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선술집 4일차 >
선술집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왔다.
명확히 오픈 시간을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미리 기다리던 사람들이 들어오고 난 뒤로 얼마지 않아 사람들이 마구 도착하는 것이다.
아마 얼추 내가 여는 시간에 맞춰서 오는 것이거나, 아니면 먼저 온 사람들이 귓속말 따위를 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모양이었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이 내 선술집을 찾아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장님 브랜디랑 과일모둠 하나요!”
“네, 갑니다.”
어느새 사장님이란 호칭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말단 회사원에 불과한 내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사장님 소리를 들어볼까?
그런 장난스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씩 웃었다.
바이어 앞에서 짓는 영업용 웃음이 아닌, 정말로 즐거워서 웃는 것도 오랜만이다.
나는 손님에게 브랜디를 가득 부어주고 바나나와 파파야, 망고가 추가되어 풍성해진 과일모둠을 내주었다.
“와 오늘은 과일모둠에 과일이 엄청 많네요, 사장님.”
“새로운 과일이 들어와서 추가시켜봤습니다. 접시가 작을 지경이죠.”
“어디 한번······ 크으, 망고가 정말 달군요. 현실에선 이런 거 먹기 힘든데. 사장님 덕에 입이 호강합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꿀꺽······ 크, 브랜디도 정말 맛있군요.”
중년의 손님은 과일과 브랜디를 먹곤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사장님 저도 과일모둠이랑 브랜디!”
“이쪽엔 위스키 두 잔에 브랜디, 그리고 과일모둠이요!”
“여긴 매운탕이요!”
“네, 곧 나갑니다!”
중년의 손님들, 버프에는 관심이 없고 식도락과 술, 안주에 관심이 있는 모양인 사람들의 주문이 이어졌다.
나는 그분들의 주문을 세세히 기억해 받았다.
주문을 까먹어도 골램이 전부 기억하기 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었다.
술과 과일모둠들을 먼저 내준 뒤, 매운탕을 즉석에서 끓여주었다.
밥과 매운탕을 받은 사람은 군침을 흘리며 매운탕이 익기를 기다리다가, 술이 고파졌는지 위스키를 주문했다.
“아저씨, 사과타르트에 사과잼 발라서 우유랑 주세요!”
“여기 사과파이 4개요!”
“된장삼겹살이랑 밥이랑 콜라 하나 주세요!”
미성년 학생들의 주문도 이어졌다.
대부분 빵을 주문했지만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콜라가 추가되면서 콜라를 찾는 이들도 많았다.
아직은 설탕이 많지만, 주문이 계속 쇄도하면 사탕무를 키워 설탕을 더 늘려야할 것도 같았다.
“아저씨, 피자랑 햄버거도 있는데 이거 맛있어요?”
“물론 맛있죠. 특히 피자는 조금 비싸지만 5종 버프를 다 받기 때문에 버프 효율도 좋습니다.”
“정말요? 와 쩐다. 그럼 피자 한 판 주실래요?”
“여기 있습니다.”
빵 주문은 많을 거라고 예상해서 미리 구워두었기에 바로 내줄 수 있었다.
피자 한 판을 내주자, 주문한 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피자 대빵 크다. 거의 L사이즈인데······ 이거 진짜 1인분인가요?”
“사이즈는 신경 쓰지 않고 만들었어요. 나눠먹어도 좋지만, 버프는 아마도 혼자 먹어야 온전히 다 받겠죠?”
“히히, 그럼 혼자 다 먹어야지. 아저씨 진짜 짱인 듯, 이런 피자는 현실에선 보통 2만원에 나눠먹게 되는데······ 한 번쯤 피자를 물리도록 먹고 싶었어요!”
피자를 주문한 학생은 입이 귀에 걸릴 듯이 웃었다.
만 골드라서 비싸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도 걱정했는데, 현실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싼 가격이었던 모양이다.
학생이 좋아하니, 나도 흐뭇해진 기분이 되었다.
그 학생이 피자를 콜라와 함께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자, 다른 이들도 피자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혼자 버프를 다 받기 위해서 먹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버프 효율은 떨어지더라도 나눠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후자는 저렴하게 맛있는 피자를 맛볼 수 있는 것에 족한 모양이었다. “저기요, 햄버거는 무슨 햄버거인가요?”
“소고기 패티를 썼으니까, 불고기 버거나 스테이크 버거 같겠네요. 생긴 건 이렇습니다.”
“와 햄버거 크기 대박 크다.”
그 뒤로는 햄버거 주문도 들어왔는데, 나는 직접 만든 햄버거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보이면서 말했다.
학생들은 먼저 햄버거 크기에 놀라고 있었는데, 내가 만들었어도 햄버거 크기가 좀 컸다.
자비가 없을 정도로 두툼한 패티에 햄버거 빵도 두툼했고, 야채들도 풍부하게 들어가서 커다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햄버거 하나랑 콜라 주세요!”
“햄버거 하나 레몬주스 하나요!”
“저 햄버거 가지고 다니면서 먹을래요, 5개 주세요!”
햄버거도 금방 인기가 치솟았다.
한 사람은 욕심도 많아서 여러 개를 주문하기도 했다.
한 사람 당 하나라는 규칙도 없기 때문에 돈만 있다면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주인님, 물고기의 경매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 바로 하자.”
그러던 중 골램이 다가와서 말했다.
오자마자 메뉴에 회가 있는 것을 보고,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상대로 수가 많아서 경매를 하기로 했다.
50명이 좀 넘는 사람들이 경매에 참가했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회를 떠서 보여주었다.
“와, 양이 장난 아니잖아? 거의 대짜만한 양이잖아?”
“사장님, 경매 기본가가 얼만가요?”
“기본가는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첫 경매의 마지막 가격이 다음 경매의 기본가입니다.”
“헐, 그럼 바로 질러야겠네. 3000골드!”
“4000골드!”
“5000골드!”
물고기 한 마리의 회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차지하고 싶어서 경매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많은데, 물고기는 26마리뿐이니 경쟁은 치열해졌다.
“9000골드!”
“만 골드!”
짜놓기라도 한 듯이 천 골드씩 경매가가 올랐는데,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경쟁할 줄은 예상하지 못 했었다.
기껏해야 다른 음식처럼 7000골드 정도에서 마무리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맛있는 것에 대한 열망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더욱이 누군가가 대짜보다 많다고 말한 것처럼, 여느 횟집의 비싼 대짜 회보다 양이 많아서 만 골드에 이르러도 손님 입장에서도 손해가 아니다.
결국 첫 바닷물고기 회는 13000골드에 마감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횟집에선 소짜 정도의 가격이다.
“여기 상추랑 깻잎, 그리고 초장이랑 고추냉이 간장에 밥입니다. 밥은 서비스입니다.”
“크으, 벌써부터 술이 땡기네요 사장님. 막걸리 한 잔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나는 회를 차지한 사람에게 상추와 깻잎, 초장과 고추냉이 간장에 밥을 서비스로 내놓았다.
횟집에서 내놓는 밑반찬들이 없긴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음식점의 밑반찬은 가게마다 수준이 달라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앞의 네 가지가 전부긴 했다.
횟집에 회를 먹으러가지, 누가 그 집의 김치를 먹으러 가는가? 물론 밑반찬은 구운 고등어라든가, 초밥이라던가, 치즈옥수수 그라탕이라던가, 여러 개를 내놓는 곳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마찬가지다.
회의 질과 양이 충분하니, 손님의 니즈는 거기서 충분한 것이다.
“사장님! 다음 경매 빨리 하시죠!”
“와 저 사람 정말 복스럽게 먹네, 허허허. 저도 경매 참가해도 되죠?”
곧 다음 경매를 재촉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다음 경매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손님의 종류도 다양했다.
방금 회를 차지한 사람처럼 혼자 독식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행인지 아니면 즉석에서 모인 파티인지는 몰라도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나눠 먹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묘한 경쟁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회를 독식하려는 사람들은 많지만, 상대적으로 같이 먹으려는 사람들보다 경쟁력이 떨어졌다.
왜냐하면 같이 먹는 사람들은 돈을 나눠서 내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올라도 더 크게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회의 가격은 2만 골드 수준으로 올랐지만, 경쟁은 여전했다.
2만원 수준이 되어도 현실의 대짜 회의 가격에 비하면 턱없이 쌌기 때문이었다.
양도 많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오늘 물고기는 품절되었습니다!”
“아, 아쉽다. 먹고 싶었는데.”
“다음엔 나도 파티 구해서 먹어야겠네. 파티한 사람들 화력이 장난 아님.” “혼자 먹으려다가 공쳤네, 공쳤어.”
“술이나 마셔야겠다.”
어느새 26마리의 물고기들이 전부 팔렸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물고기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걸.
나는 이 정도로 인기가 있다면 어획량을 늘릴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단순하게 사버리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트로페 마을에서 배라도 타고 본격적인 바다낚시라도 해볼까?
“아, 오늘 회사도 참 힘들었어.”
“진짜 마음 같아선 때려 치고 싶은데, 자식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으휴······.”
“나도 진짜 애들만 아니었으면 회사 진작 때려치웠다. 이건 사람 사는 꼴이 아니야.”
“정말이지 언젠간 나도 시골에서 농장 하나 하면서 부업으로 식당하고 싶다. 그 왜, 로컬푸드 음식점도 있잖아.”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농사짓는 것은 뭐 쉽나?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돈이 있어야 말이지. 게다가 마누라가 좋아할지도 모르겠고.”
“쯧. 그렇긴 하지. 술잔 비었네, 사장님! 여기 위스키 두 잔이요!”
술잔을 기울이면서 세상사를 말하고, 한탄을 하기도 하는 손님들이었다.
그들의 애환이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지만, 나는 딱히 위로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줄 수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현실과는 다르게 위스키를 가득 부어주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손님은 일단 만족하는 듯했지만 말이다.
“요즘 사냥 속도 쩔어져서 좋지 않냐?”
“응, 여기 짱인 듯. 버프가 너무 좋아.”
“난 길드 제안도 받았어. 급은 낮지만 랭커 길드였음.”
“헐, 어쩌기로 했음? 들어갈 거임?”
“아직 고민 중인데, 공부땜에 힘들 것 같음. 엄마한테 나 프로게이머 한다고 하면 혼날 거니까 뭐, 그냥 버프 음식이나 먹고 사냥해야지. 레이드 뛰는 것도 요즘은 막공도 많잖아.”
“그렇지 뭐. 그런 의미에서 다 먹고 사냥 콜?”
“콜.”
학생들도 학생들 나름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대화에 비해 게임 용어가 많아서 완전히 알아듣기 힘들긴 하지만, 음식 버프에 대해 호평인 듯하다.
학생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게임에 집중되어 있지만, 간간히 공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창 그럴 나이라는 생각에, 나는 막연한 학창시절의 그리움이 떠올랐다.
그때엔 나도 힘들다고 생각했고, 지금 생각해도 힘든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워지는 옛날이기도 한 것이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대부분을 공부만 하며 보냈던 학창시절이라도, 내가 가장 아름답고 청춘을 불태웠던 때는 그때였으니 말이다.
선술집에는 이런 애환과 추억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