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피클, 사과식초, 케첩, 잼 >
나는 곧바로 목공 스킬을 이용해 절임통을 만들었다.
절임통은 용량이 10리터가 되어서 한 번에 대량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만들기로 한 것은······
“피클부터 만들어봐야겠다.”
샌드위치의 추가 재료인 피클.
사실 피클은 그 자체로도 먹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안주로도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안주 문화가 별로 없는 서양권에선 식사에 술을 곁들이는 것이 아니면 땅콩, 올리브, 피클 정도로 안주를 대신한다고 하니 말이다.
나는 절임통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피클을 검색해보았다.
[제작, 피클 10리터
본래는 채소를 절여 보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절임 식료였으나, 독특한 맛 덕분에 곁들여 먹기 좋은 음식이다.
필요한 재료 : 오이 40개, 식초 5리터, 물 4리터l
추가재료 : 고추, 그 외 적당한 채소나 첨가물
필요한 도구 : 절임통, 농사 스킬 Lv3, 요리 스킬 Lv3]
“이런, 식초가 필요하잖아?”
“식초는 발효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식초부터 만들어야겠다.”
시행착오가 생겼다.
피클에는 식초가 필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발효통을 써서 만들면 되긴 하는데, 시간이 두 시간 걸린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식초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발효통으로 다가가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해보았다.
여러 종류의 식초가 나왔는데,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제작, 사과 식초 1리터
사과를 이용해 만드는 식초, 신맛과 약간의 단맛을 내는 식재료다. 사과향이 첨가되는 것은 보너스.
필요한 재료 : 사과 4개, 설탕 1개, 물 1리터
필요한 도구 : 발효통, 조합 스킬, 농사 스킬 Lv3, 요리 스킬 Lv3]
"내 취향에는 역시 사과지.“
사과는 내가 이 게임에서 처음으로 길러본 과수라서 애착이 좀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요리에서 쓰인 식초도 대부분 사과식초였고 말이다.
산도를 지닌 과일이면 어떤 걸로든 만들 수 있지만, 사과만큼 친숙한 게 없다.
나는 제작 버튼을 눌렀다.
“항아리 하나에 담을 거니까, 발효통 18개만 쓰자.”
발효통 18개가 쓰였고, 사과 72개, 설탕 18개가 소모되었다.
사과는 이제 사실상 8시간마다 무한정으로 나오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걱정이 없다.
사탕무에서 얻어야하는 설탕이 좀 한정적이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사과식초 발효 중 - 1시간 59분]
“이러면 사과식초가 완성되는 동안 피클은 잠시 놔두고, 케첩을 만들까?”
피클부터 만들려는 당초의 계획을 조금 틀어서 케첩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절임통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케첩을 검색해보았다.
[제작, 케첩 10리터
토마토를 이용해 만드는 대중적인 소스.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토마토 풍미가 일품이다.
필요한 재료 : 토마토 30개, 설탕 20개, 충분한 양의 물
필요한 도구 : 절임통, 가열도구, 조합 스킬, 농사 스킬 Lv3, 요리 스킬 Lv3]
[이 제조에는 간소화된 제조과정이 요구됩니다.]
“엇, 이건 제작과정이 있는 거네?”
“그렇습니다, 케첩의 제조에는 가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재밌겠다, 얼른 해봐야지.”
메주를 만들때도 그랬지만, 이런 것이 구현되어 있는 게 꼭 귀찮은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생활 스킬을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만드는 방식을 간소화한 걸 체험해보는 게 또 다른 재미였다.
나는 케첩의 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인벤토리에서 토마토 30개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면서 껍질이 얇게 까졌다.
“가열할 용기에 물을 붓고 토마토들을 담아야 합니다.”
“가마솥을 쓰면 되겠네, 물방울아 가마솥에 물 좀 채워줘. 불돌이는 가마솥을 데워주고.”
냐아아아아
왈왈!
물방울이 앞발을 살짝 흔들더니 물이 생겨나면서 가마솥에 물이 채워졌다.
불돌이는 가마솥의 아궁이에 불을 땠다.
그리고 내가 그 근처로 향하자, 토마토들이 알아서 솥 안에 담겼다.
“조합 스킬을 이용해 토마토를 갈고 씨앗을 걸러냅니다.”
골램이 부연설명을 했고, 내가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조합 스킬이 적용된 것인지 가마솥에 넣은 토마토들이 믹서기에 간 것처럼 갈아졌다.
잘 보면 토마토 씨앗들은 걸러져서 땅에 버려지고 있었다.
“이제 설탕을 넣고 물을 끓여 졸이면 됩니다. 15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현실에서도 이거랑 비슷하게 만든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주인님의 세상에서의 레시피와 유사합니다. 다만 그곳에선 식초와 소금을 첨가하기도 합니다.”
“메주 만들 때도 그랬지만, 재밌네.”
요리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요리사나 요리전문가가 된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생활 스킬은 귀찮게만 여기지 않으면 재밌어서 할 만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이 가상현실 게임에선 인기가 없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하긴, PC게임이면 몰라도 가상현실 게임에서 ‘짠’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노동이 필요하면 진입장벽이 좀 센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뭐든 ‘짠’하고 만들어버리면 생활 스킬을 하는 맛이 없거나, 아니면 너무 진입장벽이 쉬울지도 모른다.
게임 개발진은 편리함과 밸런스, 그리고 고증과 재미 사이에서 고뇌한 것 같다.
“다 졸아진 것 같은데.”
“이제 절임통에 붓고 2시간을 기다리면 10리터의 케첩이 완성됩니다.”
“좋았어, 케첩은 이걸로 만들어진 셈이고······ 그럼 2시간 동안 뭐하지?”
또 시간이 붕뜨게 되었다.
나는 곰곰이 할 일을 생각해보았다.
좀 쉬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재봉이나 대장기술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쉬는 건 아까 쉬었고, 재봉이나 대장기술은 선술집 일을 마치고 하고 싶었다.
“그냥 절임통 몇 개 더 만들어서 여러 가지 만들어봐야겠다.”
절임을 이용한 식료는 피클과 케첩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잼이 떠올랐는데, 제빵이나 제과를 했을 때 잼이 있으면 여러모로 맛을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잼을 조리에 포함 시킬 수도 있지만, 토핑처럼 손님에게 권할 수도 있다.
케첩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나는 결심을 한 뒤 절임통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러곤 절임통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잼을 검색했다.
그 중에서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제작, 사과잼
사과와 설탕을 이용해서 만드는 잼. 무척 달고 빵이나 과자에 사과향을 첨가시키는데 유용하다.
필요한 재료 : 사과 30개, 설탕 30개
추가 재료 : 계피가루
필요한 도구 : 절임통, 가열도구, 요리 스킬 Lv3]
[이 제조에는 간소화된 제조과정이 요구됩니다.]
“이것도 제조과정이 필요하네.”
“잼 또한 가열을 이용해 만듭니다. 그 과정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근데 물이 재료에 적혀 있지 않는데?”
“구현된 레시피에는 사과와 설탕만으로 만들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 그래? 한 번 해봐야겠다.”
나는 곧바로 제작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사과들이 둥둥 떠다니면서 잘게잘게 썰려나갔다.
곧바로 불돌이가 데워놓은 가마솥으로 날아가 담겼다.“설탕을 30개 부으십시오.”
“30개나 넣어도 괜찮은 거야?”
“잼은 본래 설탕을 다량 사용하는 식료입니다. 잼을 만드는데 소모되는 과일과 설탕의 비율은 1:1입니다.”
“몰랐는데, 잼이 달달한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나는 골램의 말대로 설탕을 부었다.
“잼이 타지 않도록 적당한 불에서 저어주어야 합니다. 15분의 시간이 소모됩니다.”
“주걱은 지난 번에 만든걸 쓰면 되겠고······ 불돌아, 약간 화력을 낮춰줘.”
왈왈!
불돌이는 내 말을 곧바로 알아듣곤 불을 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난 번에 만든 큰 나무 주걱으로 썰린 사과와 설탕이 잘 섞이도록 저었다.
자세히 보니 설탕이 사과의 과즙과 열에 의해 녹아들고 걸쭉한 설탕물이 되고 있었다.
따로 물을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은 이런 이유인 것 같았다.
15분간 설설 저어주니 향긋한 잼 냄새가 났다.
이 또한 새로 만든 절임통에 담아 2시간을 보관하게 되었다.
“딸기잼도 나쁘지 않은데, 딸기를 쌓아두는 것도 뭣하고 말이야.”
“딸기잼 또한 가열을 이용해 만듭니다. 제조과정은 거의 동일합니다.”
“그럼 딸기잼도 만들자, 아, 포도잼도 만들면 되겠네.”
나는 즉시 절임통 2개를 더 만들었다.
딸기잼과 포도잼도 설탕의 비율은 1:1이었다.
딸기나 포도는 엄청 많지만 설탕이 어느덧 100개 이상 소모되어버렸다.
과연 설탕은 쓰임이 많은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부터 자꾸 단걸 만드는 거 같은데요. 단내가 자꾸 나요.”
“토마토, 사과, 딸기, 포도······ 그런 것들이 막 날아다니고 있음. 뭐하는 거지?”
“흠, 설탕도 막 붓는 걸 보니······ 잼을 만드는 것 같은데요.”
“잼? 잼을 끓여서 만듦?”
“네, 잼은 끓여서 만듭니다. 불순물을 걸러주는 것이 조금 귀찮지만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홈메이드도 가능하죠.”
구경꾼들 중에 잼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수다를 떨면서 뭔가 기대를 하며 내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곤 흐뭇해져서 신나게 잼을 저었다.
딸기잼과 포도잼은 분홍색, 보라색이 완연해서 보기에도 좋았다.
“주인님, 절임 요리들을 보관할 땐, 유리병을 이용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나무로는 안 돼?”
“나무통에 장시간 보관 시 맛이 변질되거나 부패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남는 유리가 없는데······ 그럼 뭐 만들면 되지. 불돌아! 대장간으로 가자!”
왈왈!
딸기잼과 포도잼도 절임통에 넣은 뒤에 골램이 그렇게 말했다.
유리병이 없으면, 이제 만들면 된다.
재료는 모래와 석회이니 흔해서 금방 구할 수 있다.
나는 피클, 케첩, 사과잼, 딸기잼, 포도잼을 보관할 10리터짜리 유리병 5개를 만들었다.
개당 5분이 걸려 25분이 소요되었지만, 이젠 이 정도는 휘파람 불면서 만드는 수준이었다.
남은 것은 사과식초가 만들어지는 것과 잼들이 다 절여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음, 메주가 다 익었겠다.”
그런 사이 처마에 걸어둔 메주가 다 익을 시간이 되었다.
된장과 간장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 걸어둔 10개의 메주.
지난번에 보리로 만든 메주도 2개가 남아 있다.
이거면 된장을 만드는데 충분할 것이다.
나는 발효통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된장을 찾아보았다.
[제작, 된장 1리터
한국의 장중의 장 된장. 구수한 맛을 낼 때 주로 쓰인다.
필요한 재료 : 메주 2개, 소금 2개, 물 2리터, 숯 1개
추가 재료 : 적당량의 고추, 적당량의 대추,
필요한 도구 : 발효통, 조합 스킬, 농사 스킬 Lv4, 요리 스킬 Lv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