 퍼져 더욱 풍류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천을 계속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