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불속성 강화 >
“시화씨. 뭐 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네 공진씨, 무슨 일이시죠?]
나는 곧장 시화에게 귓속말을 했다.
시화는 바쁘진 않는지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속성강화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식으로 강화하는 게 좋을지 몰라서요.”
[네? 강화는······ 그냥 강화하면 끝일텐데요.]
“그게 그런 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시화는 속성강화에 대한 정보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게 되었다.
“······이런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서 강화를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것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시화씨에게 물어보려고요.”
[공진씨.]
“네.”
[지원형을 제외하곤 뭐든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네, 공격형과 방어형,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습니다. 그것들 중 뭘 선택하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갑옷에 부여할 속성도 불속성이어도 괜찮겠습니까?”
[불속성으로 부탁드립니다. 지금 저희가 공략하는 몬스터가 불속성이 약점이라서 말이죠.]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럼 평소랑 같은 시간에 농장을 들리겠습니다.]
“네, 그때 뵙도록 하죠.”
시화와의 귓속말은 거기서 끝났다.
지원형을 제외하곤 뭘 골라도 상관없다고 하니, 나는 공격형과 방어형 중에서 마음대로 고르기로 했다.
끌리는 것을 생각해보았는데, ‘수호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려면 아무래도 방어형이 좋을 것 같았다.
방어형 강화 두 가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첫 번째 것이었다.
[불속성 공격을 무기로 방어할 수 있다.]
“골램아. 이 설명만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무기로 불속성 공격을 방어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야?”
“그 옵션을 선택할 경우, 무기로 불 속성 공격을 상쇄할 수 있게 됩니다.”
“불을 베어버린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오오······.”
뭔가 소년만화 같아서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감탄해버렸다.
상상으로는 이 검을 들고 날아오는 불 공격을 베어버리는 만화적인 상황이 떠오른 것이다.
실제로 보면 멋질 것 같은데, 농장에 있는 내가 그런 모습을 보긴 힘들겠지.
여하튼 이 효과를 부여하기로 정했다.
[정말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커맨드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검이 빛나더니, 검신에 묘한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치 강철이 불을 머금은 것 같았다.
[장인이 만든 4등급 불을 베어버리는 환도 ‘수호자’]
아이템 이름도 묘하게 바뀌었다.
강화효과를 표현하는 식으로 ‘불을 베어버리는’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이다.
뭔가 멋스러운 아이템 이름이 된 것 같아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하튼 ‘수호자’는 이 정도로 된 것 같았다.
“다음은 두석린갑이네.”
나는 공들여 만든 두석린갑에 똑같은 식으로 속성강화를 시도했다.
마찬가지로 여러 옵션들이 나타났다.[공격형 강화]
-착용자의 생명력의 4%에 해당되는 불속성 피해를 주변에 가한다(초당 1%의 마나소비)
-착용자의 생명력에 40%에 해당되는 대미지로 전방에 강렬한 파이어 브레스를 시전(쿨타임 3분)
[방어형 강화]
-불속성 내성이 12% 상승한다.
-일시적으로 생명력의 12%에 해당되는 불속성 공격을 흡수(쿨타임 3분)
[지원형 강화]
-갑옷에서 온기가 뿜어져 나와 착용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추위내성을 부여한다.
-두려운 불꽃이 갑옷을 감싸, 적들을 겁먹게 만든다.
“옵션이 조금 다르네.”
똑같은 것도 있었지만 갑옷이라선지 다른 것들이 몇몇 있었다.
다 좋아보여서 이번에도 선택하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끌리는 것은 있었다.
“주변에 피해를 준다는 건, 아마도 광역공격 같네. 갑옷을 이용해서 공격한다면 꽤나 유용하겠지?”
첫 번째 옵션이 마음에 든 것이다.
내 빈약한 게임 지식으로, 잡몹을 처리하는 ‘광역공격’은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갑옷이 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단 것은 꽤 의표를 찌르는 발상이 아닐까?
이 게임에 대해선 아는 것이 별로 없어도 그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방어형의 능력들도 관심이 가긴 하지만, 나는 고정관념을 깨는 선택이 끌렸다.
그래서 공격형 첫 번째 옵션으로 결정했다.
화르르륵
속성을 부여하자 마치 불이 붙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두석린갑에 붉은 오라가 일었다.
갑옷이 마치 불타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속성강화는 이래저래 이펙트도 화려하다는 느낌이다.
비싼 강화석이 들지만 않는다면 정령술도 인기가 있을 텐데, 아쉬운 일이었다.
[잘 만든 4등급 불타오르는 데스나이트의 두석린갑]
이펙트만큼이나 아이템 이름도 화려하게 바뀌었다.
단지 ‘불타오르는’이라는 수식어만 붙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문득 갑옷과 검을 착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될 것은 없었다, 착용한다고 해서 닳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갑옷을 입고 환도를 차보았다.
“음, 정말로 장군님이 된 기분인데.”
비록 염료가 없어서 빨간색 칠을 할 순 없었지만, 붉은 빛 이펙트가 그걸 대충 보완해주고 있었다.
나는 갑옷을 입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는데, 뭔가 사극 같은 대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전군! 왜적을 물리쳐라!”
멍멍!
왈왈!
냐아아아앙······.
환도를 들어 보이면서 그런 대사를 읊자, 실버와 불돌이 그리고 물방울이 대답하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실버와 불돌이는 놀아달라는 것 같은 모습이었고, 물방울은 어쩐지 한심하게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물방울의 눈빛이 다소 마음에 걸린 나는 약간 얼굴을 붉히곤, 다시 양모 옷으로 갈아입었다.
자, 이제 파이나 구우면서 시화를 기다릴 시간이었다.
오늘도 100개를 구워서 시화와 마법사 길드에 납품할 생각이다.
나는 와인을 가죽물통에 따르곤 설렁설렁 마셔가면서 사과파이를 구웠다.
“화덕을 좀 키우는 게 좋을까? 빵을 여러 개 구울 수 있다면 좋겠는데.”
“주인님, 더 큰 화덕이 있으면 대량 생산은 가능해지지만, 빵을 태우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음, 하긴 여러 개를 동시에 구우면 몇 개는 태울지도 모르겠다. 신중하게 생각해봐야겠네.”
골램의 말을 유념하면서 내일은 더 큰 화덕을 만들어볼지 생각해보았다.
그냥 이대로도 감당 못할 것은 아니지만, 오늘 장사를 해보니 안주나 요리는 즉석에서 만드는 것이 좋지만 빵의 경우는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빵 종류는 화덕이 바깥에 있어서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했어. 남거나 아니면 품절되더라도 미리 만들어두고 파는 게 낫겠다.”
현실의 빵집도 그런 식으로 운영하니까,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이다.
게다가 현실과는 달리 아이템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많이만 만들어두면 다음날에 팔아도 된다.
안주나 요리의 경우는 가열기가 있어서 즉석에서 요리하면 되고 말이다. 장사를 여러 번 하게 되니 어떤 쪽이 좋은지 대충 감이 잡혀왔다.
여하튼 나는 느긋하게 사과파이 100개를 구우면서 시간을 때웠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지고 사과파이를 다 굽고 모닥불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멍멍!
왈왈!
“공진씨. 저 왔습니다.”
“오셨군요, 시화 씨. 안으로 들어가시죠.”
불돌이와 실버가 짖는 가운데, 시화가 도착했다.
나는 불돌이와 실버를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말했고, 시화는 선술집 안으로 향했다.
스카치 위스키를 한 잔 내오면서 그에게 과일 모둠 하나를 내주었다.
시화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술을 마셨다.
나도 한 잔 하면서 나와 시화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선 옷이랑 갑옷, 무기부터 보시죠.”
“네.”
“그러니까······ 이렇게 있습니다. 천천히 살펴보시죠.”
[잘 만든 4등급 불타오르는 데스나이트의 두석린갑]
[장인이 만든 4등급 불을 베어버리는 환도 ‘수호자’]
[잘 만든 5등급 리자드맨 학살자의 양모 상의]
[잘 만든 5등급 리자드맨 학살자의 양모 하의]
[잘 만든 5등급 라이칸슬로프 추적자의 멧돼지 가죽 브리건딘 상의]
[잘 만든 5등급 라이칸슬로프 추적자의 멧돼지 가죽 브리건딘 하의]
[잘 만든 5등급 롱 소드 ‘만티코어 슬레이어’]
다 꺼내놓고 보니, 많이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화는 그것들을 보자,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이건······ 정말이지 굉장하군요. 공진씨는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아무리 히든 클래스라지만 이런 아이템들은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군요.”
“그렇습니까? 그럼 다행이군요.”
“가능하다면 어디 감금시켜 놓고 이런 것만 만들게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하, 그건 곤란하군요.”
시화의 농담에 나는 술을 마시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시화는 진지하게 환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공격력, 내구도, 특수효과······ 전부 뛰어납니다. 어지간한 보스 레이드몹이 주는 아이템만하군요. 업적상점의 아이템 정도여야 비길 수준입니다. 저희 길드원들이 모두 이런 아이템으로 무장할 수만 있다면 이 게임을 정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그렇습니까? 뭐, 저야 뭔가를 재밌게 만들 수만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내일도 정수를 준비해놓을 테니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아니, 강화석도 더 많이 준비해놓겠습니다. 이런 수준이라면 얼마든지 투자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네, 준비해주신다면 얼마든지 만들어드리죠.”
“그럼 가격은······ 다 합쳐서 100만 골드 어떻습니까?”
시화는 지금까지 거래한 것에 비하면 큰 가격을 불렀다.
개당 10만 골드를 훌쩍 넘기는 가격이다.
비록 선술집으로 돈을 엄청 많이 벌지만, 100만 골드는 적은 돈이 아니다.
1:1 환율이니 현금으로 100만원이란 소리이니 말이다.
“꽤 큰돈인데, 망설임이 없으시군요?”
“오늘 거래장이 열려서 스폰서가 골드를 지원해주었습니다.”
“스폰서도 있습니까?”
“네, 프로게이머 길드라서 이래저래 있죠. 물론 비즈니스적인 관계지만요.”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하군요.”
곧잘 잊는 일이지만 군신 길드가 새삼 정상을 달리는 프로게이머 길드라는 것을 떠올렸다.
스폰서도 뭔가 얻는 게 있으니 지원하는 걸 텐데, 게임 대회에서 스폰 해주는 것과 비슷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나는 시화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아이템들을 100만 골드에 팔았다.
“다음은 물약이랑 사과파입니다. 별 변경사항은 없으니 평소처럼 2만 골드랑 7000골드로 계산하죠.”
“네, 16만 골드에 35만 골드입니다.”
물약과 사과파이도 51만 골드인데, 시화는 정말로 돈이 충분한지 거리낌이 없었다.
나는 돈을 받으면서 인벤토리에 골드를 확인해보았다.
14459100골드······ 돈 쌓이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였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도 있는데,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게임을 로그아웃하면 거래장이란 것을 알아봐야할 것 같다.
“그럼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한편 시화는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