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된장삼겹살 시식 >
나는 항아리를 두 개 만들어서 된장과 간장을 각각 나눠 담았다.
발효통을 깨끗이 비우고 옮겨 담은 뒤, 나는 된장삼겹살의 레시피를 띄워보았다.
[요리, 된장삼겹살
식사뿐만 아니라 술안주로 제격인 요리. 된장의 구수함으로 돼지고기의 맛을 살린다.
필요한 재료 : 돼지고기 1개, 상추 5개, 양파 1개, 아무 종류의 술 약간, 된장 약간
추가 재료 : 설탕, 마늘, 후추, 식용 기름, 그 외 적당한 첨가물
필요한 도구 : 프라이팬, 불, 요리 스킬 Lv4]
[이 제조는 간소화된 제조과정을 요구합니다.]
“으음, 레시피만 봐도 군침이 도는데?”
당장 만들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간소화된 제조과정이 있다는 설명이나 추가재료의 식용 기름이 눈에 띄었다.
나는 우선 식용 기름을 만들기로 했다.
“골램아, 식용 기름은 참기름 같은 걸 말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다만 지금은 참기름보다 더 고급의 기름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송로버섯 말이구나.”
“맞습니다. 본래 송로버섯 기름은 올리브 기름에 인퓨즈하여 만들지만, 간편성을 위해 송로버섯 자체에서 기름이 나오도록 구현되었습니다. 조합 스킬을 이용해 간편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한 번 볼까.”
나는 곧바로 조합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해보았다.
[조합, 송로버섯 기름 1리터
송로버섯의 향과 맛이 가득한 기름.
본래는 다른 식물성 기름에 인퓨즈하여 만든다.
하지만 게임상에선 송로버섯만으로 만들 수 있도록 구현하였다.
필요한 재료 : 송로버섯 5개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송로버섯이 다섯 개나 드네.”
지금 송로버섯은 49개가 있다.
허브돼지를 이용해 계속 생산하고 있지만, 수량이 한정적이라 내가 회사 간 사이 골램이 모아둬도 이 정도 수량 뿐이었다.
적은 수량은 또 아니지만, 귀한 송로버섯이 다섯 개나 드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다른 기름도 아니고 송로버섯으로 만든 기름이라고 하니,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한 가득이었다.
결국 나는 제작 버튼을 눌렀다.
1리터의 기름액이 홀로그램 병에 담겨 나왔다.
살짝 냄새를 맡아보니 송로버섯의 좋은 향이 그윽하게 났다.
“이걸로 요리를 만들면 아무리 돼지고기여도 잡내가 안 나겠군.”
“그렇습니다만, 된장삼겹살의 경우 돼지고기의 잡내는 술을 이용해 잡습니다.”
“음, 그래서 술이 필수 재료에 들어가 있었구나. 그럼 얼른 만들어 봐야겠다.”
나는 얼른 된장삼겹살의 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멧돼지고기가 삼겹살 부위로 나타났다.
곧바로 골램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 바가지에 삼겹살을 담고 적당한 술을 부어 잡내를 없애십시오.”
“술은······ 와인으로 해야겠다. 와인삼겹살이란 말을 들어본 것 같으니까.”
나는 얼른 숙성통에서 와인 한 잔을 따라와서 삼겹살을 담은 바가지에 부었다.
돼지고기 냄새는 와인의 좋은 향에 없어져버렸다.
그러자 시스템에 트리거가 발동했는지 항아리에 담겼던 된장과 인벤토리에 있던 마늘, 설탕, 그리고 송로버섯 기름이 하늘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마늘은 알아서 다져지고, 그것들이 서로 섞여 양념장이 되고 있었다.
그 후, 그것은 삼겹살이 담긴 바가지에 담겼다.
골램이 말했다.
“양념장과 삼겹살을 잘 버무려 주십시오.”
“흉내 내는 것뿐인데도 진짜 요리하는 기분인걸.” 야무지게 주물럭거리면서 양념장과 삼겹살을 잘 버무렸다.
다 버무렸다고 생각하자, 삼겹살이 먹기 좋은 크기로 알아서 잘렸다.
다음은 골램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제 이걸 구우면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양파를 곁들여 굽고 난 뒤, 상추를 이용해 데코레이션을 하면 완성됩니다.”
“불돌아! 가열기에 불 좀 붙여줘.”
왈왈!
나는 가열기 하나를 꺼낸 뒤, 거기에 프라이팬을 놓으며 말했다.
불돌이가 왈왈 짖으며 가열기에 불을 올렸다.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궈졌을 때, 나는 프라이팬에 송로버섯 기름을 두르고 양파와 고기를 얹어 굽기 시작했다.
된장 바른 삼겹살이 익는 냄새는 구수하고 좋아서 코를 간질일 지경이었다.
송로버섯 향까지 더해지니 미치도록 맛있을 것 같았다.
“아니 저 사람은 왜 갑자기 고기를 굽고 있음?”
“모르겠음? 우리 약 오르라고 그러는 거잖음.”
“와 진짜, 꼭 사먹고 만다.”
“빨리 가게 열어서 내 돈 가져가요 제발.”
구경꾼들도 맛있는 냄새 때문인지 야단법석이다.
나는 그들의 재밌는 말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기를 구웠다.
1인분을 훨씬 넘는 듯한 푸짐한 양을 구웠는데,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지 금방이라도 집어먹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고, 다 구워진 고기를 상추를 깐 접시에 잘 구워진 양파와 된장 삼겹살을 놓았다.
[잘 만든 4등급 송로기름을 곁들인 된장삼겹살]
완성된 요리에는 추가재료인 송로기름이 명시되어 있었다.
완성된 요리의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데, 비주얼과 향은 더더욱 그러했다.
나는 즉시 시식을 하기로 결심하곤 와인잔에 와인 한 잔을 따랐다.
밥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상추에 고기를 싸서 구운 양파를 곁들어 삼겹살을 먹었다.
그렇게 먹자, 입 안에선 양념장의 맛과 송로버섯의 맛, 고기의 씹는 맛이 서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 춤이 절로 술을 유혹하고 있어서 와인을 마시는 것은 덤이었다.
왈왈!
멍멍!
좋은 냄새 때문인지 불돌이와 실버가 다가와 작게 짖고 있었다.
특히 실버는 먹고 싶은 생각이 한 가득인 모양이었다.
“먹고 싶니?”
왈왈!
멍멍!
“허허, 녀석들. 자, 먹어라.”
현실의 애완동물에겐 인간이 먹는 것을 함부로 주면 안 되지만, 게임에선 그런 제약도 없다.
나는 사이좋게 고기 한 점씩 불돌이와 실버에게 나눠주었다.
녀석들은 싸우지도 않고 하나씩 먹었다.
냐오오옹
“물방울이 너도?”
냐아아아
아기고양이 물방울도 다가와 울고 있었는데,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고기를 달란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대신 내가 들고 있던 와인을 보곤 입맛을 다시듯 혀를 할짝이고 있었다.
“흠······ 하급 정령일땐 그냥 줬었는데 아기 고양이 모습이니까, 술을 주기가 좀······.”
냐아아아앙
“에라 게임인데 무슨 상관이겠어.”
나는 결국 물방울에게 와인을 조금 주었다.
신기하게도 와인을 마신 물방울의 몸이 약간 와인색으로 변했다.
냐아앙, 딸꾹 [물방울이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집니다.]
“술꾼 고양이라니, 현실이었으면 해외토픽감인데.”
현실에서 고양이나 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마시면 사람이 마셨을 때 보다 치명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게임에선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애초에 물방울은 겉모습은 아기고양이여도 사실은 물의 정령이고 말이다.
여하튼 나는 된장삼겹살을 먹으면서 와인을 홀짝였다.
농장에서 먹는 와인과 고기안주는 정말이지 꿀맛이었고, 나는 천국에 온 기분이 따로 없었다.
“크으, 정말 좋다. 하하하!”
절로 웃음이 지어져서 마음껏 웃었다.
현실에선 웃는 것조차 마음껏 웃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현실이 웃음을 빼앗아간다.
얼마나 현실이 각박한가? 16시간이나 일하면서 군소리 하나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에 비해 이 농장라이프는 농장일을 하다가 얼마든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는다.
거기에 최상의 맛을 내는 술까지! 정말이지 최고였다.
“후우······.”
어느덧 된장삼겹살을 다 먹었다.
와인잔도 다 비워버렸다.
다음 해야 할 일로 샌드위치 만들기나 매운탕용 고기를 잡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게으르게 누워있었다.
불돌이와 실버, 물방울도 따라서 누워 있었다.
이대로 30분 정도는 누워 있고 싶었다.
[굉장히 맛있는 고기요리를 먹었습니다. 추가 효과가 강화됩니다.]
[추가효과, 힘 + 20, 체력 + 20]
“으으, 배부르다.”
삐이이이익
냐오오오옹
페이스트리에 된장삼겹살까지 먹어서 올챙이배가 된 내 배에 물방울과 바람이가 올라탔다.
배가 간질간질했지만, 신경쓰지 않고 누웠다.
그리고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구경할 따름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난 저 떠다니는 구름 같은 존재였다.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떠다니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존재.
현실이라는 족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사는, 그런 자유로운 사람 말이다.
시인은 아니지만 그런 시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보니 문득 현실의 회사생활에 회의감이 느껴졌다.
“내가 너무 신중하게 생각하는 걸까?”
나는 현금화 시킬 수 있는 많은 골드를 보유했어도 직장을 관두지 않았다.
상식적인 조심성을 발휘해서 그런 것이다.
무슨 게임 소설의 주인공도 아니고, 대단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었다고 하여서 현실에서 쌓은 경력을 한순간에 버린단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래서인지 게임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불우한 배경 설정을 가지곤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4년간 열심히 야근하면서 다닌 직장을 관둔다는 것은 쉽게 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생각에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이 생활이 좋다고 사표내면 과장님이 날 미친놈으로 보겠지?”
그런 생각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사원이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조기에 이직하기 위해 사표를 내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나는 4년차 사원이고, 곧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업무실적도 괜찮기 때문에 시간만 흐르면 다음 승진들도 따 놓은 당상이고, 회사내 연줄도 제법 잘 타고 있다.
“그런데 그걸 관두면 정말로 멍청한 일이겠지.”
게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의 삶이 있기에 지금 이순간이 즐거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만약 내가 지금 천만원가량의 골드를 모았다고 해서 회사를 관두면 어떻게 될까?
아마 게임을 24시간 해야할 것이다.그러지 않으면 생활비가 끊기게 될 테니.
물론 그렇게해서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돈은 더 잘 벌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즐기는 이 즐거움이 마냥 그것과 같을까?
일하는 것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수단은 이런 행운 외에도 많다.
주식, 로또, 가상화폐······ 하지만 그런 것도 하나의 광풍일 뿐이었다.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했지만 성패를 떠나 사람이 거기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임에 묶이는 순간, 나는 아마 내 스스로를 ‘힐링’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 또 뭔가를 만들어 볼까.”
생각을 마친 나는 벌떡 일어났다.
배에 앉아 있던 바람이와 물방울이 후다닥 달아났다.
장난꾸러기 녀석들.
이제 선술집을 열 준비는 거의 다 됐다.
샌드위치만 만들고, 매운탕용 고기를 낚시로 좀 더 잡으면 된다.
오늘 선술집은 메뉴가 아주 풍성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