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휴식, 회 시식 >
발효통을 깨끗하게 비운 뒤, 나는 충분히 먹고 마시면서 쉬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골램과 불돌이, 바람이를 데리고 대장간으로 들어가 유리를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다.
심심하게 와인과 막걸리의 취기가 올랐지만 작업에 방해가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당히 오른 취기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어서 작업 능률이 올랐다.
물론 현실에선 술 먹고 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또 2시간 정도 유리 만드는데 집중하여서 나머지 유리잔을 다 만들 수 있었다.
“끝냈으니, 좀 쉬어야겠네.”
“주인님, 그럼 저는 작물을 수확하고 있겠습니다. 주인님은 휴식을 취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래줄래? 고마워.”
유리를 다 만드는데 총 네 시간 정도가 걸렸으므로 작물들이 다 자랐을 것이다.
나는 골램과 같이 수확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았지만, 그 사이에 좀 쉬엄쉬엄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골램의 말대로 했다.
휴식삼아서 해볼 만한 일은······
“역시 낚시지!”
······낚시 만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냥 낚시도 아니다.
끝내주게 맛있는 와인이 있으니, 그걸 마시면서 할 생각이다.
이른바 음주낚시! 하지만 유리잔에 와인을 담기에는 용량이 좀 아쉽기도 하고 손이 버겁다.
하지만 나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재봉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해보았다.
[재봉, 가죽 물통(1리터)
가죽을 이용해 만든 물통. 담은 물이 시원하게 보관되는 특징이 있다.
필요한 재료 : 적당한 동물의 가죽 1장, 적당한 동물의 힘줄 1개
필요한 도구 : 바늘, 재봉 스킬 Lv1]
“있다!”
중세풍의 영화에서 꼭 볼 수 있었던 가죽 물통!
병사나 기사, 유목민, 용병, 바이킹 등의 전사들이 전투 후 멋지게 물이나 술을 마시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비록 전사는 아니지만 멋진 것은 따라 해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얼른 제작 버튼을 눌러서 재봉을 시작했다.
힘줄을 실 삼아서 가죽을 바느질하면 어느새 멋진 가죽 물통이 완성되어 있었다.
“현실에서도 이런 걸 팔긴 하지. 하지만 이쪽이 훨씬 멋스럽잖아?”
완성된 가죽 물통은 영화소품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와일드한 멋이 있었다.
나는 얼른 그것에 와인을 담았다.
담으면서 술꾼 같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걸 가지고 낚시를 하면서 술을 홀짝인다, 그야 말로 강태공이 따로 없을 것이다.
“얘들아 낚시 하자!”
냐오오오옹!
꼬꼬꼭!
왈왈!
멍멍!
삐이이이익
나는 낚싯대를 꺼내면서 애들에게 말했다.
그물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물을 쓰지 않을 것이다.
휴식에는 그물 낚시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입질을 느낄 수 있는 낚시를 하고 싶었다.
골램이랑 같이 할 때를 대비해서 낚싯대 하나를 더 살까?
아니, 어쩌면 목공 스킬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나는 나루터에서 배를 띄웠다.
배에는 수영은 아니어도 뱃놀이를 하고 싶은 눈치인 실버와 불돌이가 탔다.
꼬꼬꼭
냐오오오옹 “녀석, 이제 호크 등이 네 전용 배구나.”
물방울은 배에 타지 않고 호크의 등에 타서 자신만의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허허허 웃으며 노를 저으며 호수 가운데로 배를 이동시켰다.
실버와 불돌이는 움직이는 배가 재밌는지 뱃전에서 펄쩍 펄쩍 뛰놀았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불돌아.”
왈왈!
불로 된 불돌이가 호수에 빠지면 어쩌나, 조금 걱정이 되어서 말했다.
실버야 빠져도 개헤엄을 칠 수 있을 것 같지만 말이다.
삐이이이익
그 사이 바람이는 이미 하늘을 날면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사냥을 시작하고 있었다.
호크도 이따금 물 속에 고개를 처박으면서 물고기를 낚았다.
나도 물에 찌를 드리우면서 낚시를 시작했다.
아니, 사실 낚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시간과 세월일 따름이었다.
“크으으.”
맛 좋은 와인을 마시면서 말이다.
유리를 만들면서 쌓았던 피로와 열기는 금방 잊혀졌다.
이따금 낚시 스킬에 걸리는 물고기를 낚으면서 입질도 즐기고, 시간도 보내서 강태공이 되는 기분을 만끽했다.
[송어(60cm)]
낚은 물고기 중에 송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사실 물고기하면 회를 떠올리긴 하는데, 민물고기는 기생충 때문에 자연산은 먹을 수 없다.
하지만 깨끗한 물에서 키운 양식은 회로 먹을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송어인데, 그런 송어를 보니 절로 회가 생각났다.
문제는 이게 게임이라도 호수에서 난 것은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란 말이다.
먹어도 될지 몰라서 나는 골램에게 물어보았다.
추수를 하고 있는 골램은 원격으로 대답해주었다.
[민물고기의 기생충은 구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먹어도 안전합니다. 다만 배스처럼 회 맛이 떨어지는 물고기는 회로 먹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맛은 구현되어 있지만 미식가가 아닌 일반인이 먹기에는 풍미가 떨어집니다.]
“음, 송어는 먹어도 된다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먹어도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회를 먹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요리 스킬로 회는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까?
나는 요리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 회를 검색해보았다.
[요리, 회 뜨기.
생선 요리의 한 방식인 회 뜨기를 한다. 어떤 물고기를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풍미가 다르다.
필요한 재료 : 회를 뜰 적당한 물고기 1마리
필요한 도구 : 식칼 혹은 날붙이, 요리 스킬 Lv5]
“음, 이런 식이군.”
특정한 회 요리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회 뜨기 스킬로 구현되어 있었다.
특징은 요리 스킬 요구레벨이 꽤 높다는 점이었다.
회 뜨는데 기술이 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을까?
하긴, 일식 요리사들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회 뜨기 스킬로 송어를 회쳐보았다.
나무 그릇에 담긴 했지만 곧 야무지게 회쳐진 송어회가 그릇에 가득 담겼다.
먹지 않는 머리와 꼬리, 내장은 불돌이가 맛있게 먹었다.
멍멍!
“실버, 너도 먹고 싶어? 옛다. 한 입.”
멍멍!
군침을 흘리는 실버에게 먼저 한입 주었다.
그 다음에 젓가락으로 회를 먹어보았다.
살살 녹으면서도 쫄깃하고, 감칠맛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초장이나 와사비 간장이 없단 점이었다.
“지금 있는 재료들로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나중에 만들어봐야겠다.” 하는 김에 강이나 바다를 찾아가서 본격적인 횟감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송어회의 자연적인 풍미를 맛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초장과 와사비 간장이 없어도 고급 와인과 마시니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물고기 본연의 맛을 더 잘 볼 수 있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물고기를 낚으면서 충분히 놀고 쉬었다.
그 사이 골램이가 추수를 다 끝낸 상태였다.
“사탕무 200개, 토마토 453개, 오이 359개, 상추 598개, 양파 336개를 수확했습니다.”
“수고했어!”
나는 골램에게서 작물들을 건네받으면서 토마토와 오이, 상추, 양파를 하나씩 꺼내보았다.
하나 같이 전부 다, 먹음직스럽고 빛깔이 좋았다.
토마토는 탱글탱글하고 붉은 빛이 완연했다.
한 번 배어먹어 보았더니 시원한 토마토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토마토는 신맛이 강한데도 당도가 높아선지 맛이 달달했다.
오이는 그리 크진 않았다.
사실 오이는 크면 씨알도 굵어져서 적당한 크기가 좋다.
이것 역시 맛을 보니 시원하고 좋았다.
피클로 만들어도 맛이 좋을 것 같지만, 샐러드에 추가시켜도 좋을 것 같았다.
상추는 잎이 크고 파릇파릇해서 고기쌈을 해먹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오늘 만들려는 된장 삼겹살에 곁들이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양파는 용기를 내서 한 번 먹어보았는데, 생양파가 이렇게 달 줄은 몰랐다.
당도가 높은 양파는 단 맛을 낸다고 해서 먹어보았는데, 농사 스킬이 그것을 구현해준 모양이었다.
“우선 만들어야 하는 게······ 된장이랑 간장, 케첩, 피클, 베이컨인가.”
오늘 만들려는 메뉴를 떠올리며 하나씩 생각해보았다.
우선 된장 삼겹살.
필수 재료인 된장이 없다.
된장을 만들기 위해서 콩을 심었는데, 만드는 김에 간장도 만들면 될 것이다.
다음은 샌드위치.
베이컨이 없지만 아마도 베이컨은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추가 재료를 더 넣으려고 했다.
피클과 케첩, 마요네즈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피클이랑 케첩은 절임통이란 게 필요하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한 번 찾아볼까.”
나는 목공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 절임통을 검색해보았다.
[목공, 절임통
각종 절임 식료를 만들기 쉽게 만들어주는 통이다. 용량은 10리터.
필요한 재료 : 목재 10개
필요한 도구 : 망치, 목공 스킬 Lv3]
“발효통 같은 건가보네.”
절임은 발효의 한 방식이다.
소금, 설탕, 식초 등으로 절이는 식료를 산소와 차단시켜서 무산소 발효시키는 것이 절임이다.
경우에 따라선 발효와 완전히 구분 짓기도 하는데, 아마도 게임에선 그런 관점으로 발효통과 구분시켜 놓은 듯했다.
“용량이 10리터나 되면 그리 많이 만들 필요는 없겠다.”
절임 음식마다 하나씩 만들어두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일단 된장이랑 간장부터 만들어 볼까.”
일전에 보리메주를 만들었으니까 이번엔 그냥 메주를 만들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조합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했다.
[조합, 메주
콩을 이용해 만든 메주.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콩으로 만든 메주로 고추장, 간장, 된장 등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필요한 재료 : 콩 30개, 충분한 양의 물
필요한 도구 : 가마솥, 조합 스킬] 메주를 만드는 방식은 보리 알곡을 썼던 것을 콩으로 대체할 뿐이었다.
가마솥에 콩을 한 가득 삶은 뒤, 그것을 꺼내서 잘 밟아준다.
잘 으깨어진 콩들을 잘 뭉쳐서 메주의 모양을 만들면 끝.
원래는 메주 모양을 적당히 만드는 것이 힘들다.
너무 뭉치면 안이 썩고, 부족하면 모양이 안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스킬을 쓴 거기 때문에 모형에 맞춰 만들기만 하면 적당히 알아서 만들어졌다.
그렇게 이번에도 메주를 쒀서 농가의 처마에 걸어두었다.
10개를 만들어뒀는데, 콩이 300개 들었다.
하지만 콩은 수확량이 많아서 136개나 남아있었다.
“된장이랑 간장 만들 메주는 이 정도면 됐고······ 절임통으로 여러 가지 만들어봐야겠다.”
피클과 케첩······ 그것 외에도 잼이라든가, 젤리라든가, 여러 가지를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았다.