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5일차 로그아웃 >
시화가 떠난 뒤, 나는 슬슬 게임을 마무리하고 로그아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마법사 길드에 들러서 사과파이를 납품하고, 마을에 가는 김에 필요한 것을 사러 식료품점을 들릴 생각이다.
그 다음엔······ 오늘 산 돼지를 데리고 잠깐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함께 말이다.
“골램아, 마을 좀 다녀올게.”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농장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로렌의 창을 들고 든든하게 서있는 골램을 두고서 불돌이와 물방울, 태산이, 그리고 실버를 데리고 마을로 향했다.
어둑어둑해졌지만 왈왈 거리며 앞장 서는 불돌이가 환한 등불 역할을 해주어서 이동하는데 문제는 전혀 없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내일 만들어볼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오늘 선술집에서 얻은 아이디어는······ 브랜디랑 피자, 햄버거 정도인가?”
와인을 맛보던 손님에게서 브랜디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냐는 말을 들었고, 빵을 잘 먹는 여고생 아가씨에게서 피자랑 햄버거를 추천받았다.
다 나쁘지 않은데, 피자랑 햄버거에는 구체적으로 뭐가 드는지 고민이 되었다.
뭐, 사실 고민할 것 없이 레시피를 찾아보면 되긴 한다.
그래서 나는 요리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피자와 햄버거를 검색해보았다.
[요리, 피자
이탈리아에서 유래된 요리. 다소 정크푸드같은 인식이 있지만 사실은 다양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요리다.
필요한 재료 : 밀가루 1개, 이스트 1개, 베이컨 5개, 양파 1개, 토마토소스 약간, 햄 3개, 파프리카 4개, 치즈 3개, 꿀 적당히
추가 재료 : 적당한 종류의 버섯, 올리브, 마늘, 새우, 감자 등 적절한 토핑
필요한 도구 : 화덕, 요리 스킬 Lv4, 조합 스킬]
[요리, 햄버거 10개
정크푸드의 대표적인 음식. 하지만 그런 편견과는 달리 야채와 고기를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균형 잡힌 음식이다.
필요한 재료 : 밀가루 10개, 양상추 1개, 양파 1개, 토마토 3개, 베이컨 20개, 돼지고기 혹은 소고기 패티 10장, 치즈 10장, 케찹 적당히, 마요네즈 적당히
필요한 도구 : 조리도구, 불, 요리 스킬 Lv4, 조합 스킬]
“음, 이것저것 드는 게 많네.”
피자나 햄버거나 들어가는 재료가 많은 요리였다.
정크푸드라는 편견과는 달리 둘 다 다양한 식재가 듬뿍 들어가는 요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햄버거는 샌드위치처럼 10개 묶음으로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재료소모가 극심할 거라고 예상되었다.
재료 부족이 예상되는 식료들은 밀가루, 양상추, 토마토, 치즈였다.
그 외에도 새로 사야하는 식료는 파프리카와 올리브 정도?
토마토 소스도 눈에 띄었다.
“일단 이러면 사야하는 게······ 너무 많네, 술도 새로 담가야 하는데.”
위스키와 와인은 많이 남았지만 막걸리는 완판 되어버려서 새로 담가야 한다.
그러니 쌀은 200개 심어야할 것 같았다.
거기에 파프리카와 양상추, 올리브, 그리고 밀을 각각 100개씩 심으면 밭이 꽉 찰 것이다.
하지만 이래저래 만들어야할 것들이 늘어나다보니, 예상 밖에 더 필요한 것들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그때 가서 또 심던지 해야겠다. 내일 메뉴도 아직 정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일단은 저렇게 산 뒤에 내일 메뉴를 확정하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생각을 그렇게 정리하니, 어느새 마법사 길드의 문을 열고 있었다.
“어서오세요오. 앗, 오셨네요! 지금쯤 오실 것 같았어요.”
“네, 안녕하세요.”
변함없이 마법사 아가씨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녀에게 인사하자, 바로 그녀가 말했다.
“오늘 말이에요,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뭐죠?”
“드디어 우리 마법사 길드가 마탑 회원의 자격을 얻었어요!”
“오, 그런가요? 그럼 더 이상 사과파이는 필요 없나요?” “아뇨, 사과파이는 계속 필요해요.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요, 마탑 회원이 되었으니까 대마법사 길드가 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하니까요.”
“잘 모르겠는데, 뭐가 달라지는 거죠?”
마탑 회원이 되었다고 하지만, 마법사 길드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구석을 찾기 힘든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법사 아가씨가 말했다.
“물론 마탑 회원 자격만 얻었지, 마탑을 짓진 못했으니까. 마탑의 고급혜택을 여기서 얻긴 힘들어요.”
“무슨 혜택들이 있는데요?”
“마법사 클래스의 2차, 3차 전직이 가능해지고, 더 많은 비약과 물약을 살 수 있어요. 퀘스트도 다양하게 받을 수 있고······.”
“흐음······.”
“뭐죠 그 심드렁한 반응은!”
마법사 아가씨의 설명을 들어도, 그녀의 말대로 나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마법사 클래스의 전직? 그런 건 나한테 상관없는 말이고, 물약은 이미 만들고 있다.
비약은 조금 구미가 당기긴 하지만 언젠간 나도 만들 것 같아서 큰 흥미는 없었다.
“여하튼 모두 이방인님 덕분이에요. 초보 이방인들을 상대하는 우리가 마탑 회원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럼 뭐, 보상이라도 없습니까?”
“보상이라······ 물약이나 텔레포트 가격을 좀 싸게 해드릴 수는 있겠네요.”
“흐음······.”
“또 심드렁한 반응이! 전에 바다에 갈 수 있지 않냐고 물어보시지 않았나요?”
“아, 그랬었죠.”
문득 잊고 있었던 일도 떠올렸다.
어시장이 마을에 있는지 물어보았다가 텔레포트 서비스로 바닷가 마을에 갈 수 있단 말을 들었다.
흠, 내일 가능하다면 한 번 가볼까?
바다를 구경한지 꽤 오래 되었고, 해산물에도 관심이 생겼다.
내일은 주말이긴 한데······ 그래도 주말출근이 있어서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비슷할 것이다.
익숙해진 일이긴 하지만 대기업 사원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 커리어를 버리고 싶진 않지만 말이다.
“잘 기회가 닿질 않아서 잊고 있었네요. 여하튼 오늘 사과파이는 50개입니다. 개당 7000골드요.”
“네, 35만 골드입니다.”
난 오늘의 납품도 완료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법사 길드를 나섰다.
바다 이야기를 해선지 유독 바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일까지 잊지 않는다면, 꼭 텔레포트 서비스를 이용해서 바다로 가봐야 할 것 같다.
다음은 식료품점에 들렀다.
“안녕하세요, 이방인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씨앗을 사러 오셨나요?”
“네, 벼 씨 200개랑, 파프리카, 올리브, 양상추, 밀 각각 100개씩요.”
식료품점에 들리자, 식료품점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인사를 하곤 바로 사야할 것을 말했는데, 그녀가 나에게 공손히 되물었다.
“올리브는 과수해야하는데, 괜찮겠어요?”
“아······ 맞아. 그렇죠.”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한국에선 그리 익숙한 식재료가 아니라서 잊고 있었던 것인데, 올리브는 나무에서 나는 과일이다.
즉, 과수를 해야 한다는 것.
100개나 심으면 수량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많아서 나쁠 것은 없지만, 나는 소화시킬 수 있는 적당량만 만들고 싶었다.
적을 거라 생각해서 만든 50그루의 사과와 포도, 딸기도 골램이 만들어진 뒤에는 수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럼 올리브는 10개만 주세요. 그 대신 보리를 100개 주실래요?”
“벼 씨 200개, 보리 씨앗 100개, 밀 씨앗 100개, 파프리카와 양상추 각각 100개, 그리고 올리브 씨앗 10개가 맞나요?”
“네 맞아요.”
“31000골드입니다.”
“네, 여기요.”
나는 계산을 마치곤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가게를 나왔다.
이걸로 일단 내일을 위한 개괄적인 준비는 마쳤고, 돌아가서 대충 산책하듯 돼지를 데리고 돌아다니다가 로그아웃할 생각이었다.
농장으로 돌아오니 골램이 창을 들고 농장을 지키고 있었다.“골램아, 이번엔 오늘 새로온 돼지에게 심을 만한 걸 찾으러 갈 거야.”
“다녀오십시오, 농장은 안전합니다.”
“그럼 부탁해!”
나는 그렇게 말하곤 돼지우리에 다가가 아직 등에 심은 것이 없는 돼지를 데리고 나왔다.
녀석을 송로돼지 모드로 만들었는데, 곧 꿀꿀 거리면서 땅을 킁킁 대기 시작했다.
덤으로 호크도 대동시켰다.
멍멍!
왈왈!
냐오옹
꼮꼬꼭
꿀꿀
[데굴데굴]
정령과 동물들을 이끌고 가니, 대행진을 하는 기분이었다.
돼지는 숲 쪽으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에 멧돼지들이 나타났지만 아이들이 순식간에 정리해버렸다.
나는 그저 멧돼지들을 도축하면서 돼지고기와 가죽, 힘줄을 모았다.
그러면서 돼지는 계속 땅을 킁킁댔고, 이윽고 뭔가를 찾아냈다.
[금빛 야생삼]
“응? 이건······ 산삼인가?”
[주인님, 그것은 산삼이 아닙니다. 산삼은 매우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약재입니다.]
“아, 골램아.”
골램은 원격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반응하면 골램이 계속 말을 이었다.
[금빛 야생삼은 인삼 정도의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용 식재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기초적인 비약의 재료가 됩니다.]
“흠, 확실히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긴 한데.”
이름대로 황금빛처럼 때깔이 좋은 삼이었다.
삼을 쓰는 요리라고 하면 삼계탕 정도뿐이겠지만······.“
꼭꼬꼭?
“······호크야 널 먹을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쳐다볼 필요는 없어.”
······만든다면 칠면조 고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칠면조로 삼계탕을 만든다는 생각은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소중한 호크를 잡을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비약의 재료라고도 하니까, 그 비약이란 것을 한 번 만들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산책은 이쯤하기로 하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럼 정말로 로그아웃 할 때네. 얘들아, 나 다녀올게! 농장 잘 지키면서 기다리고 있어!”
멍멍!
왈왈!
꼬꼬꼭!
냐오옹
[꾸벅꾸벅]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모두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로그아웃을 했다.
오늘도 뿌듯할 정도로 사이버 슬로우 앤 욜로 라이프를 즐겼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긴 한데······.
“출근하기 전에 거래장이란 걸 봐야겠군.”
마지막 로그아웃 할 때, 1400만 골드 가량이 모인 것을 기억했다.
마일스톤의 거래장을 찾아봐서 골드를 약간 현금으로 바꾸고 싶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뭔가 사드리고 싶어서다.
부모님께선 나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시고 귀농하셔서 살고 계시지만, 언제나 효도를 못해서 마음에 걸렸다.
대기업에 취직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엄청나게 해주셨는데······ 그런데도 편하게 사시지 않는 것이 가슴 아팠다.
“어디보자······ 홈 페이지에······ 여기군. 곧바로 현금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골드를 올리면 누군가가 사가는 식이네. 선술집에서 누가 그렇게 말한 것도 같아.”
나는 홈페이지에 링크된 거래장 사이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선술집에서 장사를 할 때, “돈이 있어도 골드를 사지 못 했다.” 라고 말한 사람이 있던 것을 떠올렸다. 게임의 인기가 좋아서 골드를 사가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400만 골드 정도만 바꿔볼까? 너무 욕심내서 좋을 거 없으니까.”
한 달 월급보다 조금 많은 정도의 돈을 생각하고, 거래장에 골드를 올렸다.
그 정도 목돈이면 괜찮은 효도 상품 하나를 부모님께 선물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거래장에 골드를 올리곤 출근 준비를 했다.
편히 쉬었으니, 재충전된 몸으로 오늘도 활기차게 일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