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96화 (96/239)

< 78화 바다로 >

“해안 마을에 가시려는 겁니까?”

“응! 오늘은 어쩐지 바다를 보고 싶거든!”

“그럼 저는 농장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아······ 골램도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농장을 지키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또한 저는 주인님의 시야로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아 참, 그랬지.”

“그러니 신경쓰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골램의 말에 나는 수긍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바다에 가자는 내 말에 바다가 뭐냐고 묻는 것 같은 눈빛이다.

멍멍!

왈왈!

실버와 불돌이는 나란히 앉아서 나를 보며 헥헥 거렸다.

바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든 재밌게 따라갈 기세다.

냐오옹

꼬꼬꼭

호크의 등 위에 올라가 있는 아기 고양이 물방울은 흥미가 없는 척하면서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다.

반면에 호크는 언제나 그렇듯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음머어어

삐이이익

[태산이가 하품을 하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옥스의 등 위에 내려앉은 바람이는 경례를 하고 있고, 옥스는 무심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태산이는 꾸벅꾸벅 거리면서 늘어지는 메시지를 보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모두 평소 같아서 데려가도 이상은 없을 것 같았다.

“자, 그럼 갈까!”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골램의 배웅을 받으며 나와 아이들이 농장을 떠났다.

옥스의 등에 느긋하게 타고 마을로 향하는 것이, 꼭 옛날 시골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풀피리 대신 휘파람이라도 불면서 가고 있으니, 어느새 마을에 도착하고 마법사 길드에 이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법사 아가씨가 카운터에 의욕없이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어서오세요오오······ 앗, 농장주 이방인 씨?”

“안녕하세요.”

음머어어어어

“······오늘은 데려오신 친구분들이 많네요.”

“혹시 동물은 출입금지였나요?”

“그런 규칙은 없어요, 그런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좋은 아이들인데.”

마법사 아가씨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나는 옥스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곧 마법사 아가씨가 질문했다.

“아직 사과파이를 납품해주시러 오신 것 같진 않고······ 혹시 텔레포트 서비스를 이용하러 오신 건가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 이야기를 나눴었잖아요. 게다가 오늘 좀 전까지 텔레포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엄청 늘었어요.”

“그런가요?”

“네, 저희가 마탑 회원 자격을 얻은게 소문이 난 모양이에요. 검은 갑옷을 입은 사람이 이용하고 간 후,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

아무래도 검은 갑옷을 입은 사람은 시화를 말하는 것 같았다.

소문이 퍼진 이유는 아무래도 그 때문인 것 같은데, 뭐 나쁜 것은 아니니까 상관할 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군요, 일단 저도 텔레포트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요.” “그게······ 그 동물들도 함께 데려갈 생각이시죠?”

“네.”

“비용이 늘어나요.”

“상관없어요, 얼마인데요?”

“개인당 1만 골드요. 정령은 특별히 이방인님과 함께 1인분으로 포함되니까, 개랑 소, 닭까지 하면 4만 골드겠네요.”

“네······ 그런데 돌아올 땐 어떻게 하죠? 거기도 텔레포트 서비스를 써줄 마법사 길드가 있나요?”

“마을마다 사정이 다르긴 한데······ 트로페 마을에 가실 거면 그곳에도 마법사 길드는 있어요. 마탑 회원은 아니지만, 여기로 돌아오는 데는 문제없을 거예요. 다른 방법으로 텔레포트 깃털을 사용하는 게 있긴 한데······ 이방인님처럼 파티원들과 함께 깃털로 텔레포

트를 하시려면 비용이 더 많이 들거예요.”

친절히 설명해주는 마법사 아가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텔레포트를 해주실래요?”

“네, 그럼 따라오세요.”

계산을 마친 뒤, 마법사 아가씨는 곧 나와 아이들을 마법사 길드 한편에 있는 마법진으로 안내했다.

그리곤 그 안에 모이라고 했고, 나를 중심으로 정령과 동물 친구들이 모였다.

너무 활발한 불돌이도 지금은 얌전하게 혀만 헥헥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곧 마법사 아가씨가 말했다.

“트로페 마을의 텔레포트 지점은 마을 입구, 광장, 해변이 있어요. 어디로 가시겠어요?”

“해안가로 해주세요.”

나는 주저 없이 해변을 선택했다.

바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이제 목까지 차오를 듯했다.

“자, 그럼 좋은 여행 되세요.”

곧 마법사 아가씨의 배웅과 함께 새하얀 빛에 눈앞이 희게 변했다.

불돌이나 실버가 짖는 소리가 들리지만, 얌전히 있으라는 내 명령을 끝까지 지키는지 소란을 피우진 않고 있었다.

곧 흰 빛이 사라지고 주변이 달라진 풍경이 느껴졌다.

“바, 바다다!”

바다, 그것도 투명하게 맑은 바다였다.

기후도 남국이나 지중해처럼 무척 따뜻했다.

덥다고 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바다라고 해도 1월의 동해안처럼 썰렁한 바다를 생각했었는데, 이런 것은 예상 밖이었다.

그렇게 탁 트이고 넓은 해변이 펼쳐졌는데, 사람은 나와 정령과 동물 친구들 뿐이었다.

“이야호!”

멍멍!

왈왈!

나는 신이 나서 파도치는 해변으로 달려갔다.

불돌이와 실버가 따라오고 있었다.

냉큼 파도에 뛰어들어 바닷물을 뒤집어 써보았다.

더운 기후 때문에 춥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가슴이 뚫릴 듯이 시원한 기분이었다.

옆을 보니 실버도 파도를 뒤집어 쓰곤 푸르륵 몸을 털고 있었다.

왈왈!

치이이익

불돌이의 경우는 자기도 파도를 뒤집어 쓰고 놀고 싶어하는 모양이지만, 불이라서 그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불돌이는 자기 나름대로 파도와 놀고 있었다.

파도가 들어갈 땐 그걸 맹렬히 쫓아가고, 반대로 파도가 나올 땐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면서 말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 바다가 이렇게 좋구나.”

음머어어어어

꼬꼬꼭

파도가 닿는 곳에 앉아 그 시원함을 즐기는 중에 옥스와 호크도 호기심을 보이며 파도에 다가가고 있었다.

호크는 파도가 닿을 땐 홰를 치며 푸드덕거렸고, 옥스는 발을 적시는 것이 기분이 좋은지 무뚝뚝이 서 있었다.

나는 그런 옥스에게 다가가 바닷물로 등을 적셔 주었는데, 아주 기분 좋게 울어댔다.

시원한 모양이다. 냐아아아앙

삐이이익

물방울과 바람이는 바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지 거림낌 없이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물방울은 파도를 향해 돌진 한 뒤, 그 파도에 밀려 해변에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반면에 바람이는 바다를 저공비행하면서 뭔가를 하는 듯했다.

“어!”

그렇게 바람이를 지켜보던 중, 바람이가 갑자기 급강하를 하여 물속에 처박혔다.

나는 반사적으로 작은 비명을 질렀으나, 곧 바람이가 튕겨 나오듯 물을 차고 나왔다.

입에는 물고기가 하나 물려 있었다.

바람이는 그 물고기를 입에 달곤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곤 내 손에 그것을 떨어트려주었고, 나는 아이템화 된 물고기를 받아들었다.

[정어리(15cm)]

“대단해! 바다에서도 사냥을 하는구나!”

삐이이이익

바람이는 내 칭찬을 듣자, 내 머리 위를 한 바퀴 돌면서 삐이익 울더니, 내 어깨로 내려와 날개로 경례를 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정어리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데굴데굴]

그 사이 태산이는 모래밭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드물게 의욕적인 모습인데, 해변의 모래밭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자 문득 하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태산아! 재밌는 놀이 할래?”

[태산이가 뒹굴 거리면서 당신의 말을 듣습니다.]

드물게 꾸벅거리지 않는 태산이였다.

그때 물방울도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물방울아, 너도 같이 놀래? 너도 도와줄 수 있어.”

냐아오오옹

그러고 싶다는 듯이 내 발치에 머리를 부비는 물방울이었다.

그들과 하고 싶은 놀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모래장난이었다!

어릴 적에 한 번 바다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땐 해수욕도 많이 했지만, 모래장난을 치면서 조잡하지만 이런저런 것을 만들었다.

단 한 번 있었던 어릴 적의 추억이지만, 그 잊히지 않는 동심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자, 먼저 물방울아. 모래를 적셔서 모양을 만들 수 있게 해봐.”

냐아아아앙

물방울이 물을 만들어내면서 모래를 적셨다.

해변이라 바닷물이 많지만 떠오는 노동은 물방울이 있어서 할 필요가 없었다.

“태산아, 뭔가 만들고 싶은 모양을 만들어봐.”

[태산이가 고개를 꾸벅꾸벅하며 끄덕입니다.]

태산이는 곧장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도 내 나름대로의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작품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것을 만들 순 없었지만,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농장의 모형이었다.

섬세하게 만들지 못하고, 투박하지만 호수 근처의 농가와 선술집, 밭을 표현해보았다.

어쩐지 그곳이 요즘 집보다도 더 정이 드는 곳이라 만들어보고 싶었다.

반면 물방울과 태산이는 서로 힘을 합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사람 같았는데, 누구를 만드는 걸까?

냐아아아앙

[꾸벅꾸벅]

태산이가 만든 대략적인 틀을 만든 모양이다.

그리고 물방울이 마른 모래를 다시 적시기도 하고, 작은 앞발로 모래를 긁어내며 만드는 것은······ “나잖아?”

······바로 내 모습이었다.

괭이를 들고 밭을 갈려는 것 같은 모습.

작은 내가 모래로 만들어져 있었다.

냐아아앙

[물방울이 당신을 만들었다며 칭찬해달라고 합니다.]

[태산이가 당신을 바라보며 뭔가 바라는 듯 하품을 늘어지게 합니다.]

“하하하하, 대단해. 고마워! 아주 똑같아!”

나는 물방울과 태산이를 쓰다듬어 주면서 칭찬해주었다.

물방울은 냐아아아 거리면서도 기분 좋은 듯 얌전히 손을 탔다.

태산이는 쑥쓰러운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 흔들거렸다.

멍멍!

왈왈!

음머어어어

꼬꼬꼭

삐이이익

물방울과 태산이의 작품을 다른 아이들도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불돌이와 실버는 맹렬히 내가 만든 농장 모형과 내 모형을 맴돌며 돌기 시작했고, 옥스는 그 옆에 푹 주저앉아 쉬었다.

태산이와 물방울은 또 뭔가를 만들려는 듯했고, 바람이는 또 사냥을 나서는 모양이었다.

나는 바다에 오길 잘했다고 흐뭇하게 생각하면서 가죽 물통에 담아 온 와인을 한 모금 하였다.

“크으······ 좋다. 인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바다를 찾는 사람은 많다.

가족, 친구, 연인을 데리고 찾아온다.

그곳에 뭐가 있다고 그러는지, 현실에선 가봤자 비싼 바가지 요금의 숙박비에나 시달리게 되는데도 사람들은 마음의 휴식을 찾기 위해 바다를 찾는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 했다.

바로 지금, 이곳을 찾기 전까진 말이다.

“아무리 비싼 돈을 내더라도, 여름만 되면 바다를 찾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어. 여기에 인생이 다 있는 기분이야.”

마치 내가 농사를 지을 때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이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듯했다.

괜히 현대인들이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텃밭을 갈고, 바다로 가고,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것은······

그곳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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