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선술집 3일차 >
나는 선술집의 문을 활짝 열었다.
열자마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잽싸게 들어왔다.
“오늘은 메뉴가 더 늘었네.”
“막걸리? 막걸리를 팔잖아? 그것도 아주 싸게.”
“나는 와인이 더 신경 쓰이는데.”
“오늘도 힘들었다. 잔뜩 마셔야지.”
들어오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었다.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 막 열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구경꾼들만 들어와서 자리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탠드바는 가득차고 있었다.
“주인장, 정말 막걸리도 팔아요?”
“네, 메뉴판에 적힌 대로입니다.”
“다른 술에 비해서 저렴하네요. 특별히 싼 이유가 있어요?”
“술은 음식이랑 달리 추가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현실의 가격을 조금 반영했습니다. 위스키나 와인은 숙성된 고급술 맛이 나서 가격을 비싸게 했지만 막걸리는 숙성해서 마시거나 하진 않잖아요? 게다가 만드는 과정도 발효만 하면 바로 마실 수 있어서 간편한 편
이라 저렴한 가격으로 했습니다.”
“아하, 그럼 한 번 마셔봐야겠네요. 한 잔 주세요.”
한 손님이 막걸리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른 손님들도 똑같이 궁금했는지 주문하기보단 나와 그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다만 대화를 마치고 난 뒤에 막걸리 주문이 이어졌다.
나는 200ml의 사발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주었다.
“크으······ 양주도 좋지만 역시 막걸리도 입에 착착 감기네요. 이건 꼭 안주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베이컨? 베이컨을 팔아요?”
“네, 아주 맛있습니다.”
“하나 주문할게요.”
“예, 다만 즉석에서 훈제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
스탠드바의 손님이 베이컨을 주문하자, 나는 조리대를 꺼내곤 그 위에 가열대를 놓고 석쇠로 베이컨을 구웠다.
기름을 뚝뚝 흘리면서 즉석에서 훈제되는 베이컨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베이컨 크기가 엄청 크네요. 미국식 베이컨 같아요.”
“그런가요?”
“네, 미국인들이 베이컨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우리나라 시중에 파는 것보다 크기도 두툼하고 맛도 좀 달라요. 우리 입맛엔 좀 짜다고는 하지만 베이컨은 원래 좀 짠맛에 먹죠.”
“그렇군요.”
막걸리를 홀짝이면서 수다를 떠는 손님이었다.
베이컨을 구우면서 들어오는 주문은 골램이 맡고 있었다.
점차 주문이 밀리기 시작했지만, 골램은 절대 주문을 까먹는 일이 없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곧 잘 훈제된 베이컨을 손님에게 내놓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사장님, 된장삼겹살도 있는데, 그건 어때요?”
옆에서 위스키를 시킨 사람이 물어보았다.
“말 그대로 된장을 발라 구운 삼겹살입니다. 상추도 같이 나와서 쌈해먹기도 좋고, 음식이지만 술안주로도 제격입니다.”
“맛있을 거 같네요. 하나 시킬게요.”
“예, 된장삼겹살 하나!”
어차피 주문은 골램이 다 외우지만, 나는 요리사 흉내를 내는 기분으로 받은 주문을 말했다.
선술집을 열기 전에 만들어봤던 대로 삼겹살에 된장양념장을 버무렸다.
맛좋게 버무려진 삼겹살을 가열대에 놓은 프라이팬에 양파와 함께 구운 뒤 상추와 함께 데코레이션을 해서 내놓았다.
“진짜 이게 7000골드에요?”
“네.”
“현실에선 이런 거 웬만하면 만원은 받는데······ 그런 것보다 양도 많고, 맛도······ 음! 정말 좋네요. 밥도 하나 시킬게요.”
“천 골드입니다.”
된장삼겹살도 호평인 듯했다.
나는 스탠드바의 주문을 마친 뒤, 테이블의 주문으로 넘어갔다.테이블에는 학생 손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빵과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서둘러 빵을 만들고 가져다주는 것을 반복했다.
“와, 민첩이 20이나 올랐어. 샌드위치 끝내준다. 몸이 엄청 가벼워진 느낌임.”
“아저씨, 음식 버프는 무슨 기준으로 나오는 거예요?”
“저도 잘 모르지만, 채소가 많은 음식은 민첩이 오르고, 고기나 생선은 힘과 체력이, 과일은 지능과 정신력이 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럼 다 올리려면 골고루 먹어야겠네요?”
“그렇죠.”
“힝, 돈이 좀 부족한데. 나중에 모아서 사먹어야겠다.”
샌드위치를 시킨 손님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수다를 떤 덕분인지 입소문이 난 것 같았다.
빵 주문이 계속 쇄도했는데, 나는 빵에 한해선 미리 구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현실의 제빵 제과처럼 숙성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주문량이 너무 많아서 미리 구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한 차례 테이블 주문을 마친 뒤에야 스탠드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와인 맛이 참 깊네요. 스위트한데 소프트하고, 프레쉬한게······ 현실의 원산지를 특정하긴 힘들지만······ 이베리아 쪽의 맛이랑 유사한 것 같습니다. 아마 그쪽 와인의 맛을 참고해서 데이터를 만든 것 같네요.”
“그렇군요.”
소믈리에라도 되는지 와인맛을 분석에 가깝게 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와인잔을 멋스럽게 잡곤 계속 말을 이었다.
“와인이 한 종류만 있단 것이 아쉽군요. 맛은 좋지만, 와인은 여러 맛이 있어서 풍미가 더욱 좋은 것인데 말이죠.”
“게임이니 모든 와인의 맛을 구현하긴 힘들었겠죠.”
“네, 그런데 브랜디도 만드실 생각이신가요?”
“브랜디요?”
“와인을 증류하면 좋은 브랜디가 만들어지죠. 물론 브랜디는 과일주마다 종류가 다양하지만 이렇게 좋은 맛의 와인을 증류하면 어떤 브랜디가 나올지 궁금하군요.”
와인은 위스키와는 달리 증류과정을 거치진 않았다.
발효액을 곧바로 숙성통에 담가 숙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증류를 한다면 어떤 술이 나올까?
물론 브랜디가 나오겠지만, 특별한 브랜디가 나올지도 모른다.
내일이나 언제 한 번 만들어보기로 했다.
“크, 위스키 맛 좋다!”
“여기 블렌디드 위스키 한 잔 더요!”
“예!”
한편 블렌디드 위스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그레인 위스키와 스카치 위스키를 요리 스킬로 1:1 비율로 혼합하면 만들어졌다.
맛이 강렬한 편인 스카치 위스키와 부드러운 맛인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서 적당한 조화를 내서 위스키 애호가들이 좋아했다.
“아저씨, 잼 발라 먹으면 추가 효과가 더 좋아져요?”
“네, 제가 먹어봤는데 그렇더라고요.”
“와, 그럼 잼 발라 먹어야지.”
“우유나 주스랑 같이 먹으면 더 좋아져요.”
“그럼 딸기 주스랑 포도잼이요!”
“네, 여기 있습니다.”
즉석에서 딸기주스를 만들어주고 포도잼을 꺼내주었다.
유리병에 든 포도잼을 인심 듬뿍 담아서 파이에 발라주자, 학생 손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나는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저씨, 샌드위치랑 데니쉬 페이스트리를 추가하셨네요?”
“네? 아, 또 오셨군요.”
전에 샌드위치랑 데니쉬 페이스트리를 추천해준 어쩐지 부잣집 아가씨 같은 여학생 손님이 어느새 선술집 안에 있었다.
한 손님이 막 나가서 비어 있던 테이블에 앉으면서 나에게 말한 것이다.
“지난번에 추천해준 대로 한 번 만들어봤어요. 맛이 꽤 괜찮더라고요.”
“그럼 생크림 데니쉬 페이스트리에 애플잼을 조금 얹어서 주세요.”
“네,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나는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또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빵을 구웠다.
곧 그 여학생에게도 사과잼을 조금 얹은 크로와상을 주었다.
그녀는 우아하게 나이프와 포크로 먹으면서 말했다.“나쁘지 않네요. 생크림이나 사과잼도 맛있고 빵도 잘 구워졌어요. 현실에선 맛보기 힘들 정도로 좋은 맛이네요.”
“뭐, 게임이니까요.”
“샌드위치도 하나 주세요, 사과주스랑 같이.”
“네.”
나는 곧 샌드위치도 만들어주었다.
역시 샌드위치도 나이프로 잘라서 조신하게 먹는 그녀였다.
음, 외국에선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햄버거나 피자, 샌드위치를 잘라 먹는다고 비꼬는 것을 봤었는데, 뭐 어떻게 먹든 그건 사람 취향이겠지.
“다소 기교가 부족했지만 샌드위치도 맛있어요, 현실에서도 요리사이신 건 아니시죠?”
“아니죠, 그냥 요리 스킬의 힘입니다.”
“그럼 좀 더 과감한 제빵을 해보는 것은 어때요?”
“그렇다고 해도, 제가 파티셰가 아니다보니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작 카탈로그를 보고 대충 하나 고를 순 있겠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건 햄버거나 피자 정도밖에······.”
“햄버거나 피자도 수제로 만드는 것은 굉장히 좋은 요리에요. 괜히 수제 햄버거 집들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군요. 한 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요구르트도 있네요? 그것도 주실래요?”
“······많이 드시는군요.”
“게임에선 살찌지 않으니까요.”
“아, 그게 아니라 돈이 있으신지 물어본 거였는데······.”
내 말을 조금 오해한 듯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드물게 얼굴을 붉히는 여학생 손님이었다.
이런, 내가 눈치도 없이 괜히 말한 것 같았다.
한창 민감할 때이기도 하고, 여자에겐 살은 무척 예민한 사항인데 모태솔로다 보니 신경을 조금도 쓰지 못 했다.
하지만 여학생 손님은 작게 기침을 하곤 말했다.
“골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거래장에서 많이 사뒀으니까요.”
“거래장······ 현거래 말인가요?”
“네, 오늘 거래장이 열렸죠. 모르셨나요?”
“아, 오늘이었군요. 그런데 학생들도 현거래를 많이 하나요?”
“하는 애들은 많이 하죠. 저는······ 그냥 용돈이 좀 많은 거예요.”
“그렇군요.”
거래장.
시화가 조만간 열린다고 말했었다.
나도 알아보고 싶었는데, 워낙에 회사일이 바빠서 알아볼 틈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유독 오늘은 많이 주문하는 사람이 있던 것도 같았다.
거래장이 열려서 골드를 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자, 요구르트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푸짐하게 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사발에 맞게 드리는 것뿐입니다. 맛은 어떤가요?”
“맛있네요, 너무 달지도 않고, 너무 플레인하지도 않아요. 생크림 요구르트군요?”
“네. 딸기도 맛있으니 같이 드세요.”
그 학생과의 대화는 그쯤에서 끝났다.
대화하다보니 이번에도 다음에 만들 만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햄버거나 피자······ 정크푸드나 패스트푸드로 대중적인 음식이었지만 요즘은 수제 햄버거나 피자 가게가 많이 나타난다.
빨리 만들어서 빨리 내놓는 싸구려가 아닌 제대로 손으로 만들어서 내는 음식으로 말이다.
거창한 종류의 빵 같은 것보다 나도 잘 알고 있는 햄버거나 피자가 좋을 것도 같았다.
순환메뉴를 만들기로 했으니 그런 것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한다는 다섯 가지 버프 다 받기, 제가 직접 해보겠습니다.”
“와, 저 사람 저걸 다 먹으려는 거야?”
“된장삼겹살에, 샌드위치에, 사과파이를 잼발라서······ 돈도 돈이지만 저게 다 들어가?”
“다 먹으면 힘민체지정 능력치가 다 20가까이 오른다나봐.”
“돈 많나 보네, 부럽다.”
“거래장 열려서 현거래 하는 거, 솔직히 질투난다.”
“1:1 환율이라서 망정이지 지금 너무 인기라서 골드가 부족할 지경이야. 난 돈이 있어도 골드를 못 샀어.”
심심찮게 거래장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렸다.
흠, 한 번 시화에게도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하튼 나는 장사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