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106화 (106/239)

< 88화 군신 길드 방문 >

“응?”

한창 장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유독 많은 손님이 한 번에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뭔가 ‘고수’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장비가 무척 좋았고, 풍기는 분위기도 전문적인 게이머처럼 느껴진 것이다.

“여기가 길마님이 말하던 곳인가?”

“유저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믿기 힘든데?”

“베타테스트 때도 영지 외에 사유지를 얻은 유저는 본적이 없는데······.”

들어오면서 나누는 대화도 뭔가 범상치 않았다.

그들은 빈자리에 각각 앉았는데, 그렇게 흩어지는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앗, 저건?”

유독 눈에 띄는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던 것이다.

바로 내가 만든 두석린갑이었다.

두석린갑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또 하나 있지 않는 이상 저건 내가 만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패용하고 있는 검 또한 내가 만든 환도 ‘수호자’였으니, 확실해 보였다.

나는 그제야 그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게 가서 인사 겸 확인해보기로 했다.

“어서오십시오, 혹시 군신 길드에서 오셨습니까?”

“아, 네. 맞습니다. 시화 길마님의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두석린갑을 입은 손님은 아주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갑옷을 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만든 것이라서 말이죠. 실제로 다른 사람이 입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군요.”

“아, 그쪽은 그럼 공진씨겠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생활 스킬에 특화하신 분이시라고요.”

“그런 셈이죠. 그런데 군신 길드 여러분들을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선술집에 처음 오신 것 같은데······.”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여기 온 이유를 넌지시 묻는 뉘앙스를 풍겼다.

내 의중을 읽은 듯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이곳 마을의 마법사 길드가 마탑 회원이 되어서 저희가 있던 곳에서 바로 올 수 있게 되어서 찾아왔습니다. 평소에는 오기가 까다로워서 길마님만 찾아뵙는데, 이젠 저희도 올 수 있게 되었죠.”

“아하, 그렇군요.”

나는 시화에게 마법사 길드가 마탑 회원 자격을 얻은 것을 말했던 걸 기억했다.

그를 통해 길드원들의 귀에도 들어가, 선술집을 찾아오게 된 모양이다.

다들 선술집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지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만들어주신 두석린갑과 ‘수호자’는 잘 쓰고 있습니다. 성능이 정말 좋아서 제 활약이 더 늘었습니다. 그래도 시화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요.”

“그렇군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시화는 정말로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아이템 없이도 그걸 착용한 사람보다 훨씬 강하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주변의 사람들의 이목도 끌고 있었다.

“저기 봐, 군신 길드 사람들인가봐.”

“입고 있는 템들 끝내준다······ 나는 언제쯤 저런 거 입어보나?”

“특히 저기 저 갑옷은 사람, 꼭 사극에 나오는 장군 같다.”

“붉은 오라가 나오는데, 굉장히 좋은 아이템인 것 같은데?”

“잠깐, 나 저 갑옷 본 적 있어! 여기 농장 주인이 만들어서 입었던 갑옷인데?”

“군신 길드에 들었다더니 진짠가봐.”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군신 길드 사람들은 허허, 웃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명세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프로의 면모가 보이는 것이, 그런 유명세에도 거만해 보이지 않고, 딱 절제하는 느낌인 것이다.

과연 게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프로의식을 가질 수 있단 것을 새삼 느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평소에 와보고 싶어서 오긴 했는데······ 뭘 주문해야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뭐가 좋은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딱히 어느 것이 나쁘고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제 선술집의 요리들은 보통 안주, 빵, 음식으로 나뉩니다. 음료는 주스와 콜라, 그리고 술 종류가 있죠. 안주는 버프보단 술을 드시는 분들이 안주삼아 먹기 좋은 것이고, 빵과 음식들은 버프용입니다. 물론 버프와는 상

관없이 나눠 드시는 분들도 계시지만요. 오늘 신상은 햄버거랑 피자입니다. 회도 있었는데, 그만 다 팔려버렸군요.”

나는 그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평소에 길드에 납품하시는 사과파이는 자주 먹었습니다. 효과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좋더군요.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싶습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데, 버프 효과도 한 번 확인해보고 싶은 것은 어떤게 좋을까요?”

“지금 가장 강력한 버프는 피자겠네요. 처음으로 단일 음식으로 능력치 5종이 오르는 음식입니다. 다만 이게······ 양이 좀 많습니다. 혼자 다 먹을 수도 있긴 하지만, 나눠 드시는 분들도 많더군요.”

“흠, 저흰 버프가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만 알면 그만이니 그걸로 시키도록 하죠.”

“네, 그럼 피자 한 판. 그리고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나는 음료를 물어보았고, 그의 테이블에 앉은 다른 동료들의 음료 주문을 받았다.

그 후 나는 그 테이블을 떠나, 다른 군신 길드원의 주문도 받게 되었다.

그들의 주문도 제각각이었다, 술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고, 빵이나 음식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 둘 주문을 받고 있을 때였다.

“저기요.”

“네?”

“저 기억나지 않으세요?”

“어라······.”

한 여인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를 아는 듯했는데, 나도 그녀의 낯이 뭔가 익다.

하지만 내가 군신 길드원 중에 시화 말고 아는 사람이 있었던가?

“하긴, 그땐 농장이 이렇게 크지 않았고, 며칠 좀 지났으니까 기억나지 않으실 법도 하네요.”

“아뇨, 저도 뭔가 낯이 익으신데······  혹시 물고기 구이를 사신 적이 있으셨나요?”

“맞아요, 제가 그 사람이에요.”

“역시 그랬군요! 오랜만입니다.”

누군가 했더니 예전에 물고기구이를 사서 맛있게 먹었던 여자였다.

입고 있는 장비가 엄청나게 달라져 있어서 한 번에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연예인처럼 예쁜 얼굴이라 잘 잊어먹기도 힘든데, 내 눈썰미가 좀 떨어져선지 단 번에 알아보질 못 했다.

“군신 길드셨는지는 몰랐군요.”

“네, 이게 다 오빠 덕분이에요. 아, 새삼스럽지만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그런 소리 들을 나이는 꽤 지났는데······.”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28살이요.”

“뭐에요, 제 오빠랑 나이 같으시면서. 저는 24살이에요.”

“하하하······ 그래도 오빠라고 불리니 뭔가 낯간지러운 느낌이네요.”

“그럼 서로 이름으로 부르죠. 저희 이름도 모르잖아요? 제 이름은 미나에요. 장미나.”

“저는 사공진. 공진입니다.”

어쩌다보니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흠, 생각보면 난 이 게임을 하면서 사람이나 NPC끼리 통성명을 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시화가 아마도 유일했을 텐데, 어쩌다보니 그녀, 미나와도 통성명을 한 것이다.

여하튼 나는 그녀에게서 주문을 받으려고 했다.

“미나씨.”

“미나라고 부르세요. 말도 편하게 하시고요. 실제로 나이 어린 동생인데요.”

“아, 그게······ 미나.”

“네, 공진씨.”

나는 어색하게 이름을 불렀다.

어린 여자에게 이름을 부르는 일은 회사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남초 회사라서 정직원으로 여자인 경우도 드물었고, 가끔 오는 여인턴들을 부를때나 그랬을까?

물론 아주 사무적으로 불렀기에, ‘씨’도 안 붙이고 이름만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반말로 말하라는데도 허우대처럼 존대를 고집하기도 뭣해서 어색하지만 반말로 대했다.

“주문 뭘로 할래?”

“음, 술 먹고 싶어요. 오빠. 와, 여기 술 꽤 많네요. 위스키는 종류별로 다 있고, 와인에 브랜디, 막걸리까지. 바에 온 기분이에요. 물론 막걸리는 바에서 팔지 않지만요.”

“그래? 그럼 무슨 술을 더 팔면 좋을지 말해봐. 손님들에게서 많이 참고하거든.”

“음, 의외로 맥주가 없기도 하고, 벌꿀주나 과일주도 좋죠. 칵테일도 만들어 볼 생각 없으세요?”

“해보고 싶긴 하지. 뭐, 내일 한 번 해볼까?”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반말에도 익숙해졌다. 미나는 곧 블렌디드 위스키 하나를 주문했고, 과일모둠과 함께 먹었다.

“와, 과일이 정말 풍성하네요. 이런 식으로 팔아서 남는 장사에요?”

“현실과는 달리 원가는 별로 안 들거든. 물론 농사와 요리 스킬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죠, 생활 스킬이 천대 받는 걸 조금 이해할 수 없어요. 보면 이렇게 유용한데 말이죠.”

“직접해보면 어려워서 그런 말 못할 거야. 게임으로 하기엔 귀찮은 것들이 좀 있거든.”

“그런가요? 그런데 공진 오빠는 생활 스킬만 하시네요.”

“난 그게 재밌으니까. 그러니까······ 힐링을 느끼거든.”

“힐링이라······ 어떤 힐링 말이죠?”

미나와 나는 금방 친해져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미나에게 왜 내가 이 게임에서 힐링을 느끼는지 말하게 되었다.

“난 회사원인데······ 그러니까 S사 말이야. 거기 4년차 사원이야.”

“와, 대단하네요.”

“자랑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 일은 좀 힘들어. 아침 일찍 나가서 자정쯤에나 돌아오거든.”

“아······.”

“하루는 그런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뭔가 기분전환할 수 있는 걸 찾고 있었어. 그러다가 이 게임의 광고를 봤었지. 이 농장처럼 호수 옆에 농가가 그려진 모습이었는데, 그거에 끌렸던 거야. 바로 캡슐을 사고 다음날 접속했는데, 운 좋게도 그 광고와 비슷한 모습인 이

곳을 찾게 되었지.”

“짜잔, 그리고 그곳에 히든 피스가 있었습니다! 그런 왕도적인 전개군요?”

“크흠, 뭐 그런 셈이지만, 없었다고 해도 난 똑같이 플레이했을 거야. 농사나 지으면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고 만족하는 식으로 말이야. 물론 그랬다면 사람들이나 군신길드의 주목은 끌 수 없었겠고, 너를 보게 되는 일도 없었겠지.”

“헤에, 그렇군요.”

게임을 한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나는 어쩐지 추억을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머쓱해져서 헛기침을 한 번 더 하곤 미나에게 물어보았다.

“내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미나는 현실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야? 군신 길드원들처럼 프로게이머야?”

“아니요, 프로게이머는 아니에요. 뭐, 요즘 할 일이 없어서 게임을 많이 하긴 하지만요.”

“원래는 무슨 일 하는데?”

“그게······ 부끄럽지만 연예인 지망생이에요.”

“아, 그럴 것 같았어.”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예쁘니까, 그럴 것 같았다고.”

“······.”

내가 그렇게 말할 쯤에, 그녀는 술기운이 올랐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아, 아하하. 그런 말 들으니까, 힘이 나네요.”

“사실인데 뭐.”

“······저기요, 평소에 둔감하다는 소리 안 들어요?”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 저는 파티원들하고 이야기 좀 하러 가야겠네요. 나중에 또 이야기해요.”

“응, 잘 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군신 길드원들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군신 길드원들이 와서 선술집이 더욱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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